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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23 Jul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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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cramer
협업 참여 동의

아침이에요. 빛은 없지만 지금이 오전 7시인것은 알 수 있어요. 케이프 커내버럴의 주민 여러분들에겐 좋은 아침이에요.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일이에요. 스스로의 상황과 환경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어울리는 동선을 짜는것이 중요해요. 저는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커패시터의 상태는 양호해요. 8시간 30분간의 수면모드 동안 6시간 28분의 주행을 위한 에너지가 충전되었어요. 일주일 전에는 6시간 31분이었는데, 조금 줄었네요.



하지만 토륨 동위원소 팩의 수명은 130년이니까 아직 123년하고도 8개월은 남은 셈이에요. 가끔 주행시간이 달라지는건  커패시터의 컨디션에 달린 거랍니다.



그럼 일단은 움직여 볼까요.



도르르르



오전 11시 31분이에요. 지금은 잠깐 멈췄어요. 굉장히 신경쓰이는 윤곽을 발견해 버렸어요. 라이트를 켜고 우선 다가가 보았어요. 벌써 반사광이 심상치가 않아요. 저는 아껴두고 있던 성분분석기와 지면 스캐너를 가동시켰어요. 이건 주행 시간을 잡아먹으니까 정말 정말로 중요할 때에만 키는 거에요.



이런. 성분 분석기에서도 신호가 오고 있어요.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210 밀리초가 남았다고 해요. 제가 정말 중요한 발견을 해버린 걸까요. 설마 제가 찾아 해메던 물의 흔적일까요? 아니면 생명체?



결과가 나왔어요. 단순 유리질이었다고 하네요. 운석이 충돌하면서 흙모래가 녹아서 자연스럽게 물처럼 녹아 고였던 모양이에요. 물은 아니어도 역시 흥미로운 발견이에요. 8930만년 적에 여기에 운석이 충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저는 이 사실을 비정형 유리질 #328로 데이터베이스에 꼼꼼히 남겼어요.



아직 점심 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발견도 하나 했고 멈춘 김에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했어요. 약 30여분간 저의 모든 기능을 자가점검하는 시간이에요. 오늘 수고해준 제 성분분석기와 지면 스캐너를 먼저 살피고 그 다음으로 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구동계를 점검해요. 구동계가 잘못되어 버리면 저는 꼼짝도 못하고 여기 갇혀 있어야 하니까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일 거에요. 그래서 저는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꼭 자가점검을 한답니다. 새로운 장소로 나아갈 수 있는 내일을 위한 30분인 거에요.



오늘도 큰 이상은 없네요. 2678일째 무사고 운행이에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인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구동 베어링에 먼지가 끼어 있었답니다. 이건 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네요. 움직이다 보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기를 바랄 수 밖에요. 그럼 출발할까요.



도르르르



벌써 밤이네요. 아침에도 밤에도 주변은 어둡지만 저는 구분할 수 있어요. 시계를 본 건 아니에요. 커패시터의 전압이 낮아져서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 시작했거든요. 연구원분들은 이러면 제가 피곤해졌다고 했어요. 그리고 너무 피곤해지면 저는 잠을 자요. 연구원 분들도 잠을 잔다고 해요. 연구원 분들은 잠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연구원 분들은 언제나 잠이 안오게 한다는 카페인 성분의 연료를 마셨어요. 저는 그게 이해가 잘 안 갔지만요. 저도 잠을 좋아하거든요.



그럼 저는 이제 잘 준비를 하기 위해 불필요한 센서들을 하나 둘 끄기 시작해요. 초장파 수신기부터 65개의 센서를 하나 둘 차례대로 꺼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언제나 자세제어 모듈을 꺼요. 그리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 저도 모르게 잠에 빠진답니다.



하암. 연구원 분들은 제가 하품하는 메시지를 출력하는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오늘도 하품을 하고 잘 거에요. 하암.



하지만 잠을 정말 좋아하는 저라도 이 때 잠을 자서는 안되었던 걸까요. 잠에 들기 직전에 저는 이상을 느꼈어요. 하지만 센서가 대부분 꺼져있어서 정확히 어떤 이상인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점점 속도를 줄이고 있었어야 했던 저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어요. 어라. 이런 일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해요. 제 모터는 꺼져있는 걸요. 하지만 저는 이미 제 센서들은 전부 감아버렸어요.



다시 키고 싶어도 지금은 다시 킬 에너지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건 지금까지 한 번도 복 적이 없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고민했어요. 그리고 결정했어요. 이번엔 예비 파워팩을 가동하기로 했어요. 이건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할 때에만 커야하는 거에요. 단 세 번 밖에 쓸 수 없거든요. 그래도 켜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호기심이 생겼기 떄문이에요.



연구원 분들꼐 잠을 좋아하시면서도 잠을 못 자는 이유를 물어봤었어요. 호기심이 생겼거든요. 연구원 분들은 저를 위해서라고 하셨어요. 잘 이해가 안 갔어요. 지금도 이해는 잘 안가요. 하지만 연구원 분들도 이유가 있었을 거에요. 지금의 저처럼 좋아하는 잠을 참았던 이유가 뭐였을까요. 저처럼 호기심이 생겨서였을까요?



예비 파워팩 덕분에 저는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아직도 제 속도는 빨라지고 있었어요. 저는 내리막길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었던 거에요. 잠들 장소를 잘못 골랐나봐요. 하지만 그것도 이상해요. 제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이 장소는 분명히 평지였어요.



100년 전의 연구원분들이 찍은 사진 덕분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어요. 그 연구원분들은 사진 뿐만이 아니라 여기 널려있는 암석들도 같이 가지고 돌아갔다고 해요. 100년 전에 제가 여기 있었다면 그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100년간 어떤 연구원분들도 여기에 온 적이 없대요. 어째서일까요. 아마 너무 어두워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은 빛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했으니까요.



제가 지금 내려가고 있는 장소도 정말 어두운 곳이었어요. 당연히 있어야 할 별빛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혼란스럽네요. 이제 전자기 브레이크를 가동할 수 있게 되어서 서서히 속도를 줄였어요. 주변의 지형을 스캔해 본 저는 한 마디의 감탄사를 출력했어요.



유레카!



저는 자연 동굴을 발견해 버렸던 거에요.



예비 파워팩은 어디까지나 만약의 상황에 잠시 대처하기 위한 보험이에요. 하지만 저는 지금껏 데이터베이스에 없던 발견에 너무 회로에 과부하가 걸렸던 모양이에요. 결국 그 자리에서 무리해서 조사를 하다가 예비 파워팩을 전부 소진해버리고 말았어요. 바보같은 일이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저는 '새로운 발견'의 우선순위가 '비상시 전력보존' 보다 높게 설정되어 있어요. 그건 제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에요. 연구원 분들은 제가 스스로 생각해서 탐사하기를 원하셨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해요. 



하지만 그 탓에 이제는 정말 에너지가 없어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잠이 쏟아져요. 저는 동굴속에서 평소보다 좀 더 긴 잠에 빠져들었어요.



다시 아침이에요. 빛은 없지만 지금이 오전 11시인 것은 알 수 있어요. 평소보다 조금 늦잠을 자 버렸어요. 무리해서 그런지 충전이 오래 걸렸네요.



하지만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아요. 자연동굴을 조사할 생각에 모든 회로가 반짝반짝하고 빛나는 것만 같았던 거에요.



도르르르



동굴이 있었다는 건 곧 무언가 지질활동이 있었다는 흔적이에요. 운석충돌은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어도 지질활동은 정말 보기 드물어요.



도르르르



지질활동은 살아있는 행성의 증거거든요. 행성이 되지못한 위성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동굴을 발견한 것은 정말 극히 드문 행운이에요.



도르르르



이 사실을 연구원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어요. 저만큼, 어쩌면 저보다도 더 기뻐하실 것 같아요. 제가 수집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수집해서 전송해야 해요.



도르르르



하지만 바쁘게 동굴을 돌아다니며 데이터를 수집하다 보니 한 가지 놓치고 있던 사실이 있었어요.



도르르르



제가 동굴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실수. 나갈 방법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도르르르 도르르르



다시 동굴을 나가보기 위해 출력을 최대로 높였지만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동굴 바닥을 가파르고 미끄러운데 반해 저는 미끄러운 바닥을 올라가도록 설계되어 있지 못했어요. 저를 설계하신 연구원 분들도 이렇게 바닥이 미끄러운 환경을 예상하지는 못하셨을 거에요.



하지만 아직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에요. 언제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이 제 장기이고, 제 의무이니까요.



그렇게 동굴 속에서의 제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크게 변한것은 없네요. 하루 일과 중 바뀐 게 있다면, 평원을 가로지르는 일에서 동굴을 탐사하는 일로 바뀌고, 동굴을 나갈 방법을 고민해서 새롭게 시도해보는 일로 바뀌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얼마간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요즘은 제가 태양광으로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랬다면 동굴에 빠져버린 첫 며칠만에 큰 위험에 빠졌겠죠.



하지만 제 토륨 동위원소 팩의 수명은 130년이니까요. 아직 넉넉하겠 남아 있어요. 연구원분들의 평균 수명과 비슷하다는 것 같아요.



동굴을 나갈 방법을 찾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제게 주어진 기구와 센서들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스스로 여길 나갈 수 있는 확률은 이제 꽤나 정확한 통계를 내릴 수 있게 되었어요. 약 0.0921% 정도 될 것 같아요. 역시 쉽지 않겠네요.



도르르르



장거리 교신은 일찍부터 생각했던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동굴 안이라서 그런지 신호가 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연구원분들이 제 상황을 파악하려면 이 동굴에 직접 오셔야 할텐데, 그런 폐를 끼칠수는 없어요.



나가는 것은 어려워도 저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요. 탈출 대신에 조사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시작했어요. 그 데이터가 시간이 지나며 쌓였어요. 이제 저는 동굴의 모래 한알 한알의 정보까지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요.



이제 더 이상 제 능력으로는 더 조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데이터가 쌓였어요. 음. 그래도 아직 오차가 존재할 수 있으니 오차를 줄여나갈 작업을 해야겠어요. 앞으로는 오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어요.



도르르르



처음에는 오차율 5% 이내를 목표로 했었어요. 하지만 실험 모듈로 반복과 반복을 거듭한 끝에 오차율이 0.215%까지 줄어들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 줄어든 오차율로 계산해봐도 아직 제 탈출 확률은 여전하네요. 0.0921%에서 0.092185%로 더욱 정밀해졌다는 소득은 있네요. 요즘은 데이터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혹시라도 제가 수명이 다하게 되어도, 혹시라도 제가 발견된다면 제가 한창 연구하던 중의 난잡한 데이터 보다는 연구원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글로 풀어쓴 데이터가 좋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게 데이터를 정제하는 것도 저의 새로운 일과가 되었어요. 연구원분들은 이렇게 데이터를 정제하는 과정을 보고서를 쓴다고 불렀어요.



이 글을 보고 계시다는 것은 제 데이터베이스를 찾으셨다는 이야기에요. 제 발견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보고서의 마지막에는 작성자의 이름을 쓴다고 했어요. 그러니 저는 저의 이름을 써야겠지요. 제 이름은 화성에서 저처럼 탐사를 좋아했던 선배의 이름을 땄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좋아하는 이름이에요.



패스파인더 지음.



지금까지 제 보고서의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보고서인데도 제 이야기가 조금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연구원분들은 항상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언제나 궁금하셨어요.



이 후기를 보고 계신 연구원 분들도 계실것 같아서 이렇게 써 봤어요. 충고해 주셨던 대로 숫자와 기호는 최대한 줄이고 문장으로 써 봤어요. 어색하지 않은지는 모르겠네요.



보고서의 끝맺음에는 글쓴이가 있던 장소를 남긴다고 해요. 저를 설계하신 연구원님은 언제나 끝에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그러니 저도 그렇게 해볼까 해요.



달의 뒷면에서.

Writer

cramer

cramer

역시 내 청춘 시간활용은 잘못되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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