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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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드럼이 문제다. 드디어 밴드다운 멤버를 모으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드러머가 없다. 소란 누님은 드러머를 찾는 것을 조건으로 가입한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드러머가 없는 밴드는 멤버가 전혀 없는 밴드와 다를 게 없다.

적어도 우리 학교, 남고와 여고 통틀어서 기용 가능한 드러머가 없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역시 외부 인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걸까? 취주악부나 오케스트라부같은 건 없을려나? 그런 데에도 타악기 담당자는 있을 것이 아닌가.

얄짤 없이 그런 동아리도 없단다. 다음 쉬는 시간에 담임한테 물어보니 그렇다더라.

집으로 돌아가며 방안을 궁리해 보았다. 이렇게 되면 다른 학교로까지 원정을 갈 수밖에 없다. 그것도 좀 그런 게, 이 근방에 고등학교는 우리 학교밖에 없다. 학교가 좀 외진 곳에 있어서 다른 학교를 찾으려면 적어도 버스 두세 정거장은 가야 한다. 게다가 이미 학기가 시작한지 좀 지났는데 아직까지 놀고 있는 드러머가 있을까? 나처럼 원대한 포부를 품었지만 멤버를 전혀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가여운 드러머가 하필이면 이 근방에 있을까?

하늘에서 드럼 신동이 뚝 하고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차라리 건전한 바람이 아닌가 했다.

이방원처럼 드러머를 내려주소서 하고 기드러머제라도 지내볼까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어디선가 천둥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거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교문 앞 진입로 어디선가 드럼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들릴 듯 말 듯 했지만 분명한 드럼 소리였다. 그것도 비트 분할이 뭔지 아는 수준급의 연주였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하늘에서 커다란 고래를 타고 신기의 드러머가 내려오는 것은 아닌가, 하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방향을 잡았다. 우리 학교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 하나가 있다. 여고와는 달리 우리 재단과는 상관없는 별도의 초등학교다. 소리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홀리기라도 한 듯 소리의 근원을 찾아 초등학교로 들어갔다. 수업은 진작 끝난 시각이라 교정은 텅 비어있었다. 복도에 들어서니 소리는 더욱 분명히 들려왔다. 누굴까? 텅 빈 학교는 언제나 부재 이상의 적막감을 안겨준다. 지금 다니는 학교의 미니어처만 같은 복도며 책상이라든지 벽에 알록달록하게 수놓아진 그림이며 아이들의 솜씨자랑 따위가 나를 유령처럼 주시한다. 그 사이로 둔탁한 베이스의 공격이라든지 심벌이 부서지는 소리라든지가 점점 거세진다. 4층. 동쪽으로 꺾어진 교사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 학교로부터는 멀어지는 방향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소리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일 테다.

누굴까. 초등학생의 실력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밴드부 지도교사일까? 그게 누구든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의 연주는 영혼을 담을 줄 알았다. 영혼과 영혼이 직접 맞대는 음악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만나볼 이유는 충분했다.

소리가 나오는 곳은 방송실이었다. 어딘가의 스튜디오가 아닌가 하는 으리으리한 방음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내가 그 앞에 서니 연주가 그쳤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겉보기 이상이었다. 이런 방송실이 존재한다는 게 가당이나 한지 모르겠다. 두어 학급이 앉을 만한 좌석과 연단인지 무대인지가 있었고 옆에 별도로 엔지니어실이 있었다. 졸업앨범은 물론이고 화보집이라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스테이지가 있었고 영화라도 찍을 것 같은 카메라며 마이크 등 촬영장비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리고 제일 구석에 조금 널찍한 마루가 있었고 그 위에 드럼세트가 놓여 있었다.

끝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어깨까지 늘어트린 머리를 한 녀석이었다.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모습에 여자로 착각할 뻔 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초등학생이었을 줄이야. 눈매가 살아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뭐라고 먼저 말을 건네야 할지 1초 정도 고민하다가 말했다.

“훌륭한 허벅지로군.”

녀석은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오해 하지 말길 바라는데, 베이스 드럼 페달을 밟는 녀석의 발놀림을 칭찬한 거다.

“누구야?”

“걱정 마. 다행히 수상한 사람은 아니야.”

녀석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수업 끝난 초등학교에 멋대로 들어오는 고딩이 안 수상하다고?”

“아, 그건 편견이야. 어려서부터 벌써 편견을 갖고 살면 안 돼.”

아아, 말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어른으로서 위엄을 다했다고 볼 수 있겠지.

“너 바보지?”

으음. 버릇없는 녀석이군. 나는 물었다.

“방금 연주, 모비 딕이지? 네가 쳤어?”

“응. 그런데?”

“잘 친다 싶어서. 밴드 하냐? 그런데, 여기 엠프는 어딨지?”

갖출 것 다 갖추고 안 갖출 것까지 갖춘 것 같은 이 방송실에 안 보이는 것이 있었다. 밴드 연습실로도 쓰는 곳이라면 당연히 엠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는 드럼 하나만 달랑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런 거 없어. 밴드 같은 거 없으니까.”

“뭐라고? 그럼 드럼은 왜 있지? 국민체조라도 할 때 쓰나?”

“그냥 드럼부야. 방과 후 활동으로 드럼 해. 왜 여기 쳐들어와서 그런 걸 물어?”

“와, 왓? 밑도 끝도 없이 달랑 드럼부? 그딴 게 어딨어?”

“여깄지 어딨어?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좀 있음 영화촬영부가 돌아올 거야. 빨리 나가.”

“아니, 영화촬영부라는 초딩 수준에 안 맞는 부는 있으면서 밴드부는 없고 대신 말도 안 되는 드럼부만 있다고? 뭐 이딴 학교가 다 있어?”

“이딴 학교에 네가 보태준 거 있어?”

머리 긴 초딩은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보태준 게 있지 왜 없겠어? 너네 등록금 내가 내준다는 거 알고 하는 소리야?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어서 땅 파가지고 시켜주는 줄 알아?”

“뭐? 네가 우리 등록금을?”

“올 초에 기타 수리하기 위해 창고 물류 알바를 잠깐 했거든? 그때 내가 세금을 냈다고. 그러니까 너네 의무교육비는 내가 내준 거랑 마찬가지란 말야.”

그러자 초딩은 스틱을 내게 던진다. 날카로운 각도로 날아오는 스틱을 베이더 경 케이스로 간단히 쳐냈다.

“웃기시네. 그럼 내가 과자 사먹느라 낸 부가가치세가 있으니 학교는 내 힘으로 다니는 거겠다?”

“뭐, 뭐야? 초딩 주제에 어떻게 부가가치세 개념을 알지? 너 정체가 뭐야?”

“네 정체나 밝히시지! 이 침입자.”

“침입자라고? 훗, 이러면 어떨까?”

나는 씩 웃으며 회심의 공격을 날렸다.

”네 드럼 소리에 시끄러워서 항의하러 온 선량한 주민이라면?”

됐다! 녀석의 말을 끊었다. 나의 날카로운 언변과 폐부를 찌르는 논리에 고작 초등학생에 불과한 녀석은 얼굴을 붉히고 씩씩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 해야 되는데,

“즐이다.”

하며 녀석은 가운데 손가락을 내민다. 이, 이것이 그 유명한 초딩의 파괴력인가. 그 어떤 공격도 무위로 돌리고 마는 초딩만이 쓸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전술. 그 무뇌적인 방탄 실드에 나의 화려한 논리적 공격은 산산이 해체되고 말았으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믿을 거 같냐?”

아무래도 이 녀석은 생각보다 강한 녀석인 듯 했다.

“음, 그보다 넌 어느 시대 초딩이냐? ‘즐’ 같은 구시대의 유물을 꺼내들다니.”

“그냥 수준 맞춰주느라 썼는데?”

“으윽, 날 초딩 수준으로밖에 안 보는 건가?”

녀석은 일어나 스틱을 주우러 다녔다. 이 녀석이다 싶었다. 드러머 말이다. 어차피 다른 학교에서 영입하려던 거 초등학생이면 어떤가. 버릇이 없긴 하지만 록커라면 그 정도 저항의식은 기본 사양이다. 이 학교에 밴드부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 아니, 드럼부만 달랑 만들려 한 어떤 정신 나간 교사가 존재했다는 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인재를 하나 공급해주기 위한.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하지만 녀석은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내가 왜?”

녀석은 스틱을 모두 찾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랑 밴드 하자고. 마침 드러머가 필요하던 참이었거든.”

“너 진짜 바보지? 초등학생이 어떻게 고등학생이랑 밴드를 해?”

“못할 게 뭐 있어? 음악만 있으면 학교 따위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 시간 없어.”

“이 동네 학구열 그렇게 높은 동네 아니라는 거 알아. 초딩이 고딩한테 시간 없다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초딩 무시하지 마. 나도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너네 때처럼 놀기만 해도 학교 다 간줄 알아?”

“야, 그래도 너 학교 끝나는 시간을 생각해봐라. 우린 야자까지 하는데도 시간 내서 하는 거라고.”

아직 야자는 안 해봤지만.

“아, 그리고 우리 중엔 고3도 있어. 고3. 모든 기본권을 박탈당한 대한민국 제3신분 고3이 시간을 내는데 초딩이 못 내?”

“고3이나 돼서 그럴 시간 남아돌건 알 바 아니다.”

왠지 반박하기가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나는 다른 작전을 써보았다.

“야야, 우리 밴드에는 예쁘고 글래머러스한 누나가 둘이나 있다. 이래도 안 할 거야?”

“뻥 치시네. 너네 남고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남고지. 그런데 남녀고 연합 밴드야. 남자는 나 혼자라고.”

“……정말?”

좋아! 녀석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지금 통화라도 시켜줄 수 있는데.”

녀석은 조금 머뭇거리다가도 단호하게도 말했다.

“내가 그딴 데 혹할 줄 알아? 밴드 같은 거 할 생각 없으니 빨리 가버려. 좀 있으면 영화촬영부 선생님도 돌아올 거야.”

“방금 혹한 것 같은데?”

“아니야.”

“초딩도 예쁜 누나라면 흔들리는 건가. 으음.”

“아니라니까!”

녀석은 내 말을 막으려는 듯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할 생각이 아예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드럼 연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실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맨발로 산을 기어오르는 듯한 고통스럽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기타를 치지만 그러한 점은 모든 악기가 마찬가지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연습은 열정 없이는 안 된다. 이 녀석이 그저 방과 후 활동을 위해서 드럼을 쳤다면 절대로 이 수준에 이를 수 없다. 녀석의 안에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들끓고 있다. 녀석은 밴드를 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리 밴드가 드러머가 없어서 자연 해체되게 생겼어. 너만 도와준다면 우린 최고가 될 수 있단 말야. 그러니까 진지하게 좀 생각해봐.”

나는 근처 굴러다니는 종이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거기다 내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자. 할 생각이 들면 연락해. 도중에 가입신청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 자리는 비어있을 테니까.”

녀석은 종이를 받아서 옆에 놓인 가방에 대충 쑤셔 넣는다.

“그리고 이름이 뭐야?”

“강철.”

“강철? 이름이 철?”

“응.”

어렸을 적 많이 듣던 이름이다. 어디서냐고? 만화 같은 데서 주인공 이름을 이런 걸로 대충 때우지 않는가. 괜히 소란 누님의 마법소녀 운운이 생각나서 물어 보았다.

“너 혹시…… 로봇을 몬다든가 하는 건 아니지?”

녀석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 나는 농담인양 웃어넘겼다.

방송실을 나서니 다시 드럼 소리가 들렸다. 문을 닫으니 방음이 제법 잘 되는 듯했다. 우리 학교에 이런 방음 시설을 요청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겠지. 나는 소란 누님과 유미에게 문자를 보냈다. 드러머를 발견해 섭외 중이라고 하니까 답장은 각각 ‘힘내!’랑 ‘응’ 이렇게. 왠지 다들 관심 없다는 투다. 누가 어느 답장을 보냈는지는 설명할 필요 없겠지.

 

문제는 그 강철이라고 하는 초등학생 말고는 한 사람도, 단 한 사람의 드러머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른 학교를 얼씬거려보고 인터넷으로 공개 모집해보기도 했지만 이 지역 내는 초토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람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신입생 적응 기간인지 뭔지가 지나가고 드디어 1학년도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한단다. 그건 멤버 모집을 그만 두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담임은 사유만 있다면 야자에서 제해주겠다고 말했다. 냉큼 사유서를 작성하여 제출했지만 만들지도 않은 밴드 활동은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그 자리에서 퇴짜. 아무래도 내가 담임을 너무 만만히 본 듯 했다.

“결국 그 초딩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나.”

이틀 동안 연락이 없는 걸 봐서는 여전히 결심이 서지 않은 모양이지만 때가 다급한 만큼 이쪽에서 다시 들이미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정적인 문제를 하나 더 발견했다.

“아차, 내 전화번호만 줬지, 걔 번호는 안 받아 놨지.”

이런 멍청이. 그렇다면 내 쪽에서 그 녀석에게 접근할 방법은 없지 않은가. 아니, 방법이 있긴 있다. 초등학교 앞에 서서 그 녀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거나 한 명 한 명 붙잡고 신상을 캐고 다니거나 하는 꼴사나운 방법이.

좀더 우아한 방법이 없나 토요일이 올 때까지 고민해 봤지만 다른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토요일은 하는 일은 없지만 학교에 나와야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하교 시간이 겹친다. 초등학교가 조금 더 일찍 끝나는 듯했기에 종례는 생략해야 했다. 그럼에도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선봉대를 떠나보낸 뒤였다. 나는 앞서 교문을 나선 꼬맹이들 중에 녀석이 있지 않기를 바라며 교문이 한 눈에 내다보이는 전봇대 앞에 섰다.

초등학생들은 중고등학생과는 달리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옷이 제각각이라서 지켜보자니 눈이 아팠다. 머리스타일만 기준점으로 삼고 나머지를 광속으로 필터링 했지만 워낙 나오는 양이 많고 빨랐다. 거기다 잠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등학생들까지 섞여 들어오니 더욱 보기 어려웠다. 얼굴을 확인도 못 하고 보낸 녀석이 수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끈기를 갖고 기다렸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교문이 이곳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만일 이곳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학교에 볼일이 더 있다는 뜻. 그 녀석이라면 드럼 연습 정도밖에는 별다른 볼일이 없겠지.

그렇게 전봇대 옆에 못박힌 지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녀석은 역시 눈에 띄었다. 나를 보지는 못한 듯했다. 교문을 나서며 그대로 아래쪽 길로 꺾어져 걸어갔다. 일행은 없었다. 나는 녀석을 잡으러 달려갔다.

그때였다.

“너 종례 안 하고 뭐하고 있었어?”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어떤 갖잖은 손이 나를 가로막든지간에, 나는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어깨를 잡은 방향이 뒤가 아니라 앞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뭐야?”

같은 반의, 뭐더라, 우 뭐시기 하던 녀석이었다. 첫날부터 베이더 경에 관심을 갖고 이래저래 말 붙이던 녀석이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 얼굴이 기분 나쁘도록 웃는다. 나는 손을 뿌리치려 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고 그래? 종례도 빼먹고.”

“야, 야. 나 바쁘니까…….”

강철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나는 같은 반의 우 군을 밀치고는 달렸다. 간신히 뒷모습을 눈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붙잡으려 했지만 버스는 무심히도 출발해 버렸다.

지금이 사실상 유일한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녀석을 만나려면 다음 주에 또다시 이렇게 교문 앞을 지켜야 한다.

나는 타이밍 좋게도 뒤따라 온 택시를 붙잡았다.

“저 버스를 쫓아주세요.”

운전기사는 수상하다는 듯 힐끔 쳐다봤지만 별 말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보통 초등학교는 집과 가까운 곳에 배정받지 않나? 내 기억에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버스 타고 등하교하는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가장 가까운 학교라도 걷기엔 곤란한 거리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이 버스로 등하교하는 광경은 왠지 이질적이다. 그렇다면 녀석이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까? 뭐, 따라가 보면 알 일이다.

버스는 외진 곳으로 가고 있었다. 미터기의 숫자는 초조하게 올라갔다. 나는 언제든 내릴 수 있도록 주머니 속에서 지폐와 동전을 하나씩 가늠하며 버스를 지켜보았다. 정류소에 설 때마다 녀석이 내리는지 살폈다. 녀석은 끈질기게도 버스에 붙어 있었다. 나는 녀석의 버스비를 내주는 듯한 기분으로 끈질기게 기다렸다.

녀석은 한적한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등교거리라고는 할 수 없는 거리였다. 나는 재빨리 돈을 건네고는 내렸다. 녀석은 한 번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나를 발견하진 못한 듯했다. 녀석은 곧 움직였고 나는 뒤를 밟았다.

인가가 드문 곳이었다. 주위를 야트막한 산이 에워싸고 있었고 밭이며 비닐하우스가 길가로 나 있었다. 서울 외곽이라서 그런지 영락없는 시골 풍경이다. 인적도 뜸하기에 자칫하다가는 들킬 수 있었다. 나는 충분히 거리를 두고 그림자조차 눈치 채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놈을 쫓았다. 사실 여기까지 와서 미행할 필요는 없었지만 기왕 온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녀석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에 오니 뭔가 추억 같은 게 떠오르려 했지만 잡생각은 금물. 녀석은 산을 타자마자 다람쥐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무천도사의 수련을 견뎌낸 내가 몇 번이고 놓칠 뻔할 정도였다. 이곳이 녀석의 집이라면 당연히 산 타는 것에도 익숙하겠지.

처음 들어오는 산중이라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녀석은 그리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등성이 하나를 넘으니 자그마한 분지가 있었고 잡초가 무성한 사이로 어떤 구조물이 보였다.

군대의 막사가 아닌가 하는 구조물이었다. 얼룩덜룩한 천이 널찍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자세히 보니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사는 건가? 불법 구조물 냄새가 풀풀 풍기는 집이다. 녀석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창문 안으로 녀석의 동향을 유의주시하며 천막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 안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어 컨테이너 안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안이 생활공간임에는 확실했다. 개수대도 있었고 이불도 있었고 심지어 노트북도 있었다. 정말로 여기가 집이라면, 생활기록부에는 뭐라고 적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여기는 그저 비밀기지일 수도 있고 이런 데다 집 짓고 사는 괴짜 친구를 사귀어둔 것일 수도 있다. 직접 물어보면 아는 일이지. 나는 여기에 온 목적을 떠올렸다. 나는 녀석을 만나 스카우트하기 위해 온 거지 첩보 활동하러 온 것이 아니다.

문으로 가 노크를 하려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똑같지.”

나는 재빨리 몸을 낮췄다. 창으로는 녀석 혼자 말고는 볼 수 없었는데 누군가가 또 있는 모양이었다.

“놈들은 별 움직임은 없고?”

말투로 봐서는 가족은 아닌 모양이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나는 숨을 죽였다.

“그럴 거면 왜 태어났어? 넌 여기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아냐?”

다시 녀석의 목소리였다. 통화라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다시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녀석은 혼자였다. 녀석은 바닥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런데 통화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스피커폰이라면 상대방 목소리가 안 들릴 리 없고 이어폰을 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면 누구와 대화하는 거지?

“아니, 나도 이런 비밀기지 같은 곳이 생겨서 좋긴 한데. 그래도 좀 더 신나는 일이 있었음 해서…… 알아, 알아. 위험하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 걸.”

눈을 비비고 녀석의 모습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분명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통화 중이라고 판단할만한 그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녀석은 혼잣말중인 게다. 더군다나 위험하니 사람 목숨이니 뭐니 하는 것. 아하. 바로 견적이 나왔다. 녀석은 초등학생이라면 흔히 겪는 망상병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어쩌다 발견한 이 컨테이너를 비밀기지 삼고 뭔가 전설의 용사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 상대는 머릿속 동료일 테고. 방과 후에는 이런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와서 유치찬란한 공상을 펼치며 빈둥거리는 것이 녀석의 일과인 것이다. 이 증상이 지속된다면 학교에서나 친구 사이에서도 중얼거린다든가 혼자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든가 하며 티를 내고 점차 음침한 녀석으로 낙인찍히고 학교에서는 점점 소외돼 가고…….

아, 내가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잘 아는 건 아니고…….

아무튼 정체를 알았으니 나설 차례가 왔다. 바람직하지 못한 취미에 빠진 어린이를 구제해주는 것은 어른으로서의 도리. 녀석에게 건전하고 활기찬 세상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약점을 잡았으니, 아, 아니, 친구가 필요해 보이는 아이에게 밴드를 시켜주는 것이다. 동료들 간의 유대를 통해서 녀석도 건강한 정신을 되찾게 되겠지.

나는 문고리를 잡았다.

 

“으헉!”

비명이 제일 빨랐고 뒤로 튕겨져 나가는 것이 그 다음이었고 그 다음에야 나는 감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정신이 먹먹해져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 동안 어디서 이런 쇼크가 왔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문고리를 잡은 손이며 몸 곳곳이 무사한지 살필 여력이 되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강철은 소리쳤다. 나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으으……. 왜 문에 전기가 흐르는 거야!”

“여긴 어떻게 왔냐니까!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이봐. 난 감전됐다니까. 지금 죽을 뻔한 사람한테 하는 소리가 그게 뭐야?”

녀석은 뭔가 불안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 혼잣말을 들키지 않았나 걱정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쪽으로 찔러봐야지.

“미행했지. 그리고 난 이미 많은 것을 봐버렸지. 후훗.”

역시 녀석의 표정에 바로 드러났다. 녀석은 당황함을 감추려 주춤거리며 쓸데없이 손목에 찬 시계나 들여다본다.

“뭐, 뭘 봤단 거야?”

“뭘 봤을까? 그렇게 당황하는 걸 보면 ‘그것’은 네가 감추고 싶어하는 거겠지?”

“거, 거짓말이야. 그렇다면 저번에 그건…… 어, 언제부터지?”

‘저번에 그것’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넘겨짚고 말했다.

“꽤 오래 됐지. 어찌됐든 이제 날 속이는 건 무리. 순순히 자백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면 네 학급까지 알아내서 네 친구들 의견은 어떨지 의논해볼 수도 있는데.”

“아, 안돼! 그건!”

이럴 때는 연출이 중요한 거다. 나는 뒤로 돌아 천천히 걸으면서 웃음소리를 냈다. 약점을 쥔 쪽이 여유 부릴수록 당사자는 점점 초초해지는 법. 생각보다 녀석이 잘 말려들고 있다. 녀석은 이제 곤경에 빠졌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나와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 모든 게 내 뜻대로. 이제 밴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한다.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을까? 전교에서 무지 유명해지지 않을까? 복도를 오갈 때마다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근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담임은 교무실로 불러서 상담하고. 친했던 친구들은 왠지 모르게 널 대하기가 어려워지고. 만날 집에 혼자 가게 되고. 학교에서 똥 싸는데 칸막이 너머에서 구정물이 쏟아지고. 음, 이건 심했나? 아무튼, 이렇게 학교 생활하기가 곤란해지지 않을까?”

“그렇게는, 이씨…….”

녀석은 이제 반발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먹혀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이다. 이렇게 녀석을 궁지로 몰아붙였으니 이제 생색내듯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그러면 녀석은 그것을 천사의 손길이라 여기게 될 것이다. 전에는 그토록 거부했던 밴드 가입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이 대견해질 정도로 완벽한 계략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등을 돌린 채로 뒷짐 진 채 잡초가 무성한 공지를 내려다보며 기다렸다.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서겠다.”

누가 한 말이지? 뭔가 기묘한 목소리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로 그림자가 쏟아졌다. 뒤에서 곰이라도 나타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곰보다도 훨씬 커다랬다.

“흐음.”

뭐라고 코멘트를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난데없이 초현실적인 무언가의 현전에 직면하는 기분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지구의 4분의 1 만한 운석이 머리 위로 떨어질 예정이라는 뉴스라든지, 바다 저 멀리서 아파트 단지 같은 쓰나미가 다가오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든지 하는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결코 인정할 일이 없는 광경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기분 말이다.

내 뒤에 서 있는 것은 높이가 18미터는 돼 보이는 인간형 로보트였다. 로봇이 아니라 로보트였다. 어설픈 관절 동작이나 직립보행 하나 제대로 수행 못하는 대학생들의 장난감이라든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실용적인 기계 팔, 기계 거미 등의 산업용 기계라든가가 아니었다. 로보트였다. 막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로보트가 천막 안에서 기어 나와 구부정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이게 뭐냐?”

너무나 명백해서 규정할 필요조차 없는 물체를 눈앞에 두고도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벌어진 입을 추스르고 간신히 한 말이었다.

로보트는 대체로 붉은 색이었고 온몸이 갑옷처럼 각 져 있었다. 관절은 만화보다는 현실적이었다. 신체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만화와는 달리 정확히 구현된 모양이었다. 몸 구석구석에 금이 가 있어서 변신로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봇 만화에도 계열이라든가 종류가 있는데 이 로봇은 뚜렷하게 어느 쪽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트랜스포머나 용자 시리즈와 조금 닮았다고 할까?

“왜 나왔어! 그렇게 쉽게 모습을 보이면 어떡해!”

강철은 로봇에 대고 소리쳤다. 로봇은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추고는 말했다.

“이미 발각된 것.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본다.”

목소리도 전형적인 변조 톤이다. 설마 이 목소리를 성우가 녹음했다든가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최대한 아닌 척 해야지. 의심하는 사람한테 전부다 모습 보여줄 거야?

“그건 그렇군. 이번 일을 거울삼아 앞으로는 만전을 기하기로 하자.”

“태평한 소리 하고 있네!”

나는 이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헤이, 플레이 스탑. 난 지금 겉으로는 차분해 보일지 몰라도 실은 무지 당황했거든? 이 덩치 큰 녀석이 뭔지 설명부터 해주지 그래. 야. 너 말도 할 줄 아는 거야?”

나는 강철과 로봇에게 차례로 말했다. 대답은 로봇이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너는 나의 정체를 간파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체라니, 내가 언제?”

“아니, 너 좀 전에 다 봤다고 하지 않았어?”

강철이 나에게 검지를 뻗으며 말했다.

“그, 그랬지.”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살짝 오해가 있던 모양이었다. 소년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했다.

“그럼 아까 다 봤다고 한 건 뭐야?”

“너 혼잣말 하는 거.”

“오래 전부터 지켜봤단 건?”

“학교 나왔을 때부터.”

“그, 그럼…… 그때 물어본 건 뭐야? 떠본 게 아니었어?”

“그때라니?”

“내 이름 물었을 때.”

“아, 그거?”

로봇이라도 모는 게 아니냐고 농담 삼아 했던 질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하, 그 때문에 내가 로봇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나는 사연을 설명했다. 강철은 부르르 떨더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커다란 강철 덩어리를 걷어찼다.

“별 거 아니잖아! 근데 왜 맘대로 변신하고 그래!”

로봇은 응답했다.

“너와 나의 마음은 이어져 있다. 네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것이다.”

강철은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재차 발길질 해댔다. 물론 그것이 그 정도로 아파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바보야! 너 때문에 쓸데없이 정체 들키고 말았잖아! 아오 이걸 그냥!”

나는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했다. 지금 이런 로봇이 어떻게 여기 대한민국에 나타났는지도 궁금했으나 지금 여기 온 목적이 더 중요했다. 밴드 멤버를 구하는 것이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녀석의 때 이른 중2병보다 이 엄청난 사실이 더 큰 약점으로 작용할 테니까.

“이봐.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 왜 이 친구가 여기 있는진 몰라도 아마 아주 중요한 임무 같은 걸 맡고 있겠지?”

“그렇다.”

로봇이 대답했다.

“그래서 더 정체를 숨겨야 하는 거고 말야. 만일 정체가 드러나면 많이 곤란하겠지? 기자나 관광객이 무지 몰릴 거고 군에서 실험용으로 이 친구를 차출할지도 몰라.”

“지구인의 군대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알아, 알아. 그냥 예로 들어 하는 말이지.”

“너 또 무슨 협박을.”

강철이 말했다.

“협박이 아니야. 윈윈 전략을 쓰자는 거야. 들어봤어? 윈윈.”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두 이해 당사자 간 최대 이익을 다소 포기하는 대신 리스크를 최소화 하여 양자간 만족할 수준의 통계적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뜻한다.”

로봇이 또 끼어들었다. 꼬박꼬박 끼어드는 게 조금 짜증났지만 나는 끈기 있게 말했다.

“그래. 그런 거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서로 좋은 일을 하자는 거지.”

“그래서, 뭘 어쩌라고?”

“전에 말한 그거. 내 동료가 되면 되는 거야. 내 동료가 된다면 나는 동료의 일이니까 당연히 내 일처럼 여길 거고 난 동료가 생겨서 좋고. 어때?”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로봇이 나를 거들어주었다.

“이전에 말했던 밴드부 일이겠지. 나는 긍정적이다. 다양한 경험을 미리 해보는 것이 용사로서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녀석 용사라고 말했어! 정말 정의의 로보트와 초등학생 대장 같은 컨셉인 건가?

강철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알았어. 대신 비밀은…….”

“난 동료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

녀석은 못 미더워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겠지. 나는 나대로 행동으로 직접 믿음을 주면 된다. 현세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오늘 날짜를 떠올렸다. 나중에 국경일로 정해질지 모르니 확실히 기억해 둬야지. 이 자리에 거대 로보트가 참관인으로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전해지지 않을 테니 그 점은 아쉽다.

나는 나머지 두 멤버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서 잠시 미뤄두었던 상식의 문제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러면 저 로보트가 어째서 이 기계론적인 세계에 존재하는지 설명을 들어볼까?”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게 어떤가.”

“그거 좋지. 그런데 너 아까 그 컨테이너가 변신한 거야?”

“그렇다. 지금 보여주지.”

보통 변신 로봇 류는 자동차라든가 비행기 등이 변신하지 않나? 컨테이너 차량도 아니고 그냥 컨테이너라니, 뭔가 어설퍼 보인다. 로봇의 외관에서는 컨테이너가 전혀 연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로

봇이 이래저래 몸을 웅크리더니 어디선가 컨테이너 벽이 나타나 몸을 감쌌다. 변신이 끝나고 창 안을 들여다보니 좀 전에 본 실내가 그대로 보였다. 질량 보존의 법칙인가 하는 건 무시해버리는 모양이다.

우리는 컨테이너로 변신한 로봇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생략하도록 하자. 로봇은 외계에서 왔고 뭐시기뭐시기 하는 악당이 지구에 잠복하고 있으니 지구인 대표로 선정된 용사와 함께 지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는 식상한 얘기였다. 아직까지 악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뭐, 지구를 지켜주는 용사가 있다니 든든한 일이다.

Writer

존모리슨

존모리슨

Moonlight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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