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한대]본격나를찾아떠나는여행
Write- 20:57 May 2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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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S
- By 한세희
집 나갈 거야. 나가고야 말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나, 지금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집에서 부모님의 사랑만 받으면서 바보가 되고 있는 거 아닌가? 부모님 밑에서 부모님의 마리오네트에 그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였다.
우울했다. 살기 싫어. 살고 싶지 않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우울증. 만약 내가 정신병원에 가면 100% 처방받겠지. 킥킥킥, 나 정신과 의사인가? 아니 정신과 의사가 아니어도 우을증의 정의, 즉 특별한 이유 없이 2주 이상 우울한 상태였나? 로는 반드시 난 우울증이다. 아니 이딴 정의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무나 나를 한번이라도 보면 알겠지. 아니, 사실은 뻥입니다. 아무렇지도 않다. 잘 살고 있어. 으아아아, 그저 심심해 지루해 죽겠다고.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아 찾기 여행이나 떠나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집 나가기 전에 먼저 친구들에게 전화나 해봐야지. 전화 걸었다. 벌써 벨이 여러 번 울렸으나 받지도 않는군. 아 욕이 나오려 한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그런 것이지만 말이야.
“왜?”
드디어 받았군. 전화를 받은 주인공은 소꿉친구라고나 할까, 이런 상담은 보통 이성에게 하니까 아무나 적당한 여자를 고른 거다.
“야 나 집 나가서 자아 찾기 여행을 하고 싶어.”
“얘가 약을 빨았나, 어떻게 해야 되지? 물 같은걸 끼얹나?”
우쒸 물 같은걸 끼얹나 따위의 말이나 하고. 난 진지하다고.
“한없이 진지하니까 닥쳐라. 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떠날 꺼다.”
“무슨 소리야 네가 진지하다니. 너를 알게 된지 근 8년 쯤 되었을 테지만 한 번도 너의 진지한 모습 따윈 본 적 없었는데. 이거 의외인데?”
쓸모없는 소리하고 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날 좀 달래봐.”
“헐, 그런 건 네 엄마한테 부탁하렴, 우리 아가.”
무시당했다. 무시당했다. 무시당했어. 왜 이러지. 내가 얘한테 요즘 소홀했나? 예전엔 진짜 친했잖아. 내가 고민하면 해결해주는 좋은 소꿉친구였는데. 왜 이렇게 변한거야. 우울해, 우울해, 우울해.
“나는 아기가 아니다! 두 번째로 네놈의 피는 무슨 색이냐! 소꿉친구의 괴로움을 이해를 못하다니. 하여튼 나는 자아를 찾아서 떠날 거다. 나를 찾지 말아라.”
“찾지 않을 테니 찾아오지도 마렴.”
그렇게 소꿉친구와의 대화는 끝났다. 흑, 더욱 슬퍼졌다. 나의 한탄은 허공에 흩어졌다. 한탄해봤자 쓸모없어!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다. 나는 자아를 찾아서 여행을 떠날 것이고, 한 단계 성장해서 돌아올 것이다.
자, 집 나가면 필요한 게 뭘까? 돈이다. 돈. 집을 나가면 뭐든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식사, 숙박, 교통 등등에 모두 돈이 필요하지. 이제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나는 돈이 없다. 즉, 이 상태로는 집을 나갈 수 없다.
자 하는 수 없다. 나에게 돈줄은 부모님 밖에 없다. 우울하다. 부모님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자아 찾기 여행인데, 부모님의 도움이 없으면 갈 수도 없다. 우울하다. 자살하고 싶네. 하하하하, 자살이나 할까.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손을 빌려보려고 했다.
“엄마, 용돈 좀.”
“너, 요즘 옷 벗어서 아무데나 던져놓더라.”
“엄마, 용돈 좀”
“흠, 허리가 쑤시네. 비가 오려나?”
“엄마, 제발 용돈 좀 주세요!”
“저녁은 뭐 먹고 싶니?”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건 뭔가요. 안준다는 것도 아니고 준다는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 합니다만, 은근히 말을 돌리고 있었다. 즉, 주기 싫다는 거다.
하는 수 없다. 그냥 나간다. 집을 나가기는 매우 쉽다. 그냥 옷 입고 현관문 열고 나가면 끝이다. 자, 이제 멀리 떨어지자. 한동안 안 돌아 갈 거야.
슬슬 걸으면서 주변도 보고, 친구들도 좀 보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나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밥이 먹고 싶어! 밥 밥 밥 밥. 하지만 나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안될거야 아마, 무전취식이라도 하지 않는이상.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집에 돌아가야지. 야,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집이 최고야.
집에 가려고 걷다 보니 걷기가 싫어졌다. 걷다보니까 너무 멀리 와버렸다. 힘들어, 힘들어, 힘들어
결국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전화했다. 집 나갔었다는 것을 알고 무진장 혼났다는 건 후일담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부분에 비해 금방 돌아오는 게 짧다는 게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물론 시간부족으로 인한 엔딩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마음을 홀라당 뒤집는 면이 참 괜찮네요.
다만, 주인공의 사고가 개인적으로 별로 흥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중간중간 들어간 패러디도 딱히 재밌다고는 느껴지지 않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