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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네가 아닌 내 시간

  • 킹갓초원
  • 조회 수 93
  • 2017.09.17. 22:40
  • 글자 수 자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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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늘한 감각이 남은 손끝에는 여전히 아린 감각이 남았다.

"왜."

불현듯 스쳐간 감각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왜, 왜, 왜, 왜!!"

들서이는 어깨는 힘없이 바닥을 향한 채로 손은 오로지 떠는 행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바닥에 흥건하게 번진 검붉은 피의 정체를 잊고 싶었다.

제발 이 지독한 악몽이 끝났으면 하고 기도했다.

그럴수록 선명해지는 뜨거운 피와 그녀의 손에 남은 온기가 현실감을 깨웠다.

'꿈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1.



하늘은 평범한 사람을 시험에 들게하는 걸 좋아한다.

범재가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취미라도 있는 게 아닐까.

수를 세는 걸 잊은 오늘의 날짜 9월 16일. 대체 몇 번이나 오늘이 반복된 건지 몰라도 하나의 일념만은 분명했다.

"오늘은 꼭..."

그녀가 자고 있는 방으로 향하는 걸음이 무겁지만 억지로 빨리했다.

역시나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일었다. 그래도 감정을 만끽할 여유 따위는 이미 수십 번의 시도도 전에 잊었다.

오늘도 창고에 있던 끈을 가져와 엮어 침대와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행위라곤 믿기지 않는 행위. 곧이어 일어난 그녀는 내 얼굴을 보며 그대로 얼어버렸다.

"아침 가져올게. 조금만 기다려줘."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차갑게 식어서 나를 향한 만연한 증오만이 남은 그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난 겁쟁이다. 그녀에게 자유조차 주지 못하는 머저리에 쓰레기.

"그래도 상관없어."

자각하는 사실도 목적 앞에선 부질없는 것이었다.

난 '오늘'로써 반드시 그녀를 살릴 거다. 죽게 두지 않을 거다. 결코...

자살하게 두지 않을 거다.

이미 수천, 수만 번의 오늘을 지나 이번이 몇 번째 아침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런 일이 벌어진 때의 기억은 또렷하지만.

나를 건물의 옥상으로 불러낸 그녀는 난간에 기댄 채 내게 말했다.

"행복해?"

그 초연하고 의미마저 불분명한 말을 남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눈은 울고 입은 웃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상황. 불안감만이 심장을 스쳐 지나갔다.

"아, 안 돼!"

난간에 기댄 채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뒤로 넘어갔다.

"아, 아아아아아!!"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갑자기 차오른 구토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스스로를 향해 되뇌는 의문은 곧이어 하나의 결론으로 향했다.

지금 벌어진 일이 현실인지를 깨닫기 위해 풀린 다리를 놔두고 팔의 힘만으로 난간으로 향했다.

비참한 몰골로 기어가는 모습은 아랑곳 않고 도착한 난간.

거기서 보게 된 광경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무너져 흥건하게 바닥을 적신 그녀의 몸이었다.

내장 전부가 차올라오는 기분.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사고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을 감는 것뿐.

그렇게 눈을 감은 나는 잠시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그녀의 손글씨로 적힌 쪽지를 쥐고서.

여기까지는 악몽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번 이어진다면?

내게 내일은 없다. 끔찍한 오늘만이 남았다.

그녀가 계속해서 죽는 끔찍한 매일. 이 굴레를 끊기 위해 난 오늘도 그녀를 침대에 묶었다.

이렇게 있으면 자살할 수는 없을 테니.

간단히 준비해온 아침식사를 팔다리가 묶인 그녀의 앞에 내려놓고 음식을 입에 가져갔으나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이 반응도 똑같다.

"그래도 먹어야지."

애써 부탁해도 듣지 않는 그녀를 보곤 또 다시 포기해버렸다.

분명 이전엔 내가 실수로 옆에 두고 간 젓가락을 삼킨 그녀가 질식사로 죽었지. 이번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

어떻게 해서든 위험이 될 일은 모두 없앤다.

커튼을 떼고, 선반과 뾰족한 건 모조리 치웠다. 이걸로 그녀는 죽을 수 없다. 이번엔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절대 죽게 두지 않을 거야."

그래도 혹여나 하는 불안감에 그녀를 위한 음식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기필코 염원을 이루기 위해.

방문은 열어놓고 수시로 확인한다. 그녀의 눈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일그러진 것도 이젠 참아내야만 한다.

"젠장."

눈이 슬쩍 감기기 시작했다.

오늘이 반복된다고 해서 피로가 해소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피로는 누적되고 그만큼 내 세월도 누적된다.

거울로 문득 비춰진 내 얼굴은 노파의 세월처럼 주름이 그득했으며 눈은 쾡하게 초점이 맞지 않았다.

점점 힘들어지는 거동과 뿌연 시야. 슬쩍 눈을 감아도 금방 잠이 쏟아졌다.

제대로 묶어놨으니 이번엔 괜찮겠지. 싶은 생각으로 잠시만, 아주 잠시만 눈을 감은 순간.

쨍그랑!

정신을 갑자기 깨우는 커다란 파열음.

"...아아아아아."

달려간 그녀의 침실에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깨진 채로 열린 창문과 살점, 그리고 피로 물든 끈이 침대에 놓여있을 뿐.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 몰려왔다.

"살점을 파내고 피를 쏟고, 수만 번을 죽을 정도로 내가 싫은 거야?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절규하는 성대와 혀끝에서 느껴지는 옅은 쇠맛.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또 밀려왔다.

다시 오늘이 시작되는 징조였다.

"아...아아......."

졸음을 딛고 혹여나 싶은 마음으로 내다본 바닥에는 바닥을 전신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선명하게 보이는 입가의 미소.

허탈감과 상실감이 목을 옥좼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 잘못이 그렇게까지 컸던 거야?"

속죄조차 허락되지 않는 무간도에서의 기억은 다시 졸음에 밀려 멀어졌다.

그리고 그런 내 손에는 다시 그녀의 증오가 담긴 쪽지가 남았다.

저주스러운 그녀가 내게 남긴 벌의 증거 말이다.


이젠 제발 죽지 말아줘.

내일이 오게 해줘.

나를 지옥에 가둔 너를 내일 내 손으로 죽여버릴 수 있게.


[난 죽으면 죽기 하루 전으로 돌아가는 힘이 있어.]


"제발 그만하란 말이야...!"


[그리고 내가 죽는 순간 내가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기억을 가진 채로 나의 시간으로 함께 가.]


"이 시발련아! 제발 그만하란 말이야!!"


[날 버린 대가야. 넌 죽는 순간까지 내가 죽는 '오늘'을 영원히, 늙어 죽는 순간까지 보게 될 거야.]


이걸로 수만 번의 오늘이 끝나고,

결국 미쳐버린 내 감정은 오늘도 오늘을 반복했으며,

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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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Rogia
1등 Rogia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악의를 풀기 위해서는 역시 대화... 대화가 답입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한 타임리프 이야기는 그러고보니 좀처럼 접한 적이 없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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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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