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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제국의 전후처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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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호구를 착용해라, 제일.”

  앞서가던 블랭크 선배가 평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적 오염을 막는 특수재질의 시안색의 방호복 목부터 발끝까지 입고 그 위에 무거운 철갑옷을 착용해 걸을 때마다 절그럭거리는 모습은 대전이 끝나고 1년이 지난 지금도 마을사람들에게는 그 때를 연상케 하는 무서운 모습이겠지. 그리고 나 또한 그런 모습이었다.

  등 뒤에 있는 정화장치와 연결하는 두꺼운 방독모를 쓰자 이제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겉으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제국의 전후관리국의 대전염병기반의 병사 한 명의 모습뿐.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선을 넘어걸어가자 텅 빈 공터에 형체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체 하나와 또 다른 병사들의 선, 그리고 그 너머를 가득 매운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제발, 부탁이에요, 딸 아이가 아직 저 안에 있어요! 날 들여보내줘요!”

  “물러서라! 여기는 지금 군사 작전 구역이다! 전염성이 높은 오염 물질을 제거하기 전에는 허락받지 않은 자의 통과를 금지한다.”

  방호구에 막혀 둔탁하게 들리는 그 비명같은 소리는 철판을 울리며 귀울림같이 맴돌았다. 답답해진 숨을 내쉬며 시신 앞에 멈춰있는 선배의 옆에 서자 황급하게 도망쳐나오다 고꾸러진 시신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보고받은게 맞는 것 같군. 라디오악 역병의 증상 그대로야. 처리장으로 옮기기 전에 임시로 소각을 해야 겠어."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선배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분사기를 조작했다. 소독액 같은 액체가 분사되던 분사기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뜨거운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스, 안돼! 내 남편에게 뭘하는 거야!"

  딸 아이를 찾던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철판을 때리며 귓전을 울렸다. 이미 수 십번도 넘게 들은 말들이었다. 어떨 때는 가족, 어떨 때는 친구, 어떨 때는 태우고 있는 본인.

  탕, 묵직한 돌맹이가 철모의 뒷통수를 때리며 튕겨져 나갔다.

  "쓰레기 같은 제국 놈들! 너희들이 한 짓 때문에 우리가 왜 피해를 받아야 하는데!"

  군중 속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웅성거림이 다소 심해졌다. 그러자 선을 이루고 있던 병사들이 지시에 맞춰 하늘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웅성거림이 조용해졌다. 달려서 도망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어렴풋이 들리는듯 했다.

  "작전을 수행중인 제국 군인에 대한 이 이상의 폭력 행위는 금한다! 다들 물러서! 해산해라!"

  질서를 유지하려는 장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나?"

  블랭크 선배가 울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네, 별 문제 없습니다."

  "그럼 건물 안으로 진입한다. 각별히 조심하도록."

  검게 타 연기를 뿜고 있는 시신을 지나 살짝 열려있는 문 앞에 서자 오래된 나무문의 중간쯤이 타들어가듯 부식되어 있고 초록색의 액체가 방울방울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부분이 손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선배가 먼저 진입했다.

  "왼쪽을 수색해라, 난 오른쪽을 보겠다."

  가볍게 끄덕이며 현관을 지나 열려있는 왼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의 방처럼 보이는 좁은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흩어져있는 인형과 나무 장난감 몇개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보폭과 엇비슷하게 현관까지 떨어져있는 액체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정면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거실과 식사공간으로 보이는 이 집에서 아마 가장 큰 공간으로 들어가자 움직일 때마다 나는 쩔그럭거리는 소리가 한층 크게 울려퍼졌다.

  "...사... 려..."

  공기가 새는 듯한 소리가 섞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11살 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피부 여기저기가 불똥이 튄 나무 표면처럼 타들어간 채 바닥에 엎어져있었다. 앞으로 뻗은채 미동하는 손은 이미 뼈까지 녹아서 형체가 짤막해져 있었다. 숨소리로 보건데 기도나 폐 또한 녹아서 바람이 여러 구멍으로 새어나오는듯 했다.

  "아... 빠... 엄..."

  "할 일을 해라, 제일. 그 애의 고통을 끝내줘."

  난 아무 대답없이 손에 든 분사기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격발되는 소리와 함께 소녀가 미동을 멈췄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걸 처리하는 일뿐이야."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래... 혼잣말이 나온 거 같군. 시신은 대상을 처리하고 소각한다. 이 집채로 태워야 할 것 같군."

  소녀의 시신이 쓰러져있는 문을 지나자 창고 같은 공간이 나왔다. 건초더미와 잡동사니로 차있는 공간의 한쪽에는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바람에 따라 삐걱거리고 있었다.

  "도망쳤다면 주변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발포했겠지... 아직 이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바깥은 축사와 연결되어 있는지 닭과 돼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반대편으로 창고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농기구 선반을 지나 코너로 돌아가자 희미한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형체가 보였다.

  끼이익,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창고 문이 세게 열리자 정오에 못미친 태양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헤진 제국 연구소의 하얀 옷, 목에 구속구를 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더럽고 볼품없이 말랐지만 아까 소녀보다는 몇 살 더 많아보였다.

  "누구... 내 잘못이 아냐..."

  "대상을 발견했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분사기를 들어 총구를 겨누는 순간 선배가 손으로 그 행동을 제지했다.

  "잠깐... 뺨에 새겨진 저 인장... 오리지널의 파생체 중 하나인가? 그렇다면 회수 대상이로군."

  소녀의 뺨에는 어렴풋이 빛나는 마법적인 인장이 떠올라있었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로군... 제일, 저 소녀와 아까 시신을 가지고 나가라. 이 집에 대한 소각은 내가 맡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총구를 내리고 소녀에게 다가가자 소녀가 말했다.

  "...안 죽여?"

  "지금은. 반항하지 마."

  복대의 고리에 분사기를 걸고 소녀를 오른 어깨에 짐짝처럼 들고 맬 동안 소녀는 아무런 말도, 저항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창고 밖을 걸어나가며 문턱에 쓰러져 있는 다른 소녀의 시신을 반대 손으로 잡아 질질 끌고 나갔다. 솔직히 말해, 방호복을 입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피부가 따끔거리는 느낌이었다. 엉거주춤하게 팔로 문을 밀고 나가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집 안에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리자...? 안돼! 리자!"

  아까 울고 있던 아까 그 여자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이 살인마!"

  그 말을 시작으로 여러 욕설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수는 줄었지만 그 적의는 배가 된 것 같았다.

  묵묵히 리자라고 불린 시체를 바닥에 던져놓고 어느새 도착해 대기하고 있는 회수 차량으로 다가갔다.

  수 십명의 시체를 쌓기도 했던 짐칸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깨의 소녀를 짐칸에 내려놓은 나는 분사기를 겨누며 말했다.

  "구석으로 들어가라."

  "어두운 곳은... 싫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녀는 뒷걸음질치며 구석으로 들어가 그늘에 가려졌다. 뒤에서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불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분사기의 불꽃이 점화되는 소리와 다시 귀를 찢는듯한 비명소리, 얼마 지나 무겁고 가벼운 시신 2구를 끌고 오는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나는 아무 말없이 소녀가 있는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고 소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리 작업은 끝났다. 원래라면 분리된 공간에 넣어야겠지만 이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사라지는게 저 사람들이나 우리한테도 좋을 거 같으니 같이 실을 수 밖에 없겠군."

  그렇게 말한 선배는 시신을 들어 짐칸에 실었다.

  불꽃에 탄 시신은 원래 그랬어야 할 무게보다 훨씬 가볍게 짐칸 바닥에 내려앉았다. 저 상태로도 충분히 주변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연구소로 회수되어 검사와 해부 끝에 초고열 소각로에 넣어져 폐기처분될 것이다. 역병에 감염된 자는 죽어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다 그 애 잘못이잖아! 그 애는 왜 살아있는건데!"

  "같이 있어야... 하는거야...?"

  목소리들을 무시한채 짐칸의 문을 닫았다. 운전대를 잡고 엑셀을 밟자 선을 이루던 병사들이 좌우로 흩어지며 길을 내주었다. 연구소까진 아직 먼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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