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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세마라

by 메이사이 posted Sep 17, 2017 (21시 05분 19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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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급하다.


시간 역시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던 나는 얼마 걷지 않아 황금빛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환영합.."


뭐라고 말하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문지기를 무시한채로 나는 문을 열어젖혔다.


- 와아아아!!

- 용사님이시다!

- 세상을 구원해주실 분!!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내리쬐는 발코니 아래에서 수많은 인파가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다. 깔끔하고 세련된 외형의 현대적인 건물이 아니라 고풍적인 디자인의 중세풍 건물과, 그 아래 광장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는 사람들. 처음 이 광경을 보는 사람이라면 분위기에 분명 압도되었으리라.


"자네가 용사인가? 나는 이 나라의 국왕. 생귀니우스 1세라고 하네."


발코니 한쪽에 있던 무리에서 중후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나와 뭐라고 떠든다. 화려하지만 무거워보이는 왕관을 쓰고서 잘도 움직이는걸 보니 아직 정정한걸까. 아무튼 분명 이 다음은 아이템 수여식이겠지. 제발 부탁이니까 기사단장이 나와줬으면 좋겠네. 쟤가 차고 있는 성검 정도면 좋을텐데 말이야.


"힘든 여정이 될 것은 분명할테지. 하지만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어느새 말을 마쳤는지 주변에 손짓을 하는 할아버지. 그러자 장님도 눈의 띄일만큼 매력적인 소녀가 나와서 나에게 다가온다.


아, 안돼..! 설마..!


내 마음속의 절규와는 달리 사뿐사뿐 걸어오는 소녀는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있는 붉은색의 보석함을 공손히 나에게 건네주었다.


괜찮아. 아직 이정도면 예상범위니까. 일단 뭐가 나올지는 까봐야 아는 법이지.


두근대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나는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 젠장할. 니네 장난하냐. 나한테 자꾸 이런 똥을 주는 이유가 뭐야?"


"무, 무슨 소리인가!"


"무엄한 자로다!"


당황했는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소녀의 주변에 서있던 자들에게서 노성이 쏟아진다. 하기야, 마왕을 막기 위해서 소환한 용사가 첫 만남에서 이런 쌍욕을 했으니 당황할 만도 하겠지. 근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니들은 처음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가 몇번인지도 모를 지경이니까. 그리고 제발 다음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깊은 빡침을 내쉬며 소녀가 건네준 상자 안에 있는 목걸이를 꺼내들었다. 이런건 감정해볼 필요도 없지.


내 손안에서 영롱히 빛나는 목걸이는 주신의 셋째 딸이자 사랑과 자애의 여신인 어쩌구가 직접 축복을 내렸다는 아이템이다. 설명만 들어보면 뭔가 굉장히 거창하고 효과가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부활마법이 딱 세번 스톡되어있는 목걸이일 뿐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빛좋은 개살구요, 아무 쓸모가 없는 아이템이라고!


물론 파티원에게 애정을 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키울 오덕군자들에게는 유용하겠지만 나는 전혀 아닌걸!

마왕 목을 따기위한 스피드런에 있어서 파티는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용사 본인은 이세계인이랍시고 부활이 안먹히는데!

왜! 어째서! 이런 똥같은 것을 자꾸 주느냐 말이다!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는지, 용사여?"


그래도 왕이랍시고 나름 태연하게 나에게 다시 말을 거는 할아버지.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 세자릿수가 넘도록 시도한 리세마라에서 계속 쓰레기만 건네주는 노망난 노인으로 보일 뿐이다.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달려나가기 위해 슬금슬금 거리를 재면서 다리에 힘을 준다.

목표까지의 거리는 고작해야 네걸음 밖에 안되니까 아무리 1렙의 용사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들이닥칠 수 있겠지.

무언가 수상쩍은 낌새를 느꼈는지 노망왕 생귀니우스 새끼의 주변에 서있던 왕실 기사단장이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새끼야.


"이딴 쓰레기를 줄거면 차라리 돈으로 달라고!!"


말과 함께 발코니 바깥으로 향해 힘차게 몸을 날리자 주변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설정상 지금 이포인트를 놓치면 다음 리셋이 가능한 때는 왕도 바깥에 나가 모험을 시작할때이고, 그러면 내 피같은 시간이 오분은 소모되겠지. 그러니 바로 이 순간밖에 기회가 없다.


당황한듯이 나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기사단장의 어벙한 표정을 보며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신 햇살때문에 눈을 감자, 하늘을 나는 듯한 부유감이 나를 감싼다.


- 털퍽..!


고깃자루가 패대기 쳐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야 한쪽에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낙하 데미지 : 523 pt / 상태 :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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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Rogia 2017.09.19 21:05
    모바일 게임에서는 리세마라 (리셋 마라톤)이 일상적이지만, 이런 짓을 가상현실게임에서 하는 건 몹시 피곤하겠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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