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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이

라한대 장마

  • 아님이
  • 조회 수 88
  • 2017.07.15. 23:15
  • 글자 수 자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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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사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릴때의, 그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차분해지는 느낌. 창밖으로 재잘재잘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아, 후끈 달궈진 아스팔트에 비가 떨어지면서 나는 그 냄새도 좋아한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교실에 형광등을 켜야 하는, 그런 것도 신기해서 좋다.


"그런데 표정이 왜그래?"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했지, 비 오는 날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았어."


혜리가 쿡쿡 웃었다.


"그나마 버스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 미리 고마워?"


나는 혜리를 한번 째려봐준 다음, 버스 뒷문에 우산을 받치고 섰다.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온몸으로 대자연을 흠뻑 느꼈음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 덕분에 혜리는 비교적 깔끔하게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우와아아, 남자답다아아."


망할.


말이나 못하면.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걸까. 우산 너머에서는 빗방울보다는 기관총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당연히 바람도 쉴새없이 앞뒤로 불어왔다. 이대로 교실로 들어가면 우산 안쓰고 왔냐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지.


나는 불현듯 혜리를 돌아보았다.


"왜?"

"잘 오고 있나 보려고."

"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혜리도 흠뻑 젖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나와는 다르게 교복 상의는 그럭저럭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아쉽게도 내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혜리의 브래지어 색깔을 확인하고 황급히 고개를 다시 돌릴 기회.


나는 속으로 조용히 울부짖었다. 아, 남자다움의 부질없음이여.


비 오는 날 밖에 나가기 싫은 이유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생각되는데, 바로 조심하지 않으면 발이 다 젖어버린다는 것이다. 철벅철벅 슬리퍼로 갈아신으려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 꾸리꾸리한 기분은 둘째치고, 집에 갈때는 대체 어쩌지.


대충 발을 씻고, 의자에 교복 상의를 걸쳐놓고 말리고 있으려니, 혜리가 한쪽 손에 양말을 든 채 교실로 들어온다. 나는 장난스럽게 코를 막았고, 혜리는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뭐지, 그 퍼포먼스는?"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

"시백이 너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것 같은데, 나는 발냄새 따위는 나지 않거든?"

"진짜?"

"물론이지! 그러니까...야! 코 안막아?"


혜리는 재빨리 양말을 든 왼손을 뒤로 돌리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내 코를 잡고 세게 비틀었다. 딱히 과민반응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여자라도 남자가 갑자기 자기 양말에 얼굴을 들이밀면 당연히 깜짝 놀라겠지.


"으허허허! 아야! 그만! 그만!"

"죽어! 변태야!"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고, 오늘도 또 하루가 시작된다. 비 때문일까. 일교시는 평소보다도 훨씬 조용하다. 


나는 무심코 혜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덜 말라서 촉촉한 머리카락. 새하얗게 드러난 맨발.


아, 눈이 마주쳤다.


혜리는 표정을 한번 찡그리더니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이래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창밖으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아침 교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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