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장의사는 종언을 알리고 (중간에 수정했으니까 수상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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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 Feb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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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ㄹㅍ
협업 참여 동의



“당신이 종언의 마왕인가요?”


장의사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눈 앞의 마녀를 바라보며 긍정했다.


“종언을 알리는 자는 맞다, 마왕이 아니라 장의사지만.”


“장의사?”


“나는 죽은 세상을 떠나보내는 역할을 맡았으니까.”


“어찌됐건 상관없어요. 나는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어서 찾아왔으니까. 지혜의 샘이 그러더군요. 여기에 그 방법이 있다고.”


마녀는 마녀답게 생겼다. 귀 밑에 새겨진 주문표식, 길게 치렁거리는 검은 로브, 빛 하나 없이 검게 물든 눈동자. 그녀의 눈은 아직 생기가 넘쳤다. 권태에 찌들지도 않았고, 슬픔에 물들지도 않았다.


“세상을 되돌리기 위해 찾아왔다면 이곳이 맞다. 하지만 그게 네가 원하는 과정은 아니겠지만. 지혜의 샘은 올바른 답을 내놓지만 항상 올바른 과정을 함유하지는 않지.”


“당신이 유일한 답이라고 그랬어요. 지혜의 샘이.”


고집을 부린다. 장의사는 마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수많은 죽음을 치러왔다. 그저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죽음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마녀의 마법엔 대가가 따르지. 마찬가지로 내가 세상을 되돌린다는 건, 그만큼의 대가를 치루고 나서야 세상을 되돌린다는 의미다. 넌 그 대가를 치룰 준비가 돼있나?”


움찔, 마녀는 시선을 돌렸다. 미약한 공포가 느껴졌다. 장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세상이 끝을 맞이하기엔 이르다.


“대, 대가가 뭔데요?”


“종말, 모든 것들의 종말.”


“네?”



장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돌아가라. 그리고 각오가 서면 다시 찾아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죽은 모든 것들을 모조리 관짝에 담아 묻어버리는 것뿐이다. 그 외에 내가 아는건 없어.”


“잠깐, 잠깐만요. 그럼 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모두를 죽여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무 의미도 없는거잖아요.”



그래, 죽음엔 의미가 없지. 장의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돌아가. 더 이상 네게 할 말은 없다.”



피곤하군, 세상에 종언을 알린지 3년 밖에 안됐다. 너무 이른 시간에 깨버렸다.
장의사는 눈을 감았다. 마녀는 뭐라 몇 번 말을 꺼냈지만 이내 포기한 듯 조용해졌다.
동굴 안에서 장의사는 숨을 죽였다.




 * * *




“일어나요, 장의사.”



몇 년 지났지? 장의사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생각했다.



“겨우 1년 지났군. 왜 또 왔지?”



1년 만에 만난 마녀는 제법 초췌한 모습이었다. 생기있던 눈빛은 반쯤 가라앉았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한층 더 깊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체념한 기색은 없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다. 장의사는 장의사의 일을 할 뿐이지.”


“그래요, 이 세상의 관짝을 맞추러 왔어요. 당신한테 장의사가 할 법한 이야기를 요구하러 온거에요. 이래도 당신이 할 일이 아닌가요?”



장의사는 피식 웃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퍽 신선한 일이었다. 의미 없는 발악이라는 건 변함없었지만 그녀가 뭘 할지 조금 궁금해졌다.



“좋아, 무엇을 원하나?”


“당신 말대로 세상은 죽었더군요. 의심할 여지 없이. 고위 마족을 불러낸 끝에 그 답을 들었죠.”


“쓸데없는 짓을 했군.”


“나는 올바른 과정을 가진 답을 찾아야만 하니까요. 모든 사람들을 살리면서 동시에 세상을 되돌리는 법.”



마녀는 마녀답게 생겼지만, 마녀답지 않은 짓을 하고 있었다. 마녀는 희생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제물을 희생시키는 쪽에 가깝지. 장의사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었다.



“하여튼, 일 년 동안 생각을 정리하다보니까 당신 말에 모순이 있더군요.”


“모순?”


“그래요. 당신은 장의사에요. 죽은 것들을 묻어버리는 장의사. 살아있는 것들을 묻어버리는 건 장의사가 할 법한 일이 아니죠. 제 말이 맞지 않나요?”


“그래서?”


“그래서라뇨? 이 세상 위에는 수 억개의 생명이 살아있다구요. 그걸 통째로 묻어버릴 생각인가요? 그건 장의사의 본분이 아닌 것 같은데.”



마녀는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흥미가 사라졌다. 장의사는 다시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멈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지?”


“시간이 멈췄어도 다들 살아서 움직이는걸요.”


“삶에 무한의 개념이 끼어드는 순간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어지지. 당신들은 이미 죽은거야. 죽은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항변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나? 나는 누군가가 죽음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릴 뿐이야.”



마녀는 뭐라 더 말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장의사는 너무나 피곤했다.



“네 말대로 장의사는 살아있는 사람을 묻지 않아. 그리고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을 묻어버리는 것도 싫어. 그래서 기다리는거야. 체념한 누군가가 내게 모든걸 끝내주길 바랄 때까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마녀가 소리쳤다.



“당신한테 살아있다고 인정받는다면 달라지는 건가요!”



그리고 장의사는 수마에 빠졌다. 




 * * *




“일어나요, 잠꾸러기.”



장의사는 마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때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났다. 마녀의 눈빛은 제법 차분해져 있었다.



“볼 때마다 변하는군. 재밌어.”


“변해요? 재밌는 소리네요. 매번 하는 생각이 나이 좀 들었으면 하는건데.”


“그래, 변했어. 그동안 뭘 했지?”


“만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나봤어요. 마계에도 가보고, 정령왕도 만나보고, 드래곤도 만나봤죠. 뭐, 그런 의미에서는 고맙네요. 세상이 멈춰서. 세상이 멈추지 않았다면 평생을 가도 해보지 못할 경험을 한 셈이니까.”


“의미가 있었나?”


“네, 차고 넘치게 의미가 있었죠.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거예요.”


“당신이 내게 의뢰를 하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의뢰를 하러 온 건 맞아요. 대신 당신이 하던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제안하러 왔죠.”



장의사는 팔짱을 끼고 마녀를 바라봤다. 해볼테면 해봐라, 그런 의미를 담아서.



“당신은 모든 것들을 희생시켜야만 세상을 되살릴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당신은 단언했죠.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죽어있는 것이라고.”


“그래. 그런 말을 했었지.”


“그렇다면, 당신이 납득한다면. 이 세상에도 살아있는 것들이 있음을 당신이 납득한다면 살아있는 것들을 빼고 이 죽은 세상을 묻어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마녀는 그럴 자신이 있다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장의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건 장의사는 장의사의 사고방식을 고집할 것이다.



“넌 아직 스스로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군.”


“맞아요, 그래서 당신에게 보여줄 생각이에요. 내가 이뤄낸 것들을.”



그녀의 귀 밑에 있는 마법 표식이 금빛 휘광으로 물들었다. 이내 마법 표식은 체계를 갖춰 하나의 문양을 그려냈다.

장의사는 그 마법을 알고 있었다. 이미 있었던 과거를 재현하는 마법. <그림자를 비춰내는 거울>

그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그려내는 환상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마녀는 정령왕을 불러내기 위해 북쪽의 설산을 올랐다. 설산을 지키는 괴물들의 방해를 피해 몇 개월 동안이나 마녀는 맨몸으로 산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마녀는 가장 높은 산에 올라섰다.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폐가 얼어붙었고, 입은 옷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알몸으로 서서 정령왕을 위한 제단을 세웠다. 세상의 시간이 멈췄기에, 죽지 않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제단 위에서 그녀는 정령왕을 만났다. 그에게 세상을 되돌리는 법을 묻자, 그는 세상의 종언을 말했다. 몇 번이나 마녀는 물었지만 정령왕은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대신 정령왕에게 세상의 비밀과 고대 마법에 대해물었다. 그녀는 그것으로 드래곤에게 닿는 마법을 배웠다.


마녀는 몇 번이나 고난을 되풀이했다. 유한한 삶으로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업적들을 몇 번이나 이뤄냈다. 인간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지식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그녀의 업적은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만큼 많았고, 대단했다.



“너는 왜 이 세상을 살리려 하지?”



환상에서 깨어난 장의사는 마녀에게 물었다.



“그래야만 내일이 있으니까요.”


“넌 내일이 없어져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인간 아니던가?”

“다 자라난 상태에서 내일이 없어진 것과 채 자라나지도 못한 채 내일이 없어진 건 그 무게가 다르니까요.”



마녀의 말에 뼈가 담겨 있었다.



“아이가 있나?”


“동생이 있어요. 겨우 걷기만 하는 동생이.”



장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군. 그래, 인정하지. 넌 아직 살아있어. 죽지 않았다.”


“그럼!”


“하지만 내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모양이군. 난 장의사야. 나는 장의사의 역할만 할 수 있지. 네가 바라는 소원을 들어줄 만큼 난 전능하지 않아.”


“당신은 세상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잖아요.”


“대신 조건이 붙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내 능력은 그렇게 쓰이도록 만들어졌을 뿐이니까.”



마녀는 허탈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그런 기색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무언가 불편했다. 장의사는 저답지 않은 짓을 한다 생각하며 말을 붙였다.



“대신 난 세상의 종말을 유예할 권능을 갖고 있다. 네게 특권을 주지.”


“특권?”


“그래. 너 말고 누가 찾아오건, 네가 세상을 끝나길 바랄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 그동안 네 동생을 위해 살아라. 아기라도 보고, 느끼고, 듣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특권이라고 하기에도 우스운 말이었다. 하지만 마녀는 장의사가 한 말을 주워 담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세상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내 동생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마녀와 장의사는 그렇게 서로 등을 돌렸다. 몇 년 뒤에 깨어날까, 장의사는 동굴 속에서 다시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되도록, 늦게 깨우면 좋겠는데.

무의식 속에서 불쑥 튀어 오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장의사다운 생각이 아니었다.




 * * *




장의사는 문득 눈을 떴다. 십 년, 그 정도쯤 지났군. 장의사는 감각을 정돈했다. 마녀는 앞에 서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로군.”


“그 이후로도 매년 깨웠는데 일어나질 않더군요. 할 얘기가 많았는데.”


“할 얘기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질없어 졌을테고.”



마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부루퉁한 표정이 영락없는 10대 여자애의 모습이었다. 장의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녀에게 물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을 했지?”


“온갖 일을 다 했죠. 당신이 쿨쿨 자고있는 사이에 할 수 있는건 다 해봤어요.”


“네 동생은 무엇을 했지?”


“아기답게 맛있는 걸 먹고, 즐기고 느꼈죠. 어느 정도 말도 배웠어요. 지능의 발달이 멈췄다지만 시간이 지나니 문장을 만들어내더군요.”


“그게 문제였군.”



깊은 침묵, 마녀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불쑥 입을 열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유한하지 못한 인간은 의미가 없어요. 당신 말대로 죽은 셈이나 다름없죠. 배고프지도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은 세상은 견디기 괴로울 정도로 무서운거에요. 3살짜리 애기도 그렇게 느낄 만큼.”


“모두가 너처럼 강하지는 않지.”


“맞아요. 제 동생은 질문이 많았어요. 왜 나는 크지 않나요, 왜 책에서 본 것들과 이 세상은 다른가요, 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수많은 질문 끝에 동생은 결국 결론을 냈어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언니. 동생이 어느날 제게 그렇게 말하더군요.”



장의사는 마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마녀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깊고 어두운 눈동자는 여전히 생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너머엔 일종의 체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당신 눈을 봤을 때 무서웠어요. 본능적으로 알았거든요. 당신이 죽음이란 걸,”


“하지만 지금은 눈을 피하지 않는군.”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걸 알아버렸으니까요.”



장의사는 마녀의 두 어깨를 쥐어 잡았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당신은 아직 살아있어.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하지만 정말 끝내길 바라는가?”


“끝내길 바라요.”


“다른 사람이 그걸 원하니까?”



마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의사는 모든걸 이해했다.



“당신은 마녀답게 생겼지만, 전혀 마녀같지 않군. 더는 마녀라고 부르기도 이상해.”



마녀는 타인을 희생시킨다.
스스로 희생하는게 아니라.



“당신 이름이 뭐지?”


“……한나.”


“한나, 모든 것들의 종말을 원하나?”


“네, 원해요.”



장의사는 몸을 일으켰다. 마침내, 그가 일할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 * *




장의사는 들판 위에 서서 석양이 저무는 풍경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풀밭 위에 짙게 깔렸다.


“달이 아름답군.”



소리 없이 끝나가는 세상의 끝자락에서 장의사는 그렇게 감상을 말했다.



“평화롭네요. 아무 일도 없을것처럼.”



한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이미 힘이 없었다.



“난 그동안 대체 뭘 한 걸까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발버둥만 친 셈인데.”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붙지. 별다른 일이 없더라도. 넌 삶의 권리를 마음껏 행사했어. 그리고 내게 살아있다 인정받았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죽음에게 축복받는 삶, 뭔가 시적이네요.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저 멀리 지평선 끝에서부터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공기가 낮게 내려앉았다. 그들에게도 종말이 찾아오고 있었다.



“안아줘요.”



장의사는 잠자코 한나를 껴안았다. 품속에서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온기가 느껴졌다.



“제가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모두를 죽이지 않고 세상을 되살릴 수 있었을까요?”


“불가능한 일을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마, 후회하지도 말고.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거니까.”


“제가 너무 빨리 삶을 포기했나요?”


“포기한게 아니라 결심한거지.”



장의사는 중얼거렸다. 한나는 끊임없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둠이 가까워져왔다.



“무서워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법이지.”


“죽음 뒤에는 뭐가 있죠?”



장의사는 입을 다물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는 팔을 내리며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장의사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 * *





어둠 속에서 장의사는 웅크려있었다. 수많은 차원계가 빠르게 그를 지나쳤다. 저마다의 세계가 차갑게 맥동하며 그를 기다린다.

그는 오랫동안 한나를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의미 없는 발악, 어떤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지만 장의사는 한나를 위로하는 걸 택했다.

한나는 온기를 갖고 있었다. 온기를 가진 채 죽어간 세상을 살리려 노력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세상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은 타성에 젖어 권태에 찌들은 끝에 죽음을 택할 뿐이었다.


장의사는 한나가 그리웠다. 조금. 그녀의 온기가 그의 가슴팍에 남아있었다. 그 감촉은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숱한 종말 끝에서도 그 온기는 그의 몸속에 깊게 스며들어 그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세계가 그를 지나치고, 그는 꿈을 꿨다. 한나가 보여준 기억의 일부였다. 길고 긴 기억의 끝에서 그는 그녀를 기억했다.


마침내 장의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음이 미어져 부서질 정도로.
그는 오랫동안 울었다. 가슴 속 남은 온기의 흔적만큼 울었다.

그게 바로 장의사의 첫사랑이었다.

comment (1)

ㄹㅍ 작성자 20.02.16. 19:59
하.... 끝을 제대로 못낸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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