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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쓰레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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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47 Jul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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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딸갤러
협업 참여 동의

 K는 언제부터인가 야밤이면 한강 부근을 찾아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달밤의 한강 야경은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온갖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물에 번지는 것이 퍽 번잡스러울진 몰라도 그 사이로 고고히 떠있는 달을 볼작시면 마음이 동해 깡소주라도 한 병 사오게 되는 것이었다. 

 K는 편의점에서 종이컵 하나를 얻어 와서 그에 술을 따라 마시면 속이 알싸해지는 것이 이내 곧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자신 처지를 한탄하였다. 자연마저 즐기지 못하는 속물적인 인간이라 하면 어쩔쏘냐. 어쩌면 달을 즐긴다는 말은 그저 술을 들이키며 한탄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한 잔 마시고, 물에 뜬 달을 바라보며 또 한잔 마셨다. 서른 평생을 남들보다 못할 것 없이 노력하며 살아왔다 자부하건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겨우겨우 취직을 하니 월급날이 다가오기도 전에 회사가 부도났고 수년간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니 세 달 후, 경리가 자금을 들고 달아났다. 아니, 그보다 한참 전 어릴 때부터 K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도둑으로 누명쓰고 휴가 하루 전에 무력도발로 휴가가 취소되던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K는 자신의 처지를 상상하자니 속이 쓰려와 다시금 잔에 뜬 달을 마셨다. 술을 마셔도 몸이 뜨거워지기는커녕 알 수 없는 시림이 온 몸을 감쌌다. 어릴 적부터 몸을 감싸던 냉기였다. K는 강을 바라보았다. 둥근 달이 보였다. 아름다웠다. 

 오늘이 보름이었나. K는 입속에서 혀를 굴렸다. 입 안의 텁텁함을 뱉어내고 싶었지만 강에 뜬 달을 이지러트리기는 싫었다. 대신 달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당나라 시선 이백이 달을 건지려고 강에 뛰어들었다고 했던가? K도 그런 마음이었을는지 모른다. K는 바지가 젖는 것도 모르고 한 걸음 한 걸음 물속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달이 뜬 곳은 그리 깊지 않은 곳이었다. K는 달 앞에 멈추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니, 그저 술기운에 고개를 숙이었던 것이었다. K는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포옹하듯이 팔을 활짝 벌리고는 달에 뛰어들었다. 

  

  

 K가 눈을 뜬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주당들이 으레 그러하듯 상황파악하기 보다는 지끈거리는 골통을 붙잡고 욕을 내뱉었다. 한참을 지끈거리는 골통과 알코올의 해악에 대해 중얼거리던 K는 기억을 되돌렸다. 분명 자신은 물에 빠졌던 것 같은데……. 누가 보고는 건져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니 풀 한 포기 없는 황폐한 황무지였다. 금세 혼란이 찾아왔다. 그가 아는 한 서울에 이런 황무지는 없었다. 혹여 납치라도 당한 게 아닐까 불안해하며 하늘을 올려보자, 그곳에 지구가 있었다.

  

 K가 이곳이 달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나름 빠르게 납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간에 강에 뜬 달로 뛰어들었더니 달로 왔다는 동화 같은 얘기를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K는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은 울퉁불퉁한 바위에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 봤던 성조기가 펄럭거리던 암스트롱의 영상이 생각났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도(태연히 숨을 쉬고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없는 걸로 보아 그는 꿈이라고 판단했다.) 기왕 달에 왔다면 성조기는 봐봐야 하지 않겠나. 그는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하늘에 지구가 보이지 않았다. K는 달의 뒷면에 도착했단 것을 깨달았다. 전인미답의 땅에 도착했다는 것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K는 나잇값도 못하고 아이처럼 달려 나갔다. 달에선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발자국을 내려고 방방 뛰었다. 발자국이 잘 새겨졌는지 확인하려고 바닥을 내려다보자, 자신의 발자국이 아닌 발자국이 존재했다. K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달의 뒷면에 왔던 것이다! 

 K는 그 발자국을 따라갔다. 폭이 좁고 크기가 작은 것이 꼭 짐승의 발자국만 같았다. 발자국은 일정한 경로를 향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갔는가 하면 다시 왼쪽을 향하고 뒤로 돌았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종횡무진 나아가는 발자국에 짜증이 치밀어 오를 무렵,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300여미터 정도의 거리에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K는 잊었던 두려움을 다시 상기했다. 낯선 곳에 다른 지성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큰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소리죽여(달에는 공기가 없어 소리가 전달되지 않지만) 천천히 건물을 향해 나아갔다. 커다란 간판이 그를 반겼다. 간판에 써진 글자는 분명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건만 그는 어쩐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달의 쓰레기장」. 이 건물은 쓰레기장이었던 것이다. 

 거기 누구 있소? K는 용기를 내 소리를 내었지만 입 속에서 웅얼거릴 뿐 어디로도 퍼지지 않았다. 그는 정적이 흐르는 건물로 조심히 들어갔다. 건물은 단층 건물이었는데, 시설도 오직 쓰레기 보관소 하나만 있는 모양이었다. 푸른 복도를 따라가면 쓰레기 보관소가 있다고 간단한 약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K는 조심스레, 하지만 빠르게 복도를 지났다. 무인시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혹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면 졸도할 자신이 있었다. 

 「달의 쓰레기장」의 쓰레기 보관소는 아무리 봐도 보관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K가 알기로 너저분하게 흐트려놓은 것을 보관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쓰레기 보관소는 매우 광대하고 그만큼이나 쓰레기들이 쌓여있었다. 쓰레기들에는 모두 이름표가 붙어있었는데, 역시 간판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언어는 아니었으나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스톨포의 이성’,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 ‘하프라이프3’ 등, 이곳의 모든 쓰레기들은 지구에서 온 것임을 확신했다. 쓰레기들은 전 분야, 전 세계의 것들이 모여 있었고, 이 쓰레기들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는 그제서야 쓰레기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곳이 무엇이든 버릴 수 있고 무엇이든 받아주는 곳이라면, 자신의 ‘불운’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K는 몸속에서 ‘불운’을 꺼내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언제나 몸을 차갑게 휘감는 냉기를. K의 몸이 크게 떨렸다. 고통이 엄습해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식은땀이 흐르자 K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을 겪다 정신을 차리자, 그의 눈앞에는 커다란 검붉은 무언가가 있었다. K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검붉은 무언가가 자신의 ‘불운’이라는 것을.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던 시린 기운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기운이 혈관 곳곳을 맴돌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같이 힘이 솟았다. 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배가 아플 정도로, 달이 떠나가도록 소리 없는 웃음을 내질렀다. 하하하.

  

  

 K는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달이 아닌 언제나 술을 마시던 한강 근처 풀숲이란 걸 깨달았다. 꿈이었나. 그는 털썩 풀숲에 누웠다. 역시 꿈이었다. 달에서 숨을 쉬고 맨몸으로 자연스레 움직이는 게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K는 술을 따라 달을 마셨다.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후덥지근했다. 몸이 뜨거웠다……. 몸이 뜨거워? K는 반문했다. 그래, 뜨거웠다. 그를 괴롭히던 냉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날 밤 이후로 K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불운을 너무도 과소평가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이후로 그가 하는 모든 일들은 잘되었다. 그야말로 만범순풍이었다. 뒤로 넘어지면 넘어진 자리에 지폐가 있었고 취직을 하자 순식간에 출세했으며 사업을 시작하니 날로 흥하였다. 그는 단 반년만에 일용직 생활은 떠올릴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밤마다 달을 보았지만, 더 이상 한강 부근에 나가 소주를 마시지 않았고, 한강이 훤히 보이는 창문 너머로 숙성된 와인을 따랐다. 술을 마시면 냉기는커녕 몸이 후덥지근해 옷을 벗어야 할 정도였다. K는 성공했다. 말그대로.

 그러던 어느 보름날이었다. 과거(반년에 불과하다지마는)의 향수가 떠올라서였을까. K는 술을 진탕 마시고는 한강을 찾아왔다. 마치 일용직 생활을 하던 때 마냥 소주 한 병을 사와서는 하늘에 뜬 달과 강에 뜬 달을 보며 잔에 뜬 달을 마셨다. 속이 알싸해지는 것이 좋았다. 괜시리 노래를 흥얼거리다 소리를 지르다 이윽고 강을 향해 다이빙했다. 그는 분명 술버릇이 좋지 않았음이라. 

  

 K가 다시 눈을 뜬 것은 「달의 쓰레기장」 앞에서였다. 그는 단번에 상황을 이해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과는 달리 노래를 흥얼거리며(여전히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천천히 푸른 복도를 지나갔다. 쓰레기 보관소는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딱 한 가지만 달랐다. 검붉은 무언가, 즉 K의 ‘불운’이 전에 비해 5배는 부풀었던 것이다. K는 그걸 보고는 다시금 웃었다. 그렇게 커지면 무얼할텐가. 다시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못할 불운에게 조롱과 웃음을 보냈다. 

 『아! 여기 계셨군요!』

 그때였다. K의 등 뒤에서 소리(엄밀히 말해서 소리는 아닌)가 들려왔다. K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철모를 뒤집어쓴 토끼가 서류를 들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K는 눈앞의 존재가 전에 달에서 발견한 발자국의 주인임을 깨달았다. 동시에 토끼가 「달의 쓰레기장」의 관리자라는 것도. 

 『아니, 대체 선생님은 뭐하시는 분입니까. 함부로 쓰레기를 무단투기 하시면 안돼요! 보세요. 선생님께서 버리고 가신 쓰레기가 부풀어 오른 게 보이지 않으십니까.』

 K는 당황했다.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문제인가. 그는 당황해했지만 그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은 달이었고, 달은 지구가 아닌 달의 법도로 움직였다. 즉, 그는 벌금을 물었다는 것이다.

 『자, 이거 다시 가지고 가세요. 5배로 늘었다느니 하는 말은 안 받습니다.』

 토끼는 K의 ‘불운’을 잡아 K에게 밀어 넣었다. K는 커다란 고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그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K는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달이 아닌 언제나 술을 마시던 한강 근처 풀숲이란 걸 깨달았다. 꿈이었나. 그는 털썩 풀숲에 누웠다. 역시 꿈이었다. 아무리 달이라지만 토끼가 있다는 건 너무도 동화같은 발상 아닌가. K는 술을 따라 달을 마셨다.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졌지만 따뜻하지 않았다. 몸이 시려왔다……. 몸이 시려워? K는 반문했다. 

 

 냉기가, 그를 한평생 괴롭히던 냉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는 몸을 감싸 안았지만, 전보다 강해진 냉기는 꺼지지 않았다. 그는 몸을 떨었다……. 그와 일생을 함께한 반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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