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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전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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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는 겨울이 싫었다. 살이 찢어질듯한 눈보라가 치는 게 당연하고, 흐르는 물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정도로 차가웠기 때문이다.

또한 슐츠는 여름이 싫었다. 가축이 매말라 비틀어지고, 비가 내리지 않아 씨앗은 싹을 틔울 생각도 없었다. 

불타오르는 지옥도와 액체라는 걸 볼 수 없는 혹한의 기후. 슐츠가 아는 세계는 오로지 이 2가지 뿐이었다. 둘은 쌍으로 인간에게 엿을 먹이려는 것처럼 반년마다 교대했다. 


슐츠는 가늘게 눈을 뜨고 주홍색 빛이 창문으로 빠져나오는 집을 발견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칼집을 매만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작은 면도칼이 입안을 긁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째는 듯한 통증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쾅!


그는 얼어붙은 문고리를 당겼다. 얼어서 그런지 잘 열리지 않았다. 슐츠는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문을 당겼다. 


-쾅! 쾅! 쾅!


그래도 열리지 않자 슐츠는 차라리 창문을 깨고 들어갈까 생각하며 칼집을 들었다. 그 순간, 한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당기지말고 미세요. 왜 다들 그 생각은 안 하는 거지?”


흰눈을 닮은 은발, 투명한 얼음을 닮은 눈과 피부아래 핏줄이 보일정도로 새하얀 피부. 


“들어오세요. 제 이름은 ‘설화’에요. 보시다시피 이 변변찮은 전당포의 주인이에요. 뭘 받고싶어서 오셨을까?”


“거래하려고 온 게 아니야.”


슐츠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칼자루를 잡았다. 그리고는 힘차게 칼을 빼들려했다. 


“뺏으러 왔다 여차하면 억지로라도...어...?”


하지만 얼어붙은 칼은 좀처럼 칼집에서 나올 생각을 안했다. 당황하는 슐츠와 달리 설화는 그의 어설픈 협박을 무시하고 뭔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아...기억났다. 작년 여름에 오셨던 분이구나? 그때 받아갔던게 분명히 석달치 물이랑 식량이었죠?”


“그, 그게...”


“맞구나! 이름이 슐츠죠? 장부 확인할게요.”


설화가 우아하게 손짓하자 카운터에 있던 장부가 날아와 페이지를 넘겨 슐츠의 항목을 확인했다.


“맞네요. 그 때 빌린 식량이랑 물은 잘 쓰셨나요?”


“그, 그게...그보다 내 얘기 좀 들어봐.”


“납부기간도 지났고, 그동안 빌린 재화를 갚은 것도 아니네요?”


설화는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녀의 미묘한 웃음에는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이 드러났다. 

슐츠는 다급히, 그리고 간신히 칼집에서 칼을 빼들었다. 


“멈춰! 바로 그 빌린 물건에 관한 얘기니까!” 


설화의 전당포는 뭐든지 줄 수 있다. 음식, 집, 돈, 무기. 없는 것 빼고는 다 가져갈 수 있다.


“혹시 다른 재화로 갚으려고요? 슐츠 씨는 밀린 기간이 있어서 이자가 붙어요. 계약서 사본 읽으셨죠?”


“아, 아니...그건 아는데.”


대신 한 가지. 전당포니까 빌린 재화와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맡겨야 한다.


“갚으러 오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래하러 오신 것도 아니잖아요.”


설화는 빙긋 웃으며 손짓했다. 


“맡겨둔 시간이랑 이자 받아갈게요. 지금 슐츠 씨가 가지고 계신 ‘시간’은 이자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설화의 말이 끝나자, 슐츠는 숨이 멎었다. 그는 그대로 죽어버렸다.


“이거라도 받아야지.”


설화의 전당포에는 단 한가지 재화만 맡길 수 있다. 그녀가 취급하는 건 ‘시간’이었고 방금 한 손님의 인생에 남은 시간을 모조리 몰수했다.


설화는 검지손가락 끝에 모인 작은 불빛은 튕겼다. 그것은 반딧불이처럼 날아가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스노우볼에 들어갔다. 


“이걸로 여름을 늦출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녀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겨 장부를 카운터에 올려놓고, 슐츠를 내려다봤다.


설화가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지휘하듯 허공에 곡선을 그리자, 슐츠의 시체는 밖으로 던져졌다. 


“제 때 갚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거에요.”


설화는 씁쓸하게 웃으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동이 트고 눈보라가 잦아들자 설화는 장부를 정리하고 받은 시간을 남김없이 스노우볼에 넣었다. 


그때였다.


-쾅! 쾅! 쾅!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 춥단말이야!!”


설화는 조심스럽게 커텐을 걷고 창문너머로 보았다. 피가 얼어붙어 팽창해서 살이 찢고 나온, 창백한 시체인 슐츠가 멀쩡하게 서서 그녀의 집문 앞에 서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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