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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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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45 May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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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신시연
협업 참여 동의

아침이다.


김경철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찌르릉 울리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귓가를 두들기는 알람을 더듬거려 끄고, 입가에 허옇게 눌어붙은 침 자국을 벅벅 긁어냈다.


“아…….”


비스듬히 열린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봄바람이 서늘하게 몸을 휘감았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슬그머니 눈을 뜨니,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9:30』


바람결에 실려 온 싱그러운 벚꽃 향기가 쌩하고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간 김경철의 빈방을 휘감았다.


“엄마!!!!!!!!”


“너 아직도 안 갔니?!”



#


덜컹. 덜컹.


출근 시간도, 등교 시간도 한참 지나버린 시간대의 평일. 언제나 붐비던 지하철은 텅텅 비어 있었다.


자리가 이곳 저곳 빈 수준이 아닌, 완전히 텅 비어버린 지하철.


경철은 지각이 너무 확고해지면 오히려 느긋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쩌억 벌리며 하품했다.


‘다음 역은 명륜, 명륜역입니다.’


내려야 하는 역은 앞으로 3 정거장. 


벌써 집에서 2 정거장이나 지났음에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지하철 맞은편 자리를 멍하게 바라보던 경철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휴대폰의 동영상 촬영 앱을 실행했다.


“해보고 싶은 게 있단 말이지...”


덜컹거리며 흔들리던 지하철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든다.


경철은 저절로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에 입꼬리를 파들파들 떨며 왔다, 갔다 흔들리는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았다.


“흡!”


손잡이에서 손잡이로.


하낫, 둘, 하낫, 둘, 하낫, 둘!


속으로 구령을 붙여가며 경철은 한 마리 원숭이처럼 지하철을 누비기 시작했다.


‘포, 노포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열린 지하철 문 앞에 사람이 보이기 전까지.


“...”


“...”


“저, 음...”


“응...”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꽤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역에 보였지만, 이 객실에 탑승한 승객은 갈색 포니테일을 살랑살랑 흔드는 눈앞의 여자아이가 전부였다.


기왕이면 전혀 모르는 사람, 평생 얼굴을 볼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유명하던 이수연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얌전하게 맞은편에 앉고, 살포시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경철과 수연은 같은 학교, 심지어 같은 합동 수업을 듣는 사이였지만, 이것 역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지금까지 사적, 공적인 대화 한 번을 나눠본 적이 없다.


경철은 육상부 소속으로 수업보다는 육상 활동에 열을 쏟는 타입이었고, 그렇다 보니 근처에 있는 여자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우락부락한 근육 괴물들이 전부였다.


수연은 그런 경철과 비슷하다면 비슷하지만, 따지자면 전혀 비슷하지 않은 타입이었다. 


애초부터 부산 사람이 아니라, 서울에서 이사를 온 경우였고. 육상 활동 대신 청소년 배우들이 등장하는 하이-틴 드라마의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번 주에는 패션지의 청소년 특집 모델로 잠깐 얼굴을 비춰 온 학교가 수연을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저기...”


“응...”


“아, 아냐!”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경철과 수연은 서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기...””


“...”


“...”


“...”


‘다음 역은 구서, 구서역입니다.’


“그, 김경철..? 맞지? 영어 같이 듣는...”


“아, 어... 빡빡, 아니, 배진식 쌤 수업 맞나?”


“응. 맞아.”


손잡이에 매달려서 원숭이 놀이를 했던 건 모른 척하려고 하나 보다. 내심 안도한 경철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으... 육상부였지? 잘 기억이 안나서. 저번에 육상 대회 보러갔을 때 본 것 같은데...”


“눈도 좋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했냐?”


육상 대회. 분명 얼마 전에 육상부 응원이라며 전교에서 몇 명 대회를 구경하러 왔었던 것 같았다.


“내가 공부는 못해도 한 번 본건 딱! 머리에 박아두거든.”


“오...”


‘포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헤실헤실 웃는 수연을 멍하게 바라보다, 치이익 소리를 내며 열린 객실 문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자 경철과 수연은 합이라도 맞춘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송도 해상 케이블카. 바다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29년만의 위대한 비행. 송도 해상 케이블카. 부산 에*크루즈.’


학교까지 남은 정거장은 하나.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인기척으로 가득 찬 지하철 3호 객실 한쪽.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괴로울 침묵이 시작되었다.




#


‘재밌는 애’


김경철을 처음 본 건 동아리 선택 주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이었다.


평소에는 모델 일이나, 배우 일 때문에 늦게 등교하는 경우가 잦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스케쥴이 텅텅 빈 날이라 아침 일찍 집에서 나섰다.


피곤에 찌든 아저씨, 언니들 몇 명을 제외하면 텅 빈 지하철은 수연에게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하여간, 느긋하게 텅 빈 등굣길을 만끽하며 학교로 들어가자, ‘악! 악!’ 하고 괴상망측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보였다.


왠만하면 미리 교무실에 들러 누구보다 먼저 교실 문을 열어볼 생각이었는데, 그 특이한 기합 소리에 그만, 수연은 그 사람을 관찰하는데 한참 시간을 써 버리고 말았다.


땀방울을 주륵주륵 흘리고, 얼굴은 구겨진 쓰레기처럼 일그러졌고, 다리 근육은 파들파들 떨렸지만, 그 사람은 악착같이 고학년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처음 본 기억은 그랬다.


두 번째로 본 것은 아마, 남자와 여자가 같이 듣는 영어 합동 수업에 늦게 들어와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이었다.


덩치는 곰처럼 커다란 사람이 키도 작고, 말라깽이인 영어 선생님에게 어쩔 줄을 모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양이 반 전체를 떠들썩하게 웃도록 만든 탓이다.


반 아이들도 웃고, 특히 경철의 친구들은 아주 배꼽이 떨어지도록 끅끅거리며 웃었고, 혼내는 선생님도 어이가 없어 피식피식 웃고 있었는데 혼자만 진지하게 고개를 푹 숙이던 사람.


그리고 세 번째.


조금 늦은 시간에 탄 지하철.


새벽까지 진행된 드라마 촬영 때문에 비틀비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까... 고민하며 객실에 올라탄 방금.


활짝 웃으며 지하철 손잡이를 붙잡고 원숭이처럼 날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텅 빈 지하철이라고 해도,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까지 얼굴만 얼핏 알던 사람과 처음으로 대화를 했다.


목소리는 상상하던 이미지랑은 조금 다르게 좋은 느낌이었다. 막 갈라지고, 걸걸한... 그런 목소리가 아닐까 종종 상상했었는데.


한참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네 얼굴을 한참 관찰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워서 예전에 간 육상 대회에서 봤다고 거짓말을 했다.


완전 부끄러운 상황이었다는 걸 그새 까먹은 건지, 헤실헤실 웃으며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을 보고 풉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랄까. 귀엽네. 


생긴 건 곰인데.


그걸 마지막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온 사람들 탓에 더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살랑살랑 올라갈 것 같아 위험해!


Writer

신시연

자에픽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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