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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김오택씨의 유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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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Jan 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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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화룡
라한대

김오택씨의 유언장

김오택씨가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노환으로 인한 심근경색. 그는 자던 도중 조용히 숨을 멈췄다.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연휴였기에, 의사가 그의 사망을 확진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동안 나는 유족들에게 뭐라 말 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

직업상 죽음을 많이 접하는 나로서는 사고사나 급환으로 인한 사망보다, 이러한 호상이 더 골치아플 때가 많다. 좋은 시설에서 병수발을 받으며 말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은 몸뚱이 말고도 이승에다 남기고 가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시체에 구더기 꼬이듯, 유족들이 – 때로는 생경한 사촌까지 – 모여들기 마련이다.

내가 김오택씨의 유언장을 공개했을 때 유족들이 보인 반응은 상상했던 것 중 가장 점잖은 반응이었다. 그들은 고성, 욕설들을 내뱉고 나를 사기꾼으로 몰았지만, 다행히 물리적 폭력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냉정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차남이 물었다. 김오택씨의 유산 중 부동산을 제외한 모든 유산, 즉 각종 금융상품과 통장과 전자화폐를 상속받게 된 그들의 ‘새어머니’가 누구인지.

“누구라구요?”
“엘마 포포드 씨입니다. 올해로 8세입니다만, 여러분이 우려하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전자국 주민이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어엿한 성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들의 두 번째 광란은 확실히 위험했다. 특히 막내며느리가 심하게 날뛰긴 했으나, 이때를 대비해 가장 싫어하는 체크무늬 넥타이를 매고 나왔기에, 목이 좀 졸리는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었다.

며칠 뒤 김오택씨의 장례식이 있었다. 엘마씨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그녀를 새어머니로 받아들이고 모시고 살 거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장례식에도 초대하지 않는 것은 무례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오택씨의 유품 중 하나였고, 지금은 엘마씨에게 정당하게 상속된 게이밍 머신을 열었다. 그녀를 호출하자, 잠시 뒤 그녀가 나타났다. 일찍 아내를 여의고 한 번도 한 눈을 판 적 없던 김오택씨였지만, 그녀는 반할 만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사제복 위에 검은 숄을 둘러쓰고 슬픈 눈으로 장례식장을 바라보았다. 입관 예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정도로 괜찮아요.”

 나는 그녀의 뜻을 존중했다. 그녀는 소리없이 울며 입관 예절을 지켜보았다. 장지까지 따라가고 싶지만 역시 그녀의 뜻에 따라 그만두었다. 그녀는 괜한 소란을 피하고 싶다고, 나중에 따로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글쎄요. 김오택씨의 자녀분들은 엘마씨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그는 재산의 많은 부분을 나를 장기고용하는데 사용했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나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래뵈도 업계 최고니까요.”

그녀는 살풋이 웃었다. 고인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살았다.

그녀를 돌려보내고,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목소리만이었지만, 곧 그녀는 머리를 전화기 너머로 내밀었다. 그녀를 다 받아들이기에 내 전화기는 너무 구형이라, 그녀는 어깨 밑으로는 구현되지 않았다. 그녀는 빨리 새 전화기를 사라고 야단이지만, 그랬다가는 일 하는 도중에 그녀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으니 큰일이다. 

나는 요즘 경기가 좋지 않음을 한참이나 역설하다가, 결국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해 주고 나서야 – 그것도 행인들이 다 보는 앞에서 – 풀려날 수 있었다. 

comment (4)

로사기간티아 12.01.22. 21:01
천조국에서는 반려동물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부호들이 많으니, 가상 여성의 지위가 법적으로 인정된 세계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가상 인격은 어디까지 독립된 인격체로 보아야 할지, 또는 가상 인격끼리의 교류를 정교한 프로그래밍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범주의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하자면 중·단편 분량의 SF 소설 영역으로 들어가겠죠. 엽편이란 한정된 분량 안에서 담백하게 가상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어요!
창공의마스터
창공의마스터 12.01.23. 14:00
흥미로운 SF엽편이네요. 막내며느리보다는 실제 부인이 심하게 날뛰어야 할 것 같지만요. ㅎㅎ 짧은 시간 안에 이만한 완성도를 보여주시다니 혹시 프로작가님이 아닐까 잠시 의심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_^
하루카나 12.01.28. 05:29
화룡님이 라한대라니.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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