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Papilon noct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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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달빛은 포말과 같다. 하얗게 물들다 이내 스러지고 마는 유약한 몸을 지닌 탓이다. 그 밤의 너도 그랬다. 만월의 밤, 별빛 모두 침묵한 채 여왕의 안전을 기리는 보름의 날이었다. 


그 달은 유난히 밝았다. 월광 아래 그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에 이끌리나 월광을 탐하던 그 모습은 유폐되었다는 달의 공주를 연상시켰다. 그대는 그렇게 옥탑방 위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녹옥의 두 날개를 내게 향한 채로. 


사람의 인기척에 그대는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밤의 공주에 걸맞는 미색이었다. 허나 나를 그대로 이끈 것은 그대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달빛에 녹아들것만같은 아련한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그대의 날갯자락을 붙잡게 만들었다. 


그러고서야 마주친 눈동자는 밤처럼 깊었다. 달빛으로 빛나는 날개가 내 손끝에서 바르르 떠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대에게 첫 마디를 떼었다.

어디로 가시냐는, 지금 보면 우습지도 않은 얘기였다. 


"월궁으로 향하고 있나이다. 그러니 놓아주소서."


그대에 걸맞은 대답이라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너무나도 어울려서 웃고말았다.

밤의 나비인 그대는 나를 보고 무엇이 우습냐고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진정 월궁도 모르시나이까? 달의 뒷편에 있는 궁궐을 들어보시지 못하셨나이까?"


"들어는 봤지만 동화속의 이야기였는걸요. 놀리려는 건 아니었어요. 화내지는 말아주세요."


그대께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월궁에서 잘못을 저지른 그대는 지상에서 인간의 마음을 얻으라는 벌을 받고서 이 땅에 내려앉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땅은 옛 이야기를 잊고 무의식 너머로 묻어버린 모노크롬의 세상이었다. 날개옷을 잃지는 않았지만 나무꾼을 만나지도 못하는 선녀는 저 하늘나라 궁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필 그대가 떨어지신 곳이 내가 살던 옥탑방이라, 나는 달이 떨어질 때까지 그대와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냈다. 그대는 결국 그 밤에는 올라가지 못하셨다.

그러고서는 내게 부탁을 했다. 어떻게든 보답할테니 자신이 돌아가는걸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밤의 마력이란 대단한 것이라 나는 덜컥 알겠노라고 대답해버렸다. 


애석하게도 내 인간 관계가 그리 넓다고는 하기 힘들었기에 많은 이들을 만나진 못했다. 그대는 내 지인들에게 유학생이라고 넌지시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그대는 이 땅에서 인연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대가 나의 친우들과 웃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기뻤으나 한편으로는 그대와의 이별이 다가온다는 것이 못내 밉기도 했다. 


그대는 8평 단칸방과 작은 옥상에서 세상을 배워나갔다. 그대와 있던 일들은 그 어떤 사소한 사건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기껏 내온 커피를 쓰다며 싱크대에 부어버리기도 했고, 술에 잔뜩 취해선 나를 놀리기도 했다. 아름다운 날개는 나방의 것이 분명했음에도 그대가 벌레를 매우 무서워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런 소중한 일상이 흘렀다. 


그러면서 한달이 지났다. 9월의 보름이 폭우로 바뀌어버린 것이 그대께는 꽤나 아쉬운 모양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네요. 내일까지는 우산을 들고나가야겠어요."


그대는 나를 보며 날개를 접었다. 당신이 날개를 접고서 물기 가득한 눈으로 침침한 밤하늘을 바라볼때면 이상하게도 그대를 보내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겹쳤다. 그대 계신 곳은 이 땅이지만 그대 계실 곳은 이 곳이 아니니, 이 곳을 떠나시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알고있었음에도.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대와 플라네타리움을 가게되었던 일이 있었다. 인공적이라고는 하나 도시의 한켠에 작게 밤하늘이 내려앉았다. 그대는 두리번거리면 달을 찾았다.


"달이 보이지않나이다. 밤하늘을 보여주는 기계라고 하기에 기대했건마는.."


"달은 너무 밝아서 별을 볼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되서 빼버린것 같네요."


불퉁하다는 심보를 온몸으로 나타내며 입을 삐죽 내민 그대도 머리 위를 작게 수놓은 은하수를 보고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아련한 미소였다. 처음 그대를 만난 날과 비슷한 분위기에 나는 문득 그대의 손을 잡아쥐었다.


"무!무슨 무례입니까! 말도 없이 갑자기 손을 잡다니요!"


그대가 작게 성을 내는 모습도 귀여워서, 또 가슴이 미어져서 마음속으로 웃고 또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대가 어느덧 내 세상의 한 부분을 꿰차고는 점점 퍼져나간 것이다.  


몇달이 가도록 보름은 달을 볼 수 없었다. 추석에도, 정월의 대보름에도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눈이 꿰차던 길 위누 벚꽃잎으로 뒤덮었다. 


4월의 보름. 이번에는 만월이 구름 사이로 땅 아래를 흘끔 살펴보았다. 당신은 신이 나서 곧 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희망찬 말을 늘어놓았다. 웃으며 축하하는 내 마음속 한켠은 구름이 야속해 울고있었다. 세상에 내리지 못한 비가 온통 내 마음을 적시는 듯, 그대의 웃음을 보며 나는 작게 울었다. 


5월, 어느새 벚꽃은 푸른 새순이 되었다. 그대는 어느새 이 좁은 옥탑방을 벗어나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연녹색의 날개는 검푸른 하늘을 향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대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구름 한 점 없던 낮에 그렇게 확신할 수있었다. 그대가 얻은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나의 마음이었다. 그대께 그것을 전하지 못한 스스로가 그저 야속할 따름이었다. 


그 날, 나는 그대를 배웅했다. 아름다운 날개가 충만한 월광에 희미하게 빛나던 것이 떠오른다. 별도 행성도 전부 가린 거대한 은빛 달이 그대를 마중나온 밤이었다.


"부디 조심히 가세요. 드릴게 없어 꽃다발이나마 가져왔는데, 괜찮을지는 모르겠네요."


"예쁜 꽃다발이라, 기쁘게 받겠나이다. 그간 도와주신 것은 정말 감사드리나이다. 부족하지만 전에 약조했던대로 보답을 드리겠나이다. "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경단이었다. 


"항아님이 가져오신 불사의 약이나이다. 저는 이 것을 훔쳐 벌을 받아 이 땅에 떨어졌나이다. "


이걸 내게 줘도 되느냐는 반문에 그대는 웃으며 내게 그것을 넘기라는 항아님의 전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대의 그 티없는 웃음이 아파서 내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 우시나이까? 좀 더 기뻐하셔도 되나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 아니나이까?"


당신은 손을 뻗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웃으며 배웅해주소서. 그대는 이제 행복하실겁니다."


나는 기쁘게는 당신을 배웅할 수 없노라고 울며 외쳤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보내드리지만, 웃지는 못할것 같아요. 당신이 얻어 돌아가는 마음은 제 마음이에요."


그대는 갑작스러운 내 고백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확실히 기억하는건 복숭아빛의 볼이었다. 그대의 대답도 희부연 눈물에 젖어 제대로 떠올릴 수 없다. 그저 언젠가 돌아오겠노라고,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말이었다. 내 서투른 고백에 제대로 답을 하셨는지도 

기억나지않는다.


그대는 이내 나를 바라보다 두 날개를 달빛에 맡기었다. 두 팔로는 꽃다발을 안은 채였다. 그대의 날갯짓이 별로 반짝였다. 그대의 목소리조차 떠올리기 막막한 지금이지만 그 날의 이별만큼은 가슴속에 닻처럼 박혀있다. 그렇게 달빛의 강으로 그대가 사라진 밤이 어느덧 5년전이었다.


그대가 포말처럼 밤하늘로 녹아내렸던 5년전의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있다. 그대가 나를 찾기 쉽도록 그때의 옥탑방에 나는 아직도 살고있다. 그대를 기리기위해 나는 옥상에 수선화를 기른다. 잊지않기위해서. 그대가 나를 잊지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보름을 기다린다. 


손에는 아직 까지않은 불사약이 들린채였다. 그대를 만나기전까지는 먹지않을 생각이다. 오늘도 보름달이 도시의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차갑고 유약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리운 월광. 나의 작은 한 발자국이 인류가 아닌 그대의 마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면 했다.


"달이 아름답네요, 라는 말이 지상에서는 다른 의미로도 불린다고 들었나이다."


그리운 목소리를 따라 바라본 곳에는 그대가 있었다. 5년전과 별반 다르지않은 그 모습이었다.


"혹 소녀를 잊지는 않으셨나이까? 약조를 지키러왔나이다. "


수선화가 달맞이꽃으로 푸르게 피어난 밤이었다. 그대는 꽃을 따라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밤의 요정 팅커벨처럼 그대는 나를 피터팬으로 만든다. 그렇기에 나는 오직 꽃처럼 그대를 기다렸고, 밤의 나비인 그대가 내게 돌아와 주었다.  


모노크롬빛 세상의 강물 위로 은빛 달이 흘렀다. 오늘만큼은 이 세상이 달빛으로 물든다. 무지개의 끝을 향하는 세상의 두 표류자가 달로 날갯짓하기에.



작자사설

제목은 불어로 나방을 의미합니다. 작중 소재로 등장하는 나방이란 곧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흔히 팅커벨이라고 불리는 나방입니다. Moon moth, Luna라는 영명답게 달빛에 잘 어울리는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녀의 날개옷의 날개가 나방의 녹색 날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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