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19금 지정 논란 - '재미지상주의'에 걸린 브레이크
Write- 02:12 May 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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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수려한꽃
'19세 이상 상품'으로 지정된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 인터넷 서점 yes24에서는 이미 비회원에 대한 해당 상품의 접근이 제한되었다. 19세 이상 상품으로 분류가 될 경우 도서 표지에 경고 문구가 표기되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별도로 분리가 되어 디스플레이가 제한을 받는 '불이익'을 겪게 된다.
한국 라이트노벨 레이블인 시드노벨의 도서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이하 '세제녀')]이 지난 4월 26일에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분류가 되었음이 뒤늦게 알려져서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1)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사 결과(링크)
4월 13일에 제기된 심의 신청에 따라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원회')는 26일, [세계 제일의 여동생님(이하 '세제녀')] 1권과 2권에 선정성/포악성(/유해약물조장)의 이유로 국내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지정하였습니다.2) 주 구매층이 10대 청소년인 라이트노벨로서 큰 타격일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은 웹툰 유해매체 지정 사태에서 촉발되었던 '서브컬쳐 창작 컨텐츠의 수위' 문제가 재점화될 조짐입니다. 올해 들어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던 시드노벨로서는 대내외적으로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 논란의 중심인 [세제녀]의 저자인 김월희는 '안녕하세요. 김월희입니다'란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제 작품을 좋아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혹은 그렇지 않은 분들. 조금만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세요."라는 요지의 글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비교적 침착하였던 김월희의 글과는 달리 출판 관계자들의 발언이 또다른 논란으로 불거졌습니다.
트위터 글은 밑에서 위로 읽으시면 됩니다.
이번 [세제녀] 19금 지정 논란은 과거 [GOTH](오츠이치, 2008)의 19금 지정 논란과도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08년 당시에도 발매 후 뒤늦게 청소년 유해 간행물로 지정된 [GOTH]는 일본 미스테리 소설 팬덤과 장르소설 독자들로부터 "시대에 뒤쳐진 검열의 유행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포악성'을 이유로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붉은 딱지가 붙은 [GOTH]는, 후에 검열에 대한 반감으로 구매한 팬덤 독자들뿐만 아니라, 소설 자체의 높은 완성도와 19금 이슈로 소문을 타고 퍼져서 다른 독자들 또한 이 책을 읽게 되는 아이러니한 진풍경이 일어나기도 했었죠. 그 이후에도 일본 미스테리 소설에 대한 자·타의적 19금 등급 지정은 간간히 이어졌으나('살육에 이르는 병'은 등등) 지금도 서점의 한 코너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일본 미스테리 소설 시장을 보면, 당시의 사건으로 특별하게 몰락에 가까운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소위 '1997 체제'로 급속하게 몰락한 한국 만화 시장의 전례를 살펴볼 때에, 이번 [세제녀]의 19금 지정은 성장 궤도에 오른 한국 창작 라이트노벨에 자기 검열이 시작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지정된 직후 한국의 만화 시장은 각종 언론으로부터 연일 왜곡된 보도와 뭇매를 맞은 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장이 축소되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포탈 웹툰을 통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음에도 오늘날까지 검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입니다. 그렇지만 적잖은 기간 동안, 만화를 비롯한 한국 서브컬쳐 시장은 사회적 통념에 반하지 않는 적정 수위와 표현의 범위에 대하여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부 웹툰의 질적 논란을 제외하면 예전보다 성숙한 창작/소비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국내 라이트노벨 시장은 이제야 1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창작 라이트노벨은 그보다도 짧은 5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세제녀] 19금 논란이 비단 시드노벨만의 문제는 아닌 한국 라이트노벨 팬덤 모두의 공통 화제입니다. 그만큼 이번 논란에 대한 시드노벨의 향후 행보에 기대와 우려가 섞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관련 트윗을 보면 팬덤이나 관련 업계인 모두 '검열'과 '등급 분류'의 경계선을 애매모호하게 바라보는 듯 하여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걱정이 되네요.
검열은 소위 '지우개질', '가위질' 등등으로 악명이 높았던 전례 덕분인지 지금도 무척이나 과민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어휘입니다. 그리고 지금 [세제녀]의 경우는 검열이 아닌 '등급 분류'의 문제입니다.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딱지'는 역으로 말해서 "19세 이상의 성인이 사용한다면 우리는 이 컨텐츠에 대하여 검열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저기 '지우개질'이 되고 몇몇 컷이 뜬금없이 '가위질'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청소년을 주 타겟으로 삼은 라이트노벨도 이젠 창작 단계에서 청소년이 접하는 적정 수위에 맞는 '보편적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청소년이 주력 구매층인 라이트노벨이, '재미'를 위하여 자극적 소재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지 않았는가"라는 이의에 대해, 시드노벨과 한국 창작 라이트노벨 시장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당분간은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1) 사건의 진원지로 알려진 '디시인사이드 판타지 갤러리(링크)'의 게시물은 대부분 비회원이 작성한 글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전문이 담긴 글이었으므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2) 한국간행윤리물위원회는 특정 개인이 특정 작품에 대한 악의적인 목적으로 신고를 한다고 해서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지정이 될 만큼 간단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19금 지정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comment (20)


문제가 된 '세계 제일의 여동생'이 19금 판정을 받은 기준은 만인이 인정할만한 것인가요? 그 점에 대한 합의 없이 이런 글을 쓰는 건 한 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내용 굳이 안 읽어봐도, 리뷰만 봐도 걸릴 만했던 작품이더군요. 아이들의 시간마냥 출판사 기준 나이제한을 하던가(물론 이게 잘 지켜지는 건 극소수지만서도), 문제시되는 내용 수정하지 않을거면 19금 당당히 붙이고 나오던가. 아무 조치도 없었다는 점에서 유감. 판갤에 대한 대응책도 제대로 알고 한 것이 아니라 유감. 이래저래 유감입니다.

특히 윤리위원회가 대중이 포용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강력한 도덕률을 요구한다고 의심되는 현실 상, 대부분의 라이트노벨은 윤리위원회로부터 19금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제녀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작가의 창작의욕은 위축되고, 결국 남는 것은 시금털털하고 무미건조한 컨텐츠들이 되겠죠. 그것은 곧 컨텐츠 산업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지난 한국만화가 그랬던 것처럼요.
저는 이번 사태에서 긍정적인 면을 하나도 찾을 수 없기에 매우 우울해져 있습니다. 독자 한두 사람에 의해 흔들릴 수도 있는 취약한 시장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됐으니까요. 그저 이번 사태가 크게 번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현재 한국 라이트노벨 시장은 애지중지 가꾼 꽃밭과도 같습니다. 그 꽃밭에 핀 잡초를 뽑겠다고 경찰을 부르는 것보다는 밭주인을 부르는 것이 이성적인 행동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밭주인이 "우리 밭은 원래 잡초도 키우는데요?" 하면서 "잡초 하나 없는 깨끗한 밭에서 기른 배추!" 라고 하니 문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