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Ou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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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o.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럼 그 선택지는 누가 만드는데? 어른이? 이 사회가? 여기 분기점이 다양한 멀티 시나리오 RPG가 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시나리오가 달라지고 엔딩도 달라지는 방식의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해도 그것이 모두 미리 준비된 선택지라면, 그 선택을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정원이 있다고 하자. 그 정원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2×2×2×2×2×2…… 숫자상으론 아마 무한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마련된 길이라면, 나는 그 정원에서 헤매면서 자유롭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살면서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과 그것은 다르다. 말이 곡해돼 있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선택이라 하면 자기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길만을 생각한다. 외고에 들어가서 공부해서 대학가고 취업하거나, 일반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해서 대학가고 취업하거나. 아니면 대학가고 취업 준비생이 되거나. 대학 가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좋은 대학 가거나 나쁜 대학 가거나. 공부 잘 하거나 못 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바보 같은 소리. 미로에 갇혀 있으면 미로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벌써 미로에 갇힌 아이들을 많이 봐 왔다. 중학생 주제에 성적이라는 외줄 위에서 노심초사하며 비틀거리던 녀석들.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 수능에 맞춘 공부를 하던 녀석들. 남들이 하는 대로,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사는 방법밖에 모르는 가여운 녀석들. 그들에게는 옳은 선택과 잘못된 선택밖에 없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틀렸다! 정해진 선택지만이 있다면 어떤 선택이 옳은지 잘못됐는지 누가 판단해주는데? 선생님이? 부모님이? 사회가? 학교가? 그들 말마따나 올바른 길에 들어섰다 치자. 그럼 선택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 누가 그 길을 끝까지 안내해 주나? 결국 책임지는 것은 당사자가 아닌가. 우습지 않은가? 강요된 길을 가면서 그 책임은 오로지 본인이 져야 한다니! 내가 세계 제일의 락커가 되기로 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기타를 잡았을 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 단비밖에는 없었다. 선생님도, 가족도, 심지어 친구도 내 길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웃기는 소리 말라고 해. 내 길은 내가 간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나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말겠어.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단비는 나를 끝까지 응원해 주었다. 서로 힘내자고. 같이 외고에 들어가서 음악을 하자고. 그게 나의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밴드를 하고 있다. 동료도 그야말로 최고다. 세상 어느 밴드 드러머가 전설의 로봇을 부리며, 어느 베이시스트가 환장하도록 깜찍한 변신을 할 수 있으며, 어느 기타리스트에게 그런 도전적이고도 도발적인 눈빛이 있겠는가. 하나같이 내가 이끌기에는 벅찰 정도로 엄청난 내력을 지닌 친구들이다. 어째서 이런 녀석들만 나에게 온 건지 모르겠다. 하여간 난 이런 녀석들과 밴드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선택지를 내려줬다면 그건 아마도 신이겠지. 난 멋대로 할 거다. 누구도 내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님을 내가 증명하고 있잖아.

바로 나라는 존재가.

유미는 실신한 것 같았다. 단비는 울고 있었다. 어느 하나 내가 빨리 가서 어떻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기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놈은 나에게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녀석의 룰을 따른다면 말이지.

“어이! 거기 후드 쓴 놈!”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유미와 단비는 정말로 위험에 빠졌으니까. 녀석은 역시 멈춰 서지도 심지어 힐끗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말했다.

“너 내가 정말로 블러디 몽키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냐?”

놈은 내 기타를 블러디 몽키라고 불렀었지. 놈은 걸음을 멈추었다.

“허튼 수는 소용없다.”

놈은 말했다. 입이 말라간다. 만일 내 기타에 이상한 주술 같은 게 걸려 있어서 곧바로 알아볼 수 있다든가 한다면 말짱 꽝이다. 하지만 나는 도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 그리 꼼꼼한 성격이 아니지? 그냥 열어서 확인해보면 될 거 아냐. 과연 그게 피의 레스폴인지.”

“너, 이 기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스승님한테 직접 받은 기타다. 웬만한 설명은 다 들었다고. 모르는 척하려고 했는데 네가 엉뚱하게 가져가려 하는데 어쩔 수 없지.”

“‘이 기타’가 스승님께 받은 거라고 했지? 그럼 맞다는 거군.”

아차차. 유도심문에 걸리고 말았다.

“아니아니, 그 기타가 그 기타라는 게 아니라 그 기타는 그냥 내 기타로 네가 말한 그 기타 얘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기타인 줄 안 거야!”

허겁지겁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애처롭군. 뭐, 노력도 가상하니 확인이라도 한번 해주지.”

그렇게 말하며 놈은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놈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진다.

“우하하핫! 그거 봐라! 그게 어디 블러디 몽키냐. 내가 중고로 산 장작 레스폴이다!”

놈은 낮게 신음을 흘린다.

“이건…… 도저히 기타로 봐줄 수 없는 장작이군. 어째서 이렇게…….”

“남의 기타를 함부로 장작이라 하지 말라고.”

“방금 네가 그렇게 말했잖은가.”

놈은 짜증나는 듯 인상을 쓴다.

“아무튼! 확인했지? 이제 그 기타를 돌려주고 유미와 단비를 풀어주시지.”

“기타가 어쩌다 손상을 입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거야 문제없고 헤드와 시리얼만 보면 알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기타를 끄집어냈다.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거기에도 이미 방비가 돼 있단 말씀. 나는 유미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기타는 로고가 무엇인가로 긁혀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유미에게서 기타의 내력을 듣고 나서 나는 그 스토리를 지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스승님은 나름 존경한다만 쪽팔린 건 쪽팔린 거다. 애니메이션에 나온 기타 같은 것을 들고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도중 나는 헤드에 붙이는 상표를 따로 판다는 것을 알아냈다. 보통 다른 회사 기타를 깁슨이나 펜더 따위로 둔갑시킬 때 쓰는 방법이었다. 공방에 주문해서 나무에 아예 새기는 방법도 있었고 간단하게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도 있었다. 나는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그래서 내 기타 헤드에는 깁슨 로고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스티커라 금방 티가 나겠지만 이 어수선한 상황에 눈치 채지 못하기를 빌 뿐이다. 또 시리얼은 불길과 함께 진작 사라져 버렸다. 피에 물든 핑거보드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보랏빛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놈은 헤드를 보더니 인상을 썼다. 스티커인줄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놈은 내 기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진짜는 어디 있지? 블러디 몽키는 어디 있냔 말이다!”

“으하하핫! 내가 그걸 말할 듯 싶냐? 정 알고 싶으면 유미랑 단비를 풀어줘. 여자애들이잖아.”

놈은 두 주먹으로 내 목을 조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놈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눈에는 퍼런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기타가 먼저다. 어디 있는지 말해! 이 차원막이 걷히기 전에!”

“케엑. 이거…… 놔…….”

놈은 나를 바닥에 팽개치더니 배 위에 올라타고 목을 내리눌렀다. 울대가 조금 세게 눌렸지만 말은 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지를 주지. 지금 저 애들을 풀어주거나, 이대로 하늘이 원래대로 돌아가길 기다리거나.”

“쳇.”

눈의 불꽃이 크게 번쩍였다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여자애들 쪽을 보니 상황이 조금은 나아져 있었다. 단비를 둘러싼 남자들은 동작을 멈추고 차렷 자세로 섰고 유미는 땅에 발이 닿았다.

“이제 쟤들이 괴롭진 않을 거야. 빨리 위치를 말해.”

“헤헷. 그건 유미가 갖고 다녔다. 유미가 들고 다니던 긱백 있지? 거기 있는 게 그 기타야.”

놈은 단비 곁에 있는 남자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한 녀석이 우리가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되는 대로 말한 거였다. 녀석이 빨리 움직여주길 바라면서.

내 주머니에 있는 통신기를 통해 이 상황을 전달받은 강철이. 후드 놈이 서 있고 유미와 단비가 괴롭힘 받고 있을 때에는 섣불리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놈은 지금 나와 가까이 붙어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 강철은 영악한 녀석이다.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녀석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무전을 들었더라면.

후드는 고개를 들어 내 위쪽을 보고는 나를 거세게 흔들었다. 유미의 기타를 확인한 듯했다.

“아니잖아! 이 자식, 저건 싸구려 텔레캐스터잖아! 진짜 기타는 어디 있어!”

결정적인 순간이다. 나는 이런 결정적인 기회에 이렇게 말을 해보고 싶었다.

“네 뒤에 있잖아. 멍청한 놈.”

놈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강철의 풀 스윙이 놈의 얼굴에 직격했다. 좀 전에 놈이 떨어트린 내 기타였다. 강철은 내 생각대로 해주었다. 나는 붙잡힌 유미와 단비를 보자마자 주머니 속에 넣어둔 무전기부터 켰다. 설령 강철이 자고 있었다 하더라도 로봇은 듣고서 어떻게든 해주리라 생각했다. 로봇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나는 강철이 로봇의 조언을 받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믿었다. 아니, 확신했다. 그리고 후드 녀석의 주의가 내게 쏠렸을 때 행동에 나서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놈은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일어나서 강철에게서 기타를 받았다.

“땡큐. 자알 했어!”

하이파이브! 녀석을 만난 뒤 처음으로 기특하단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헤드에 붙은 스티커를 떼면서 엎드려 머리를 흔드는 후드 녀석의 등에 대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걸로 끝인 것 같군. 후후훗.”

나는 소리 내 웃으며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나를 보고는 허둥지둥 일어나려 했지만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기타를 살 때는 보증서를 꼭 확인하세요.”

이렇게 헐리우드 기분을 내는 것도 괜찮단 말이지.

본가의 기타 샷이 무엇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녀석은 마법을 쓸 생각도 못 하고 파리해진 얼굴로 엉덩이를 찧고 슬금슬금 기어갈 뿐이었다. 나는 기타를 치켜들어 최종 승리의 기분을 실컷 만끽했다.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스윙의 느낌이 상쾌하다.

‘까―앙.’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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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곡표

 

Judas Priest - Painkiller

Deep Purple - Smoke on the water

Led Zeppelin - Moby Dick

Van Halen - Can't stop loving you

Mr. Big - To be with you

Bart Howard - Fly me to the moon

Led Zeppelin - Stairway to heaven

Smashing Pumpkins - Today

Writer

존모리슨

존모리슨

Moonlight kiss
Otherwhere you are
By november
I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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