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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한대] 운명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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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30 Feb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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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현안인
협업 참여 동의

 "으랴아앗!"


 용사가 마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왕성에 가까워 왔는지 전에 보던 것보다는 거대한 마물이었다. 용사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이 터져버렸지만.


 신관이 그 옆에서 살랑살랑 꼬리쳤다.


 "용사님, 멋져요!"


 "쳇!"


 나는 이 파티의 전열을 담당하고 있는 전사다. 파티라고 해도, 저 용사 하나, 나, 그리고 저 신관 한 년 껴있는 것이 전부.


 다른 파티가 보통 다섯에, 많으면 일곱명까지 되는 거에 비교하면 우리 파티는 파티라고 부르기도 조촐한 숫자다.



 함께 모험을 떠나기 전, 저 용사는 내 옆집에 살고 있었다. 같은 날에 태어난 우리는 형제처럼 친할 법도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형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 늙은 산파의 축복을 받고 있을 때, 옆집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고 한다.


 "영웅의 별자리가 이 집을 가리켰소."


 다섯 현자와 일곱 명의 사제, 또 열 명의 귀족이 옆집을 방문해 방금 태어난 아이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크게 달랐다.


 나는 단순한 필부였고, 쟤는 영웅이었다. 이 관계는 어릴 적부터 여러 사람들에 의해 각인되었다.


 "오오, 자네가 그 영웅의 별을 타고 난 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옆에 있는 자네도 필시 그에 준하는 별을 타고 난 자겠지?"


 "…전 그냥 처녀성이요."


 "아…."


 그 때의 검술 선생 표정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용자한테 가서는 이렇게 귓속말 하는 게 아닌가.


 "왜 쟤하고 다니냐?"


 "왜 쟤하고 다니냐고요? 다 이유가 있어요."


 나 들으라는 식으로 말하며 씩 웃던 용사. 그래, 이유가 있지. 이유. 뭔지 알려줄까?



 검술학교에 입학하기 전, 서로 꼬맹이 시절.


 "야, 먹을거 내놔!"


 "좆까, 이 새끼야!"


 나는 덤벼들었지만, 영웅의 별자리를 타고 난 인간을 이길 수 없었고 그대로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며칠 뒤.


 "야, 준비물 내 것도 챙기라고 했지!"


 "꺼져!"


 다시 던져지고,


 "야, 너 목검 좀 빌려…."


 "여기…."


 눈치가 좋은 나는 그에게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에게 복종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좋게 말하자면 기사와 종기사, 나쁘게 말하자면 주인과 노예 관계가 이뤄졌다.



 "좋은 애거든요."


 앳된 티를 다 못 벗은 용사가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었다. 검술 선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지.


 그리고 검술 학교에서 온갖 멋진 역할은 다 용사가 맡았으며, 나는 그냥 쩌리가 되었었다.


 나는 그 뒤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더랬다. 하지만, 그 마음은 곧 다른 무언가로 채워졌으니.


 저 용사는 영웅의 별자리를 타고난 주제에 신을 믿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나를 멍청한 놈이라고 놀리기 일쑤였으니까.


 나는 원래 신앙심이 깊은 편이었고, 어릴 적부터 교회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 하지만, 그 때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하나, 교회에 가면 저 용사놈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둘, 새로 온 신관 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도시인 베흐레의 노래에서 온 신관이셨고, 커다란 도시를 떠나 이런 작은 마을에 내려오자 많이 불안해 하셨던 것이다.


 그런 그녀를 몰래 찾아가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이야기는 아니었다. 돌아가는 이야기, 여기 사람들도 꽤 나쁘지는 않다는 이야기 등.


 신관이 새로 부임하고 몇 달이 지나자, 나는 그녀와 겨우 입맞춤을 나눌 수 있었다.


 그 뒤로 용사를 향한 내 뜨거운 분노는 신관 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으로 바뀌었고, 매일 하루하루를 하늘을 걷는 기분으로 보냈었지.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반응이 시원찮자, 용사는 이내 무언가를 느낀 듯 어느 날 교회에 따라오겠다 선언했다.


 나는 그 일이 초래할 결과를 몰랐다. 드디어 용사가 신의 길로 접어드는구나 싶어 안심감을 느꼈고, 동시에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시간을 빼앗겨 괴로웠을 뿐이었다.


 교회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신관님께서 강단에 서서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호오."


 용사는 그 말을 마치고 교회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나를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다음 주 안식일이 되어 교회에 얼굴을 비추었더니, 신관께서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예배를 집도하며 살짝 눈을 마주치던 그 행위는 어디에도 간 곳이 없이, 차가운 시선만이 내게 쏟아졌다.


 이럴 수는 없었다.


 나는 예배시간이 끝나고 성당의 뒷문을 방문했다. 신관님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창문 너머로 얼굴을 내미셨다.


 "페르, 할 말이…. 아읏…. 있어요."


 나는 유난히 얼굴이 붉던 그녀를 향해 물었다 


 "성녀님, 어디 아프십니까?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


 "페르…. 흣…!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마세요…. 흐극…!"


 "신관님!"


 매몰차게 문이 닫히고, 나는 그 길로 떠났다.


 길을 걷는 와중 커다란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하지만, 신관님께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고라니라도 나타난 것이겠지.



 그리고 신관님을 다시 본 것은 몇 달 뒤, 용사의 곁에서였다.


 "안녕하세요."


 신관님이 나를 처음 보는 듯이 인사를 건네었고, 나는 당황했었다.


 "신관님…?"


 "으흣…! 여기서는…."


 신관님께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용사를 쳐다보았다. 그 용사는 능글맞게 웃으며 우리가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준비는 다 끝났어. 마왕을 잡으러 가자."


 "어?"


 "전사 자리 하나 줄게."


 "잠깐만, 그 신관님은 대체…."


 "저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 분과 함께 걸어야…. 으흣."


 용사가 그녀의 말을 정리했다.


 "이제 너 싫대. 됐지? 따라와."


 "나 어제 경비병 시험 합격해서, 내일부터 출근하는데…?"


 서툴게 반항했지만 성인이 된 용사는 강했으며, 난 주먹에 맞고 기절했었다.


 그렇게 강제로 모험을 떠났다. 그런데 세상은 용사가 말했던 것처럼 마물로 가득차지 않았다. 오히려 나름 평화로웠지.


 그 평화 속에서 용사에게 복수할 계획을 꾸몄다. 지금은 세계를 위해서지만…. 마왕만 쓰러뜨리고 나면. 정말 조금, 사리사욕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동상이몽의 수많은 모험이 다 지났고 내일이면 마왕의 목을 치러 간다. 그래서 그런지 용사도 긴장한 기색이었다. 갑자기 용사가 모닥불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자."


 "휴식은?"


 나는 아연해 물었다.


 "필요없어."


 그리고 우리는 마왕성에 도착했고, 용사는 그 어떤 마물보다 강했다.


 "그오오오옷!"


 포효하는 마물은 살덩어리로 찢어졌다.


 나는 짐덩이였다. 아니, 짐덩이는 아니고 짐꾼이었다. 그렇게 마왕성을 탐험하자, 거대한 마왕의 옥좌가 있었다.


 마왕은 거대하게 변신해 용사와 싸웠다. 엄청난 싸움이었다. 하지만 용사가 더 강했고, 마왕은 작아져 바닥에 쓰러졌다. 거대한 마왕의 후드가 그를 덮었다.


 "페르. 네게 기회를 줄게."


 용사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마왕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기회. 나는 속임수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리 봐도 다른 함정은 없었다.


 "좋다!"


 칼을 쳐들고 마왕에게 다가갔다. 마왕은 벌떡 일어나 그제서야 후드를 벗고 침입자인 나를 마주했다.


 "왜, 대체 왜 쳐들어 온 것이냐!"


 그리고 깜짝 놀랐다. 마왕은 인간 여자의 모습이었으니까.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


 곧 난 시끄러운 마왕을 베었다. 베는 맛이 아주 시원했다. 어차피 개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들을 필요도 없다. 마왕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드디어, 마왕을 내가 쓰러뜨렸다.


 그렇게 되었나 생각되던 순간, 맹렬한 불꽃이 다시 마왕을 감싸 불태웠다. 용사 짓이었다.


 "너!"


 마지막까지 내가 영웅적인 행보를 걷지 못하게 막아서는구나. 덕분에 결심을 더욱 굳혔다.


 "자, 세상은 구해졌어. 페르."


 용사가 쐐기를 박았다. 마왕의 시체는 타서 그을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단 하나, 검은 빛을 내뿜는 반지만을 남겨두고.


 "그 반지를 여기로 줘."


 용사가 떨리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모험을 떠나며, '일탈'을 준비하며 얻었던 정보가 있었다.


 마왕의 힘은, 반지에서 나온다고.


 나는 말했다.


 "싫다!"


 용사는 충격 받은 듯이 입을 가렸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반지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동안 나를 부려먹느라 수고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마왕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수련했던 것과 이 마왕의 힘이 합쳐진다면, 나는 분명 너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안 돼. 그러면 큰일 나."


 용사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는 치밀어오는 감정을 견디기 힘든지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반지를 꼈다. 순간, 빛이 반짝여 마왕성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나는 용사의 웃음을 보았다.



 "어…?"


 방금까지 입었던 갑옷이 후줄근해졌다. 몸이 작아졌다. 어려진 것이다. 아니, 어려진 것이 아니었다.


 여자가 된 것이었다.


 "아하하하하하하!"


 용사가 신관과 함께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여잡고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야!"


 하지만 상관없다. 여자가 되든 괴물이 되든, 저 용사를 향한 내 복수가 이뤄지기만 하면 된다.


 나를 버리고 떠난 저 신관도 싸잡아서 터트려버린 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더는 용사가 나오지 않는 평화로운 세계.


 용사 탓에 가려지는 아이들이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란 말이다!


 "죽어!"


 마왕의 힘이라면, 저렇게 지친 용사 정도는 금방 이길 수 있다. 그럴 터이다!


 하지만, 그 반지는 마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니, 미약하게 몸에 남아 있던 마력까지 쑥 빨린 느낌이었다.


 "멍청이, 마지막까지 그렇게 되는구나! 아하하하! 안 그래도 너한테 끼워줄 생각이었는데, 참 잘 됐지!"


 "뭐!?"


 당황한 내가 뒤로 물러섰다. 용사가 신관과 함께 내가 있는 옥좌로 다가왔다.


 "원래 너한테 바로 끼우게 하려고 했는데, 다 제련하고 식히는 와중에 마물이 가져간 거 있지? 마력이 잔뜩 들어서 그런지 마왕한테 바로 바쳐버리더라? 재료랑 시간이 너무 들어서 새로 만들기는 너무 힘들고. 다시 찾으러 가려고 했거든."


 "너…?"


 나는 뒤로 물러섰다. 용사는 더욱 다가왔다. 용사의 키가 저렇게 컸던가…?


 "어릴 적부터 나한테 쩔쩔매는 네가 참 귀여웠어. 그런데 난 동성애자는 아니거든. 그래서 만들었지, 그 반지."


 반지를 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주머니에 있던 단검을 꺼내 손가락에 갖다대자 용사가 말했다.


 "손가락을 잘라도 다른 손가락으로 옮겨갈 거야. 다 자르면 발가락. 그것도 아니면 목걸이가 되어 네 몸에 붙겠지."


 손에 들었던 단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더욱 뒤로 물러났다. 벽이 등에 닿았다.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사실, 제가 용사님을 따라온 이유에는 계시라는 건 없었답니다. 페르, 제가 왜 당신을 버렸는지 아시나요? 후후후."


 알고 싶지 않았다. 진짜로. 정말 알고 싶지 않았다.


 "미안, 미안해. 잠깐만."


 내 애원에도 불구하고 신관이 다가와 내 팔을 묶었다. 난 신관의 가느다란 팔을 뿌리치지도 못했다.


 "이제, 세계도 다 구했고."


 용사가 말했다.


 "잠시 일탈해도 되겠죠?"


 신관이 말을 받았다.


 "잠깐만. 이건 이상하…."


 "오, 전혀 이상하지 않아. 운명대로 되는 거야. 처녀성의 페르세포네. 나의 벗이여."


 바지춤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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