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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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람들은 이상한 악기를 쓰는군. 뭐야 이게? 귀가 너무 아프잖아.”

아몬은 말했다. 그 녀석 말이다. 우스꽝스런 옷을 입은 별나라 왕자님 아몬이 마이크를 잡고 서 있었다. 녀석은 마이크가 신기한지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귀를 갖다 대 보기도 한다. 촌티 나게 뭐하는 짓이냐.

“네놈이 여긴 왜 있는 거냐!”

나는 외쳤다. 아몬은 깜짝 놀라 내 쪽을 돌아보았다.

“뭐야! 왜 거기서 나오지? 한참을 찾았잖아!”

“다음이 우리 차례니까 여기 있는 거지. 넌 왜 이런 데 와서 행패냐?”

“받을 것을 받으러 왔을 뿐!”

“받을 거라니? 여기서 엄마 젖이라도 찾는 거냐?”

“시끄러! 네가 납치한 공주를 돌려받으러 왔다!”

이젠 내가 납치범이 다 돼 버렸군. 지금은 상대해 줄 시간이 없다. 나는 진행요원을 불러서라도 녀석을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녀석이 빨랐다.

“디멘션 프로텍터!”

녀석은 주문을 외우며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녀석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기더니 보랏빛 아지랑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전에 보았던 그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짓이야! 사람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야?”

소란 누나가 나서서 외쳤다.

“이번엔 또 뭐가 나타나는 거야?”

나는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갑자기 어두워진 탓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도망 다녔다. 나는 비로소 보랏빛 안개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안개처럼 보이던 그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빛을 산란시켜 시야를 가리는 수증기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똑같은 채도의 보랏빛으로 물든 건물과 하늘에 비해 사람들은 원래 색 그대로 보였다. 보랏빛 세상에 오로지 사람만이 본래 색깔을 갖고 있었다. 그 탓에 사물은 희미해지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만이 뚜렷해졌다. 이 안개는, 편의상 안개라고 하자, 방향감각에 혼란을 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무작정 뛰어다닐 뿐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그마저도 소수의 엑스트라로 붐비는 효과를 주려는 드라마처럼 정신없이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이건 차원 맺기 마법이야. 특정 공간을 원래의 세계와 분리시키는 마법이지. ‘이쪽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원장이 걷히면 무효가 돼.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국제 마법사 회의에서 채택해서 가입국가 마법사는 반드시 지켜야 돼.”

소란 누나는 말했다.

“일종의 보호구역 같은 거로군요.”

“그렇지. 그런데 건물은 몇 번이고 부서져도 상관없지만 사람은 아니야. 사람은 마법의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된다고.”

“그건 문제네요. 그럼 여기 있었던 일도 전부 기억한다는 뜻?”

“공간 자체를 없었던 것으로 하는 거니까 여기 있었던 기억도 사라져. 하지만 우리 같은 사건 당사자의 기억은 보존돼.”

“그것 참 편한 기능이네요.”

마법 시전을 끝낸 아몬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공주. 이제 사정을 다 알게 됐어요. 다 저 녀석이 꾸민 짓이죠? 걱정 마세요! 아무리 악독한 놈이라도 내가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공주를 구해내겠어요!”

“잠깐, 누가 뭘 꾸몄단 거야?”

“다 알고 왔다! 이놈, 단순히 공주에게 달라붙어 잇속을 챙기려는 초파리 같은 놈인 줄 알았지만 그렇게 악독한 놈이었을 줄은! 공주의 차가운 이슬과도 같은 정신을 달콤한 말로 흐트려 놓고서는 공주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고선 공주와 강제 결혼을 하려는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건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시치미 떼지 마라! 다 듣고 온 얘기니까. 증거 따윈 필요 없다. 나쁜 건 네놈. 네놈이니까! 악기 좀 친답시고 공주와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네놈 잘못이다!”

“…….”

어쩐지 놈이 날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몬 왕자! 그만 둬. 뭔가 오해 하고 있는 모양인데 리수 군과 난 아무런 관계도 아니니까.”

소란 누나가 말했다. 녀석을 진정시키려 하는 말이겠지만 어쩐지 듣기가 조금 서운하다.

“오! 공주!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까지 그자를 감싸시는 건가요? 이것은 필시 저자가 사악한 저주를 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그 저주를 풀어주겠습니다.”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 누구한테 그런 이야길 들었는지 몰라도…….”

“아닙니다. 공주. 지금의 당신은 언제나 총명하고 아름다웠던 셰리엔느 공주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사악한 기운에 잠식당해 있을 뿐입니다.”

왕자가 되면 저런 꼬맹이의 입에서 그런 오글거리는 말이 나오는 걸까? 녀석은 다시 수인을 맺었다.

“그렇다면 악의 원흉인 저 바가지 머리를 제압하는 것만이 당신을 구원하는 길!”

“잠깐! 이건 바가지 머리가 아니라 존 레논 머리라고!”

“시끄럽다! 나의 분노에 찬 응징을 받아랏!”

아몬은 수인을 맺으며 외쳤다.

“소환! 신수 자미라이온 에스케!”

다시 녀석에게서 빛이 나면서 발 아래에,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저번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커다란 진이었다. 그것은 집자리 만큼 넓었고 거기서 나타난 검은 연기도 집채만 했다. 연기가 이리저리 뭉치고 꼬아져서 만들어진 괴물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것은 흡사 거북처럼 생겼다. 하지만 거북은 아니었다. 거북이라면 딱딱한 등껍질을 등에 얹고 다니는 파충류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네 발로 기기는 했으나 등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신 온 몸이 갑옷처럼 껍질로 둘러싸여 있었고 관절은 거북보다 훨씬 유연해 보였다.

그런 녀석이 학교 건물보다도 커다랗다.

입을 벌리고 있는 강철과 유미. 유미는 소란 누나가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해도 강철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다. 아무리 비상식적인 차를 갖고 있는 녀석이라 해도 차분히 상황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겠지.

강철은 말했다.

“멋있다! 저거 뭐야? 드디어 괴수 침략이야? 체리! 나와봐!”

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왜 이리 긴장감이 없어! 조금이라도 놀라봐라!”

-응답했다. 대장. 분석 결과 저 비정합물질은 스타 디스트로이어와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로봇이 말했다.

“상관없어! 그래도 괴물이잖아! 무찌를 수 있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진압은 가능하다. 출동을 원하는가?

“물론이지! 당장 달려와!”

“자, 잠깐!”

나는 대화를 가로막았다.

“거기서 여기까지 어떻게 온다는 거야? 그 깡통 녀석은 바퀴도 없잖아.”

“변신해서 오면 되지.”

“멍청아! 그럼 다른 사람한테 들키잖아! 문제 크게 일으키고 싶어?”

지구용자 체리버스터에게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으니,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 우주선 등 각종 탈것에 깃들어서 평상시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다른 용자들과는 달리 그 녀석은 하필이면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 앉아서 변신하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럴 거면 변신은 왜 하는 거냐? 그냥 평소에도 로봇 모양으로 적당한 데 숨어 있으면 되는 거지. 밤이면 나름 눈에 안 띄게 숨어 다닐 수 있다지만 지금 같은 벌건 낮이면 어딜 가도 들킬 수밖에 없다.

“쳇,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법사에게는 마법소녀지! 나는 소란 누나를 돌아보았다.

“누나! 누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죠? 마법소녀잖아요.”

“으, 으응?”

누나는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 안 되나요……?”

“변신해서 싸우라고?”

누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와 괴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강철이 유미를 올려보며 마법소녀? 하고 묻는다. 유미가 귀엣말을 해주자 녀석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누나는 그리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마법소녀라 해도 여기서 알려진 모습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화에서처럼 괴물과 싸우는 모습을 생각하면 곤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본인도 마법소녀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로봇을 여기 불러보자고 얘기하려는데 소란 누나가 먼저 말했다.

“싸울 순 있어. 내가 전공한 것도 전투 마법이니까. 하지만…….”

내 예상이 무색하게 무려 전공이었단다.

“하지만? 거기에도 무슨 제약이 있나요?”

누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부, 부끄럽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변신하면!”

흐음.

그런 문제였구나.

“그치만 지금 급한데, 저 녀석 날뛰기 시작했어요. 그냥 눈 딱 감고 변신하면 안 돼요? 그냥 하면 되잖아요.”

나는 천천히 걸어오는 거대 거북을 보며 말했다.

“이봐, 자네.”

유미가 말했다.

“소녀의 결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이건 너무 중요한 문제라고!”

“맞아! 변신하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그래. 넌.”

소란 누나는 조금 울먹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싸늘한 두 여자의 시선. 예상 외로 심각한 반응에 나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아, 알았어요. 일단 자리부터 피하고 보자고요. 이대로 있다간 밟혀 죽을 것 같으니.”

나는 소란 누나의 손목을 붙잡아 이끌었다. 거대 거북의 앞발이 거의 우리의 머리를 스칠 뻔 했다. 쿵 소리를 내며 발이 우리가 있던 자리로 떨어졌다. 무대는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구오오오오――――――――――――――――”

괴물은 울부짖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역시 거북은 아닌 모양이다. 놈은 앞다리를 들어 사정없이 바닥을 짓밟았다. 무대며 기자재가 박살나며 철골이 튀고 불꽃이 일었다. 우리는 달렸다. 어차피 건물이야 차원장이 걷히면 돌아온다고 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 물품도 나중에 복구될까? 기타 같은 것 말이다. 세 사람이 기타를 메고 있으니 영 거치적거렸다.

“어이! 이쪽으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마스가 하나 서 있고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무작정 그쪽으로 가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스킨헤드 녀석이었다.

“쳇, 네놈들이냐? 어쨌든 빨리 타라.”

녀석은 말했다.

“흠.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지.”

“뭐, 인마?”

녀석은 우스꽝스럽게 이마를 찌푸렸지만 문을 열어 주었다.

“짐부터 이리 내.”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베이더 경을 내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순간 갈등했다. 하지만 그 찰나가 지나고 나는 기타를 내어 주고야 말았다. 신세지게 됐다는 나약한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었다.

“크하하하! 기타는 잘 받아간다!”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내 가슴팍을 밀어 차버렸다. 뒤에서 유미와 소란 누나가 받아주어 바로 일어날 수 있었지만 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히고 차는 출발해 버렸다.

“뭐야! 내 기타를 왜!”

이 난리 통에 어째서 내 기타를 가져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차는 달려갔고 뒤에서는 괴물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다시 달렸다. 거대 거북도 우리가 밟히지 않아 신경질이 났는지 고개를 치켜들더니 길게 우짖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자라마냥 쭉 빼내 밀고는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것이었다.

한 아름이나 되는 노즐에서 불을 뿜어대는 화염방사기처럼, 어마어마한 불길은 한 순간에 근방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젠장, 가지가지 하는군!”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달렸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저 놈들이 내 기타를 왜?”

“애초에 목적이 기타였던 것 같아.”

유미는 말했다.

“그걸 노리고 나한테 접근한 거란 말야?”

“응. 어쩌면 이 대회를 알려준 것도.”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저 놈은 설마 저 괴물이 나타날 것도 알았단 말야?”

“연쇄적으로 그렇게 되네. 그렇게밖엔 볼 수 없어. 안 그러면 저 소환수가 나타난 시점에서 그렇게 차분하게 기타를 강탈해 갈 수 있을 수가 없어.”

그러고 보니 로봇 녀석은 서광고 녀석들 중 수상한 존재가 있다고 말했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내 기타를 손에 넣기 위한 음모였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제3의 수상한 힘을 가진 녀석은 스킨헤드 녀석에게 주문 같은 걸 걸어서 조종하고 아몬 녀석을 부추겨서 이 난리를 피우게 했겠지. 기타를 뺏어가려고.

하지만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내 기타를 도대체 왜?

나는 괜찮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달리는 데에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불에 타죽는 것보다 밟혀 죽는 것이 먼저다. 누나는 아직 아직인가요? 이제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고 이쪽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소란 누나는 갑자기 멈춰 섰다. 우리도 따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애원하듯이 누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미도 말없이 누나를 응시했다.

“모두, 뒤를 돌아줘.”

나는 그게 무슨 말뜻인지 금방 이해하지 못했다. 유미가 내 볼을 잡아당기기 전까진.

“언니. 고마워.”

“아냐. 내가 쓸 데 없는 고집을.”

유미는 나와 강철을 잡아끌었다.

드디어 나오는 건가? 마법소녀 소란의 변신이. 여전히 부끄러운지 변신 장면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 사소한 지적 호기심보다 우리의 목숨이 먼저이다. 따라서 나는 다시 힘을 내 달렸다. 강철이 엎어졌지만 유미와 나는 양손을 잡아 일으켜 계속 달렸다.

“매지컬 멜로우―”

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

“샤이―닝―”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눌렀다.

“볼륨 업!”

하지만 이내 뒤에서 뻗쳐 오는 찬란한 빛에 잡아 채인 듯 멈춰서 소금기둥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곳에는 천사가 있었다.

 

짧게 올라간 치마. 살짝 부푼 블라우스. 코트처럼 나풀거리는 재킷. 더욱 강조된 리본까지. 얼핏 봐서는 교복을 고쳐 입은 것 같지만 엄연한 마법소녀 소란의 변신 모드이다. 거기에 커다란 너구리 고글에 헤드셋과 마이크, 마법봉 대신에 커다란 베이스가 장착되고 긴 머리는 손수 뒤로 올려 묶는다.

“마법 전사 매지컬 멜로우―”

양 손을 머리 위로 교차 한 채 회전, 살짝 내리감은 눈, 그리고 깜찍한 미소와 함께 녹아버릴 것 같은 윙크로 마무리.

“등장☆”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 무수한 고난과 핍박을 견뎌 내며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나는 바로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행운아이다. 마법소녀 소란의 변신 장면을 볼 수 있는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행운아이다. 마법소녀야말로 보물이다. 국보와 인간문화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동시 등록해서 대대손손 사랑해야 한다!

“침이나 닦고 빨리 따라와!”

목덜미로 유미의 뒤꿈치가 날아들었다.

“소란 언니야 내가 인정하는 여자긴 하지만, 하여간 남자 놈들이란…….”

난 목덜미를 잡힌 채 유미에게 질질 끌려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유미의 다른 한 손에는 강철이 들려 있었다. 멍하니 어딘가에 홀리기라도 한 표정이다. 역시 네놈도 별 수 없구나.

우리는 마법소녀가 잘 싸울 수 있도록 멀찍이 물러났다. 가까이에서 누나의 활약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전투 현장은 너무나 위험했다. 괴물 거북은 둔한 앞발을 휘두르거나 입에서 불을 뿜어댔다. 소란 누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공격을 피하다가 달려들어 베이스를 내리쳤다. 베이스를 말이다. 역시 기타류는 뛰어난 무기라니까. 적당한 길이의 손잡이에 질량을 이용한 내려찍기는 정말이지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녔다. 마법이 실린 베이스는 어떨까. 충격량을 계산해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따금 빗맞은 차량이 걸레짝이 되어 수십 미터를 튕겨져 나가는 것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는 법이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떻게 공격이 이뤄지는지 알 수 있었다. 공격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현을 튕긴다. 베이스 자체 엠프가 있어서 두두둥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각종 효과가 생기는 모양이다. 스윙이 몹시 가벼워지기도 하고 불꽃에 휩싸이기도 하고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했으며 때때로 목이 죽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공격도 치명타가 되지는 못하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치고박고 하다 보니 괴물도 지친 기색을 보였다. 그 틈을 노리고 소란 누나는 길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역시 필살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주문이란 다름 아닌 베이스 연주와 함께 하는 허밍이었다. 가볍게 리듬을 타며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멜로디를―아마 저쪽 세계의 멜로디겠지―흥얼거리자 반짝거리는 빛이 주위를 감싼다.

“천상의 멜로디로 감싸안으리―”

라고 외쳤던 것 같다.

그러자 아래에서부터 빛의 폭풍이―그런 게 있다면―소란 누나를 감싸 안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소란 누나는 베이스를 자루 메듯이 쥐고 달려들었다.

“이야아압!”

힘찬 기합과 함께.

몇 차례 가볍게 도약을 하더니 자세를 낮추고 베이스 머리를 잡고서 몸통을 바닥에 끌다시피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원심력과 빛의 에너지를 더해서, 베이스를 힘껏 날려버린다. 해머던지기처럼. 마치 빛을 뿌리는 바람개비처럼, 베이스는 빙글빙글 돌며 날아갔다. 그 엄청난 기세 앞에선 그 어떤 것도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다. 커다란 괴물마저도.

괴물은 빛의 베이스에 직격 당하고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갔다.

“이겼다!”

나와 유미는 얼싸안고 소리쳤다. 유미는 잠시 후 나를 보고는 밀쳐버렸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보이지 않던 아몬이 나타나 말했다. 녀석은 흙투성이에 옷 이곳저곳에 그을음이 있었다. 저 덩치가 날뛰는 데에는 제아무리 주인이라 해도 멀쩡하지 못했겠지. 그런데 그는 다시 주문을 외웠다.

“재소환 주문! 다시 태어나라, 에스케!”

그러자 흩어지고 있던 연기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아몬! 어째서 금단의 주문까지!”

소란 누나가 외쳤다.

“아직도 이해 못 하시나요? 공주!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지겹다, 지겨워. 하지만 우리의 마법소녀가 다시 해치워 주겠지.

하며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형태를 갖춰가는 연기를 보며 나는 점차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소환된 괴물은 이전보다도 두세 배는 더 커졌던 것이다. 높이만 한 20m는 될까. 그 크기만이 아니라 그 녀석이 차지하는 공간 때문에라도 나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겉모습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이게 불리하면 덩치를 키우는 파워레인저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야? 소란 누나도 막막함을 느끼는지 베이스를 바닥에 짚고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누나! 상대할 수 있죠?”

나는 외쳤다. 소란 누나는 내 쪽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이건…… 금지된 마법이야. 신수에게 마법력을 강제로 주입해서 훨씬 강하게 만드는……. 아직 내 마법으로는 무리야!”

“그, 그럼 어떡하죠……?”

소란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으하하하핫! 마법 전대를 이끌고 온다면 모를까 이 강화 신수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겁니다! 공주. 공주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다면 나에게로 돌아오시지요!”

아몬은 기고만장해져서 외쳤다. 괴물은 떠들 틈도 주지 않았다. 좀전에 당한 것이 분했는지 소란 누나를 노리고 앞발을 휘둘렀다. 덩치가 커졌음에도 움직임은 오히려 빨라진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부피의 앞발을 휘두르자 그 풍압에 우리까지 쓰러지고 말았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마다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소란 누나는 공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튀어다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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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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