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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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교문 앞에서 있었던 일이 반에 알려졌나보다. 교실에 들어가자 몇 명이 달려들어 어제의 일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러고 보니 아직 같은 반 녀석 중 이름 아는 놈이 없다. 나는 성의 없이 대꾸해주며 자리에 앉았다. 나랑 친해지고 싶은 녀석이 있나본데 내 친구가 되려면 그만한 배포와 포부가 있어야지.

하굣길에도 교문 앞이 어수선했다. 다른 학교 녀석들이 와서 진을 치고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한 가지 색 교복이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올바른 목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수위 아저씨는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 몇몇과 그들 몇몇이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바보 같은 학교 간 대립에 간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를 재빨리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어디서 본 얼굴인가 했더니 어제의 스킨헤드였다. 그러고 보니 그들 중 몇몇은 기타 가방을 매고 있었다. 놈들은 맞대고 있던 우리 학교 학생에게 허세 넘치게 손을 치켜드는 시늉을 하며 내보내고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얼굴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허세만 가득한 어설픈 낯짝들이었다. 되도 않는 인상을 쓴다든가 웃기지도 않는 조소를 보내온다든가 뭐, 되도 않는 위압을 보이려는 바보들뿐이었다.

“남의 학교에서 뭐 하는 거지?”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키가 큰 녀석이 대답했다. 아마 놈이 대장인 듯했다.

“네가 어제 그 놈이냐?”

나는 대답했다.

“그 놈이라는 건 찌질이 하나를 패퇴시켜 교내 환경 미화에 이바지한 정의로운 록커를 말하는 거냐?”

내가 생각해도 위엄이 넘치는 응수였다. 당연하게도 놈들은 나의 기세에 눌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떼거리로 몰려와서는 한 명에게 꼼짝도 못하는 꼴 하고는.

“호, 혹시나 착각할 까봐 말하는데 우리가 할 말을 잃은 건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다.”

뭐라는 거야?

어찌 되었건 나는 가방을 어깨에서 내렸다. 지퍼를 내리고 나의 사랑스런 무구를 꺼냈다.

“자. 잡소리 그만하고 빨리 시작하자. 오늘은 다행히 무기를 챙겨왔군. 이제 변명은 못 하겠지?”

놈들은 당황하여 한 발짝씩 물러선다.

“저, 정말이잖아!”

“미친 거 아냐?”

“저게 그 기타?”

피라미들이 한마디씩 내던졌지만 내 발걸음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나는 한 발짝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리더로 보이던 놈이 손을 내저었다.

“기다려! 우린 싸움을 하러 온 게 아니다!”

“그건 어디서 배운 최신식 변명이냐? 그런다고 패배가 없어지진 않아.”

“말 좀 들으라니까! 그렇게 기타를 거꾸로 쥐지 말라고! 기타가 망가져도 좋은 거야?”

“내 기타와 마음은 이미 망가진 지 오래.”

나는 녀석들이 일제히 덤벼드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었다. 나에게 일대일로 맞서서는 소용없다는 것쯤은 다들 알 테니까. 나는 그에 따른 대응도 생각했다. 바디의 앞면으로 놈들 사이를 크게 휘젓는 것이다. 그러면 틈이 생길 테고 그때그때 한 명씩 알루미늄 엣지 샷을 날려주면 된다.

“우린 정식 배틀을 신청하러 왔다!”

나는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정식 배틀이라니?”

놈은 종이 한 장을 던진다. 바람에 휘날린 종이는 제 자리를 찾듯 내 얼굴로 날아왔고 나는 재빨리 낚아챘다.

‘서울시 청소년 동아리 제전’

“뭐지, 이건?”

“동아리 대회다. 밴드 경연도 있는데 우린 거기 참가한다. 너네도 나와라. 거기서 실력으로 뜨는 거다.”

“서울 시장 주관 대회잖아. 이런 큰 무대에서 난투극을 벌이면 쫓겨나지 않을까?”

“싸우는 게 아니라 밴드 배틀이라고!”

놈은 소리쳤다.

“거기서 높은 순위에 오른 팀이 이기는 거다. 밴드라면 주먹질보다 이런 쪽으로 결판내는 게 좋지 않겠냐?”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서울시 청소년 동아리 한마당. 분야는 영화/영상, 댄스, 마술, 그룹사운드. 우승팀에게는 장학금 100만원. 그리고 시장과의 만찬에 초대. 호오, 이 부분은 흥미가 간다. 시장이라는 놈의 낯짝을 볼 수 있단 말이지.

나는 다시 놈을 올려보며 말했다.

“이런 걸 생각하다니, 혹시 천재냐?”

“당연한 거잖아!”

놈들은 합창을 한다.

리더로 보이는 놈은 호흡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일단 우리 팀원이 어제 무례하게 군 건 사과한다. 하지만 네 행동도 용납할 순 없는 일. 그러니까 여기서 깔끔하게 결판을 지었음 한다.”

“좋아. 난 너넨 안중에도 없지만 결투를 신청한다니 받아는 주지. 시장이란 놈 얼굴도 보고 싶고.”

“이 자식이!”

스킨헤드가 달려들 기세로 나서는 걸 리더가 제지한다.

“그런데 우승을 만만히 보면 안 될 거야. 여긴 실업계 인문계 구분 없는 대회거든.”

“무슨 상관이냐?”

“실업계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 봤냐? 수업 빽빽하고 야자까지 해야 되는 인문계랑 달리 언제나 널널한 게 걔네들이야. 연습시간이 차원이 다를걸? 더 큰 문제는 실업계 중에서도 실용음악과란 곳이 있단 거지. 걔넨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밥 먹고 연습밖에 안 해.”

놈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엄청난 사실 하나를 알려줄까? 우리 서광, 북양 연합 밴드는 말이지, 인문계 최초로 2년 연속으로 우승한 팀이야. 그런 실업계들을 꺾고.”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선전포고하러 오신 거로군.

“그리고 지금 우리 전력은 사상 최강이다. 넌 일학년이라서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여기 씬에서 ‘그’ 풍광고 밴드가 우리랑 붙는단 소리 들으면 전부 웃어 자빠질 거다.”

어제의 스킨헤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풍광고 밴드가 어쨌길래 이렇게 무시하는 걸까. 나중에 조사해보기로 했다. 대충 무대에서 제대로 망신당했다는 것 정도로 추측할 수는 있지만. 지금 하나하나 반론하지는 않기로 했다.

놈들은 그렇게 돌아갔다. 배틀이라, 어차피 고등학교 레벨에서 날뛰어 봤자겠지. 이 몸은 전설의 기타리스트에게서 수련을 받은 분이시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난 아직 밴드가 없지!”

배틀을 받아들이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했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만일 밴드를 못 만든다면, 만든다 해도 일정에 맞추지 못할 정도로 급조하게 된다면 아예 대회 참가가 불가능할 터였다. 대회 일정은 예선이 바로 다음 달, 본선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젠장, 너무 촉박하다. 예선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만일 참가하지 않는다면 놈들은 분명 예선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 이건 순전히 기타를 매고 있는 것만 보고 밴드를 한다고 멋대로 착각해버린 놈들 잘못이지만 멋대로 패배자라고 착각해버려도 곤란하다.

“곤란한 모양이네.”

“곤란해. 아주 곤란해…… 응?”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유미가 거기에 서 있었다.

“뭐야, 또 몰래 지켜보고 있었어?”

“몰래라니, 실례야. 교문 앞에서 전교생이 다 쳐다보도록 떠들던 게 누군데.”

“그런가? 암튼, 곤란하게 됐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밴드 할 생각으로 혼자 신나서 기타 둘러매고 다니는데 밴드부를 찾아보니 선배 밴드는 온데간데없고 괜히 남의 학교랑 시비 붙었다가 동아리 대회에서 붙어보기로 했는데 정작 멤버는 하나도 구하지 못한 상태다, 라는 내용이지? 잘 해봐. 그럼 안녕.”

“음. 그래. 안녕…… 이 아니라.”

맥락상 그게 아니잖아.

“응? 용무 있어?”

“아니, 기껏 말을 걸었으면 좀 더 고민을 들어준다든가 하는 게 어떨까 해서.”

“난 남의 고민엔 관여 안 하는 주의라서.”

유미는 반걸음 정도 내민 발을 되돌리며 말했다.

“뭔가 대접을 한다면야 얘기가 달라지지만.”

유미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 보니 딱히 누구랑 의논할 일은 아니구나. 돈까지 써가면서.”

나는 물러났다.

“그래? 같은 밴드 하는 처지인데 들어볼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유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피크였다. 그것도 오른 손 엄지와 검지로 정확한 자세로 잡는 것이었다.

“기타 쳐? 여고 동아리야?”

“그래.”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나는 주머니에 손을 꼼지락거리며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았다.

 

유미네 밴드도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했다. 현 멤버는 3학년인 베이시스트 하나와 2학년 드러머 하나와 기타를 치는 유미 이렇게 셋. 이 구성만으로도 밴드는 성립한다. 신입생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아 폐부 직전이었던 동아리에 유미가 들어가 드디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드러머가 느닷없이 어학연수인가를 가게 되어 빠지게 되었단다.

우리는 근처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유미는 여기서 저녁을 해결할 요량인지 테이블이 넘치도록 시켜놓고는 한시도 입을 비워두지 않은 채 말했다.

“이걸 다 먹을 수 있겠어?”

“이 정돈 간식이지.”

나는 떡 하나도 주워 먹을 수 없었다. 내가 쟁반의 일정 몫을 점유하면 유미는 더 주문해서 그것을 보충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미가 밴드를 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생각해온 제안을 꺼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우걱우걱, 뭐라고?”

“그러니까, 우린 둘 다 멤버가 궁한 상태지.”

“우걱우걱, 그렇지.”

“그럼 답은 자명한 것 아니겠어? 우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태. 그러니까 손을 잡는 거야. 러브엔 피스, 오케이?”

“우걱우걱, 하지만 말야.”

유미는 말했다.

“너는 남고잖아.”

“뭐 어때. 어차피 같은 재단이니까 같은 학교나 다름없지.”

“그리고 서로가 필요한 건 아니지. 우리한테 필요한 건 드러머지 기타가 아니거든.”

“윽…….”

논리의 허점을 간파 당한 나는 잠시 우물거렸다. 나는 목이 메이는지 급하게 물을 찾는 유미에게 컵을 들이밀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나에게 접근한 것은 인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내 어려움을 듣고서 나와 얘길 해보기로 한 것은 그걸 떠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뭘 좀 얻어먹기 위해서였는데.”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기냐.

나는 유미를 회유할 방도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밴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남고에는 더는 인재가 없다고 보는 것이 좋았다. 유미는 그것을 꿰뚫어보는 듯 희미하게 웃었다.

“자, 자. 생각해 봐. 기타 하나로 얼마나 많은 곡을 할 수 있겠어. 어지간한 곡은 다 트윈 기타 이상이란 말야. 게다가 보컬도 여자로 한정되는데. 내가 보컬 맡는다면 남자 곡도 할 수 있을 거고 말야.”

“하지만 기타가 아무리 많아 봤자 드러머가 없으면 말짱 황이지. 밴드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외부 인사를 받아들였다가 활동에 제제라도 받으면? 또 베이시스트는 3학년이라서 그냥 접는 쪽으로 더 생각하고 있어.”

나로서는 도저히 내가 거기 끼어들 당위를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 것은 내 쪽이었고 그쪽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으니까 애초에 협상이 되지 않는다. 유미는 마침내 세 접시나 되는 음식을 혼자 해치워냈다. 유미는 물로 입을 가시고는 다소곳이 입을 닦았다. 언제 먹었냐는 듯한 태연한 표정이다.

“일단 우리 베이스한테 물어는 볼게. 하지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야.”

“알았어.”

그 정도 응답이라도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일 이야기 해보고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기타 한번 봐봐도 될까?”

유미는 내 기타를 가리켰다. 나는 가방을 내주었다. 유미는 베이더 경을 꺼내 무릎 위에 올렸다.

“정말 심하게 탔네. 어쩌다 이런 거야?”

“뭐, 어쩌다 보니까.”

“레스폴 같은데, 로고가 지워졌네. 어디 거야?”

“몰라. 불타기 전에도 로고는 없었어.”

“중고?”

“누구한테 받은 거라.”

유미는 피크로 줄을 튕겼다. G코드 스트로크. 그 뒤로 손가락이 부드럽게 지판 위를 오간다.

“무슨 곡이야?”

“그냥 즉흥. 울림은 괜찮은데 소리가 어떨 진 모르겠네. 이거 소리는 나?”

“날걸. 난 엠프는 없어.”

“엠프도 없이 연습했단 말이야? 기타는 누구한테 배웠어?”

“스승님.”

“개인 레슨?”

“그런 셈이지. 돈 내고 배운 건 아니지만.”

“그래? 한번 쳐봐.”

유미는 기타를 내게 건넸다. 나는 받아서 자신 있는 악곡을 쳐 보았다. 스승님에게 가장 먼저 전수받은 곡, Smoke on the water였다. 이 곡의 솔로 부분은 프레이즈 자체는 쉽지만 ‘제대로’ 치기 위해서는 정교한 컨트롤 능력이 필요하다고 스승님은 말했다. 그래서 초보와 그 이상을 가를 수 있는 잣대와도 같은 곡이라고, 그래서 어디서 기타 치는 척을 하려면 연주해 보이기 가장 좋은 곡이라고도 했다. 나는 리치 블랙모어의 비브라토 패턴 하나하나까지 분석하여 재현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그래서 이 곡은 내가 가장 자랑할 만한 곡이었다. 아마 기타 3년 차 중 이 곡을 가장 잘 치는 사람은 이 몸이 아닌가 한다.

스승님의 위대한 가르침은 적절했다. 유미는 내 연주를 듣고는 말했다.

“제법 하는데? 엠프 없이 연습한 사람은 대개 줄을 지저분하게 건드리는 걸 인식 못하고 그냥 치는데, 자네는 줄 컨트롤이 꽤나 깔끔해.”

“스승님한테 배운 거거든.”

“스승님은 뭐 하는 분인데? 아는 사람?”

“아니. 뭐랄까, 산 속에서 만난 도인? 수행을 위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데.”

“뭐?”

유미는 처음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이 비유나 유비가 아닌 말 그대로를 말하는 거야?”

“으응. 관우도 장비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산속에서 만난 사람인데.”

“기타 다시 줘봐!”

유미는 기타를 거칠게 뺏어갔다. 자리에 서서는 기타를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흔들고 냄새 맡고 문질러보더니 말했다.

“이 기타를 그 스승님이 준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이 모양이었어?”

“아니. 상태는 좀 안 좋았는데 불타진 않았어. 그 판떼기도 내가 붙였고.”

“그렇다면, 이건 전설 속의…… 아니, 그보다 자네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몰라. 이름도 모르고.”

유미는 좀 전과 태도가 바뀌어 조심스레 나에게 기타를 건네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표정은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듯한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유미는 진정하려는 듯 물을 연신 들이켰으며 나는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기타리스트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

하고, 턱이 저절로 떨어져나갈 듯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영국이었어. 영국의 한 무명 기타리스트가 있었대. 그 기타리스트는 천재였는데 불행하게도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거야. 50살이 넘어서야 기타라는 악기를 알아버린 거지. 그리고 기타를 잡은 지 불과 3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갖게 됐어.”

단일한 기타리스트가 명성을 얻고 슈퍼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리는 시기는 지났다. 지금의 음악 추세가 초 고난도의 테크니컬한 연주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전세계 고수의 실력에 나 같은 입문자가 보기에 구분이 될 정도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지금은 기타 실력 자체보다 밴드 자체의 특성이 더 주목 받는 시대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중년의 신인 기타리스트가 설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한국보다야 사정은 훨씬 낫겠지만 그 기타리스트는 뒤늦게 찾은 자신의 재능을 쓸 곳이 없다는 데에 비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영국인은 이내 연주를 포기하고 대신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어. 그 사람은 천재였으니까 어떤 소리가 이상적인 소리인지 알 수 있었어. 그래서 그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기를 만들어낼 수 있던 거야. 무려 10년을 몰두해서 그 사람은 수십 년 전통의 기타 명가들을 비웃을만한 엄청난 기타를 혼자 힘으로 만들어 냈어.”

그는 자신이 만든 기타를 지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천재의 한 맺힌 기타는 세상에 나왔고 곧 세상의 기타리스트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 그 기타의 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를 탐냈고 결국 기타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서 누구도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위치에 오르고 말았다. 거기에는 기타를 만든 장인이자 한 기타리스의 사연까지 더해졌겠지. 기타는 개인 밴드를 두고 있는 한 갑부에게 마지막으로 팔렸고 그 뒤로는 세상에 나온 적이 없다고 했다.

그쯤 되니 이야기가 갈 방향이 보였다. 그것을 어떤 경위로 스승님이 얻게 되었고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어마어마한 물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베이더 경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에 그러한 내력이 들어 있었다니. 내심 감격이 밀려왔다. 갑자기 내 손이 부끄러워졌다. 이런 엄청난 기타를 만지는 손이 고작 이정도 실력의 손이라니. 내 손이 경이감에 겨워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착각하지 마. 이게 그 기타라는 게 아니니까.”

응?

“그 소문을 들은 한국의 한 기타리스트가 있었어. 그 사람은 기타 실력은 그럭저럭 됐지만 운도 없고 돈도 없었지. 그래서 자기도 그런 방법으로 이름을 얻어 보려 한 거야. 자기만의 기타를 만들어서 전설이 되겠다는 거였지.”

설마 그 사람이 스승님이라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 그 사람이 만든 기타는 돈만 들였지 질은 그저 그런 기타였어. 일도 안 하고 기타 만들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결국 가진 장비도 팔고 연습실도 팔고 빈털터리가 됐지.”

“제발 그 사람과 내 스승님을 연결 짓진 말아줘. 그렇게 무참히 내 환상을 깨진 말아줘.”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 피의 레스폴 그네히메.”

유미는 냉혹했다.

“……그네히메는 또 뭐야?”

“그 사람 인터넷 활동 아이디. 우리나라보다 일본 쪽에서 더 유명한데, swinghime라는 아이디라서 한국에선 그네히메라고 불러.”

“설마 그 일본 쪽 인터넷이라는 곳이 니코동이라든가 하는 덴 아니겠지?”

“맞아. 그런 데 잘 아네.”

제발 스승님에 대한 내 존경심을 돌려줘!

“그런데 그네히메의 전설은 지금부터야.”

전설? 분명 뭔가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개표 결과를 기다리는 지방 자치단체장 후보가 된 기분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네히메는 그래도 실력은 있어서 동영상 조회수는 높았어. 실력보단 컨셉이 더 눈길을 끌었지만.“

“무슨 컨셉이었는데?”

“고스로리.”

“응? 잠깐, 잠깐.”

나는 내가 들은 단어가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가 아니었는지 사력을 다하여 생각해 보았다.

“잘못 말하지 않았어. 고스로리야. 그밖에도 메이드복, 여자교복, 가터벨트와 망사스타킹, 수영복, 간호사 등등 많았지.”

나는 잠시 스승님의 외모를 머릿속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내 기억 속 얼굴에 검은 색 레이스라든가 스티커 문신, 스커트 따위가 조합된다면 순간 이성을 잃어 베이더 경을 파괴해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이, 잠깐, 기타는 내려놓지 그래?”

“응? 아, 아…….”

나는 나도 모르게 치켜들고 있던 베이더 경을 조심스레 내렸다.

“어쨌든 얘기 계속 할게. 어느 날 그네히메는 마지막 영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동영상을 올렸어. 돌연 은퇴 선언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때까지와는 달리 그 곡은 자작곡이었어. 정말로 이 사람 은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처절한 연주곡이었어. 줄이 끊어지거나 손에서 피가 튀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연주였어. 연주가 끝나고 그네히메는 멘트를 남겼어. 한국말로. 로고가 지워진 그 레스폴을 보여주면서 말이야.”

‘나는 오래 전에 악마의 뿔을 뽑았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을 되돌릴 권한은 없었다. 용사여, 일어나라. 악을 봉인하는 것은 이제 그대들의 몫이다. 나는 이제 사라지지만 내 뜻만은 여기에 전승되기를 바란다.’

유미는 드문드문 그의 마지막 말을 읊어주었다. 정확한 문구는 뒤에 직접 찾아봄으로써 알 수 있었다. 나는 스승님이 내게 남긴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세상을 구원할 열쇠가 될 것이어니.’

그 말과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뜻일까. 내게 이 기타를 전해준 것에 어떤 뜻이 있는 것일까. 악마의 뿔이라니, 세상을 구원한다니, 이는 록커가 당연히 지향해야 하는 바이지만 나는 이를 예술적 테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승님은 무슨 의도로 이 이야기를 했을까.

“그런데 앞의 영국이 얘기랑 스승님 얘기랑은 별 상관없지 않아?”

나는 유미의 이야기 도중 끼어들었다.

“별 상관은 없지. 그네히메가 그 얘길 들었단 것밖엔.”

“그런데 왜 그렇게 길게 한 거야?”

“자넨 글쓰기 수업 때 뭘 들었어? 그냥 흥미를 돋우려는 서두야.”

거참 거창한 서두였군 그래.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그 엄청난 연주를 보여주는 동영상은 삽시간에 유명해져서 한일 양국을 오가며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하나 둘 더해져 마침내 그가 영국의 그 기타리스트를 동경했다는 것, 음악적 관계 이외의 사생활이나 신상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가 기타를 가지고 어떠한 의식을 행했다는 것 등이 알려졌다고 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스승님과 예전에 교류했었다는 사람들을 통해서 사진이 올라왔다. 피 같은 붉은 액체로 수상한 문양을 그리고 그 안에 기타가 있다든지 까마귀 시체가 있다든지 하는 사진이었다. 그의 연습실은 언제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사람의 피는 아니었다고 했다. 근처 정육점에서 피를 구해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하니까. 드물지만 공연 동영상도 올라왔다. 평범한 복장에 평범한 퍼포먼스를 하는 카피 밴드였다고 했다.

그 뒤로 정보는 조금씩 보충됐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독창적인 연주자와 그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가십거리에 밀려 그네히메는 곧 네티즌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웹상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을 정리하기 좋아하는 한 네티즌은 더는 관심 끌려고도 하지 않고 완전히 종적을 감춘 그네히메에게 어떤 사정이나 계획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평했다고 유미는 말했다.

“어쨌든 이 기타는 그네히메의 동영상에서 쓰인 기타란 말이지.”

“아마 그럴 거야. 단순히 산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 단정 짓기는 좀 그렇지만 그네히메가 도인 차림으로 피의 레스폴을 들고 돌아다닌다는 증언도 있었고, 로고가 지워지고 걸레짝 같은,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하지만 아무튼 그 기타도 그렇고.”

“이 기타는 그 기타가 확실해? 이렇게 외관은 엉망인데.”

“몇 가지 단서가 있어. 이것도 일부 매니아 사이에서만 알려진 건데 이러이러한 기타가 있다, 하고 전설처럼 소문이 돌거든. 먼저 깁슨 로고가 지워진 헤드.”

유미는 기타 머리 부분을 가리켰다.

“그리고 지판을 봐. 얼룩덜룩하게 변색돼 있지? 피에 물든 거라는 말이 있는데 정확한 건 몰라.”

나는 핑거보드를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얼룩덜룩했는데 이게 사실 피를 머금어서 그런 거였군. 난 그냥 빈티지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 다음은 바디에 별 모양 스크래치가 있다는 건데, 이래선 자세히 보지 않으면 확인이 안 되겠다.”

그건 확실히 있었다. 마치 끌로 긁어낸 것처럼 굵직하게 그려진 별이 있었다. 그 별은 이제 불길 속에 거의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새로 태어난 베이더 경에서 가장 아쉬운 게 그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게 그 기타라는 건 다른 데선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왜? 음, 내력이 조금 쪽팔리긴 한데.”

“그보다 그 기타를 노리는 사람이 좀 있어서. 뭐, 그런 사람을 만날 일은 별로 없겠고 봐도 못 알아볼 테지만.”

“이 기타를 노려?”

“응. 이 기타가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어. 이 기타를 모델로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거든.”

“뭐, 뭐라!”

“소녀하트록킹스타라는 애니인데 케이온 이후로 전국적으로 뜬 밴드 애니야. 거기 쓰인 기타가 확실히 이걸 모델로 했어. 케이온 때 레스폴 판매량이 급증했단 얘긴 들어봤지? 그런데 이건 애니에서 쓰인 기타의 실제 모델이야. 숱하게 널린 레스폴이 아니라. 오타쿠 입장에선 몹시 탐나는 물건이겠지?”

“그, 그런…….”

나는 지금 혼란에 빠졌다. 난 참으로 무서운 물건을 손에 넣었던 것이다. 스승님이 그런 사람이었고 스승님이 물려준 내 소중한 기타가 그런 물건이었다니. 심지어 자아 정체성에 혼란이 오려고 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연신 물이나 들이켰다. 그렇다고 이 기타를 버릴 수는 없잖은가.

대화는 거기서 끝났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를 긁어모아 계산을 했다. 유미는 내 등을 치며 잘 먹었다고 말한다.

“그럼 부탁한다. 말을 잘 전해줘.”

나는 분식점을 나서며 말했다.

“응. 3학년이라는 걸 감안하고 기대는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수험생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건 내 마음에도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부탁하는 것부터 잘못은 아니겠지.

“그보다 넌 어때?”

“응?”

나는 등을 돌리려는 유미에게 말했다.

“수험생 입장이나 차후에 뭔 소릴 들을 걱정이라든가 말고, 네 의견 말이야. 나랑 밴드 하는 것 어떻게 생각해?”

유미는 빤히 날 바라봤다. 잠시 말없이, 우리는 마주보고 서 있었다. 지금까지 여건이 어쨌다느니 다른 멤버는 어떻다느니 떠들었지만 정작 나와 말을 나누는 유미의 의견은 듣지 못했다. 유미는 옆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내 얼굴을 과일 표면 살피듯이 들여다보았다. 눈치를 보는 걸까? 돌연, 동그랗던 눈이 초승달처럼 변한다. 하얀 이도 기분 좋게 빛난다.

“뭐, 뭐야?”

살짝 올려다보는 얼굴이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웃고 있다.

“뭘까?”

뭘까, 라니.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유미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때렸다. 내가 멍하니 있는 새 유미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내 쪽을 한 번 돌아보더니 손을 위로 치켜들고 흔들고는 그대로 떠나갔다.

다시 남겨진 나는 머리만 긁을 뿐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 기타와 스승님에 얽힌 이야기. 중학교 2학년 초여름께였다. 나는 아침 기온에 맞춰 입은 긴 팔 셔츠가 민망하게도 땀에 흠뻑 젖어 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산이라 봐야 야트막한 뒷산일 뿐이었지만 고것도 산이라고 약수터가 있어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길러 산을 올라야 했다. 아버지의 명이었다. 물을 길며 정신과 몸을 단련하라나. 페트병이 가득한 등산용 가방을 짊어지고 마루 두 고개를 넘나드는 게 어지간한 체력으로 가능할 성 싶은가. 나는 아마 굴러서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은 첫 번째 물 배달 이후로는 수돗물을 길어온다든지 미리 약숫물을 준비한다든지 잔꾀를 부려가며 꾸준히 산을 오르내렸다.

그때가 아마 등산을 시작한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빈 가방을 메고는 여유를 부리며 산을 탈 수 있을 수준의 체력은 비축할 수 있었다. 산길도 점점 익숙해져 나만의 루트를 만들 지경까지 이르렀다. 길이 아닌 곳은 섣불리 갈 곳이 못 된다. 그런 곳에는 진로를 방해하는 덤불이나 가시나무나 썩은 낙엽 따위가 예상치 못한 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길이라도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끔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너무 돌아간다 느껴질 때 나는 그런 곳을 가로지른다. 그런데 그날따라 길이 잘 잡히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가시나무가 가로막고 있어서 나는 조금씩 외딴 곳으로 돌아가야 했고 들어선 곳에는 또다시 걸림돌이, 그래서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길과는 아예 떨어진 수풀 속을 헤매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그를 만났다.

기이한 풍모였다. 트레이닝복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얼룩덜룩했고, 백발과 흑발이 쿠앤크마냥 섞인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데다 비슷한 색의 수염이 턱을 향해 뾰족하게 나 있는 남자였다. 얼굴은 그리 늙어 보이지 않았다. 주름의 골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 간달프라고 불러줘도 될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그는 바위 밑에 앉아 있었다. 그의 무릎에는 일렉트릭기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도인으로 보이는 데에는 실패한 것 같았다. 기타를 치는 도인이 어디 있겠는가?

"무릇, 도란 산천을 이루는 초목에도 깃들여 있거늘, 하물며 음률을 이루는 악기에서 그것을 찾을 수 없겠는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남자는 말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침 땀에 흠뻑 젖어 있어 쉬어야 할 참이기도 했다.

"도를 이루기 전에는 하산하지 않으려 했네. 나의 강철 피크를 보게. 그 어떤 가혹한 테크닉에도 그 오묘한 각을 잃지 않았던 이 피크가 이제 닳아 머리와 꼬리조차 잃지 않았는가. 하지만 알 수 없어. 알 수 없는 일이야……."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길은 그의 앞으로 간신히 발 딛을 정도로만 나 있었고 나는 그의 앞을 지나쳐야만 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기타를 뻗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낡았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 기타였다. 사포로 밀기라도 한 듯 도색이 거의 벗겨져 있었고 나뭇결이 드러나도록 몸통 한 귀퉁이가 쩍 벌어져 있었고(일렉기타가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정체 모를 검은 얼룩이 곳곳에 스산하게 박혀 있었다. 그 사람의 행색과 기타 꼬라지를 보면 절대로 그가 기타리스트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법자연이라네. 인연이란 것은 상에 붙은 사람의 관념이라고 보네만 그래도 이렇게 만났으니 뭔가 의미를 찾아보지 않겠나."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다만 그가 나를 고이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그 뒤로 반 년 간 산을 오르면서 그 사람에게 기타를 배웠다. 내게 기타가 없으니 나는 밥 먹듯이 산을 올라야 했다. 학교가 산을 등지고 있어서 집에 오는 길에 들러서 두어 시간 앉아 있다가 내려오곤 했다. 그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해대며 열심히 나를 가르쳤다. 왜 뜬금없이 지나가는 중학생을 붙잡고 기타를 가르쳐줬는지, 또 나는 왜 그렇게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락음악은 원래 듣기는 했다. 하지만 열광적으로 공연을 다닌다든가 록커가 되겠다든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적당한 구실을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온통 나에게 강요하는 공부, 공부, 공부. 그는 내 몸 속에 잠자고 있던 저항의 본능을 일깨워줄 구실 이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반년 후 어느 날. 스승님은 말했다.

"때가 되었다. 이것은 나의 때이지 너의 때는 아니다. 이 때라는 것은 온 우주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나는 이제 떠난다. 내가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다. 이 기타는 네게 물려주겠다.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기타지만 후계자는 내가 정하는 거지. 이걸 팔든 부숴버리든 연주하든 그건 네 자유다. 자. 가지고 떠나라. 다시 볼 일이 있다면 좋겠다."

"스승님. 사소한 것입니다만, 일렉기타의 역사는 60년 조금 넘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집안 대대로……."

"물의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든 것이지."

"그, 그런가요? 제가 배울 건 그럼 정말 없는 건가요? 그 동안 배운 건 곡 몇 개가 다인 것 같은데요. 이론이라든가 다른 테크닉이라든가는요?"

"석가도 노자도 미소만으로 큰 도를 전수하셨다. 도란 지식에 있지 않고 너의 손안에 있느니라. 여기서 더 큰 도를 깨우치는 것은 자네에게 오로지 달려있다. 자. 영 불안하다면 내가 신기를 하나 더 물려주겠다. 이것은 마모되지 않는 불사의 피크이니라. 이것만 있으면 넌 언제든 구도의 길을 걸을 수 있을 테니 스스로 걸어가도록 하여라."

스승님은 나에게 기타와 피크 하나를 넘겨주었다. 불사의 피크라 해봐야 금속 피크일 뿐이었지만 나는 감사히 받았다.

“그리고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네가 길을 걷기로 마음먹는다면, 너는 세상을 구원할 열쇠가 될 것이어니…….”

그것이 무슨 말인지 물어보려는 차에, 스승님은 훌쩍 바위 위로 뛰어오르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다급히 그의 뒤를 쫓으려 했으나 산중 어느 곳에서도 그의 발자국조차 볼 수 없었다.

이것이 단비와 만나기 전의 이야기.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 기타는 아버지가 불태워버렸다. 공업용 화염방사기로, 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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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타 샷을 맞으면 많이 아픕니다. 소년 메리켄사쿠(2008)이란 영화에서는 기타 샷으로 불구가 된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시도해보고 싶다면 통기타로 하세요. 통기타는 시각 효과만 화려하지 맞아도 그럭저럭 견딜만 하답니다 :)

Writer

존모리슨

존모리슨

Moonlight kiss
Otherwhere you are
By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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