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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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타는 처참한 꼴이 되었다. 나는 기타 바디가 탄화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뺏으려 했다. 아버지는 창밖으로 기타를 던져 버렸다. 나는 황급히 달려 나가 불을 껐지만 기타는 도저히 기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 잿덩이로 연주를 하든 장작으로 마저 쓰든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기타를 거두었다.

나는 절망 속에서 봄방학을 보냈다. 하루하루를 그저 씹어 넘기며 방구석에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오그라든 기타를 튕겼다. 나는 무기력했다. 이대로 고등학교에 가서 뭘 할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개학이 가까워져 단비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록 학교가 갈라졌지만, 비록 기타가 불타버렸지만 같이 합주를 할 수 있냐고, 기타는 새로 사면 그만이라고, 단 둘만이라도 아니면 각자가 친구를 불러들여 조금씩이라도 밴드를 할 수 없겠냐고. 하지만 단비는 말했다.

-미안한데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응? 무슨 말이야?”

-여기 분위기가 심상찮거든. 전부 시험 쳐서 들어온 애들이다 보니 다들 열심인 것 같아. 내신은 일학년 때부터 신경 써야 하잖아. 일단은 분위기를 봐야 될 것 같아.

“거긴 그럼 특별활동 같은 건 전혀 안 하는 거야?”

-동아리가 많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 무엇보다 엄마가 나 베이스 치는 걸 안 좋아하셔서…….

결국 내 모든 꿈과 희망은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큭큭큭…… 난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마는 건가.”

나는 완전히 무용한 인간이 되었다. 내가 듣는 음악은 점점 다크해지고 사악해지고 거칠어져 갔다. 나는 기타를 칠 의지도 잃어버린 채 어둠 속으로 침식해갈 뿐이었다.

엠프도 없이 순전히 제 울림으로 소리를 내고 있는 기타를 아무런 생각 없이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반쯤 열린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기타를 비추었다. 나는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울리고 있는 기타 현 사이로 먼지가 떠도는 것이었다. 먼지는 무슨 생각인지 기타에 달라붙으려 했다. 나는 재차 줄을 튕겨 먼지를 털어내려 했다. 하지만 먼지는 날아가지 않았다. 줄의 미약한 떨림으로는 먼지를 날려 보내지 못하고 그저 근처의 공기를 휘저을 뿐이었다.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스테이지 위의 쓰나미 같은 소리도 결국은 이 작은 울림, 먼지 하나 날려버리지 못하는 작은 울림으로부터 시작했구나. 고작 TV 소리에도 묻혀버리는 이 작은 떨림으로부터 모든 역사가 시작됐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주는 락으로 가득 차 있구나. 그것이 바로 스승님이 내게 가르치려 했던 것이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락의 기운이 불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경위로 이런 용기가 뿜어져 나오는지 나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일어섰다.

나는 다시 태어났다. 기타도 다시 태어났다. 용암 속에서 살아나와 온몸을 기계화한 아나킨 스카이워커처럼, 내 기타는 무지막지한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수리점 직원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내미는 바람에 나는 직접 기타를 수리해야 했다. 수리라고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심하게 탄 부분을 긁어내고 철물점에서 알루미늄 판을 가공해 와서 덕지덕지 바르는 정도였다. 배선이라든가 픽업, 브릿지는 교체해야 했다. 부품을 사서 인터넷을 찾아 끙끙거리며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새로운 기타의 모습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검게 그을은 바디는 마치 악마의 형상과도 같았고 번득이는 알루미늄 보철은 사이보그를 연상케 했다. 소리 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 번도 엠프에 꽂아본 적 없는 기타인데 원래 소리가 뭔지 알게 뭔가.

나는 기타에 이름을 붙였다. 이쯤 되면 뻔한 거 아니겠는가. 베이더 경. 나는 버튼을 누르면 하아- 하고 숨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기능을 넣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쨌든 기타는 완성할 수 있었다. 전축에다 잭을 꽂아보니 소리가 나기는 났다. 다만 그을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기타를 만질 때마다 손에 검둥이 묻어 나왔다. 코팅을 할까 고민해 보았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둠에 물든 기타로서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완성하고 나서 교복을 입고 기타를 매고 전신거울 앞에 서 보았다.

학교에 가자. 일단 거기서 나만의 밴드부에 들자. 단비가 없으면 뭐 어떤가. 일단 락을 하는 것이다. 훌륭한 록커가 돼서 그때 가서 단비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록커가 되자. 그때 나는 결정했다.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대로 길거리에 나간다면 아무나 부여잡고 두들겨 팰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것은 락의 힘이었다. 나는 두려울 게 없었다. 거울 속에 있는 것은 폭발할 것 같은 분노와 의지의 형상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입학하기 전, 나는 학교에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밴드부? 네.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화 받은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사립 풍광 고등학교. 설립 연혁은 꽤 되었지만 특수목적고에서 일반 고교로 전환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실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학교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 활동이나 동아리는 그리 활발해 보이지 않았다. 새학기가 되면 신입부원을 유치하기 위해 각 동아리에서 각축을 벌이는, 그런 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모집 공고 몇 개는 있을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탐색을 나섰다. 나는 기타를 둘러매고 밴드부실이 있을법한 곳을 찾아 나섰다. 음악실에 먼저 들러보고 빈 교실이 있을법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이 학교는 어찌된 곳인지 학급이나 과학실 등 행정적 교실 이외에는 한 뼘 여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상급생 한 명을 붙잡고 동아리실 혹은 밴드부실이 있는지 물었다.

"밴드부? 기타부 말이야?"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듯 대중의 인식은 피상적인 것이다. 밴드가 뭔지 기타가 뭔지 상위 하위 구분도 없이 무작정 쓰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따지고 들 수는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부실은 없고, 2학년 5반에 송진모라고 기타부가 있는데……."

나는 고맙다는 말로 그의 말을 끊고는 바로 2학년 5반으로 향했다.

거기서 나는 그 상급생이 개념을 혼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건……. 락이 아니잖아!"

나는 기타부의 상급생이 가진 기타를 보고는 외쳤다. 그가 보여준 기타는 바닥에 내려치면 그대로 바스라질 것 같은 클래식 기타였다.

"빈약빈약빈약빈약! 어째서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거지? 이런 걸로는 락을 할 수가 없어!"

"당연하지……. 난 클래식 기타부니까."

"이런 건 듣지 못했어. 밴드부는 없는 거야? 그래, 이런 걸로 소울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거야?"

나는 가방에서 베이더 경을 꺼내 보였다. 지퍼를 열자마자 새어 나오는 강력한 사기에 허약해 보이는 상급생은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Painkiller의 메인 리프를 짧게 연주해 보였다. 그는 내 기타가 내뿜는 사악한 어둠의 기운과 나의 영혼이 울부짖음을 대신 울려주는 기타 줄의 생 울림에 완전히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기타를 챙겨 교실을 빠져 나왔다.

분명 있을 것이다. 세상에 밴드부가 없는 고등학교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건 마치 노조 설립을 불허하는 기업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세상이 그렇게까지 부조리하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번에는 교무실로 갔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담임의 얼굴을 찾았다. 아직 얼굴도 이름도 기억 못 하는 사람을 어떻게 찾는다, 하고 고민하던 차에 담임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교무실을 잘못 찾았던 것이었다. 운 좋게도 선생님은 제1교무실을 그냥 지나치던 중이었다고 했다.

"엉뚱하게 기타가방을 들고 등교한 녀석이니까 바로 기억했지."

우리는 예체능 교무실로 갔다. 그곳이 담임의 자리였다. 담임은 체육 담담이라고 했다. 꼭 야구 감독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선생님. 우리 학교에 밴드부가 있나요?"

"빼앤드부? 아, 그래서 기타 가방 들고 다니는 거였냐?"

선생님은 웃으며 의자를 내 쪽으로 돌렸다. 밴드를 굳이 뺀드라고 발음하는 선생님은 말했다.

"뺀드부는 지금 없지. 지금 있는 동아리가……. 쁘라모델부랑 무슨 심령 연구회랑 그냥 키타부가 있는데 키타부 같은 건 어때. 뺀드 이런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럴 리가요. 제가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분명 밴드부가 있다는데요."

"정보라니 출처가 어디야?"

"전화해서 물어봤죠."

선생님은 하핫 웃었다.

"뺀드부는 재작년인가를 끝으로 없어졌어. 신입부원이 안 들어와서."

"그, 그럴 리가……."

이럴 수가. 나는 허위정보를 그대로 믿고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말인가?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절망적인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제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귀가하던 중이었다.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하나가 교문 앞에 서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신경 쓸 일은 아니었지만 외모가 자연스레 시선을 잡아당겼다. 녀석은 스킨헤드에 스크래치를 넣고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에 난 문양이 뭐였는지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던 것이 놈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뭘 꼬라봐?"

놈은 나에게 말했다. 이대로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은 대인배의 처사겠지만 그에 앞서 록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일부러 시비 거는 놈은 피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락의 위대한 가르침 중 하나가 아닐까.

"니 대가리."

놈은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막 놈을 지나치고 있던 나는 멈춰 섰다.

놈은 인상을 쓰는 와중에 피식 소리를 내며 웃으며 말했다. 그 꼴이 꼭 구겨진 시험지 같았다.

"너 밴드부냐?"

무슨 상관이냐, 하고 말했다.

"밴드부가 아직도 있었냐? 그 풍광고 병신 개그 밴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까지 싸잡아서 비하한 말이기에 나는 놈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난 신입생이라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무슨 말이지?"

놈은 낄낄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1학년이냐? 넌 선배들의 전설적인 생쇼도 못 들어봤냐? 낄낄낄. 가서 선배한테 물어봐라. 물어보는 순간 바로 죽빵 날아올걸? 쪽팔려서."

모르긴 몰라도 우리 학교 밴드가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적이 있던 모양이었다. 여기서 내가 그 밴드 소속이 아니고 그 밴드는 지금 해체됐다고 말하면 대화는 끝나겠지만 그렇게 곱게 놈을 보내줄 수는 없지. 왠지 이 기분 나쁜 스킨헤드에게 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는 놈인진 몰라도 밴드를 우습게 보지 마라."

나는 말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낄낄거리고 있었다.

"뭐? 이거 웃겨서 말이 안 나오네 시발, 고작 풍광고 밴드주제에 뭐라는 거야? 나 서광고 밴드거든? 너랑 레벨이 다르단 말야. 낄낄낄."

"네가 밴드? 네깢 놈이 밴드면 파리가 새겠다."

"우와, 어이없어서 시발. 풍광고 주제에 우리 대 서광고한테 기어오르는 거 봐라. 그리고 1학년이라며? 나이도 어린데 왜 너너야, 씹새끼야."

"네가 몇 살 쳐먹든 뭔 상관이야? 그리고 내 선배가 뭔 짓을 했건 나랑은 아무 상관없거든? 어차피 네가 찐따 같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뭐, 이 시발새끼야 한판 뜰까?"

놈은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달라붙었다. 훗, 하고 나는 소리를 냈다.

"먼저 시비를 건 주제에 먼저 달아오르면 쓰나."

"그래서, 한판 뜨고 싶냐고. 쳐 맞고 싶어 환장을 했지?"

나는 손을 펼치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이런 녀석을 잘 알았다. 허세만 가득 차서 자신의 불량스런 면모를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 난 녀석. 그런 유치하고 멍청한 마인드는 중학교에 남겨두고 오란 말이다. 아마 이런 녀석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는 허약한 녀석이겠지.

"그보다 밴드라며. 야만스럽게 주먹으로 해결하지 말고 이걸로 뜨는 게 어때?"

나는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고 베이더 경을 꺼냈다. 놈은 베이더 경의 위엄스런 자태를 보고는 숨을 삼켰다. 나는 넥의 밑동을 왼손으로 잡고 바디를 오른손으로 받쳐 들었다. 잠시 후 놈은 말했다.

"기타 배틀을 하자고?"

나는 기타를 얼굴 가까이 올려 알루미늄의 빛나는 광택들 들여다보았다.

"내 소중한 기타는 레스 폴1)이지. 정확한 모델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깁슨의 숙련된 장인들이 혼을 담아 만들었겠지. 이거 아나? 레스 폴은 기타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축에 드는 기타라고. 거기다 나의 이 기타는 보다시피 알루미늄과 화염 방사기로 튜닝을 해서 그 경도와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지."

"뭐 어쩌라는 거야?"

나는 일순 강렬한 시선을 던졌다. 아마 제3자가 봤다면 핑- 하는 소리가 들리고 시선을 따라 한 줄기 빛 같은 것이 보였을 것이다.

나는 베이더 경의 알루미늄 판으로 정확히 겨냥하여 스킨헤드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크어억!"

놈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공중 평행 회전을 하며 나가떨어졌다.

"큭, 치사한 놈!"

"훗, 미처 무기를 준비 못한 네 잘못이다. 바닥을 끌어안은 모습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군."

"기타가 무슨 무기야! 게다가 난 보컬이라고!"

"그럼 마이크를 갖고 오든가 아님 초음파 공격이라도 하든가 했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으으……. 지 기타를 그렇게 막 쓰는 새끼가 어딨어?"

"훗, 기타리스트에게 기타는 전우와도 같은 것."

놈은 바닥을 기며 일어서지를 못했다. 패배자에게 필요 이상의 시선을 주는 것은 동정하느니만 못한 것. 나는 기타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내 갈 길을 가려 했다.

"거, 거기 서!"

섣불리 등을 돌린 것이 실수였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놈은 한 번 쓰러진 뒤 거대화 돼 다시 덤벼드는 전대물의 괴수와도 같은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다시 기타를 꺼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기타가방 채로 놈을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이를 드러내고 얼굴을 들이대는 놈의 모습에 나는 잠시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문득 스승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언제나 기타 줄은 손가락 아래 있도록 하라.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서 왜 그런 게 떠오른 거지?

내가 남자의 치욕을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반사적으로 눈을 깜빡이기 직전이었다. 놈의 등 뒤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놈이 쓰러지면서 나도 덩달아 자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놈을 덮친 것이 무엇인지 잠시 파악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여고생이었다. 허리까지는 내려올 듯한 풍성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스킨헤드의 등을 밟고 팔을 꺾어 짓누르고 있는 것은 분명 풍광 여고의 학생이었다. 그는 나를 슬쩍 올려보고는 비웃는 건지 즐거운 건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스킨헤드를 무릎으로 내리 찍고는, 그 여자애는 말했다.

"안녕?"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응. 안녕."

"기세가 대단한데?"

"응? 계속 보고 있었나?"

"재밌어 보여서 말야."

마침내 침을 질질 흘리며 그로울링을 하던 스킨헤드가 저항을 포기한 듯 축 늘어지자 여학생은 그를 풀어주었다.

"저리 가버려."

스킨헤드는 기다시피 도망가면서 말했다.

"이 일은 그냥 안 넘어갈 거다……. 풍광고…… 2년 전의 치욕을 다시 안겨 주겠다."

"엑스트라가 말이 많군"

나는 도망치는 아마도 여기 온 목적도 잊은 게 분명한 놈을 보며 말했다.

다시 여학생 쪽을 돌아보았다. 그 애는 옷을 털고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키가 꽤 큰 애였다. 나도 남자 중에서 키가 작은 편이 아닌데 그 애의 머리는 나란히 서면 내 눈 언저리까지 닿을 것 같았다. 날카로운 눈매에 배시시 웃는 모습이 묘한 인상이었다.

"기타도 멋있는데? 밴드 해?"

"응? 어어. 멤버는 아직 못 모았지만."

"그래? 언제나 멤버가 가장 큰 문제지.”

여학생은 슬쩍 머리를 쓸어 넘겼다.

“너 1학년이야? 난 유미. 보다시피 여고 다니고 나도 1학년."

나도 이름을 말했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같은 재단 아래 남고 여고가 따로 있다. 하지만 운동장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서 주변에서는 남녀 분반인 공학 정도로 생각한다. 나도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범상찮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녀석들 깊이 상대하지 않는 게 좋아. 질이 안 좋은 놈들이야.”

“그건 보면 알겠는데, 저 녀석’들’이라니?”

“밴드 말이야. 밴드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게 평이 안 좋거든.”

“그렇군.”

같은 1학년이면서 다른 학교 사정은 어떻게 아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미는 볼일 끝났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그럼, 리수 군이라고 했지? 안녕!”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고생치고는 너무 긴 듯한 머리가 등 위에서 폭포처럼 찰랑거리는 것을 보았다.

“가는 건가?”

왠지 말을 더 걸었다면 계속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나도 마저 발걸음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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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스 폴 : 깁슨 사의 테드 맥카티가 디자인한 기타의 형태. 처음에는 기타리스트 레스 폴Les Paul의 엔도서(아티스트의 이름을 딴 시그네쳐 모델)로 만들어졌지만 이후 보편적인 기타 타입으로 자리 잡아 다양한 브랜드에서 카피모델이 생산된다. 애니메이션 케이온(2009)의 유이 기타가 바로 이 모델이다.

Writer

존모리슨

존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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