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라한대] '경'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02:29 Oct 19, 2020
  • 53 views
  • LETTERS

  • By 딸갤러
협업 참여 동의

 그의 성은……아니, 그의 성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성이 까라마조프이건 넬류도프이건 하물며 로마노프일지라도! 그저 그가 8등관에 불과하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의 이름은 빠벨 빠벨로비치였는데 이름만 봐도 알듯이 구태여 그 유래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스물 중반의 나이에 8등관에 오른 만큼이나 그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루시의 사내들, 특히 8등관이란 족속들이 모두 그러하듯 그는 8등관에 오른 제 지식과, 학력과 또 그에 걸맞는 명예(실제로 있는지는 모를)를 중시했는데, 그들이 하는 일에 걸맞지 않은 자부심이었다. 

 그날도 빠벨로비치는 관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뻬쩨르부르그의 명예와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자세한 일의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그가 한 명단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은 적어둔다. 명단은 바실리예쁘스키 섬에 사는 사람들의 명단이었는데, 우리의 명석한 8등관 빠벨로비치는 특이사항을 알아챘다. 그 명단에는 뻬르호찐 ‘경’의 이름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뻬르호찐 경이 누군지는 여러분도 나도 빠벨로비치도 알지 못했지만, 다만 ‘경’이라는 단어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기사였던 것이다……. 

 ‘세상에, 아직도 기사가 있단 말이야?’

 빠벨로비치는 여태 기사라고는 소설에서밖에 본 적이 없었다. 마침 어제도 기사 문학을 읽었지만 설마 아직도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기사가 있다면…….“

 8등관의 명석한 두뇌는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일찍이 관청을 나서 바실리예쁘스키 섬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두 말할 것 없이 뻬르호찐 경의 집이었다. 뻬르호찐 경의 집은 바실리예쁘스키 10번가에 위치했는데, 빈말로도 치안이 좋다고는 할 수 없어 빠벨로비치는 외투 깃을 세우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보쇼, 대체 월세는 언제 낼 거요!”

 뼤르호찐 경의 집에 다다르자 문을 두드리는 사내가 있었다. 뻬르호찐 경은 아니었는데, 명단에는 뻬르호찐 경이 67세라고 기록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없는 척 해도 다 알아요! 내일까지 내지 않으면 경찰서장을 불러올테니 알아서 하쇼!”

 사내는 콧김을 씩씩대며 돌아섰다. 아무래도 뻬르호찐 경은 집세를 내지 못하는 듯 했다. 빠벨로비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빠벨로비치는 사내가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후 점잖게 문을 두드렸다. 

 “뻬르호찐 경 계십니까? 8등관 빠벨 빠벨로비치라고 합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어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집세 문제로 온 것이 아니니 문을 열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조심스레 문이 열렸다. 빠벨로비치는 모자를 벗어 감사를 표하고는 문을 넘어 뻬르호찐 경의 집에 들어갔다. 집 안은 냉기가 흐르는 것이 아무래도 장작 하나 없는 듯 했다. 

 “내가 귀가 어두워서 잘 못 들었지 뭐요. 무슨 일로 오셨소?”

 뻬르호찐 경은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뻬르호찐 경은 머리가 벗겨지고 몸이 삐쩍 마른 것이 그다지 기사라는 말에 어울리진 않았다. 오히려 헌책방 주인이라고 했다면 납득했을 것이다. 다만 외안경에 비치는 눈에는 뒤룩뒤룩 탐욕이 가득한 것이 헌책방보다는 전당포 주인이 더 어울렸다. 빠벨로비치는 옅은 경멸감을 삼키며 점잖게 말했다. 

 “뻬르호찐 경이 맞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온 것은 기사 작위를 파십사 하고…….”

 그 뒤로 이어진 빠벨로비치와 뻬르호찐 경의 실랑이는 구태여 적지 않겠다. 지면이 아까울뿐더러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뻬르호찐 경은 200루블에 기사 작위를 팔기로 했다. 빠벨로비치가 새 외투를 사기 위해 2년간 모은 돈이었다. 

  

 ‘으흐흐. 내가 기사가 됐군 그래.’

 빠벨로비치는 실실 웃으며 바실리예쁘스키 섬을 나왔다. 

 ‘내가 빠벨, 빠벨로비치 경이란 말이지?’

 사실 그의 은밀한 취미는 기사 문학을 즐겨보는 것이었다. 러시아 판본이 적어 프랑스 판본을 찾아볼 정도로 열성적이었는데, 부끄러이 여겨 남들에게는 숨기었다. 다만 새 외투를 포기하고서까지 기사작위를 산 것은 단지 취미만이 아니었음이라. 

 빠벨로비치는 마차를 타고 네프스키 거리로 향했다. 마차는 화려한 현관 앞에 섰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네프스키 거리에는 여러 빠네, 빠니가 모이는 연회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가 찾은 곳도 그러한 곳이었다. 빠벨로비치는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 건물로 들어섰다. 들어가 고개를 좌로 우로 휘휘 젓던 그는 어느 한 여성을 발견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여성은 금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의, 슬라브인의 특징을 가진 여성이었는데 퍽 아름답다 할만 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아름다웠다…….

 “마드모아젤(그는 곧잘 프랑스어를 사용하곤 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어머, 어제 그 분 아니세요?”

 빠벨로비치는 자못 멋있는 표정을 지으며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어젯밤 네프스키 거리를 지나가다 한 여성이 뭇 사내들에게 겁박받는 것을 보고 구해줬던 것이다. 마치 소설 속 기사와도 같았다고 빠벨로비치는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멋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돈을 주며 사내들을 물러가게 했던 것이니. 참고로 그 돈은 신간을 살 예정이었다. 

 하지만 빠벨로비치는 당당했다. 소설 속 기사와도 같던 자신이 이제는 진짜 기사가 되어 돌아오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는 젊은 나이에 8등관이 된 훌륭한 사내였다. 콧수염도 멋들어지게 기르지 않았나. 그는 눈앞의 여성이 곧 자신을 따라오리라 믿었다……. 

 그들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빠벨로비치는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슬슬 같이 나가자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 지금이다. 지금이야. 

 “저기 마드모아젤? 저희 혹시…….”

 “리자! 거기 있었구나.”

 “꼴랴?”

 빠벨로비치가 말을 꺼내는 찰나, 한 사내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빠벨로비치도 아는 이였다. 같은 관청에 근무하는 8등관 니꼴라이 이바노비치였다…….

 “어, 빠벨로비치씨 아니세요?”

 “오, 이바노비치 아닌가.”

 “꼴랴. 이 분을 아셔?”

 “우리 관청에서 함께 일하시는 빠벨 빠벨로비치셔. 빠벨로비치씨, 여기는 제 약혼녀 리자에요.”

 “오, 그, 그런가. 참……자네와 어울리시는군 그래. 내 급한 일이 떠올라서 먼저 가보지. 마드모아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빠벨로비치는 황급히 핑계를 대고는 자리를 떴다. 

 빠벨로비치는 황급히 걸음을 돌렸다. 

 ‘젠장, 이게 뭔꼴이야. 아니, 애초부터 네프스키 거리를 걷는 여자가 멀쩡할 리가 있나? 네프스키 거리에 즐비한 것이 창녀들인데. 암, 그렇고 말고. 우습구나 이바노비치!’

 꺄하하, 와하하. 

 

 빠벨로비치의 등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와하하

  

 빠벨로비치 ‘경’은 함께 웃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129'이하의 숫자)
of 129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