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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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답은 나중에 듣도록 하겠다.”

로봇은 무슨 술수를 썼는지 점점 어둠과 동화되더니 희미한 실린더 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잠시 후에는 불도 들어왔다. 그제서야 소란 누나는 지붕 가까이 내려왔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방안을 돌아보고는 허겁지겁 전등을 껐다.

“저게 그 로봇이구나. 무지 크다아.”

소란 누나는 순진하게 놀란 얼굴로 말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법소녀라니. 어쩐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너무 당연하다보니 의표가 되어버렸달까. 중세풍의 마녀 복장과 마법사 모자, 빗자루까지. 어깨에 베이스 대신 검은 고양이라도 걸치고 있었다면 딱이었을 텐데. 이런 고전적인 마녀 이미지는 오히려 흔치 않은 것 같다. 요즘 마법소녀가 프릴 달린 스커트 입고 발차기나 해대지 어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겠는가. 소란 누나도 전투 모드일 때에는 유행을 따르는 것 같지만.

“로봇 씨도 다른 사람들에겐 말 못할 이야기를 하려던 거였을 텐데.”

창문 바로 위에 두둥실 떠서 누나는 말했다.

“얘기 들었어요?”

“조금. 멀리서 보고 있었어.”

“뭐, 별 상관없을 텐데요. 누나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걸 보면요.”

“그런 걸까? 음.”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환한 달빛이 마법사의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인가 한 귀퉁이가 기울어진 달, 그리고 마녀. 표정만으로도 홀려버릴 것 같은 황홀한 밤이었다.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나는 그야말로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처럼 멈춰 있을 것만 같았던 소란 누나는 천천히 창가로 내려오더니 비틀비틀 빗자루 위에 발을 올렸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누나는 내 손을 붙잡고 창틀로 넘어왔다.

엉덩이를 창틀에 걸친 누나는 말했다.

“고마워. 빗자루는 오래 타고 있으면 아파서 말야.”

그런 노고야 충분히 이해한다. 음, 힘든 일이겠지.

“전에 신청서 내러도 빗자루 타고 갔다 왔던 거예요?”

“응. 그리고 마법으로 담당자의 주의를 이얍! 하고 돌리고 재빨리 고쳤지.”

소란 누나는 마법 쓰는 시늉을 내는 듯 팔을 휘두른다. 어쩐지 평소에는 보기 힘들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안 거예요?”

“유미한테 물어서 들어 뒀지.”

그렇군. 그런데 유미는 우리 집 주소를 알았던가? 유미와 나는 집 방향만 같지만 주소를 얘기한 적도 집에 유미가 온 적도 없다. 함께 집에 오다가 갈라지는 길에서 손대중으로 거리 정도만 알려줬을 뿐이다.

모종의 기회가 있었겠지. 어쩌면 누나가 마법을 약간 썼을 수도 있고.

“밤이니까 이것만 살짝 놓고 가려고 했는데,”

누나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살짝 꺼내보였다. 핑크빛 귀퉁이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것이 편지봉투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그것은 러브레터?

“그런데 깨어 있으니 말로 해야지. 숑!”

하며 다시 품속에 집어넣는다. 아무래도 러브레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누나가 직접 쓴 편지를 받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한밤중 몰래 빗자루 타고 날아와 머리맡에 편지를 놓고 간다니, 이 얼마나 소녀틱한 감성인가.

“그땐 경황이 없어서 다 얘기하지 못한 게 있어. 그걸 알려주러 온 거야. 아, 혹시 자야 되니?”

“아뇨. 괜찮아요. 뭐어, 편지도 주면 좋고요.”

“편지는, 우움, 좀 쑥스럽네. 괜찮으면 말로 할게. 편지는 다음에!”

살짝 아쉬움만 남긴 채 누나는 품속에서 손을 뗐다.

“저 로봇이 한 말 말인데.”

이렇게 누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뭐가 신경 쓰여요?”

“저 분이 말한 비정합물질인가 하는 게, 아마 나까지도 포함한 거겠지?”

나는 잠시 침묵을 끌다가 대답했다.

“그렇겠죠. 어…… 잘 모를 테니까요.”

“그럼 나를 적이라 여길 수도 있단 거네.”

그 말엔 건성으로라도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쩐지 내가 간여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서이다. 역시 누나는 저 로봇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었다.

누나는 말했다.

“로봇 씨 말대로라면 어느 날 나타난 이존재 중에 자신의 숙명의 상대가 있지만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 건데, 그 말은 내가 그 상대가 아니라는 보장 역시 없단 얘기지.”

“그렇게 되나……요?”

“난 다른 세계의 공주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망명해온 거야. 아주 어릴 때. 그래서 그쪽 세계의 일은 이젠 기억도 안 나.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서 언제든 돌아갈 수는 있지만 난 이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난 여기가 좋거든. 그런데 내 친척들, 왕족이나 귀족들은 아직도 날 정략적으로 쓸 패 하나정도로 여기고 있어.”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망명하면서 맡겨진 임무 때문이야. 지금까지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뭐로 불렸는지 알아? 클로즈드 월드. 닫힌 세계라고 불렸어. 단 하나의 규칙에 의해서 작동하는 완전무결한 세계. 그 세계에서는 해가 언제나 동쪽에서 뜨고 사과는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그래서 과학적 탐구가 가능한 세계이고 지금 인간의 힘으로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 볼까?”

척력이니 중력이니 전자기력이니 하는 힘이 어떻고 대통합 이론이 어쨌고 가설라무네하는 이야기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으니 흘려 넘기도록 하자. 사실 못 알아들었지만.

“클로즈드 월드가 있다면 오픈 월드 역시 있겠지? 내가 살던 데가 그런 곳이야. 거기서는 과학이 통하지 않아. 각자 사는 우주는 각각의 법칙에 의해 지배받고 있으니까. 우리 별에서는 귀족을 망명시킬 때 보통 다른 오픈 월드로 보내. 그렇게 해야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올 생각을 못 할 테니까.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은 날 보낼 곳을 찾다가 우연히 이 우주를 발견했어. 다른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돼 있는 이곳을 말이야. 원래는 그쪽 세계에서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데, 손바닥과 손등이 만나는 것만큼이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그만 두 세계가 연결돼 버렸어. 그 현상을 편의상 차원의 균열이 생겼다고 할게. 그 이후로 다른 오픈 월드에서도 접촉이 가능해졌나봐. 내 임무는 이 현상을 조사하는 거야. 나아가서는 이곳을 다시 클로즈드 월드로 되돌릴 방법을 찾는 거야. 지금까지 자라면서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냥 방치하고 있었어. 아직 배워야 할 단계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데 강철과 리수 네가 나타난 거야. 난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나의 고향이 이 세계와 연결된 것처럼 강철네도 어느 날 이 세계에 편입된 거라고. 하지만 로봇 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뭔가 이상한 거야.”

뭐가 이상한 건지 직관할 수는 없었지만, 다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것은 확실히 이상해 보였다.

“로봇 씨는 이러한 차원의 균열이 없다고 말했어. 자기는 원래부터 있었다고 말했고 우리는 예외적으로 그냥 생겨났다고 말이야.”

“그냥 생겨났다니요? 누나는 분명 자기 나라에서 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상 해봤어? 만일 내가 지난 16년간의 기억이 입력된 채 바로 오늘 만들어졌다면.”

알 것 같았다. 그 비정합물질이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각자의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거지.

“나로선 조금 서운한 얘기였어. 로봇 씨 말대로라면 나와 나의 고향은 그냥 소설 속 얘기란 거잖아. 그런 설정을 가지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그건 그렇겠네요.”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를 다시 클로즈드 월드로 되돌릴 방법을 찾고 있어. 이런 세계는 정말 중요하거든. 우주 질서의 근본이 되는 규칙을 담고 있으니까. 로봇 씨도 실은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왔겠지? 원래 여기엔 로봇 씨도 있어선 안 돼. 심지어 우리까지도.”

“그럼 좀, 아쉽겠네요.”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로봇은 자신이 수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어엿한 우리 세계 존재라 여기고 있는 것 같은데, 소란 누나의 말에 따르면 그 역시 지구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여러 모로 두 사람의 주장이 충돌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무튼, 지금은 둘이 싸울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진 않았으면 좋겠어. 일단 우리는 지금 밴드로 모인 거고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겠지.”

잠시 잊고 있었는데 우리는 밴드이고 내일은 첫 연습이 있다.

“누나.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어요? 그런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거?”

“아니. 이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한 얘기였어. 로봇 씨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 것도 있어서. 사실 부탁할 게 있는데.”

“부탁이요? 뭐든 말만 해요! 누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테니.”

“고마워. 로봇 씨도 한 말이지만 리수 넌 이상하게 특별한 존재와 잘 엮이는 것 같아. 나와 만난 것도, 강철을 데려온 것도, 또 ‘그 녀석들’과 문제가 생긴 것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지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이거야. 내 연구를 도와줘.”

“그, 임무 말인가요?”

“응. 이 현상의 실체를 알아내는 것 말이야.”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도와달라는 건지.”

“구체적으로 하는 건 없어. 하지만,”

누나는 잠시 말을 멎었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네가 좋아서 하는 소리야. 난 네가 선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는 걸 알거든. 마녀니까. 마녀는 그 사람의 본질을 읽을 수 있어.”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여자한테서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처음 유미가 널 소개해 줬을 땐 그냥 이상한 애구나 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몇 번 뿐이었지만 널 보면 볼수록 뭐랄까, 정말 투명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됐어. 유미도 그걸 알아보기 때문에 널 좋아하는 걸 거야.”

제발 빨리 본론을 말해주세요. 그런 오해 살 만한 말로 변죽만 울리지 말고.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내 편이 돼줘.”

“편……이라뇨?”

“그냥, 깊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하면……너무 직접적일려나? 우리는 밴드고 동료이긴 하지만 내가 꼴이 이렇다 보니까……여러 면에서 이해를 해줬으면 싶고……또…….”

“그만.”

나는 말했다. 소란 누나는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누나의 말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밴드이기 때문이다. 밴드는 친구보다도 동료보다도 위에 있는 무언가이다. 서로의 영혼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이며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관계인 것이다. 밴드 내에서 이해해달라는 말은 불필요하다.

“그런 말은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린,”

나는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소란 누나가 달빛마저 바랠 정도로 화사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잠시 그렇게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알았어. 괜한 걱정을 했네.”

누나는 끌어안고 있던 빗자루를 바깥으로 내밀더니 홱 몸을 던져 거기에 올라탔다. 이층 아래로 뚝 떨어지면서. 나는 덜컥, 하여 창가로 달려갔지만 누나는 약올리기라도 하듯 빗자루에 탄 채 두둥실 떠올랐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잖아요.”

“후훗, 미안해.”

빗자루는 천천히 고도를 높였다.

“밤이 늦었으니 그만 돌아갈게. 네 마음은 잘 알았어. 원래 내 얘기만 간단하게 하려 했는데 이상하게 길어졌네. 잠을 너무 방해한 게 아닌지 모르겠어.”

“그럴 리가요. 누나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누나는 금방이라도 솟아오를 듯 빗자루 끝으로 하늘을 찌른 채 창가를 맴돌았다.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우리 밴드 멋있게 해보자.”

“그래요. 놈들이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혼내주자고요.”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아까 만난 녀석들 말이야. 아무래도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뭔가, 라뇨?”

“응. 아직 단서는 못 잡았는데 수상한 힘이 약하게나마 느껴졌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아까 로봇도 그런 얘길 하던데, 그 아몬인가 하는 녀석일까요?”

“우리쪽 힘은 아닐 거야. 그랬다면 내가 알아봤겠지. 그리고 내 생각엔 로봇 씨는 마법 쪽으로는 완전히 깡통인 것 같아. 마법을 알아보는 힘 같은 건 없을 걸?”

내 생각엔 다른 쪽으로도 깡통인 것 같다만.

“그럼 어떻게 안 걸까요? 그 로봇은.”

“아마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얻었을 거야. 감시카메라를 해킹한다든지, 뭐, 그런 방법으로 말이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 로봇 씨가 쓰는 힘이나 에너지에 대해선 전혀 알 수 없어. 직접 말해주기 전까진.”

그렇다면, 그것은 소란 누나, 로봇 이외의 제 3의 이존재라는 얘기이다.

나는 소란 누나가 사라져간 하늘을 한동안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볼을 짝짝 두드리고 자리에 누웠다.

귀 밑에 뭐가 걸리적거려 집어보니 로봇이 준 통신기였다. 자기 전에 그것의 기능이라도 한번 살펴보려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전자시계 기능이 있었고 버튼이 세 개 있었다. 로봇도 꽤나 섬세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이것저것 만져보니 온도계라든가 플래시, 스톱워치 따위의 잔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통신 기능은 옆의 노브로 조절할 수 있었다. 노브를 아래로 돌리니 화면에 OFF 불빛이 떴다, 한 번 더 돌리니 ALL이라고 떴다. 반대로 두 번 돌리니 로봇의 얼굴임이 분명한 이모티콘이 떴다. 한 번 더 돌리니 강철이라 짐작되는 아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디자인 센스도 제법 있는 녀석인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어느 노브로 돼 있었더라? 아래로 두 번, 위로 세 번. 그렇다면 처음 노브의 위치는…… 로봇의 얼굴이었다. 소란 누나와 이야기 나누는 내내 통신이 연결돼 있었다.

로봇 녀석은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역시 그들 사이에는 모종의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은 언급할 단계가 아니겠지. 나는 일단 그들을 지켜보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생각지 못한 일로 잠자리가 늦어졌다. 아침잠이라도 충분히 채워 줘야 하므로 나는 알람을 느지막이 맞춰두고 잠들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토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 세상이라니. 20세기를 살았던 인류는 감히 상상이나 해봤을까?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이 이루어낸 진일보의 혜택을 미처 누리지 못하고 예정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아침 내내 울려대던 핸드폰 때문이었다. 진동으로 해두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었다. 더불어 Painkiller같이 하트를 사정없이 찔러대는 음악을 벨소리로 지정해 둔 것도.

-이제야 일어나다니, 내가 전화를 몇 통이나 했는지 알아?

꿀만 같은 7시에 나를 깨운 것은 유미였다. 나는 내심 유미가 기상천외한 초능력을 고백하지 않을까 기대 반 걱정 반 전화를 받았다.

“이번엔 뭐냐. 난 마음의 준비가 다 됐으니 어서 정체를 밝혀라.”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빨리 세수 하고 우리 집으로 와. 몸만 달랑 오면 안 돼. 연습할 준비 다 하고 와야 돼.

“이렇게 일찍 왜? 연습은 열두 시부터잖아.”

-잔말 말고 와.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우리 집 위치는 알아?

“알 리가. 근데 너 소란 누나한테 우리 집 주소 알려줬었냐?”

-아니. 주소도 모르는데 어떻게?

“아냐, 아냐.”

나는 괘씸하기도 해서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유미의 집은 의외로 가까웠다. 버스를 탈 필요도 없이 조금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그걸 알아서인지 유미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걸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뭐 하다 이제 온 거야? 만일 내가 널 대접하려고 라면을 끓였다면 이미 다 불고 식어버렸을 거야.

“그래서, 라면은 끓인 거야? 나 아침도 안 먹고 와서 배고픈데.”

-그러니까 만일 그랬다면 말야. 이럴 줄로 뻔히 예상이 되는데 내가 라면을 끓이고 앉아 있겠어?

“뭐야. 언제까지 오라고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그걸 굳이 말로 해야 돼?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시지. 난 분명히 빨리 오라고 했잖아. 그러면 예상 소요시간은 준비하는 데 10분, 뛰어오는 데 10분, 도합 20분 내로는 도착 했어야지.

예이,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문이나 열어주시죠.

-밴드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바로 시간이라고. 서로의 시간을 소비하는 밴드이니만큼 시간관념이 불명확하면 바로 해고 사유야. 알았어?

이리저리 시간을 끄는 꼴이 내가 그렇게 늦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오 분쯤 지나자 대문이 열렸다. 유미는 현관문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갓 드라이를 하고 온 건지 머리는 차분하면서도 촉촉함이 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느긋해 보였다.

“자, 들어오라고.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내 집을 보여주는 건 네가 처음일 테니 영광으로 알아.”

그런 걸로 치면 우리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영광은 변신 로보트가 가지고 갔군.

“난 왜 부른 거냐. 이른 아침부터.”

“따라와. 그럼 알게 돼.”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특이한 구조의 집이었다. 현관에서부터 왼편에 바로 거실이 있는 것은 비슷했지만 오른편으로는 벽이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 방문이 하나 있었으며 현관에서 마주보는 건너편에는 방문 하나와 계단이 있었다. 2층 집이었다. 오른편 열린 공간으로 부엌이 있었고 앞치마를 한 아주머니가 거기에서 나왔다.

나는 재빨리 고개부터 숙였다.

“유미 친구구나. 어서 와. 유미가 모처럼 남자친구를 데려오느라 아침부터 그렇게 부산을 떨었구나.”

“어엄마!”

유미는 낮게 힘을 줘 말했다.

“호호호. 이름이 뭐니? 같이 밴드 하는 친구라고 했니?”

“리수예요. 모리수.”

“멋있는 이름이네. 그래, 우리 딸이 어디가 마음에 들어……”

유미는 아주머니의 앞을 막아서서는 부엌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는 쓸 데 없는 소리밖에 안 하니까. 올라가자.”

“흐음.”

“잘 부탁해. 사위……”

“어엄마!”

유미는 내 손목을 잡고 계단으로 이끌었다. 한 명이 간신히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나무 계단이었다.

“하여간, 부모란 존재는 교우 관계에 일절 도움이 안 된다니깐. 이건 역사적 진실이니 새겨들어.”

그런 걸 새겨들어서 뭘 어쩌자는 건지.

“그런데 너네 집 부자냐?”

나는 화제도 돌릴 겸 말했다. 살면서 이층집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우리 집도 이층이긴 하지만 다세대 주택이라 이층 한 층만 쓴다. 이렇게 집 안에 계단이 있는 집은 한국에서 보기 어렵다. 드라마에서는 많이 나오지만.

“아니. 이건 옛날 집을 개조한 거야. 원래 일층뿐이었는데 인테리어 고치면서 증축했어. 그래서 이층은 좀 좁아.”

정말 이층 면적은 일층의 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복도가 있었고 양 옆으로 방이 하나씩 있었다. 유미는 왼쪽 방문 앞에서 섰다.

“잠깐 여기 있어.”

토끼가 배를 드러낸 꼴의 문패에는 알파벳으로 'YOU&ME'라고 적혀 있었다. 슬쩍 열렸다 닫힌 방 안으로도 토끼가 몇 마리 보였던 것 같다. 보기엔 저래도 소녀 취향이란 말이지.

잠시 후, 유미는 끙끙대며 커다란 상자를 들고 나왔다. 한 귀퉁이에는 오래 본 것 같은 그리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그래. 내 엠프야.”

“이걸 들고 나오는 이유는 설마하니……. 아니겠지. 그보다 차라리 어머님이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어, 어디 계시지?”

“아냐. 자네는 이걸 들어야 돼. 그러라고 부른 거니까.”

그 이름도 유명한 펜더 엠프. 크기로 보아 100와트짜리이며 무게도 아마 20kg정도는 나가겠지. 유미는 엠프를 내게 던지듯이 밀어 넣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뒤로 기울어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걸 나 혼자 들라고?”

“어쩔 수 없어. 난 이 작은 엠프와 케이블과 기타를 들어야 돼. 음, 기타정도는 거들어줄게.”

“차, 차를 이용함이…….”

“아빠는 나가셨어.”

“그럼 로봇을 여기로 부르면…….”

“이 대낮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난 어젯밤에도 드럼을 옮기느라 죽을 고생을 했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또 부려먹어야 하겠냐? 엠프는 확실히 드럼보다는 들기 편했지만 무게는 막상막하였다. 나는 그 좁은 계단을 내려가는 데에도 진땀을 빼야 했다.

“어쩔 수 없어. 탓하려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서로의 부모님들을 탓해야지. 꾸물대지 말고 어서 가. 내가 이렇게 일찍 부른 데는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꼼지락대서는 언제 연습실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거든.”

“알았으니까 뒤에서 차지 좀 마.”

“난 기타 두 개에 이 엠프까지 들어야 된다고. 중심을 잡기가 훨씬 어렵다고.”

“그럼 나랑 바꿀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하렴.”

정말이지 막무가내군. 이런 행패를 어머니가 보면 과연 뭐라고 하실까.

“어머, 수고하네. 유미 친구. 시원한 음료수라고 마시고 갈래? 아직 봄이지만 그걸 들고 학교까지 가면 많이 더울 거야.”

아깐 사위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달짝지근한 탄산음료 한 컵을 홀짝 마시고 다시 엠프를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녀석 장난 아니게 무겁다고.

 

하여간 나는 엠프를 옮기는 데 하루치 체력을 전부 소진하고 말았다. 컨테이너 구석에 엠프를 대충 처박아 두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진 그럭저럭 버틸 만 했지만 나의 앞에는 그 근방에서 몽생미셸이라 불릴 정도로 극악의 각도를 자랑하는 진입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부터는 로봇 녀석이 숨어든 산속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중간에 몇 번이나 손에 든 엠프를 놓칠 뻔하면서 나는 이를 악물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었다. 오로지 밴드를 위해서.

“역시 근성 하나는 쓸 만하군. 하지만 체력이 문제야. 그래가지고선 매번 드럼과 엠프를 나를 수 없잖아.”

“매, 매번 이렇게 하겠다고!”

“농담이야. 엠프는 여기다 둘 거야. 어이, 그래도 되지?”

유미는 천장을 보며 말했다.

-물론이다. 변신 시 수납물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너희들이 있는 이 공간과 변신시의 공간 위상은 언제나 재조정되니까.

로봇은 말했다. 하여간 문제없단 소리지.

“물론 드럼은 계속 옮겨야 돼. 그건 우리 게 아니니까.”

하고 유미는 쐐기 박듯이 말한다.

“으으…….”

유미는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주변을 정리했다. 엠프를 적당한 구석에 놓고 콘센트와 케이블, 이펙터 등 장비를 세팅했다. 역시 좋은 엠프는 자기 기타에다 연결하는군. 유미의 기타는 텔레캐스터3)였다. 빨간 바디에, 흰 픽가드, 메이플 넥, 날카로운 헤드까지 전형적인 텔레캐스터 모양이었다. 기타 로고를 보니 펜더는 아닌 모양이었다. 유미는 케이블을 연결하더니 소리를 스릉 내보았다. 얼어붙은 심장마저도 녹게 할 것 같은 엠프의 소리가 좁은 방 안에 흩뿌려졌다. 그것은 텔레캐스터와 펜더 엠프가 아니면 절대로 낼 수 없는 소리였다. 세계에서 유일한 소리. 단순한 코드 체인지인데도 내가 처음 듣는 생기타 연주는 CD로만 듣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주었다. 과연 펜더의 오리지날 텔레캐스터였다면 어떤 소리가 날까. 안타깝지만 난 내 기타의 소리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엠프가 없었으니까. 내가 멋대로 수리, 개조한 이 기타가 제대로 소리가 날지도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어때. 기타 소리 괜찮지? 국내 소규모 공방에서 만든 기타야. 그것도 중고로 사서 아주 싸게 샀어. 돈이 있으면 엠프를 사는 게 낫다고 했거든.”

“어어……. 누가?”

“누구긴. 내 기타 선생님이.”

“너도 레슨 받고 있는 거야?”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은?”

“응. 아버지랑 합의를 봤거든. 공부, 레슨, 밴드 셋 중 단 두 개만 할 수 있다고.”

“뭐, 뭐? 잠깐, 그렇다면…….”

“응. 짐작한 대로.”

유미는 지금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 이전까지 유미가 활동하려던 밴드는 잠정 중단 상태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 남은 슬롯에는 무엇이 들어가겠는가.

“신경 쓰지 마. 내가 선택한 일인데 그거 갖고 누굴 원망한다든가 하는 성격 아냐.”

“그럼 다행이고.”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나 역시 그런 일로 쓸 데 없이 죄책감을 갖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만.”

유미는 말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기왕 하기로 한 밴드인데 설렁설렁 하면 안 되겠지?”

물론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만큼 각오가 서 있는 녀석은 없다.

나는 내 기타 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연습시간 전까지 눈을 붙이기로 했다. 유미는 여분의 잭 하나를 주었다. 유미가 쓰는 큰 엠프에 비해 초라하리만큼 작은 엠프였다. 나는 선을 꼽고 조금은 긴장하며 줄을 쳐보았다.

-지이잉.

소리는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기타 탓인지 엠프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리 괜찮네. 역시 그 기타는 깁슨인가? 뭐, 로고도 시리얼도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이게 괜찮은 소리인 거군. 좀 있다가는 엠프를 바꿔보자고 말해봐야겠다.

“어디보자. 역시 바디가 너무 무거워. 소리가 좀 죽는 느낌인데. 하지만 묘하게 서스테인이 기네. 알루미늄 보철 때문인가?”

하고 유미는 어쩐지 전문가스런 말을 한다. 그래봐야 나는 잘 모르지만.

나는 적당히 손을 풀다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고맙게도 강철 녀석이 쓰던 것 같은 이불이 있었다. 유미는 연습을 하고 있겠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집안이라서 엠프 볼륨을 최대한 죽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 기회에 마음껏 쳐보겠단다. 나는 그런 소리 따위야 무시하고 잘 수 있을 만큼 졸렸다.

 

나는 무대에 서 있었다. 아마도 그곳은 락 페스티벌 스테이지였던 것 같다. 우리는 같은 날 무대에 오르는 많고 많은 밴드 중에 하나였다. 시각은 아직은 벌건 낮. 인지도가 낮은 해외 밴드나 국내 인디 밴드가 주로 오르는 시각이다. 관중들은 여러 스테이지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무대를 골라 옮겨 다닌다. 아마도 우리 밴드는 골수 마니아들이나 알 법한 무명 밴드였던 것 같다. 우리 앞에 관중은 채 천 명도 되질 않는다. 그마저도 다른 스테이지가 꽉 차서 흘러들어온 사람이나 느긋하게 쉴 생각으로 넘어온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어디인가. 우리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이런 큰 무대에 서는 것만 해도 행운이다. 우리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한 숱한 무명 밴드가 우러러보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피크를 다잡고 관중 앞에 섰다.

하지만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관중들은 하나같이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야유를 보냈다. 빨리 시간을 때우고 다음 팀에게 무대를 넘기라는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꿋꿋이 시간을 채웠다. 단 한 명의 박수도 받지 못했지만 우리는 나름 최선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다음 순서가 무대에 서자 분위기는 일순 바뀌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관중석은 삽시간에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관중 수도 몇 배로 불어났다. 우리는 관중에 채여 그곳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한쪽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었다. 대체 어떤 녀석일까. 우리가 누구 앞에서 버티고 있었기에 이런 반응 차이가 나오는 것일까. 우리는 지켜보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시각은 갑자기 밤으로 변했다. 조명을 둘러싼 무대는 한층 커보였고 화려해 보였고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구석에 앉아서 주인공의 등장을 기다렸다.

세련된 의상. 정교한 연주. 퍼포먼스. 가창력. 관중의 호응. 그 어느 것으로도 우리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을 때, 무대를 쥐어잡고 있는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카메라에 잡혔다. 멀어서 알아볼 수 없었던 얼굴이었다.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얼굴.

단비의 얼굴이었다.

화면 안에서, 착각인지는 몰라도, 나는 단비와 눈이 마주쳤다. 착각이 아니었다. 화면 속 단비는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쩐지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손. 나는 그 손을 낚아채듯 잡았다. 하지만 단비는 싸늘하게 웃으며 나를 뿌리쳤다. 나는 허둥대며 단비의 옷깃이라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단비는 점차 멀어지고 나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단비에게 무력하게 손만 뻗을 뿐이었다.

 

“뭐, 뭐야!”

너무나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지만 나는 현실의 모습에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지척 앞에 유미가 있었고 유미는 오른쪽 손은 나에게 잡힌 채 다른 쪽 손으로는 구겨진 겉옷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물론 옷을 잡아당기는 것은 나였다. 유미는 당황한 듯 이를 악물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평소 본 적이 없는 반응이어서 나는 더욱 당황한 채 되는 대로 내뱉고 말았다.

“너 왜 이러고 있어?”

“몰라서 물어?”

유미가 손을 뿌리치자 나는 비로소 유미를 놓아주었다. 유미는 뒤로 돌아 헝클어진 옷을 가다듬었다.

“자네…….”

“으, 으응.”

여기선 먼저 입을 열지 않는 게 최선인 거지? 머릿속이 뒤엉켜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단비가 누구지? 혹시 감춰둔 여친?”

유미는 안 그래도 실눈 같은 눈을 더 째며 말했다.

“그, 그건 아닌데……. 내가 잠꼬대를? 걘 고등학교 와서는 한 번도 못 봤고, 그게…….”

“호오, 그럼 더 맞아야겠군.”

“아니, 왜!”

“몰라서 물어?”

유미가 땅을 짚자 어디선가 발뒤꿈치가 날아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올려 막았다. 막았다기보다는 팔에 맞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감싸고 웅크렸다. 그 사이 유미의 다리가 높게 솟구쳤다. 머리위로 그림자 진 뒤꿈치가 아찔하게만 느껴졌다. 인정사정없는 내려찍기에 나는 바닥에 코를 박고 말았다.

“연습이나 해.”

유미는 한동안 엎드려 데미지를 회복 중이던 나에게 기타를 던져주었다.

“하여간…….”

하고 중얼거리면서. 뒤에 뭐라고 말했는지 못 들었기에 되물었다.

“하여간 뭐?”

하지만 유미는 되려 성을 낸다.

“뭐!”

“아니, 뭐가…….”

이해할 수 없는 대화 전개다.

아무튼 아직 소란 누나도 강철도 오지 않았다. 약속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지금 자기도 뭣하고 해서 나는 연습이나 했다. 첫 합주곡은 내가 평소에 치던 곡이어서 특별히 연습할 게 없었다. 또 쉬운 곡이기도 했고. 내가 맡은 부분은 코드 스트로크정도가 다였다. 내가 혼자서 연습을 하자 유미가 끼어들었다. 원곡에는 없는 애드립이었다. 간단하고 블루지한 프레이즈가 간간이 끼어드는 정도였지만 그렇게 하니 아예 새로운 곡이 되어버렸다. 유미의 연주는 분명 훌륭하긴 한데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알아. 원래 이런 곡이 아니지?”

유미는 연주를 멈추고 말했다.

“응?”

“표정에 나와 있어. 뭔가 불만이라고.”

“아…… 응…….”

속마음을 들킨 기분은 썩 좋지는 않다.

“나도 원곡의 스트레이트한 느낌이 좋아. 공연 때엔 원곡대로 할 거야.”

“그래.”

왜인지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멋대로 다른 곡으로 넘어갔다.

“넌 왜 기타 치기 시작했냐.”

십여 분간 각자 멋대로 연주를 하다가 나는 물었다. 확실히 유미는 실력이 좋다. 동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말은 꽤 오래전부터 치기 시작했다는 얘기인데 그 동기가 궁금해지지 않겠는가.

“글세. 기타 치기 시작한 건 중2때부터인데.”

……그럼 나와 같잖아.

“뭔가 답을 찾고 싶달까. 그래서 배우기 시작했어.”

“답? 무슨 답?”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뭐야 그게…….”

유미는 배시시 웃는다.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비웃는 건지 즐거운 건지 알 수 없는, 어딘가 인생을 달관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 웃음. 속내를 도저히 들여다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야말로 묘한 웃음이었다. 내가 무턱대고 이 애에게 밴드를 하자고 청했던 것은 어쩌면 그 웃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냥, 어릴 적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의문이 들었어. 만일 우리가 우연한 미토콘드리아의 분열로 생겨난 존재라면, 어째서 우리에겐 의식이 있고 지성이 주어진 걸까? 하고 말야. 이상하지 않아?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면 우린 우주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데 이렇게 생각을 하고 문명을 만들게 되었다는 거야.”

“나름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걸.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그것을 안다고 믿기 위해서 신을 만들었지.”

얘기가 또 복잡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유미가 무엇을 구하려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그런 의문을 가졌었으니까.

“그보다 난 어릴 적 사건이란 게 궁금한데. 왜 그런 의문을 가지게 된 거야?”

“별 거 아냐. 여기선 중요한 게 전혀 아니지. 그런 개인의 동기야 갖다 붙이는 대로 해석할 수 있는 거잖아. 트라우마라는 게 그런 거지. 어떤 한 사건이 전적인 원인이 될 수 없어. 어떤 증상을 보고 거기엔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적당한 사건을 찾아서 납득해버리는 게 그런 거야. 그래서 난 정신분석 같은 건 안 믿어.”

나도 안 믿는다. 왜냐하면 지금 하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이를테면 위인전이나 성공 스토리 같은 거 말야.”

유미는 말했다.

“그런 걸 읽어보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사람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몇 번이나 찾아온단 말야.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뻥을 쳐. 봐라. 나는 이렇게 살아왔지 않냐. 그런데 왜 너희는 나처럼 못 하냐. 그건 차라리 사기야. 악질적인 사기지. 그런 사람들이 맞이한 결정적인 순간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냐. 아주 운이 좋은 사람에게 오는 거지. 아니, 숱한 사람들 중에서 어쩌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이나 성공하는 거지. 적자생존이랑 같은 거야. 사람들은 보통 진화를 의도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잖아. 높은 나무의 잎을 먹기 위해 기린의 목이 길어졌다고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어쩌다가 목이 긴 기린이 태어났고 그 기린만 나뭇잎을 먹었으며 나머지 99.9%의 목 짧은 기린은 그대로 죽어버렸을 뿐이야. 그게 적자생존, 우연히 환경과 맞아 떨어지는 조건을 갖고 태어난 자만 생존한다는 법칙이지.”

대충 이해가 가는 얘기였다. 적자생존이라. 좋은 것을 배웠다. 이런 게 시험에 나오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사는 게 의미 없어 보이는 거야. 왜 우리는 그런 사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가 하고.”

“그래서 기타를 잡았단 거군.”

“응. 기타는 거짓말을 안 하거든.”

설명은 장황했지만 알 것 같았다. 그건 스승님도 내게 해주셨던 말이었다. 세상일과 다르게 기타는 순전히 연습한 만큼의 실력이 나온다. 그리고 기타는 매 순간 자신의 실력과 감정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므로 자기 내면의 음악을 하는 것이 음악인으로서의 의무이다. 스승님은 테크닉보다 그런 정신론에 치중해 가르쳐 주셨다. 생각해보면 스승님은 그냥 지나가는 중학생을 붙잡고 떠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이 기타를 물려줬을 때 나는 꽤나 놀랐었다.

“그 얘길 들으니 확실히 넌 아닌 것 같다.”

나는 말했다.

“뭐가 아냐?”

“이상한 능력자 같은 게 말야. 소란 누나나 강철처럼.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은 안 했을 거 같은데.”

“흐음.”

유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특별한 모습의 자신을 시뮬레이트하는 중이겠지.

“그럴지도?”

확신하는 답변은 아니었다.

“난 확실히 아무런 초자연현상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야. 얘기하나마나 너도 마찬가지겠지. 아마 그런 게 있다면 어디서 슈퍼히어로 흉내라도 내고 있지 않을까?”

유미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렇게 말하니 궁금해졌는데 유미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누구일까? 기타리스트라면 자기의 히어로 한 명쯤은 가지기 마련이다.

“슬래쉬.”

“슬래쉬? 의외네.”

슬래쉬라면 Guns n‘ roses의 전 기타리스트. 파격적인 아웃룩과 화끈하고 멜로디컬하며 충동적인 스타일, 그리고 허리 아래까지 내려 멘 레스폴로 유명하다. 그런데 유미에게선 딱히 슬래쉬의 느낌이 나지는 않는다. 연주도 차라리 정통 블루스에 가깝고 기타도 텔레캐스터를 쓰니 말이다.

“꼭 스타일을 따라할 필요는 없지. 좋아하는 거랑 내가 하려는 거랑은 별개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하려는 음악은 뭐야?”

“하려는 음악? 글쎄.”

유미는 그러고 말을 말았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정말 알 수 없는 녀석이다. 얼핏 느끼기에 자기 방어가 강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겉으로는 상당히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방심한 표정이라든가 속내라든가 고민이라든가 여타 안쪽의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 그냥 여자애들이 으레 갖고 있는 경계심일 뿐일까.

“그럼 넌?”

유미는 말했다.

“넌 왜 기타를 잡았어? 그 선생님을 만나서?”

직접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단비가 없었으면 난 록을 듣지 않았을 테고 베이더 경은 불타지도 않은 채 얌전히 방안에서 썩고 있었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내가 지금 외고에 다니고 있을지. 나는 단비 이야기를 꺼내도 좋을지 조금 고민했다. 왜인지, 이 자리에서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별달리 둘러댈 말도 없고 하여 그냥 다 이야기하기로 했다.

“흐응.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기구한 사연이네.”

이제 와서는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럼 우리는 그 애 대신이라는 거네?”

움찔. 유미는 어쩐지 날이 선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선 듯 부정하지 못했다. 정말 미안하게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 학교에서 밴드를 모집하려던 것이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경에서이지 않았던가.

“바로 부정 못 하네.”

혹시 입에서 서리가 뿜어져 나오는 것은 아닌지, 힐끗 곁눈질 했다.

“아냐. 그건 지난 일이고, 지금 난 우리 밴드의 기타리스트야.”

나는 대답했다.

“그래?”

유미는 그러고 말 뿐이었다.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말없이 잼 세션을 하며 보냈다. 물론 반주는 내가 솔로는 유미가 한다. 난 유미처럼 즉석에서 멜로디를 치는 건 전혀 못하니까.

“나 왔어―”

두 사람의 합주는 강철의 목소리로 끝나버렸다. 강철은 소란 누나와 함께였다. 오는 길에 만났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합류하자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첫 합주의 느낌은 신세계였다. 그야말로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고, 내가 혼자서 반주를 따라 연주하는 것도 아니었다. 네 사람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물론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세 시간 정도 합주를 하고나니 음의 아귀가 서로 들어맞는 것이 보였고 첫날 연습이 끝날 때쯤에는 한 군데도 틀리지 않은 거의 완벽한 수준의 합주를 해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밴드구나.

나는 그때 그것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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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펜더 사의 레오 펜더가 디자인한 기타. 텔레케스터의 전신인 브로드캐스터와 에스콰이어는 세계 최초의 솔리드 바디 기타(속이 꽉 찬 전자기타)이기도 하다. 만화 BECK(학산, 2000)에서 유키오가 쓰는 노란 기타가 이 모델이다.

Writer

존모리슨

존모리슨

Moonlight kiss
Otherwhere you are
By november
I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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