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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달이 빛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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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33 Jul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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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시공추
협업 참여 동의

 찰칵, 찰칵, 찰칵, 찰칵.

 펑!

 

 수많은 카메라가 리안드리히를 바라봤다. 별이 폭발하는 듯한 섬광이 연이어 번쩍이고, 혜성같이 검은 마이크들이 리안드리히에게 들이밀어졌다. 

 

 “민간인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소감이 어떠십니까?”

 “국립 우주 센터의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궁금합니다!”

 “실제로 달에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이 있었나요?”

 

 리안드리히는 그 모든 물음을, 그저 멍청하게 눈을 두어번 껌뻑이는 것으로 무시해 버렸다. 기자들은 질리지도 않고 마이크를 들이대고, 저마다의 질문을 떠들어댔으나 리안드리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혼이 빠져버린 듯한 모습은 마치 간신히 서있기만 하는 시체를 연상하게 했다.

 

 작년 말에 간신히 기자가 되는 것에 성공한 연수는 기자들 틈에 치여 죽을 맛이었다. 원래 이런 곳은 연식이 좀 된 선배들이 오는 게 맞다던데. 왜 내가 취업한 곳은 망하기 일 보 직전이라 신입을 이런 곳에 내몰아? 

 

 불만에 차 씩씩거리는 숨소리조차 기자들의 시끄러운 아우성 속에 묻혀 사라졌다. 연수는 검은 정장을 입은 키 큰 백인 기자에게 치여 거의 넘어질 뻔 하고서야 마음을 고쳤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제대로 된 질문을 한 뒤에, 제대로 된 질문을 들어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고, 제대로 된 곳으로 직장을 바꾸고 말겠다. 마침 저 ‘최초의 민간인 달 탐사자’는 정신이 나간 듯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까. 딱 좋은 기회 아닌가.

 

 

 결심한 연수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기자들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마이크를 오른손에 쥐고, 사람들 사이에 쑤셔넣고, 무작정 몸을 끼워넣어 틈을 비트는 작업은 굉장히 버거웠다. 그러나 연수는 어떻게든 인파에 떠밀리지 않고 리안드리히의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허공을 응시하는 리안드리히의 눈을 본 후에야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질문.

 

 ‘무슨 질문을 하지?’

 

 연수는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한 자신의 머리라도 세게 쥐어박고 싶었다. 무작정 오면 뭘 하나? 정작 질문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연수는 무작정 마이크만 앞으로 내민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리안드리히는 이 모든 상황에 질렸는지 슬슬 몸을 일으키려는 기색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에서는 어떻게든 질문권을 따내려는 후발 기자들이 연수의 자리를 빼앗으려 달려들고 있었다. 어떤 질문이든 해야만 했다. 이 좋은 기회를 남에게 거저 주려는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연수는 머리에 번뜩 떠오른 질문을 악에 받히듯 소리쳐 뱉어냈다.

 

 “그, 그! 달 뒤편에는 가 보셨습니까?!”

 

 유창한 영어였다. 리안드리히가 순간 연수 쪽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키도 작고, 피부도 누런 동양인이 자기네 나라 언어를 유창하게 뱉어내니 신기했던 것이겠지. 그래서 무심코 시선이 움직인 것이다. 아니면 정말 희박한 확률로 생각 없이 뱉어낸 질문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거나.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리안드리히의 움직임에 모든 기자들이 숨을 멈췄다. 연수는 아예 몸이 뻣뻣하게 굳어 멍청하게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리안드리히는 연수의 눈과, 멍청한 질문을 내뱉은 입을 차례로 번갈아 응시하더니.

 

 “Tonight, My Hotel. 9pm.”

 

 짧은 단어의 나열을 내뱉었다. 긴 문장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의 배려였을 것이다. 외국인인 연수를 위한. 

 

 연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이겨내지 못한 그의 머리는 총파업을 선언해 저 짧은 단어들을 번역하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까. 더 긴 문장으로 말했더라면 아마 제대로 듣지도 못했으리라.

 

 리안드리히는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뻣뻣하게 굳은 연수를 내버려두곤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온 검은 승용차를 타고 떠나가 버렸다. 기자들은 떠나가는 리안드리히를 보며 번뜩 정신을 차리고선 다시 질문공세를 이어나갔고, 소득을 얻지 못하자 이번에는 연수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질문했다. 졸지에 기자에서 피의자가 된 연수는 반쯤 혼이 빠져 흔들거렸다. 머릿속에선 리안드리히가 뱉고 간 짧은 단어들을 아직도 해석하고 있었다.

 

 Tonight. 

 오늘 밤.

 

 My hotel.

 나의 호텔.

 

 9pm.

 오후 9시.

 

 머릿속에서 천천히 단어가 해석되고, 연수는 괴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악!!”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깜짝 놀라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연수는 지금 그딴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아마 기자들이 단체로 오리걸음으로 주위를 맴돌았어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연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오직 성취감과, ‘내가 리안드리히에게 독점 인터뷰를 따냈어!’하는 생각 뿐이었다. 더해서 다음 직장으로는 어딜 고르지, 하는 약간의 세속적 물음과 함께.

 

 “다 비켜!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연수는 눈이 뒤집혀 기자들의 무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전진했다. 기자들은 그런 광기에 가득 찬 연수의 모습에 기겁해 길을 비켜줬고, 연수는 그 길로 바로 숙소로 향해 인터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뭘 물어야 할까? 리안드리히가 만약 나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지? 아니, 우선 내가 다니고 있는 언론사 명함부터 내밀어야 하나. 리안드리히가 한국어 명함을 읽을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 같은 3류 기자들은 외국어 명함이 필요 없다 말했던 선배는 이 사실을 알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연수는 반쯤 환호에 차, 넘쳐흐르는 엔도르핀으로 손가방에 닥치는 대로 수첩이나 필기구 따위를 쓸어 넣었다. 그 이후로는 거울 앞에 서 복장을 점검했다. 가장 기자스럽다고 생각되는 복장을 고르려 했으나 가져온 복장 중에 마땅한 것이 없었다. 어차피 인터뷰에 몸만 한 번 갔다가 외국 구경이나 하고 오자는 생각이었으므로.

 

 ‘곧 있으면 큰 물에서 놀 몸인데, 이깟 돈.’

 

 큰 맘 먹고 연수는 밖으로 나가 새 옷도 구매했다. 매장 거울 앞에서 본 자신은 정말 ‘일류 기자’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미래의 자신 그리기 숙제에서 그렸던 나의 모습.

 

 숙소 방에서 노트북으로 리안드리히에 대한 잡다한 정보들을 긁어모으고 있자니 시간이 어느새 8시였다. 리안드리히가 묵는 숙소는 걸어서 약 40분 거리에 위치했으므로 슬슬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택시를 잡아도 됐지만 그러기에는 몇 시간 전에 소비한 새 옷 비용이 머리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정신은 아직도 삼류 기자야. 이런 마인드도 곧 갈아 치워야지.’

 

 숙소 열쇠를 카운터에 맞기고, 연수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외국이라 그런가 하늘이 참 청명했다. 달도, 별도 오늘따라 왜 이리 환한지.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며 올려다 본 하늘의 달이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어정쩡한 대학을 나와, 신문방송학과라는 어정쩡한 학과를 고른 대가로 얻은 20대 청년실업자라는 칭호는 한때 연수를 좌절의 늪에 깊이 담궜었다. 노량진 단칸방에서 매일 술로 절망을 달래던 그를 외국의 밤거리까지 끌어다 준 원동력은, 굳이 따지자면, 저 하늘의 달인 것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노량진의 삶.

 

 서울의 달도, 공해로 친한 별 하나 보이지 않지만, 저렇게 환히 빛나고 있지 않느냐아.

 

 술에 취해 베란다에서 되는 대로 지껄인 말에 깊은 위안을 얻고, 그렇게 잠들어 또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그러다 ‘우연히’ 걸려 온 학과 선배의 전화에, 자그마한 언론사에 인맥으로 들어가게 된 나. 그리고 인맥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실력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된 지금의 나……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절묘해서, 연수는 차라리 노량진에서 매일 달을 보며 빌었던 소원이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신호등이 녹색 빛을 발한다.

 

 일류 기자의 첫 걸음을 내딛을 시간이었다.

 

 *

 

 리안드리히가 사는 호텔은 과연 풍채부터 삼류 기자가 묵는 숙소와는 궤를 달리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몸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크로스백을 맨 채로 프론트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직원이 다가왔다.

 

 “실례지만 리안드리히 씨를 보러 오셨습니까?”

 

 이야. 돈을 많이 벌면, 유명해지면 호텔 직원도 멋대로 부릴 수 있나 봐.

 연수는 그런 감탄을 느끼며 고개를 멍하니 끄덕였다.

 

 “신분증을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실례지만 몇 시간 전부터 리안드리히 씨를 찾는 기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요. 리안드리히 씨가 직접 요청하신 사항입니다.”

 아, 그거야 어려울 것 없죠. 연수는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직원은 신분증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702호실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는 저 쪽에 있습니다. 맡기실 짐이 따로 있으시면 프론트에서 보관하겠습니다만,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하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긴장해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삼류 기자의 마인드가 발목을 붙잡는 순간이었다. 멍청하게 직원을 쳐다보는 것 대신 고개를 흔드는 것이 연수의 최선이었다.

 

 직원은 연수의 반응에 “알겠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시길.”하고 다른 고객을 응대하러 떠났다. 연수는 다른 고객에게도 똑 같은 서비스를 반복하는 직원을 멍하니 응시하며 일종의 우월감을 느꼈다. 나도 일류 기자가 되면 이런 곳에서 서비스를 받는 거야,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702호 문 앞에 섰다.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인기척이 울렸다. 곧 문이 열리고, 안에서 리안드리히가 나타났다.

 

 “……아, 드디어 왔군. 여기 앉게.”

 

 리안드리히는 인터뷰에서 보였던 모습처럼 초췌했다. 슬쩍 방 안을 둘러보니 반도 먹지 않고 남긴 식사 접시가 눈에 띄었다. 목소리는 가래 끓는 소리처럼 낮게 울려 소름끼치는 인상을 남겼다.

 

 “예. 감사합니다.”

 

 어쩐지 연수는 리안드리히를 앞에 두자 용기가 솟아났다. 어쩌면 마음이 벌써 ‘일류 기자’의 그것으로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척척 절도있는 동작으로 의자에 앉은 연수가 리안드리히를 바라봤다.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크로스백에서 메모장과 필기구, 노트북을 꺼내 세팅하는 손길이 재빨랐다. 

 

 그런 모습을 보며 리안드리히는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런 귀찮은 짓 할 필요 없네. 전부 쓸모 없는 짓이야.”

 “예? 그렇지만 인터뷰를 할 때는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리안드리히의 다음 말은 연수를 깜짝 놀라 의자에서 떨어지게 할 만큼 강렬했다.

 

 “그래서 쓸모없다고 한 거야. 나는 인터뷰를 하려고 자네를 부른 게 아니니까.”

 “……예?”

 “내가 자네를 부른 건 그저…… 그저,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 의욕이 들지 않던 인터뷰 시간에 유일하게 자네 질문이 귀에 박혔어. 그래서 자네를 내 이야기의 청자로 정하게 된 거야.”

 

 연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울상이었다.

 

 “그럼 여기서 듣는 내용은 발설하면 안 되는 겁니까? 기사로 써도 안 되구요?”

 “그건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듣고도 자네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또 무슨 말입니까? 협박인가요? 범죄 사실이라도 여기서 자백하실 셈입니까?”

 “아냐, 그런 게 아닐세. 어쩌면 자네는 아무렇지 않을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경험이 삶의 의지를 모두 앗아갈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으니까. 어쩌면 자네에게도 그럴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헛소리로군. 연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리안드리히는 미치광이일지도 몰라. 그래서 기자들의 질문을 모두 무시한 거고. 연수의 머릿속에서 온갖 망상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중요한 사실은 한 가지였다. 어쨌든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 형식만이라도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 리안드리히의 이야기를 듣고, 적당히 각색해 자신이 질문하는 장면을 몇 개 끼워넣으면 될 터였다. 

 

 연수는 메모장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아직도 인터뷰 할 생각에 가득 차있군. 어디 언론사인가? 동양의 언론사에는 무지하지만 적어도 일류는 아니겠어. 이류, 아니면 삼류인가. 복장이 애매해.”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연수의 날 선 목소리에 리안드리히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이 사실을 깔고 가야할 것 같군. 달이 빛나는 이유는 알고 있나?”

 

<달이 빛나는 이유:태양의 빛을 반사하기 때문>

 

 간단한 사실이 전제로 깔리고.

 

 리안드리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리안드리히는 유복한 집의 자녀로 태어나, 남들이 다 겪는 실패 한 번 없이 자란 소년이었다. 머리도 비상했고, 몸도 튼튼했다. 인품도 곧고 올발랐기 때문에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여자친구도 몇 번 사귀었다. 매 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 한 시간씩 목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런 리안드리히의 꿈은 천문학자였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그는 달을 연구하고 싶었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그저 본능에 가까운 이끌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달을 보면 어쩐지 신비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었고, 조금 더 그것에 가까이 닿고 싶어졌다. 

 

 금방 사그라들 소년 시절의 꿈은 별나게도 어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사업을 이어받아야 했기 때문에 천문학자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지만 달에게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은 진짜였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영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아 CEO가 되었을 때에도 달 관련 서적이라면 빠짐없이 수집하는 마니아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찾아온 기회가 있었다.

 

 미국 국립 항공 우주 센터에서 개최하는 민간인 달 탐사 프로젝트. 

 

 21세기 최초로 민간인이 달에 갈 수 있는 기회.

 

 리안드리히는 이런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돈이 많았고, 건강했고, 열정도 있었고, 자질도 넘쳤다. 그는 순조롭게 최초의 민간인 우주 비행사가 되어 우주로 나갔다. 

 

 그리고 비행선이 우주 공간을 매끄럽게 헤엄쳐 달에 착륙하고, 얼마간의 자유시간 동안 환희에 찬 그가 한 번에 3미터씩 점프하며 달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때.

 

 마주친 것이다.

 

 *

 

 “달 토끼였어.”

 “농담이시죠.”

 

 연수는 진심으로 눈 앞의 리안드리히, 21세기 최초의 민간인 달 착륙자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애들이나 믿는 달 토끼 이론을, 직접 달에 발자국까지 찍고 온 사람이 주장하니 이게 과연 내가 깨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일 정도였다.

 

 “거짓말이 아니야. 정말로 달 토끼였어…… 우주의 토끼는 털이 아주 복슬복슬하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야. 낮이 되면 털이 짧아졌다가 밤이 되면 다시 길어진다고. 아마도 달의 큰 일교차 때문일 거야. 그렇고말고.”

 “아, 예.”

 “나는 달토끼를 따라갔어. 그거야 당연한 반응이였지. 달토끼야. 달 토끼라고! 이 세상의 그 누가 따라가지 않을 수 있었겠나?”

 “예. 리안드리히 씨 말이 맞습니다.”

 

 이러다 지루해 죽겠군. 언제까지 어울려줘야 하는 거야. 

 연수는 슬슬 자신이 쓸 기사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 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민간 우주 비행사 리안드리히, 실은 정신병자?>, <미국 항공 우주 센터의 치명적 실수>? 

 

 “달 토끼는 날 발견하고는 내게 손짓했지. 이 쪽으로 따라오라는 듯한 손짓에 나는 자유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홀린 듯 따라갔어. 토끼는 정말 빨랐는데, 나는 어느 순간 내 몸이 토끼처럼 가벼워졌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지…… 우리는 순식간에 달의 반을 질주했어.”

 

 리안드리히는 그 때를 회상하는 듯 황홀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었다. 이제는 숫제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난 봤어. 봐 버렸다고. 영원히 보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좋았을텐데……”

 “그게 뭡니까? 뭘 본 건데요?”

 “말할 수 없어! 난 절대 말 못해! 아냐, 그렇지만 말해야만 해…… 아아아아악!”

 

 리안드리히의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에서는 진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달에서 토끼를 따라가 목격한 ‘무언가’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우주 괴물? 달 토끼를 잡아먹는 괴물일까. 아니면 UFO를 탄 외계인이 그를 납치해 뇌에 무슨 짓이라도 한 것일까.

 

 “나는, 나는 보았네…… 달 뒷면에 있는 거대한 그것들을.”

 

 연수는 리안드리히를 응시했다.

 

 “달의 뒷면으로 점점 다가갈수록 파이프 같은 구조물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나는 달 토끼를 따라가며 그것에 대해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지. 나는 그저 따라갈 뿐이었어…… 파이프 구조물들은 점점 더 그 수를 늘려갔고, 점점 더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있었어. 나는 그것들이 송유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었지.”

 

 리안드리히는 이제 울먹이고 있었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달 토끼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난 거대한 기계를 보았지. 모든 파이프는 그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달 토끼는 멈춰서더니, 어디론가 달려가 나에게 떡 하나를 가져다 주더군. 먹으라는 것 같아 한 입에 삼키니 달 토끼와 말이 통하기 시작했어.”

 “그건 조금 흥미롭군요…… 토끼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기계! 눈 앞의 기계에 대한 설명!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 뒷면의 지식들!”

 

 리안드리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울부짖었다. 연수는 하마터면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달 토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더군…… 눈 앞의 기계는 거대한 발전장치이며, 달 내부의 광석으로 가동된다…… 지금까지 네가 오면서 본 파이프들은 광석을 운반하기 위한 장치였다…… 나는 물었지, 그럼 발전한 전기로는 무엇을 하느냐. 달 토끼는 가슴을 펴며 말하더군. 빛! 빛을 낸다! 당신들이 하늘을 보며 볼 달의 빛은 모두 우리가 만든 것이다! 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쓰러지지 않을 수가 없었어. 마음 속 불길에 누가 물을 끼얹어버린 기분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나?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신비하게 느꼈던 무언가가 단순한 거리의 가로등 하나와 똑 같은 존재였다는게?”

 “…….”

 

 <달이 빛나는 이유:뒤에서 달 토끼가 발전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기 때문에>

 

 연수는 리안드리히의 기세에 짓눌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몰랐으면 했어…… 그런 지식은 알고 싶지도 않았어. 난 이제 달을 좋아할 수 없어. 거리의 가로등이나 달이 내뿜는 빛이나 똑 같은 걸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느냔 말이야…….”

 

 리안드리히는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울었다. 연수는 조용히 그런 그에게 이불을 어깨에 덮어주었다. 추운 밤이었다. 

 

 정신병자의 망상이지만, 그래도 우는 모습이 불쌍했다.

 

 “에이, 씨발. 시간만 낭비했네.”

 

 연수는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거리를 걸었다. 숙소로 돌아가면 술을 진탕 마실 예정이었다. 정신병자의 헛소리를 기사에 쓸 수는 없었으므로 자신의 ‘일류 기자’도 날아간 거나 다름없었다.

 

 아마 리안드리히가 겪은 현상은 산소 문제일 것이다. 우주복의 산소 공급 장치가 이상을 일으켜 극심한 호흡 곤란을 일으켰겠지. 산소 부족으로 뇌는 환상을 만들었을 테고, 그 결과 그런 이상한 헛소리를 지껄이게 된 거야.

 

 연수는 리안드리히가 정신병자가 된 배경을 추측하며 눈 앞을 바라봤다.

 

 집으로 가는 신호등은 여전히 붉었다.

 

 일류 기자의 첫 걸음이었던 횡단보도의 앞에서 삼류 기자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

 

 순간 온 몸에 무게감이 사라져 붕 뜬 기분이 들었다. 제자리에서 폴짝 뛰면 3미터는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순간 달이 가로등과 겹치고, 어깨에 걸친 크로스백이 너무나도 무거워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연수는 울고 있었다. 숙소 방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어색한 삼류 기자의 모습이 되어 울고 있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우는 것은 정말 처음이였다. 자신이 어떻게 되어버린 것처럼 통제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텅 비어서, 그 상실감이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순간 리안드리히의 모습과 자신이 겹쳐 보였다.

 

 

 다음 날.

 

 연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했다. 어제 입었던 ‘어정쩡한 기자 옷’은 벗고, 한국인 관광객 같은 옷을 입었다. 간단한 조식을 먹은 후 책상에 앉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노트북을 키고 썼다.

 삼류 기자의 기사.

 

 <진실은 남들에겐 비웃음일 뿐이야. 물밑에서 발버둥치는 다리를 보여선 안 돼…….>

comment (4)

시공추 작성자 19.07.21. 03:36

<정보:이 글의 총 글자수>

9664(공백포함)

소재를 준 로판모똥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네모 19.08.02. 23:22
우승 축하드립니다. 상금 수령 방법( 컬쳐랜드/도서문화상품권/계좌입금 등)을 말씀해 주시면 확인 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시공추 작성자 네모 19.08.03. 15:16
와! 핀번호나 컬쳐랜드로 받을 수 있나요?
네모 시공추 19.08.03. 16:50
옙. 라한대 쪽지로 핀 번호 발송해드렸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