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약은 없다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09:28 Feb 08, 2020
  • 31 views
  • LETTERS

  • By 네크
협업 참여 동의

독감엔 약이 없다.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타미플루고 뭐고 하지만, 그건 증상의 기간을 줄이기만 하지, 병 자체를 죽이지는 못한다. 그딴건 약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별 생각은 없었다. 독감이라곤 한번도 걸려본적 없는 몸이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방주사도 맞은 적 없었다. 독감에 걸릴 일도 없는데, 정부가 따르는 말에 순순히 따르라고?

내가 그렇게 멍청한줄 아는건가? 관료 말에 속는 것도 한두번이지, 속을걸 알면서도잠자코 계속 따르면 그게 멍청한거다.

이번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할 때에도 내 스탠스는 변하지 않았다. 난 언제나 정부가 아닌 내 자신의 신념을 따른다. 

손을 씻으라고? 이 겨울철에 툭하고 손씻어서 피부 갈라지는건 어떻게 하라고? 

공공장소에 나가면 안된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으면 내가 나가도 별 문제 없는거 아니겠어?

따뜻하게 입고 영양을 챙기라니, 잘나신 부자들이나 할법한 위선적인 개소리지.

이성적인 반론이 아닌 이상, 내게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으슬으슬한 오한이 들었을때엔 그저 추위라고 생각했다.

뜨뜻한 국밥 한그릇 먹고 나면 다시 기운이 나겠지.

하지만 펄펄끓는 수구레 국밥을 눈 앞에 두고도 입 맛이 돌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었다.

한차례 땀을 빼면 낫겠지, 하고 찜질방에 들어가 드러눕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열이나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요즘 유행한다던 그 바이러스에 걸린건가?

그렇지만 난 외국인은 커녕 다른 지역 사람을 만날 약속따윈 한번도 잡은 적이 없단 말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때, 내가 독감에 전염되었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 모든건 그놈의 외부인 때문이다. 일거리를 찾는답시고 가뜩이나 부족한 이 지역에 와서 일거리를 찾는 개새끼들.

미개하고 낙후된 지역에서나 걸릴법한 질병을 달고 들어와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빈대새끼들.

혹시 아는가? 무심코 지나친 찜질방이나 국밥집에 녀석들이 있었을지?

병에 걸린건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 틀림없었다.

일단 약국에서 해열제와 두통약을 구매해 입에 털어넣고서는, 소주 반병을 들이켜 목 뒤로 넘겼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 말했지 않나. 

독감에 약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엔 약이 있다.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기침이 계속 나왔지만 별 문제는 아니었다.

세상이 병들었다면, 그 병폐를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일테다.

의사도 증상이 있어야 수술을 하지 않겠는가?

목표는, 옆집의 거무잡잡한 기생충이 다니던 공장.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만데, 그걸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집어먹고는 몇 안되는 아까운 일자리를 외국인에게 넘기다니.

정신을 차리게 몇대 후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화염병으로 싸그리 공장을 태워도 좋을 것이고.

더욱이 그 곳에서 깽판을 치면 사회의 빛을 피해 숨어있는 야만인 조직 또한 기어나올테다.

친목을 이유로 끈끈하게 엮인 이 사회의 병폐 말이다. 

내 안전은 위험에 빠지겠지만, 그들이 나를 '막는답시고' 싸우는 모습은 진짜 위험한 이들이 누구인지 잘 알려주겠지.

미리 카메라를 준비해 그 모습을 인터넷에 올리면 바이..? 배이럴되어 사람들도 내 의견에 동조해 줄 테다.

나처럼 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널려있으니, 비록 내 목소리가 잊혀지더라도 그 친구들이 이어서 진실을 전파할 것이고.

제정신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내가 구타당하는 모습에 분노하지 않을리 없었다.

이 빌어먹을 정부 아래서라면 묻힐 수도 있겠지만, 그럼 그 분노는 쌓이고 쌓여, 마침내 폭발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리라.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어둠 속에서 씨익 웃었다.


---


"정신이 드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환자의 앞머리를 가다듬으며 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언동에 따뜻함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사무적으로 체크리스트를 채워나갈 뿐이다. 환자의 의식, 확인.  오감의 이상, 없음. 영양 상태, 회복 중. 

"---"

환자는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구멍난 타이어처럼 쉬익거리는 소리밖에 새어나오지 않았다. 한마디 하려고 입을 열때마다 메마르고 부어오른 목이 격통을 자아냈고, 이내 말하는걸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가족은 없으세요? 연락할만한 지인이라던가?"

간호사의 물음에 환자는 손을 힘들게 저었다.

"해외에 있어서 연락이 힘든건가요? 선생님?"

재차 간호사가 물어보는 그때, 병실의 문이 열렸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였다. 차트를 품에 끼고 내려다보던 그녀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가까운 지인이 있을리가 없죠. 여기는 제가 맡을테니 다른 병실 좀 확인해주시겠어요?"

간호사는 한차례 환자를 흘겨보고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어지간히 이 안에 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지 싶었다.

"이봐요,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은 하시구요?"

"꺼-."

환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목에서는 총에 맞은 동물이 신음하듯 목을 긁는 소음밖에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통도 같이 찾아왔다. 인상을 팍 쓰고는 고개를 힘겨이 저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의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옆집에 사는 분 성함 알고 계세요?"

환자는 고개를 저었다. 외국인의 이름은 길고 어렵기만 하지, 한국인으로써 외워야 할 이유도 의리도 없었다.

"옆집에 살고 계신 최봉식씨가, 일터 앞에 쓰러져 계신걸 발견해서 저희 병원으로 실어왔습니다. 구급차가 오는 동안 심폐소생술을 해주신 덕분에 지금 이자리에서 살아계실 수 있었던 거구요."

"-"

환자는 입을 열고 화를 내려고 했다. '이 병을 옮긴건 녀석이다. 그딴 가명을 써 봤자 속을 줄 알아?' 하지만 찾아오는건 고통 뿐이었다.

"일단, 지금 앓고 계신 병은 독감입니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바이러스와 달리 평범한 인플루엔자니까요."

환자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인플루엔자에 걸릴 리가 없었다. 평생을 건강했는데 왜 지금 걸렸단 말인가?

"사람들이 자주 잊고는 하는데, 지금은 독감 유행철이기도 하거든요. 예방주사는 안맞으신 것 같은데, 해마다 챙겨두셔야 이런 일이 없는거랍니다."

그렇다고 쳐도, 왜 이렇게 아픈것인가? 온몸이 격통에 뒤덮여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는게 해마다 유행하는 독감일리가 없다.

"요즘에 젊은 사람 대상으로는 이 정도까지 병세가 진행되는 일은 드문데 말이죠. 조기에 오셔서 진단 받고 휴식을 취하셔야 금방 낫죠."

그리고는 의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생님의 신원을 알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만 지갑을 좀 뒤졌습니다. 신분증은 없지만 영수증은 한가득 있더군요? 보아하니 많이도 돌아다니신 모양이더라구요. 정말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당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위협이 되는 행동이에요. 아시겠어요? 다음에는 그러시면 안됩니다."

환자는 미간을 찌뿌렸다. 이 여자가 자기가 뭐라고 자신을 판단하냐는 투였다.

"어쩔수 없이 봉식씨의 도움을 다시 받는 수 밖에 없었어요. 선생님은 봉식씨를 모르지만 봉식씨는 선생님을 알고 계시더군요. 김종신, 성함이 맞으신가요? 맞으시면 고개를 끄덕여주세요."

환자는, 조심스럽게 긍정을 표시했다. 이럴 줄 알았어. 녀석도 나를 노리고 있었다. 

"일단 통증과 염증 중심으로 대증치료를 진행할거구요, 상황이 호전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할게요. 아, 그리고, 가방에 들어있던 물건들 때문에 경찰과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대화가 불가능하니, 내일 즈음 다시 부르도록 이야기해 두었어요. 일단... 일단은 여기서 좀 휴식을 취하는게 낫겠네요."

여기서 쉬라니? 정부에게 그대로 잡히라는건가? 이럴 줄 알았다. 이놈들도 정권의 개다. 손을 뻗어 호스를 빼려는 환자는 이내 자신의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음을 깨달았다.

"저는 이만 나갈테니, 편히 쉬도록 하세요. 뉴스라도 틀어드릴까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의사는 티비를 틀어 뉴스 채널을 틀어주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이른 모양인지, 시사 평론 프로그램이 뉴스 대신 진행될 뿐이었다. 각양 각색의 패널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은 환자에게 있어선 신기하면서도 가식적으로 보였다. 자기만 아는체하는 새끼들. 진짜 바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하나도 모르는 놈들.

"...지역 소식입니다. 테러범을 구해준 청년의 이야기가 알려져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어요. 이야기에 따르면 폭발물을 숨기고 공장을 습격하려던 30대 남성 A씨가 질병에 걸려 공장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옆집에 살기도 하는 30대 남성 B씨가 발견해 긴급히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119에 신고하여 그 목숨을 구했다고 해요."

"10년 전 현역 시절 배웠던 심폐소생술의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오랜 세월에 잊혀지기도 쉬울텐데 말이죠."

"그럼에도 A씨가 왜 폭발물을 숨기고 들어왔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습니다. A씨의 것이라고 알려진 인터넷 계정에 비공개 성명문 비슷한게 있었다는데, 그게 상황하고는 많이 달라서 직접적으로연관되는 지는 조사를 좀 더 해봐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도 그럴게, A씨가 발견된 공장은 청년 기업으로 선정된 유명한 기업 중 하나에요. B씨를 비롯해 의병제대를 한 전 군인들이 모여 만든 기업으로 중소기업청에서 수상도 받았던, 지역사회에선 소소히 화제가 되기도 했었던 회사였죠. 이민자가 있는 기업이 테러를 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A는 자기가 어디를 공격하는지도 몰랐던 거에요."

"그러고보면 이와 같은 혐오 범죄가 최근 치솟고 있는 경향을 보고 있어 사회 각층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독감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낫지만, 멍청함엔 약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Writer

네크

네크

티-스토리 applejack.tistory.com

트위타 @nec092

게임 리뷰하는 팟캐스트 우물파는 게이머들의 리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