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라한대]여름을 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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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49 Aug 3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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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마리

 창틀에 몸을 기대고 밖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지만, 땅은 반짝이는 조명으로 가득했다. 화려한 불빛 사이로 300미터는 가볍게 넘을 법한 거대한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탑을 단순한 온도 조절기가 아닌 시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던 시장의 장담은 현실이 되었다. 고풍스러우면서 현대적인 디자인이 주변의 다른 빌딩들을 압도했다. 방충망 사이로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등 뒤에서 작은 기계음이 들렸다. 나는 창문을 닫고 그녀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멋있네요. 저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처음부터 외형은 상관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일 년 가까이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던 공사가 끝났다는 사실과 내일부터 여름이 사라진다는 것뿐이다.

  준경 씨 표정이 별로 안 좋아요. 아직도 기온을 조절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드시나요.”

  당연하잖아. 저런 건 인간이 맘대로 해도 되는 게 아냐.”

  예리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당연한 일이다. 작년 이맘때, 시청 직원들이 찾아와서 조망권 피해 보상이랍시고 예리를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외로운 자취생활에 질려가고 있던 나는 순순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1년째 홀로그램과 동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학생으로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예리의 나이는 한 살에 불과하다. 여름에 담긴 추억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더위도 느끼지 못한다. 예리는 인간이 아니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어요.”

  맞는 말이다. 나는 반대 시위에도 참가하지 않았고, 도시를 떠나지도 않았다. 그래도 가슴 속에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여름옷과 겨울옷을 전부 버려야 해.”

  좋은 거에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 정리를 할 필요가 없잖아요.”

  선풍기 하나 붙잡고 하루종일 늘어질 수도 없어.”

  다행이지 않나요? 전기세 많이 나왔다고 투덜대지 않아도 되고요.”

  피서의 즐거움이 사라졌어.”

  실내 수영장은 남아 있어요. 도시 밖에 있는 해변으로 가도 좋고요.”

  여름꽃을 볼 수 없게 됐어.”

  식물원에 가면 되잖아요. 가정용 온실을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는 자야겠다고 말을 꺼내고 예리를 종료했다. 온도 24습도 60.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는 여름도 겨울도 존재하지 않는다. 창문을 열고 마지막 더위를 기억했다. 핸드폰 시계가 자정이 넘었음을 알려주었다. 서늘한 바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하고 싶은 말 반도 못하고.. 급전개에 급마무리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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