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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병에 걸린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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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3 Feb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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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ㄹㅍ
협업 참여 동의

“나, 병에 걸렸어.”


문득 서은진은 그렇게 말을 꺼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랑에 빠지는 병?”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내 품속에서 쏙 빠져나왔다. 이불이 스르륵 흘러내려가며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동녘 희미한 햇살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닦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병에 걸릴만한 몸은 아닌 것 같은데.”

“의사는 몸만 봐도 병에 걸릴지 알아?”

“의사로서의 의견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는거지. 네 몸은 몇 번 봐도 사람같지가 않아.”

“그거, 칭찬아니지?”

“그정도로 아름답다는 소리야.”

샐쭉해진 표정의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나는 웃었다.

처음봤을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 서은진과 자고 싶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까지 마주했던 환자 중에 그녀보다 아름다웠던 여자는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정은 입을 벌려 목젖을 바라보는 순간 끝이 났다. 어떤 사람이건 목젖은 똑같다. 그 다음으로 내시경으로 콧구멍을 쑤시고 나면 깨닫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의 실체란 이 평범한 생식기관들의 모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서은진은 모든 부분이 아름다웠다.

입을 열었을 때 보이는 고른 치열도, 상처 하나 없는 입천장도, 저 깊숙이 보이는 목젖마저도 결점 없이 아름다웠다.

모든 생식기관이 아름다움의 얼굴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의사로서의 탐구 정신이 고개를 치들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모든 부분에 대한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그녀의 몸은 아름다웠다.


“당신 이야기를 좀 해봐.”

“무슨 이야기?”

“아무 이야기나. 당신 어릴적 얘기도 좋고, 가족 얘기도 좋고, 아니면 직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도 좋고.”


나는 그녀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아직 추우니까 내 품에 있고.”

서은진은 피식 웃고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내 품속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나, 사실 병에 걸렸어. 아까 말한 것처럼.”


병, 그녀는 두 번째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심각한 병이야?”


“꽤 많이.”

“말해봐. 나는 동네 이비인후과 개업의에 불과하지만, 개업하기 전까지는 대학병원에 있었어.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녀의 숨소리가 내 가슴을 간지럽혔다.


“우리 마을에는 아주 오래전에 역병이 돈 적 있었어.”

“역병?”

“그래, 의원도 없는 조그마한 마을이라 시름시름 앓다 죽어 나간 사람이 십수십명이나 돼서야 역병이라는 걸 깨달았지. 우리 엄마도 그때 죽었어. 아빠는 술주정뱅이라 누군가 죽어 나갔는지 관심도 없었고. 그래서 내가 엄마를 묻게 됐던 거야. 한밤중에 남동생의 손을 잡고 마을 먼 곳 야산에 작게 봉분을 만들었어.”


“힘들었겠네.”

“그래, 힘들었지. 마을에 역병이 퍼졌다는 소리가 퍼지고 나서부터는 더 힘들었어. 위에서 병사들이 내려와 마을을 봉쇄하고, 죽은시체들을 모조리 다 불태우기 시작했거든. 마을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없었어. 모든게 다 봉쇄된 상태였으니까. 식량이 배급됐지만 모두 충분히 먹을만한 양은 아니었어. 더 힘들었던 건, 먹을 물이 없었다는 거야. 나라에서는 물을 통해 역병이 퍼진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병사들이 마을 우물에 독을 타버렸어. 아무도 마시지 못하도록.”

의아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야기에 방해되지 않게 말이 끊어질 타이밍에 물었다.


“80년대에 그런 곳이 있었던가?”

서은진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나는 지금 아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당신이 말한대로. 그리고 그걸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당신 몫이야.”

“……그래, 방해안할께.”

“그렇게 마을이 봉쇄된 채 한 달이 흘렀어. 죽을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렸고, 갈증에 시달렸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어. 다들 빨리 봉쇄를 풀어야한다는데 동의했지. 그걸 위해서는 역병에 걸린 사람이 없어야만 했어. 지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녀의 손이 내 배를 따라 슬그머니 내려왔다. 손가락이 그려내는 다섯가지의 곡선이 부드럽게 내 허벅지를 매만졌다.


“그때 남동생이 역병에 걸려있었어. 병에 옮지 않도록 항상 조심시켰지만, 걸려버렸지. 엄마를 같이 묻었던게 원인이 됐던건지도 몰라. 중요한 건 아빠는 병에 걸리지 않았었다는 거야.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미쳐버린 아빠가.”

“……그래서?”

“아빠는 술이 마시고 싶었어. 하루라도 빨리 봉쇄가 풀려서 술이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 그걸 위해선 남동생을 산채로 불태우는 짓 정도야 거리낌 없이 할 정도로.”

서은진의 손가락이 내 남성을 쥐어 잡았다. 그 손가락은 놀랄 정도로 따뜻했다. 그녀의 안쪽만큼이나.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완전무결한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사람이 그렇게 불태워졌어. 그렇게 모든 사람이 ‘건강해’진거야. 처음 역병이 돌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봉쇄는 풀리지 않았지. 그때가 돼서야 마을사람들은 깨달은거야. 위에서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는 그걸 듣고 웃었어. 어리석은 사람들, 한 편의 코미디나 다름없지.”

그쯤 가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반쯤 흘려듣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농담이라기엔 진지했고, 진지한 이야기라기엔 헛됐다.

나는 그저 고개를 들은 욕구를 해소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를 눕힌 채 그 위에 올라타자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때쯤 나는 기회를 얻었어. 병에 걸리게 될 기회를.”

그녀는 그린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초상화처럼 그린듯한 미소였다.


“그거 알아? 예전엔 마녀가 있었어. 무언가 저주하고, 강렬히 염원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당신은 의사니까 믿지 않겠지만.”

“그래. 나는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지.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믿고.”


“그러니까 당신이 내게 끌린 거야. 당신은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그녀는 충분히 젖어있었다. 옅은 신음소리, 기분 좋은 충만감이 아래의 첨단을 통해 밀려왔다.


“내 속, 마음에 들어?”

“당연한 말을.”

잠깐의 웃음소리, 그리고 긴 신음 소리가 방을 맴돌았다.

그녀가 꺼낸 불길한 이야기가 씻겨져 내려갈 만큼 긴 정사였다.

모든 일이 끝났을 즈음 창밖 풍경은 이미 환해져 있었다.

출근할 시간이었다. 토요일이라 조금 늦은 시간에 오픈하긴 했지만 늦장 부릴정도는 아니었다.

간단하게 씻고 옷을 챙겨입을 때쯤 그녀는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툭 던졌다.


“아무리 봐도 당신은 병에 걸릴만한 사람은 아니야.”

“너무나도 완전무결한 몸이니까?”

“이젠 날 너무 잘 아네.”

그녀는 화장대 위에 뷰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게는 그게 병이야.”

“응?”


“완벽한 아름다움, 그게 내가 얻은 병이라고. 그게 기회였지. 마녀가 내게 준 기회. 보통 마녀의 저주는 제물을 필요로 하지. 그리고 그 제물은 항상 완전무결해야만 해. 그래야 제물로서의 가치가 있거든.”


나는 차키를 챙기며 물었다.


“그거, 지금까지 진심으로 한 얘기였어?”

서은진은 고개를 기울인 채 나를 바라봤다. 기묘한 표정이었다. 그녀와 몇 번 자면서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내가 말했잖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당신 몫이라고.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해도, 당신은 어차피 믿지 않을셈이잖아?”


잠깐의 정적, 어색한 침묵. 나는 말을 돌렸다.


“나 먼저 나갈게. 지금 안 나가면 늦을 것 같네.”

쾅,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서은진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아름다운 얼굴,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썹 칼을 쥐어 들고 뺨에 길게 상처를 냈다. 피가 방울방울 맺혀져 나오기 시작했다.

피는 금방 멈췄다. 그녀는 화장솜으로 핏물을 지워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봤다.

거기엔 역시나 완전무결한 얼굴이 있었다.





1시간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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