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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5년이란 긴 시간이다.

최고란 칭호가 옛 말이 되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번화가를 걸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단계까지 유명세가 꺽이는 것은 순식간이였다.

세월의 변화는 과거의 영광일랑 찾아볼수 없는 옛동료의 모습에서도 확인할수가 있었다.


"정말로 몰라보겠군. 댁이 우리 막둥이, 맥심이란 거야?"

"아뇨...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런가. 기억의 문제인걸까? 내가 보기엔 기억해내도 끝까지 발뺌할 셈일 것 같은데. 두번째 삶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보지?"

"... 그런 일 난 모릅니다."


이후 묵묵부답인채로 싸늘하게 이글거리는 눈빛만을 빛내는 포마드머리의 사내.

팀의 분위기를 띄우던 해맑고 활달한 소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갱단의 젊은 두목이 얼굴을 굳히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여기 방 공기에서 쿰쿰한 냄새 나지 않아? 아저씨들?"

"아니... 특별히 냄새도 없고 아저씨'들'도 아니다."

"으웩- 입열지마요. 냄새가 확 나네. 아.재.냄.새."

"음, 영준형은 소원대로 현역 여고생의 삶을 즐기나 보네요."

"와- 진짜 냄새. 냄새. 지독해. 더러워. 가까이 오지마요."


단발 포니테일에 더듬이 애교머리로 멋을부린 꼬맹이는 방공기와 교복냄새를 번갈아 확인하면서 짜증을 냈다. 

삼인조의 맏이면서 한없이 가벼운 캐릭터로 인해 부득불 리더는 맡지못한 철부지 연장자는 입버릇 처럼 다음생엔 여고생을 실천해버린 모양새였다.


"여러분을 너무 보고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보고나니 모이지 말걸 같은 생각도 드네요."


기묘한 재회에서 대화를 주도 하고 있는 것은 유일하게 현생을 살고 있던 팀 리더, 우승.

번질번질한 밤색 무스탕에 가죽바지도 그런대로 맵시있게 소화했지만 어울리지도 않는 턱수염을 기른게 감정요소로 미형의 모델 이미지를 확 잡쳐놓았다.


"기억에는 없을지 몰라도 나와 여러분은 근사한 팀이였어요. 한창 잘나간 덕분에 앵콜요청을 수도 없이 받았지요."


우승은 헛기침을 삼키며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의 눈은 잠깐 반짝였지만 그저 사실의 나열일뿐, 그 시절을 미화나 자랑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저와 여러분이 없어지고나서 한참이 지난 오늘까지 앵콜을 불러주는 분이 있을 정도라니 놀랍지 않나요? 심지어 그 분이 우주적인 존재란 거예요."


이또한 과장없는 지금 벌어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

만약 신탁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면 딱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것일 거다.

초상적인 힘으로 현실에 존재하지않는 팀을 모아서 창문도 출입구도 없는 땅속 깊숙이 어딘가에 가둬버리고 머릿속으로 메세지를 심어주는 존재가 흔하지는 않으니까.


『춤춰라. 노래하라. 만신전에 K/Twins를 바쳐라.』


"하... 여기서 나더러 재롱 부려보라? 이 나를 웃음꺼리로 만들 셈입니까... 야, 죽는다. 진짜?"

"나 춤 못춰. 그런 옛날노래는 전혀 몰라!"

"아니. 곡을 만든 사람과 곡 안무 짠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한때의 영광이라지만 기억에 없다지만 그래도 함께 했던 사람들인데 대우가 이리도 야박할수가 있나.

옛날노래나 우스운 곡 취급을 당할정도로 위상이 떨어진 K/Twins의 현실에 우승은 수염을 벅벅 긁어대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음모... 조직의 음모가 아니라면 국가기관의 공작일까..."

"아 몰라. 몰라. 이런거 그냥 악몽이잖아. 꺼내줘. 꺼내줘. 꺼내줘. 꺼내줘. 꺼내줘."

"그러니까 이건 냄새나는 악몽이나 영문모를 음모라기보다는 우리를 불러낸 그 분의 요청이라니까요."


우승은 촉이 남다른 편이여서 현역 활동기에도 녹음실에서 유령의 기척을 느끼곤 했던지라 초상현상에 반감이 적은편이였으나 같은 상황을 맞이한 전생자 둘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랐다.


"뭐, 아무래도 그게 납득하기 어렵긴 하죠. 무료 공연은 쫌..."


물론 현상을 이해하는 것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각기 다른영역의 것이다.

우승은 리더의 덕목으로 그 무엇보다도 깨끗한 회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비용과 정산은 철저히! 회사와 따지기전에 본인들 몫은 챙겨두자!

한 분야 정점의 위치까지 팀을 유지할수 있던 것은 이처럼 확실하게 해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분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줘야 될것 같네요. 일단, 여러분과 의견을 모아볼까요?"


상대가 무엇이든 K/Twins를 바라고 있는 한, 고객으로서 응대를 해주는 게 이치에 맞다.


"여기 좁아! 냄새 나! 짜증나! 내보내 줘! 당장!"

"이 정성들인 함정에서 빠져나가면 초대받은 답례로 총알밥이 좋을까... 상어밥이 좋을까... 뭘로 대접하야할지 고민중입니다."

"아 네. 여러분 의견은 참고 할께요."


저마다 소리높여 불평불만을 늘어놓을뿐, 좀처럼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자 우승은 대표로 협상에 나서기로 맘먹었다.


"아무쪼록 내게 맡겨주세요. 불공정한 거래는 그럭저럭 도가 텄으니까."


새 삶에 열중하느라 이쪽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전생자들보다야 바로 어제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온전히 기억이 남아있는 그가 이야기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


"저기, 우리를 데려오신 분 지금 보고계시죠? 머릿속으로 보내주신 제안에 대해서 말씀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요. 제 머릿속을 들여다봐 주시겠어요?"


말을 끝낸 뒤, 그대로 가만히 눈을 감고 그 분과의 내면상담에 나선 우승.

5평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갑자기 말이 없어지면 티가 확 나기 마련인지라 나머지 두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모였다.


"와아! 수염남, 눈 떴다! 눈 떴어!"

"당신... 눈 떴습니까.  방금 머릿속 그놈 목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한겁니까?"

"잘됐군요. 목소리만이 아니라 탈취도 부탁해뒀는데 냄새쪽은 어떤 가요?"

"어. 진짜? 진짜로 냄새가 없어졌네? 서비스 대박."

"... 냄새같은건 아무래도 좋다. 호들갑떠는 꼬맹이 비위 맞추는 것보다 목소리가 먼저다. 어떻게 한 겁니까? 대체?"

"호들갑떠는 꼬맹이? 호들갑떠는게 아니라 아저씨가 본인냄새가 어떤지 모르는 거겠죠. 이 악취테러남."

"다시 태어나도 맥심이랑 영준형 케미는 여전하네요. 사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그건 착각입니다. 저런 맹랑한 꼬맹이한텐 관심없습니다."

"우와. 마상. 이 악당면상 아저씨, 심술부리는 것 좀 봐."

"자자- 서로 심한말은 자제하도록 하죠. 우리는 한배를 탄 사이니까요."


30분이 넘는 묵상끝에 눈을 뜬 우승은 날 선 분위기에서 빙긋이 웃으며 결과를 통지했다.


"우리? 우리라니? 아저씨들이랑 나 말야? 농담이지?"

"그러니까... '우리' 말입니까?"

"네. 네. 그렇게 됐습니다."


팀 단합을 해보기도 전에 험악일변도로 분위기가 굳어지려하자 우승은 함박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부분에 대해서 여러모로 대화하려 노력했는데 그 분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들 맘대로 조종할거라네요."


전제로 주어진 『춤춰라. 노래하라. 만신전에 K/Twins를 바쳐라.』 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자유의지를 보장받을수 있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나더러 당신네 춤을 추고 노래를 하라는 겁니까? 진심으로 하는 소리 맞습니까?"


주먹을 불끈 쥔 포마드 사내의 손에서 내적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한 삶의 과정을 보여주듯 핏빛이 제법 어울리는 상처가 많은 손이였다.

우승에게는 그런 험악한 사내의 손 위로 소년의 여린 손이 자꾸 겹쳐보였다.


"네."


거짓말.

한물간 트랙을 다시 켜놓은 5분의 앵콜무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 자리에 단 한번도 우승은 존재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솔직해지자.

지나간 전성기에 얽매여버린 이상 그들에게 자유의지란 의미를 잃어버린다.

누군가에게 언급되고 회자되면서 언제고 또다시 과거의 영광에 붙들려 버릴테지.

우주적 존재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도 대체품으로 복원시켜 무대 위로 올려버린다.

전성기란 것은 신이 내려주는 달콤한 선물이자 신의 수집품으로 남겨지는 형벌이였으니까.


우승은 생각했다.

이번에 두사람의 듀엣을 만드는 일은 꽤나 보람있을 것 같다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인기그룹의 초기멤버였던 자신이 한때 속했던 그룹의 전성기를 엿보는 쾌감.

제물을 이끌어 주고 어울리다가 마지막에 잘 익은 과실을 베어내 바치는 일은 몇번을 반복한대도 질릴것 같지 않다.

존재감을 남기지 못한채 잘려버린 그가 지닌 유일한 재능, 중재에는 딱히 전성기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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