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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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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6 Jul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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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Winterreif
협업 참여 동의

오늘로서 지구에 첫 발걸음을 디딘 지 50주년째 되는 날이었다. 먼 옛날에는 저곳에 사람이 살았다고.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며 슬픈 눈으로 회청색 별을 내려다보곤 했다. 공감하지 못한 감정을 이해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기만일 듯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가 오염된 지구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열 시간 이내. 길다면 길 수도 있었지만, 나약한 인간에게는 그저 발 디딜 시간만이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도.


“나 때는 지금 쯤이면 지구에서 살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정정한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뭐가 좋다고 저런 곳으로 가려 하는 걸까. 고향에 대한 집착 따위 생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한 감정도 결국, 내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까지 가면 사라지고 말겠지. 열성인자처럼.


할아버지의 우뇌에 심어진 씨앗은 내 안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이것 또한 인간이 열등하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짓으로 터전을 더럽히고, 이제 와서는 다시 돌아가기를 빈다.


먼 미래에 다시 지구로 돌아가 그곳에 문명이 자라난다면, 나 역시 같은 향수를 갖고 달을 바라볼까. 지구에서 찍힌 달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작고 못생긴 모습. 정작 지구에서 살던 때에는 토끼가 산다며 신비의 대상으로 여겼으면서.


이제 와서는 저울질의 추일 뿐이었다. 달보다 넓은 땅, 달보다 풍부한 자원, 달보다 많은 계절. 적당한 명사 앞에 달보다, 를 붙인다고 전부 말이 된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맞는 말이었다.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지구산 영화였다.


달도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구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하나같이 역동적이어서 이목을 잡아끌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연인의 손을 붙잡고, 형체가 일그러진 건물은 가공할 속도로 추락한다.


달의 싸구려 인공중력으로는 흉내내기 힘들 것이다.


“유진이는 나중에 꼭 지구에 가서 살아라. 알았지?”


사람은 어디로 가도 서울로 보내면 된다, 식일까. 이제는 중요하지도 않은 지구의 역사를 배우는 일도 신물이 났다. 이 좁은 별에서 굳이 한국어를 쓰겠다면서, 싫다는대도 가르쳐 댄다.


오늘은 학교에서 지구본까지 받아 온 참이었다.


거실 벽에 대충 흡착시켜 놓은 지구본을 돌려 본다. 여기서 볼 때에는 이렇게 완벽한 구의 형태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밋밋한 색과는 다르다. 대기와 바다, 땅. 백 번 양보해서 옛날의 지구까지는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피라미드까지 가면 조금 다른 문제였다.


선생님은 항상 취향을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서 보라고 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된다. 종교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성당들만은 하나같이 미적인 구조를 보여주었다. 물론 옛 지구의 건축학 따위는 이제 필요없었지만.


어쨌든 피라미드만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런 단순한 형태가 소품가게 지구 코너의 한 칸을 당당하게 차지한다는 점도, 다른 좋은 것들을 뒤로 하고 다양한 크기로 찍혀 나온다는 것도. 어머니는 그랬다. 거북선이나 궁궐은 마이너한데다 조형도 힘들어 잘 나오지 않는다고.


지구를 향한 그리움은 전 달 공통이었지만, 민족 수준까지 들어가면 그것도 달라지나보다. 상품화된 행성은 오늘날까지도 잘 팔리고 있었지만, 이주에 관한 계획은 영 진척이 없다고 한다.


테라포밍은 불가능하다. 부분적으로 대기를 정화하는 정도도 힘에 부친다고. 애초에 정말로 지구가 달보다 살기 좋은 것인지, 아니면 추억을 팔기 위해 쇼를 하는 건지.


오늘 받은 지구 한 바퀴 투어 전단지를 보고 있자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푸른 대기나 흰 구름 같은 건 없는데도. 당신들의 머릿속에 남은 지구는 어디 있는가.


오염 후 지구에 처음 발을 들이밀며 환호성을 지르던 이들은, 정말로 그런 미래를 꿈꾸던 젊음은 어디로 갔는가. 당신들이 그리도 열광했던 발자국 하나는 아직까지도 지구에 남아 있겠지.


그저 그 뿐이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시대가 지나면, 내가 아니라도 미래의 인류는 다시 지구에서 살아가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죽어간다. 물론 아직은 아픈 곳 하나 없이 건강하셨지만.


내부 통신으로 전해지는 화면 속에서는 오십 년 전의 우주비행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미적지근한 질문들. 나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의 발자국이 텅 빈 환희와 헛된 희망을 제외한 대체 무엇을 가져왔나. 분명 내가 화를 낼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제 3자의 관점에서.


아폴로.


그토록 달에 가고 싶어하던 인간은 왜 이제 와 지구를 그리워하냐고. 단체로 역사관을 간 날,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은 그 발자국 앞에서 소리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지구 전시장에는 오염물질을 걷어낸 물건들이 가득했다. 탐사기계가 가져온 것들 중에는 알아보기 힘든 언어로 쓰인 책도 있었다. 옛 문명의 흔적. 가루가 되어 버린 지역도,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곳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결국 하나.


사람만은 살 수 없다.


아무리 부산물이 넘쳐난다고 해도 그뿐. 생명이 사라진 곳은 무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부장품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지구를 팔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 중에 하나.


자신이 순수한 월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반항심에서 나온 감정. 질투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지구를 사랑했다.


눈앞에 사랑할 대상이 떡하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달은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걸까.”


패널 너머로 보이는 사람이 조곤조곤 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발로 밟고 있지는 않겠지요.”


인공지능 주제에 말장난은. 침대 위에서 몸을 반 바퀴 돌려 자세를 바꾼다. 밤을 시뮬레이션하는 조명이 별이 촘촘히 박힌 풍경을 보여줬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밟을 수도 있는 거지.”

“앗… 방금 한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인공지능이 이해하기에는 힘든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됐어. 지금도 지구에서 채취하는 자원은 많으니까. 사람이 살 정도가 아닐 뿐이지. 오히려 그 부분이 이상해. 그냥 여기에서 바라보는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는 걸까?”

“지구는 인류의 고향이니까요.”

“고향이면 잘 지켰어야지.”

“이래뵈도 존재하는 모든 무기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답니다.”


그 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다.


“너는 지구의 역사도 전부 알고 있지.”

“정 잠이 안 온다 싶으면 수면제를 복용하시는게…”

“강제종료 해 버린다.”

“앗… 하지만 방금 한 말은 장난이 아니었는데.”

“나도 장난 아니야.”

“무슨 기록의 열람을 원하시나요?”

“달 착륙.”


생각보다 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라의 탄생과 멸망, 전쟁. 기술 발전의 선봉에 항상 무기가 서 있는 이유. 성공과 좌절. 그만큼 인류가 가진 달을 향한 욕구는 거대했고, 그 역사도 마찬가지로 깊었다.


“그 정도로 대사건이었어?”


주 대목이 끝나고, 달 착륙 음모론에 대한 얘기를 듣던 도중이었다.


“그렇겠죠.”

“뭐가 그렇겠죠야. 더 자세하게 설명해 봐.”


인공지능답지 않게 숨을 고른 다음, 물론 이런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 않겠지만, 말을 이어간다.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니까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잖아.”

“그 시대 사람들을 기록하고 되감아 들려 줄 수는 있어도, 대변하지는 못하는 법이랍니다. 설령 기록장치에 글자 하나 빠짐없이 저장되어 있다고 한들, 제가 그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구나.”


오히려 그 모든 행위들이 조작이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거짓으로라도, 지구상의 사람들 전부를 속여서라도 달로 향하고 싶었던 사람들. 월인으로서는 어떤 감상을 들려 줘야 할까.


그 발자국의 주인과 대면한다면, 지금의 달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마저 몰려 오는 졸음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화면이 암전된 패널을 가볍게 밀어 놓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로 향한다, 와 같은 기분은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머릿속을 채운 생각도, 달이니 지구니 하는 고민도. 이곳에서는 너무도 가벼웠다. 달이 지구에서 팔려 나갔듯, 이 시대의 지구 역시 이곳에서 상품으로서 포장되어 누군가의 가슴 속에 선물된다.


잠이 들이 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못된 생각. 다른 이들의 감정을 멋대로 판별하고는 이해한 척 하는. 하지만 이미 뿌리를 내리고는 싹을 틔워 나간다.


어쩌면 사랑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늘에 박힌 그것을, 지금의 인류로서는 도저히 닿지 못할 것같이 보이는 작은 구슬을 바라보면서. 부숴 버리지도 못하는 점 하나를 눈앞에 두고. 솟아오르는 감정 중 하나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상상을 해 본다.


나는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해도 이 모습 그대로 여기 있을 텐데.


사랑하지 않는다면 무슨 선택지가 남아 있냐면서.





경회랑에도 올려달라길래 올림

라한대가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

comment (3)

네모 19.08.02. 23:22
우승 축하드립니다. 상금 수령 방법( 컬쳐랜드/도서문화상품권/계좌입금 등)을 말씀해 주시면 확인 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Winterreif 작성자 네모 19.08.03. 20:18
문상빳다죠~
네모 Winterreif 19.08.08. 21:30
경회랑 쪽지를 통해 문화상품권 핀 코드를 전송해 드렸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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