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역병, 창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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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12 Feb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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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시공추
협업 참여 동의

 역병, 창문 밖 


 0.


 [ㅋㅋㅋㅋㅋ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목에 힘주고 딱 소리쳤죠]

 [야! 너희 임마, 교복 입고 담배는 아니지!]

 [아이 씨 뭐야. 하면서 인상을 팍 쓰고 이쪽을 보더니 갑자기 도망치더라구요]

 [앜ㅋㅋㅋㅋㅋ쫄았구나]

 [그래도 걔네 더이상 담배는 안 피겠네요]


 딸기, 나의 딸기. 


 모습도, 목소리도 모르는 당신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적다. 20대 초반이라는 나이. 여자라는 성별. 할아버지와 단 둘이서 산다는 사실. 방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썼던 2층을 사용한다. 아침이 되면 창밖으로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이고, 학교가 끝날 때쯤이면 가끔 불량한 학생들이 골목길에서 담배를 태운다는, 그런 시시콜콜하고 잡다한 것들.


 어쩌면, 이런 사실들은 진정으로 당신을 ‘안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작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화님 썰 넘 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에 대해 딱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게 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담배연기에 대한 불평을 듣고, 앉은자리에서 즉석으로 지어낸 이런 작은 이야기에도 웃어주는 상냥함. 잘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무작정 믿어주는 순수함.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날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그 한 문장. 


 당신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1.

 

 내게 있어 일과, 라는 단어는 하나의 사이클(cycle)이다. 어제 했던 것을 오늘도 하고, 오늘 한 것을 내일도 한다. 그렇게 살아온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일주일 후에도 이런 생각을 똑같이 할 것이다. 


 식사는 보통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을 사용한다. 사실 이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보통이라는 접두사는 빼도 괜찮을 것 같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나가는 가스비를 내지 않기 시작한 것이 작년이다. 이런 점에서 전자레인지는 편리하다. 전기세 하나로 식사와 여가생활을 모두 챙길 수 있으니. 그리고 식사와 여가생활은 곧 내 삶의 모든 부분이니, 말하자면 인생의 사용료라고 할 수 있겠다. 


 전기세를 내는 돈은 나라에서 나온다. 놀고먹는 20대에게 주는 지원금은 생각보다 많다. 이것저것 찾아보며 여기저기서 끌어 모으면 편의점 아르바이트 월급 같은 금액이 생긴다. 


 밖에 나갈 필요는 없다. 모든 생활이 집 안에서 이루어진다. 예외는 단 둘이다. 쌓인 쓰레기를 버릴 때, 그리고 마트 배달을 받으러 현관문 밖으로 나설 때. 


 어떤 일이건 스스로 하는 법이 없다.


 오죽하면 나에 대한 내 생각마저 다른 사람들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겠는가.


 형편없는 놈. 

 형편없는 놈. 


 인생에 대한 평가는 항상 두 가지 목소리로 들려온다. 두 놈이 모두 다른 소리를 하고 있을 때, 사람은 두통, 소화 장애, 수족냉증, 스트레스 등을 호소한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해당이 없는 이야기였다. 눈치 챈 찰나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두 목소리는 합창단처럼 끊임없이 형편없는 놈, 형편없는 놈,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나는 관객석 맨 앞자리에서 그 기묘한 화음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어떠한 감흥도 없이. 


 감흥이 없다면, 이런 관객석에 있을 필요가 대체 뭔가? 


 불현듯 찾아온 그런 충동에 휘말려 벌떡 일어나 극장 밖으로 투신하려 할 찰나에, 무대 위로 가면 쓴 여배우가 오른다. 


 [초화님은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성대한 음이탈이다. 화음은 깨지고, 무대는 난장판이 된다. 높낮이를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에 두통이 일기 시작하고, 이것도 하나의 감흥이라면 감흥이겠지, 라는 생각에 나는 관객석에 다시 착석한다. 재미있는 사람인 나는 웃음을 짓는다. 


 2.


 [창문 밖에 왠지 지나가는 사람이 적더라니 전염병이 돈대요]

 [전염병이요?]

 [네. 사람들이 전부 마스크를 끼고 있던데요?]


 전염병, 전염병. 

 

 나는 황급히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전염병’이라는 키워드로 뉴스를 찾아본다. 정말로 전염병이 돌고 있었다. 그것도 이틀 전부터. 본격적으로 위험성이 알려진 건 오늘 아침 뉴스라고 한다. 전염성이 높고, 치사율이 높은, 아직 백신이 개발 중에 있는 바이러스. 


 [되게 무섭지 않아요? 전염병이란거]

 [지나가는 사람 중 누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괜히 진지해지고 그래서 초화님하고 대화하면 좀 나아질까 해서요 ㅎㅎ]


 진지하고 우울해진 사람의 기분을 풀어주려면 도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갑작스레 높은 벽에 부딪힌 나는 그만 평소처럼 대답하고 만다.


 [그러고 보니 친구 중에 방독면을 갖고 있었던 얘가 있었어요]

 [방독면이요?]

 [저번에 어떤 병 유행했을 때 온갖 유난이란 유난은 다 떨더니, 갑자기 약속 장소에 그걸 진짜 쓰고 나오더라구요.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헉헉대는 모습으로.]

 [방독면 그게 얼마나 눈에 띄는지 아세요? 걔가 지나온 방향 저 시야 끝에서부터, 바로 일행 뒤에 있는 사람들까지.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걔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정작 걔는 숨 쉬느라 바빠서 시선을 눈치 못 채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갖고 있었다니요? 지금은요?]

 [지금은 저한테 있어요. 유행 다 지나가고 나서 갑자기 저 가지라고 던져주던데요]

 [헉 보고싶다]

 [창문 밖으로 방독면 쓴 사람 보이면 초화님이라고 알면 되죠?]

 [안 쓰고 다니거든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허황된 말들. 


 당신이 날 향해 부르는 재밌는 사람이라는 말은, 가끔씩 내가 아닌 모니터 표면 속, 보다 당신에게 가까운 허상의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라면 여기서 다른 화제로 넘어갔을 대화에, 내 작은 발걸음이 꼬리를 문다.


 [진짜 방독면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재밌을까요?]

 [전 완전 재밌고 유쾌할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3.


 [성공적으로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사 버렸다. 방독면. 


 생각보다 쌌다. 최대한 크고 일상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골랐기에 조금 가격이 나가긴 했지만 허용 범위다. 식사 60끼니 정도의 가격은 약간의 절약으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


 포장을 풀자마자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저번에 이야기하다가 생각나서 찾아봤어요 ㅋㅋ]

 [헉 진짜 있네요....... 저거 끼면 감염될 걱정은 없을듯]

 [전염병이 점점 퍼진다는데 저도 하나 살까요? 외출용으로 ㅋㅋㅋㅋㅋ]


 나는 [그러다가 길에서 둘이 딱 마주치면 재밌겠네요] 라는 답장을 보냈다. 딸기는 별 생각 없이 친 한 문장에 스크롤바를 한 번 굴려야 했을 정도로 성대하게 웃었다. 그리고선 보내는 마지막 문장.


 [아...... 초화님 툭툭 던지는 한마디가 너무 재밌어요.]


 저 재밌다, 라는 말은 과연 어디를 보고 하는 걸까.


 모니터 앞에 서서, 채팅방을 내려다보며 괜히 방독면을 착용해봤다. 후욱, 후욱, 하는 거친 숨소리와 어쩐지 한 발 가까워진 것 같은 거리감. 


 나는 방독면이 있다.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방독면을 쓴 당신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밖에 나가지 않으니까.

 

 당신은 아직 멀다.


 나는 방의 창문을 열어 거리를 내려다봤다. 형형색색의 마스크 중 방독면을 쓴 사람은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는다. 처음 온 장소에 긴장한 야생동물처럼.


 후욱, 후욱.

 후우욱, 훅. 


 4.


 당신에게서 아무런 말도 오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났을까. 시계도 없는 나의 방. 돌아가는 챗바퀴로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는 전염병의 격리에 실패했다며, 모든 국민들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촉구하는 정부 측의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이제 나의 일과에는 새로운 항목이 두 개 생겼다. 한 가지는 매일 두 번씩 창문을 열고, 방독면을 낀 채로 길게 호흡하는 것. 나머지 한 가지는 당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무신경하게 당신이 보낸 사진들. 교복을 입고 단체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찍힌 사진에서 나는 주위 상가의 간판을 읽고 있다. 당신이 알려주지 않는 당신. 나는 당신이 알고 싶다. 보여주는 당신이 아닌, 내가 본 당신에 대해.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도 그러길 바란다. 제대로 나에게 초점을 맞춰 주길,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게, 깊게, 빗방울에 잎을 내민 화초처럼 바라고 있다.


 나는 지금 현관문 앞에 서 있다. 물론 방독면을 낀 채다. 


 후욱- 후욱-.

 후우욱-훅.


 바깥에는 이제 어떤 이도 거리를 걷지 않는다. 어쩌면, 당신도 그래서 나에게 아무 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방독면을 낀 채로 당신 방의 창문에서 보이는 거리를 걸으려 한다. 당신이 봤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걷고, 걷고, 걷고, 또 걷다가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말할 거리가 생긴 당신이 다시 나에게 말을 걸어주길.

 창 밖에서 진짜로 방독면을 쓴 사람을 봤다고 메시지를 보내주길.

 가능하다면, 간만에 재밌고 유쾌한 시간이었다고 느껴주길.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내일도 당신 방 앞을 걷기로 했다.

 분명 괜찮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당신이 분명 전염병에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줬으니까.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밖을 나갈 것이다. 


 걷고.

 걸어.

 걷다가.


 창문에서 날 웃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당신이 보이면, 방독면을 벗기로 하자. 전염병, 창문 밖으로 나간 내가, 창문 밖에서 당신을 처음 눈에 담고, 담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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