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0.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0.

 

"리수야. 우리 약속해. 고등학교 가면 우리 같이 밴드 하기로. 내가 베이스, 네가 기타. 알았지?"

단비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는 만신창이였다. 거의 모든 청소년이 그렇듯, 나는 내 꿈을 부모님께 이해시키지 못했고 격분한 아버지한테 흠씬 얻어맞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내 안은 너무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은 나더러 외고에 가라고 했다. 하지만 공부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결국 외고 입학 후에 내가 다시 기타를 잡을 수 있을지 다시 논의하자는,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협상안에 가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덕분에 단비만 덩달아 외고 입시에 달려들게 되었다. 나는 미안함을 느끼며 말했다.

"너 정말 할 수 있겠어? 부족한 내신을 커버하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할 텐데."

사실 난 공부를 싫어하긴 해도 성적은 전교 등수 2진수로 세 자리 이하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부모님이고 선생님이고 날 그렇게 들볶는 것이다. 너 공부 잘 하잖아. 그 머리로 대학 가야지 어디서 딴따라질 생각하고 있어?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반면 단비는 뭘 하든지 집에서 간섭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점수도 선생님들의 관심권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단비와는 2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다. 언제나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그러다가 친한 친구나 관심을 구걸하는 남학생이 말 걸면 결코 자리는 뜨지 않고 돌려보내는 그런 아이였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하고 왠지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아이. 나도 먼저 가서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라서 단비와 친해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단비였다.

내가 학교에 기타를 들고 나타나자 하루 종일 나를 힐끗힐끗 곁눈질하던 단비는 방과 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베이스를 치고 있다고, 락을 좋아하냐고, 단비는 조심조심 물었다. 단비는 스매싱 펌킨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엉겁결에 나도 그렇다고 말했고 몇 집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5집이라고 말했다. 6집까지 냈던 밴드였기에 망정이지 그 이하였다면 꼼짝없이 들통났을 것이었다.

나는 그날로 집에 가서 모든 스매싱 펌킨스를 들었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단비는 또 오아시스를 좋아하고 플라시보를 좋아했다. 나는 단비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무진장 많은 음악을 들어야 했다. 우리는 엠프도 없이 둘만의 합주를 했다. 우리는 밴드를 만들기로 했다. 실력을 더 쌓고 최고의 멤버를 모아서 최고의 밴드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문제였다.

"할 수 있어! 꼭 외고 합격해서 리수랑 같이 밴드 할 거야."

우리는 그렇게 굳게 약속했다. 나는 조급함을 느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타리스트는 대개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기 시작해 20살 전후에 이미 세계적인 경지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지미 헨드릭스도 그렇고 렌디 로즈도 그렇고. 이미 갈 길을 정한 이상 지체하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낭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잠시 음악은 접기로 하고 각자 입시에 매달렸다. 오직 기타를 치겠다는 집념 하나로 나는 그 지긋지긋한 수험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단비는 외고에 합격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난 떨어지고 말았다.

합격자 발표 페이지를 보며 나는 절규했다. 아버지는 내 옆에 서 있었고 아버지의 손에서는 내 소중한 기타가 불타고 있었다.



Writer

존모리슨

존모리슨

Moonlight kiss
Otherwhere you are
By november
I remember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2'이하의 숫자)
of 2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