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광대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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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30 Feb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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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현안인
협업 참여 동의

 "자, 여기에 오세요. 요즘같이 흉흉한 시기에 이야기꾼은 흔하지 않은 법이죠.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들자, 허름한 옷차림을 한 광대가 앉아 있었다. 인적이 많은 도로도 아니고, 더군다나 모래바람이 차갑게 부는 새벽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광대는 그를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춥지 않소?"

 "이야기는 빛이니, 저는 언제나 빛과 함께 있는 법이죠. 또한 빛은 언제나 따뜻하답니다!"

 "그거 참 좋은 말이군."


 남자는 말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저 광대는 몰라도, 그에게는 일정이 있었다. 등을 돌리는 남자를 향해 광대가 급히 소리쳤다.


 "아하! 손님은 왕이며, 왕은 곧 손님이지요. 그러니 제게 왕이란, 한 명의 손님에 불과하답니다!"

 "뭐?"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광대를 돌아보았다.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으신지요? 한 남자가 추락하는 이야기와, 한 남자가 날아오르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마음이 가시는 것으로 고르시지요!"


 광대는 히히덕대는 웃음을 감출 기미가 없었다.


 "오, 둘 다 싫으신가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이야기긴 하지만, 사악한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멋진 기사님의 이야기도 있답니다!"


 남자는 결론지었다. 저 광대는 미쳐있다. 한창 젊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딱하게 되었다.


 "동전은 주지.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여유는 없을 것 같구나. 내일이면 낙타를 타고 한참을 걸어야 해서 말이지."


 동전을 꺼내어 광대에게 던졌다. 왕의 얼굴이 그려진 동화였다. 광대는 뛰어오르듯 동전을 낚아채고는, 말총을 엮어 만든 현을 띠링 울렸다.


 "오호호! 새로운 모험이라. 아주 좋군요. 하지만 정말 조금,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광대는 동전에 새겨진 왕과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남자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안타깝게 됐구나. 요즘 사람들은 귀가 없어. 전쟁 탓에 이야기로 가슴을 채울 여유는 없으니까. 자네도 그런 헛짓은 그만두고, 어서 생업을 따르는게 어떤가?"


 남자가 호통을 치고, 그럴 수는 없다는 듯 광대가 펄쩍 뛰었다. 날카롭게 현을 튕기는 소리가 밤의 사막에 울려 퍼진 탓에 몇몇 사람들이 잠을 깼는지 집집마다 작은 소란이 일었다.


 "이봐. 더군다나 지금은 이야기를 하기에도, 듣기에도 적절한 시간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지 않나."


 남자가 달을 가리키며 그를 타일렀으나, 그는 아랑곳 않고 현을 울리기 시작했다. 부아가 치민 남자는 자리를 떠났다.


 "잘 가게."

 "다시 만나지요. 알레페리스 폐하."


 남자가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광대는 간 곳이 없었다.



 남자는 그 길로 왕성으로 돌아와 짧은 잠을 청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모든 것을 덥히는 해가 떠올랐고, 모래는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남자는 낙타에 타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영웅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언제나 강했다. 정적들은 그의 어명 한마디에 목이 달아났고, 그를 죽이려 숨어든 암살자들은 그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가는 길이 곧 이야기였으며, 또 다른 노래가 되었다. 음유시인들이 그에게 바친 시를 다 모아 양가죽에 적어본다면, 양을 몇천 마리는 도살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이야기를 싫어하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의 뒷면에는 인간들의 본성이 숨어있었다. 검고 추악한 본성이. 그것이 그에게는 확실히 느껴졌기에. 더욱 이야기를 멀리하며 살아왔다.


 "낙타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 넓고 밝지요?"


 갑자기 희희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그 광대가 곁에 있었다. 왕은 하인들을 시켜 이 광대를 멀리 쫓아내라 명령하였으나, 하인들은 우물쭈물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혹시, 여자를 품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광대가 말했다. 남자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광대가 웃었다.


 "그러면, 인간을 사랑해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다시 광대가 덧붙였다. 남자가 이 미치광이를 쫓아내어라 명하였으나, 하인들은 당황할 뿐이었다. 남자가 광대에게 엄히 일렀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물러나거라."


 광대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죽을 수가 없는 몸인 걸요."


 남자가 칼을 뽑아 광대를 베었으나, 광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칼날이 닿은 감촉도 없었고, 광대는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보십시오!"


 자랑스럽게 말하는 광대를 두고, 남자는 고개를 돌려 낙타를 몰았다. 그 곁을 광대가 졸졸 따랐고, 수많은 부하들이 그 뒤를 걸었다.


 "어디로 가시는 것인지요?"


 광대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계속, 계속. 결국 남자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레블의 상자를 향해 간다."


 남자는 말을 그치고 입을 꾹 닫았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광대는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만족하십니까?"

 "뭐?"


 광대가 말을 이었다.


 "그 삶에 후회는 없으시냐 물었습니다."

 "이 길에 후회는 없다."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광대가 그 뒤를 따랐다. 병사들이 열을 이루어 행진했다. 


 레볼의 상자를 향해서는 몇 달을 걸어야 했다. 그는 광대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행해야 할 전술에 대해서 장군들과 토론하며 모닥불 아래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광대는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



 남자는 길을 걷는 동안에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그의 횡포에 분노한 정적이 그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그의 침소 앞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경계를 서야 했고. 그는 언제나 칼을 품에 안고 잠에 들었다.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광대는 낮이 되면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다가, 달이 뜬 밤이면 어김없이 꿈에 나타났다. 꿈에서는 그가 강제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분명히 자신의 꿈일 것인데, 주도권은 광대에게 있었다. 남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많은 죄악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의 이야기를.


 바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노래였다.


 그러나 광대가 읊는 어떤 서사시에도 영웅을 구한 사람들은 나오지 않았다. 광대는 그것을 깨달았는지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광대의 이야기는 점점 깊이를 더해갔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막도 점점 푸른 빛을 띄기 시작했다. 레볼의 상자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많이 약해지셨군요."

 "시끄럽다."


 광대가 초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군대도 필요없이 홀로 칼을 들고 달려 나갔을 것이다. 적을 터트리고 무기를 빼앗으며, 다시금 그 무기로 적을 죽였을 것이다.


 반쪽짜리 영웅인 그는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약해졌고, 그가 기댈 곳은 자신이 쥔 검밖에 없었다.


 남자는 계속 검을 닦았다.


 영웅의 이야기는 남자를 모든 면에서 압도했다. 남자는 젊어서도 그 업적을 이겨내기 위해 날뛰었다. 자신은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지만, 젊어서도 늙어서도, 영웅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아버지를 넘어설 때였다.



 "폐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결전을 앞둔 날 밤. 장군이 그의 처소로 찾아들어왔다. 그는 장군을 맞이했다.


 "이 전쟁은 질 것입니다."


 그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눈으로 장군을 보았다.


 "저희의 병사들은 지쳐있으나, 저들은 피로를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의 숫자 또한 저희의 예상보다 많다는 첩보입니다. 또한 제대로 된 공성병기 없이 저들의 성에 대적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성에서 끌어내리면 된다."

 "그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당신이 영웅의 아들이라 해도…."

 "아니, 그들이 스스로 열게 하리라."


 장군은 그 말에 물러나야 했다. 더 이상 말을 꺼냈다간 남자가 처리했던 수많은 정적 목록에 장군의 이름이 올라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장군을 무르고 잠에 들었다.



 광대가 다시 꿈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피로로 젖어 어두워 보였다.


 "오늘 밤은, 영웅의 최후에 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만 두거라."


 남자는 발버둥쳤지만, 머리에 울리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영웅은 최후의 전쟁에 몰려오는 그림자들에게서 사람들을 지켜내었다. 그리고 영웅은, 그 지켜낸 인간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그것은 노래가 되어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갔다.


 그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의 죽음을 되새겨야 했다.


 "이야기는 빛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냐."

 "예. 빛 맞습니다."


 광대는 혀를 내밀며 씨익 웃었다.


 "빛이죠. 아주 밝은 빛."



 남자는 눈부신 빛에 잠에서 깨어났다. 장군은 현명했다. 부하들을 승산이 없는 싸움에 내몰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잠을 자던 천막이 불에 타고 있었다.


 "쏴라!"


 화살이 날아와 천막을 꿰뚫고 그의 몸에 사정없이 박혔다. 그는 칼을 뽑아들었다.


 광대가 불꽃 속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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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 이상으로 넣고 싶은게 너무 많았습니다...


멍청한게 욕심만 그득그득한 글입니다...


주제에도 좀 많이 떨어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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