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3.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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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00 Mar 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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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Kale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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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자들……이라니?"

 회사와 코뮌이라는, 그것만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도에 새로운 요소를 집어넣는 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나름대로 연구니 뭐니 하기는 하지만, 이미 개발해놓은 기술을 재해석하는 것에 불과해요. 문제는 그 기술을 개발했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수현 씨를 끌어들였다는 거죠. 연구 여기저기에 중요한 데이터로 등장하니까, 재해석하는 입장에서도 일단 확보해야 뭔가 더 진전을 본다거나 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거겠죠. 사실 특별히 틀린 생각도 아니고요."

 여전히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일단 그것을 제쳐놓고 화제를 조금 전으로 돌려 물었다.

 "그러면, 회사하고 코뮌이라는 건 실재하는 건가?"

 지금의 내가 무슨 말을 듣는다고 선뜻 믿을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을 누군가가 말로 긍정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말 한마디가 마치 애매하게 이어지던 것을 칼로 잘라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지금 그런 말을 바라고 있었다.
 여름은 한동안 초점 없는 시선을 이쪽에 던지다가 말했다.

 "회사야 확실히 정부 아래 있는 기관이니까 뭘 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아도 있다는 것 자체는 드러나 있으니까, 실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가 없고……코뮌은 좀 특이한 집단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죠. 회사 쪽에서도 대외적으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부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이권 집단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아마도."

 나는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입에서부터 조금 쓴 느낌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여름은 조용히 웃었다.

 "그거 말고도 중요한 의문 같은 게 여러 가지 있겠지만 말예요……예를 들어 그들이 정말로 당신을 확보하려고 하는가, 그런 것도 있겠죠. 그건 맞아요. 저야 어떤 연구가 있었고 거기에 수현 씨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고 있다 보니까, 확신할 수 있어요. 그쪽에서 지금까지 한 짓을 봐도 그렇고. 좋은 대답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보니 더 따져 묻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다들 알고 있는 것, 인정하고 있는 것을 혼자만 부정하고 있었다는 유리감 같은 것이 조금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문제는 복잡해지고, 대체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그만큼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다. 일단 지금 당장은, 자신은 없다고 말하지만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하는 눈앞의 둘에게 기대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싶기는 했다. 그것도, 한참 생각을 단순화시키고 나서야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면 어쩌지……."

 인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결국 문제는 다시 그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문제를 그 둘에게 슬쩍 밀어놓고 있었다.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를 것 같지도 않으니, 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를 지켜볼까 했다. 그저 더 생각하는 게 싫어서 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나야 돌아다니는 데는 진저리날 정도로 익숙해졌으니까. 피해 다니는 거라면 아마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물론 두 명이서 움직이는 거면 문제가 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그런데 사실 다른 방법이 딱히 없어. 그런 게 있으면 우리도 이러고 다닐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그들도 딱히 좋은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과연 그런 집단이 마음먹고 나 같은 사람 하나를 어떻게 하려고 든다면 개인의 입장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지, 개인은 그런 대상 앞에서는 지극히 무력한 것이다. 우습지도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별달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위해서는 인정해야만 했다.

 "정말 그거 밖에 없는 거냐."

 인하가 물었다. 여름은 허탈한 웃음 끝에 답을 덧붙였다.

 "더 있었으면 좋겠네. 나도."

 이 모든 게 우스운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쓸데없이 일을 부풀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없었다. 그저 내 바람일 뿐.
 인하가 물었다.

 "그러면, 얼마 동안이나?"
 "글쎄, 그쪽에서 관심 없어질 때 까지겠지. 일 년 정도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평생이 될지도 모르고."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평생이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인하는 장난스레 웃고 있었다.

 "평생 동안 데리고 있을 수 있어?"
 "뭐, 그 정도쯤이야. 연구 참가자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는 기꺼이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지 어떤지 이전에 그런 건 사양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만큼 집요하지는 않을 테고, 얼마동안 성과가 없다면 손을 떼고, 그 연구를 진전시킬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대책 없는 기대일 뿐이기는 하지만.
 여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야……정말로 이 일보다 중요한 일이 생겨서 거기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거라면 꼭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도대체 그 중요한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연구에 관련되어 있는 것일 테니까. 그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면 이쪽에는 앞으로도 별로 신경을 안 쓸지도 몰라. 그러면 앞으로도 서로를 견제할 정도로만 움직이겠지. 아마. 희망적인 해석이지?"
 "……참 희망적이네, 그래."

 여름은 책상에서 내려와서 서성이다가 벽에 몸을 기댔다. 확실히 조금 작은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체구뿐만 아니라 얼굴에서도 앳된 느낌이 들었다. 하는 행동으로는 가늠이 잘되지 않았지만, 외양으로 보면 나나 인하보다 몇 살 어리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는 고갯짓으로 인하를 가리켰다.

 "넌 어쩔 거야?"
 "나? 따라다닐까?"
 "귀찮아. 따라오면."

 여름은 짐짓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가, 인하가 탐탁찮다는 표정을 짓자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같이 움직이긴 해야지. 이대로 자취방에 돌아가는 건 위험하니까……그쪽도 네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고, 거기다가 이번 일도 있으니까 네가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을 걸? 우리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지면 너한테 가장 먼저 찾아가겠지. 별로 좋은 일은 안 일어날 거야."
 "그렇겠지 뭐."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시, 그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스며올라왔다.
 여름이 말했다.

 "방학이잖아?"
 "방학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내는 방법이 어떠냐의 문제야."

 그렇게 말하면서, 인하는 짐짓 질린듯한 웃음을 띄워보였다.
 방학도 아직 한 달 정도 남아있기는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일이 길어진다면, 이 일 때문에 휴학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일 때문에, 라니. 그 일 때문에 어딘가로 끌려가려다가 어찌저찌 헤어 나왔던 주제에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마치 그런 식으로 부정하다보면 없었던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넌 어째 수현이한테만 부드러운 거냐."
 "너는 만만하니까."

 여름이 답했다. 굳이, 나라고 만만하지 않을 것은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그런데……우리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고 넘어가야 되지 않을까."

 점심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여름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어쩐지 그녀는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제야 점심시간이 거의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꼭,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엄연히 하루의 일과로서 점심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왜 그래?"

 인하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여름이 말했다.

 "나 오늘 서두른다고 아침 거르고 왔어. 그러는 동안 너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고."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일 년, 아니면 평생."

 그녀는 장난 섞어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가, 말했다.

 "내가 잠깐 나갔다 올까?"
 "무슨 소리야?"

 나름 일부러 나선 것이었겠지만 여름의 표정은 더 딱딱해졌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나간다는 자체가 위험한 짓이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셋이 같이 나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녀가 말했다.

 "그냥 뭐라도 하나 시켜."
 "뭐……꼭 그럴 필요 없이, 점심 한 번 정도는 걸러도 상관없지 않아?"

 인하는 짓궂은 표정을 짓고 있다.

 "넌 배고프지도 않냐."

 그게 약점인지 여름이 조금 저자세로 나왔다.

 "알았어, 알았어."

 그녀는 전화를 걸려다가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넌 뭐로 할 거야? 어째 통 말이 없어서……."

 혹시나, 싶었던 것이지만, 내가 같이 있었다는 걸 정말로 깜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 동안 그 둘은 다시 이전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여전히 별달리 할 말이 없어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주워 모으기만 하고 있었다. 굳이 해볼 만한 말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러면 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그다지 답이 나올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물음 정도를 빼고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움직일까?"

 문득 인하가 물었다.

 "점심만 해결하고 바로 나서지 뭐. 지금은 기운이 없어서 안 되겠고."
 "기운이 있나 없나를 따지고 있을 때야?"

 그러고 보니 서로 어떻게 알게 되었던 걸까. 하는 말을 보면 유난히도 친해보였다. 평소에 말이 그리 많지 않은 인하가 농담 삼아 이런저런 말을 끌어오는 것도 상당히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둘 사이에 끼어들기보다는 관찰한다는 느낌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내가 물었다.

 "둘 다, 어쩌다 알게 된 거야? 서로?"
 "여름이 부모님이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연구진에 속해있었고, 우리 부모님이 그 분들하고 조금 아는 사이였어. 일이 이렇게 되니까 우리 부모님이 그 분들을 조금 도와드렸고……그러다보니까 서로 알게 됐어. 아무래도 우리 쪽에 들르는 일도 잦아지기도 했고, 그러다보니까."
 "이래저래 수현 씨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한테 진 빚이 많다고 할까요……."

 예의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여름이 말했다.

 "학교 같은 건?"
 "그만 뒀어요. 어차피 별로 다니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서."

 일부러 그런 답을, 그런 생각을 끌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의 감상의 끄트머리를 알고 싶었던 것이랄까. 나는 답을 받아들고 나서 고민했다. 그런 경우에는 안 됐다고 말해줘야, 아니, 생각해줘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그녀의 입가에 서린 웃음은 차가웠고, 그건 마치 그런 생각의 여지를 거부하는 견고한 벽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지쳤는데……그런 것도 익숙해지는 건지, 지금은 그냥 여행 다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세요?"
 "아니……별로."

 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도, 초등학교 때의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그건 꼬박꼬박 점심을 챙겨도 기운이 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음, 그러면 피곤하려나."

 그녀는 그런 말을 던졌다가, 실소를 흘렸다.

 "사실 저도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좋아하게 되었다고 할까……아니, 좋아하게 되도록 되었던 거죠. 그렇게 강요당한 듯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더라고요. 따져보면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이 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라서 그런 건지."

 그녀는 에둘러, 내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인하가 한 마디 끼어들었다.

 "나한테는 어째 물어보지도 않네. 앞으로 대책 없이 끌려다니게 생겼는데."
 "너는 이상하게 신경이 안 쓰이는 타입이라서 그래."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인하에 대한 기억에 기대어서 보면 별로 그렇지 않았지만, 여름과 어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싶기도 했다. 사람이야 누구하고 같이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니까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모습이 표면으로 끌려나온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떨떠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였던 거지? 난 특별히 그런 쪽에 관련되었던 기억이 없는데."

 그러고 보면 그것도 이상한 부분이었다. 연구에 내가 관련되어 있느니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로 그 프로젝트와 내가 관계가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내가 모를 리 없지 않은가. 그 관계라는 것이 이름 세 자만 언급되고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연구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을 안 했어요.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을 거예요. 상담 선생님 이름은 이정은 이었고요. 기억나죠? 그리 예전 일은 아니니까."

 얼마 지난 일도 아니었고, 상담 회기도 20주를 넘었으니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얼굴을 기억하는데 약한 나로서도 그녀의 얼굴은 어렴풋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그녀가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살짝 소름끼쳤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수현 씨가 조금 특이하다는 걸 알게 되었던 거죠. 상담 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예요. 수현 씨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고. 물론 그건 부분적인 표현이긴 하지만요. 수현 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의식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요. 예를 들면 감정을 다른 사람이 그저 느낄 때 수현 씨는 의식화해서 그것이 어떤 것이고, 그러므로 표면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는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렇지만 그런 일상적인 부분을 넘어가는 것들은 수현 씨도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었어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상담 초기, 의식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나서 이정은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연구자들이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수현 씨한테 실험해봤던 거예요. 특정하게 만들어진 문장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투약도 해봤죠."

 그녀가 말했다.

 "언제 커피 마셨던 적 없어요? 상담 시간 전에, 기다리고 있을 때 잠깐 마시라면서 선생님이 커피를 줬을 텐데."

 언젠가 한 번 그랬던 적이 있다. 커피믹스일 텐데도 너무 맛이 없어서 조금 이상했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연구가 아닐 것이라는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이야기는 이미 그런 짐작 따위는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심각한 부분은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 것도 있었죠. 배경이 똑같은 꿈을 자주 꾸지 않아요? 어떤 도시가 있고, 그 도시에는 관문이 있고요. 수현 씨는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살잖아요. 분위기는 평온하지만 이런저런 일들도 있죠. 안 그래요?"
 "……그런 건 말 한 적 없는데."

 어쩌다 지나가듯 꿈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은 있지만, 그런 꿈은 이야기했던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꿈을 자주 꾼다는 자체는 사실이다. 늘 배경이 같고, 나는 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꿈이니만큼 전개가 이상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꿈 치고는 조용한 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아니, 최소한 그런 기억이 없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말을 하도록 유도했다거나 한 것은 아닐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을 읽어낸 결과물이에요. 물론 그 꿈에 대해서도 연관된 여러 가지 것들이 더 있기는 하지만……여하튼 그런 식으로, 상담동안 수현 씨에 대해서 분석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기도 하고, 그랬죠. 그러다보니까 프로젝트나 연구 자체가 수현 씨 개인에 대해서 상당히 기대고 있어요."

 여름은 잠깐 말을 고르는 듯하다가,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서 회사나 코뮌 쪽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거겠죠. 별 거 아닌 성격 같아 보이지만 비슷한 케이스를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아니, 그런 케이스가 없었다고 해야겠죠. 의식 분석 같은걸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기 단계의 기술로는 제대로 되지 않거나, 아니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질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일단 확보한 케이스에 더 집중하자는 말이 나왔던 거고, 뭐, 그렇게 계속된 거죠."

 결국 희생자는 나 한 명으로 끝났다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기는 했지만, 직접 듣고 나니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것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그나저나 꿈 참 평범하네."

 인하는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왔던 이야기 중 한 대목을 끌고 와서는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날 가지고 장난쳤다는 거 아냐. 안 그래?"
 "에, 그건 그래요. 사실 할 말이 없어요. 뭐라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는 말 가지고는 안 되겠죠……."

 그렇지만 그 일이 너무 싫어서 그런 건지, 싫다는 느낌이 구체적으로 뭉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막연히 그것이 싫다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결론, 즉 그래서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라는 부분은 빠져있었다. 그래서, 여전히 내키지 않는 일이기는 해도 더 붙들고 있고 싶지 않았다. 여름은, 한창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식으로 끊겨서 그랬는지 한참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괜찮아. 별 상관없어."
 "괜찮으세요?"

 그녀의 그런 반응이, 어쩐지 우스웠다.
 사실 딱히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괜찮지 않다고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뿐이다. 거기다가 그녀가 그 연구자들 중 한 명의 딸이라고는 해도 그 뿐,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일단 그녀 자신이 말한 부분으로 한정해서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나를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별 의미가 없는 거 아냐?"

 내가 물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그랬죠. 그 이후에는 그걸 기초로 일반화할 수 있었으니까요."

 
 문득 인하가 말했다.

 "전화한지 얼마나 됐지?"
 "20분 정도 지났어."

 수시로 시계를 보는 게 거의 습관이었던 터라 기억하고 있다.

 "올 때 거의 다 됐네."
 "준비라도 하고 있을까?"

 여름이 말했다. 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지금까지 여기 틀어박혀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쉽게 문을 열어주는 건 이상하니까요……."

 그러면서 여름은 바지 주머니에서 금속제의 통을 하나 꺼냈다. 그 안에는 하얀색 알약이 몇 개 들어있다. 그녀는 알약 하나를 입에 넣었다. 특별히 삼키는 것 같지 않은 걸로 봐서는 입에서 녹이는 쪽의 약이 아닌가 싶었다. 준비라느니, 이상하다느니 하는 말에다 갑자기 약까지 꺼내는 모습에 떨떠름해진 채로 그 둘을 바라보았다.

 "무슨 약이야, 그거?"
 "비밀……은 아니고, 나중에 설명할게요."

 여름은 잠깐 외시경을 들여다보고는 문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가려는걸 막아놓고는 혼자 뭘 하려는 건가,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막는 것까지는 하지 못했다.

 "시간이 있으려나 몰라."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는 나가서는 문을 닫고 열쇠로 잠가버렸다.


 한동안 실내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한동안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몇 분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지난 시간에 비해서 느껴지는 시간의 길이는 너무 길었다. 인하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 볼까 싶었다가, 어쩐지 그 정적에 눌려서 그러지 못했다.

 "뒷문이 어디 있었더라?"

 그녀는 창문 가까이에서 블라인드를 들춰 올리고 그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녀를 따라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건물 뒤 밖에 볼 수 없었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창문이 모두 건물 뒤쪽을 향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건물 뒤쪽은 사실 별 것 없는 공터였다. 색이 바랜 벽면과 그 출처가 궁금한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는, 신기할 것도 없는 모습을 한. 그런데, 먼지가 쌓여 흐릿한 유리 바깥, 그 조잡한 풍경 가운데 차 몇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는 가로등 하나만 서 있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또다시 대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려서 그런지, 어지럽다는 것 빼고는 별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저게 우릴 쫓아왔다고 하고 싶은 건 아니지?"
 "글쎄. 아마도 그런 거 같은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그게 대책 같은 것이 있다는 의미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름이는?"

 걱정스러워져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이 건물에서 살았으니까, 따로 무슨 통로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닐까,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한계였다. 그렇지만 그런 게 있다면 혼자 나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잠깐 기다리면 걔가 알아서 할 거야. 코뮌하고 회사 상대하는 데는 익숙한 녀석이니까."
 "걔 만큼이나 우리 중요하지 않아?"

 내가 그렇게 재촉해도 인하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블라인드 바깥을 불안스레 바라보았다. 차만 서 있을 뿐 특별히 사람이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계단에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난리 났네 이거……."

 내가 불안한 느낌에 잠겨있는데 반해, 그녀의 말은 지나칠 정도로 태연했다.
 과연 난리라는 정도의 표현으로 충분할는지 의심스러웠다. 발자국 소리는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다. 주위가 정적에 쌓여있었기에 차가운 바닥에 부딪치는 그 소리가 더없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직 외시경으로는 그들의 모습이 잡히지 않는다. 불안에 주저하는 생각에 반해,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몸은 당장 뛰쳐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했다. 그들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때,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소리 하나가 건물을 가로지르며 쩌렁쩌렁 울렸다. 귀를 막기는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짓이었고, 귓속에선 여전히 잔향이 남아 감돌았다.
 건물 안에 남아 울리던 소리가 가라앉을 무렵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차로 가!"
 내가 바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하는 거리낌 없이 문을 열었다. 분명 여름의 목소리기는 했는데, 바깥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문 양옆으로 남자 넷이 제멋대로 쓰러져 있었을 뿐이다.


 3층이라는 높이가, 그리고 거기까지 이어져있는 층계가 무서울 정도로 높고 길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내 걸음은 너무 느렸다. 그 차이가 정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뛰어 내려가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던 것을 간신히 바로잡고 표지를 보면 겨우 절반 정도를 내려왔을 뿐이었다.
 바깥에는 차 몇 대가 있었다. 인하가 끌고 온 차 정도는 알아봤지만, 나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아무도 없었다면 계속 그러고 있었을 것을, 인하에게 붙잡혀 바로 옆에 세워져 있었던 차에 탔다. 잠깐 뒤에 여름이 운전석에 올랐다.

 "여기."

 언제 챙겼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점심으로 주문했던 것들을 들고 나타났다. 일단 조수석에 두기는 했지만, 그건 시켰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었다. 나는 물론이고, 태연한 척 하고 있었던 인하도 정신이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름은 별 지체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건물 근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복잡한 시가에 차가 밀리다보니 시간에 비해 나온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만큼 초조한 느낌이 들었지만, 초조하다는 것이 늘 그런 것처럼,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둘은 사놓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두고 나름 행복해 보이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 거야? 이제?"

 내가 물었다. 옆에 앉아있었던 인하는 지금까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는 눈치였고, 대신 여름이 운전석 너머에서 답해왔다.

 "글쎄, 정확히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이경진 선생님 쪽에 가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쪽에서는 얼마 전에도 언제 한 번 오라는 말이 있었고요. 물론 지금 경우하고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쪽도 해놓은 것이 있는 만큼 거절하지는 못하겠죠."
 "책임 같은 걸로 접근하는 건 별로……."

 애초에 어떤 걸 요구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같은걸 늘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이런 상황에는 거부당하기라도 하면 일이 꼬여버릴 테니까. 여름도 같이 다니는 입장이니 그런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그 분이라면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도 느끼지 않을까 싶은 거죠."
 "전화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닐까?"

 내가 물었다. 그래도 그냥 태연한척 했으면 됐을 것을, 여름은 정말로 아차 하는 표정을 지어버렸다.

 "아, 그러네요. 해볼까요?"

 그녀는 한 손으로 전화를 걸어 귀에 가져다댔다. 잠깐 그러는가 싶더니 여름은 전화를 내려놓았다.

 "꺼져있네요. 집으로 해볼까……."

 여름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걸린 모양이었다.

 "정민 씨야? 나하고 두 명, 그러니까 윤수현 씨도 같이 있는데, 잠깐 가 있어도 될까?"

 통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도 전화할 때는 말을 짧게 줄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정말로 간결하다 싶은 통화였다. 사실들, 그 중에서도 필요한 것들만 나열해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괜찮다는데, 그러면 곧장 가죠."

 어쩐지 인하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지만, 별 상관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쯤 걸려?"

 내가 물었다.

 "세 시간 정도?"

 차에 오래 있는 것에 약한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생각보다 긴 시간이기는 했다. 그나저나, 서울에서 세 시간 거리라. 그렇게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후보가 몇 개 있었다.

 "어디야?"

 내가 재차 물었다.

 "속초예요."
 "속초 가본 적 있어?"

 인하가 물었다.

 "가본 적 없는데……바닷가라는 정도 밖에 몰라. 거의."
 "잘 됐네. 이참에 여기저기 가보는 거야. 속초 말고도."

 여기저기 가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것이 잘 된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래도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서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조금 가볍게, 바다 풍경을 그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바다에 대한 추억을 그리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몇 개의 정경도 쓸쓸한 모습들 위주였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간 모습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바닷가에는 몇 명 사람이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마치 기억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모습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내가 자연스럽게 바닷가라고 그리는 것은 저녁, 내려깔리는 어둡고 차가운 공기를 맞고 있는, 그리 깨끗할 것도 없는 모래사장의 모습이다. 그런 풍경 속에서 바다라고 하는 것은 공간의 한쪽에 한계를 지어놓는, 차오른 물이라는 정도의 의미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여름이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속초도 아마 날씨가 흐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추억 속에 자리 잡은 바다의 모습을 조금 바꿀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차의 문에 팔을 대고 기대 창밖을 바라다보았다. 물론 여기서 바다가 보일 리 없었지만. 차는 이제 고속도로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어떻게 된 거야? 난리도 아니던데."

 나는 그 모습을 그 이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 알아듣기는 했는지 여름이 답했다.

 "그 사람들의 의식에서 제 모습을 지우는 거죠. 이것도 연구 성과예요. 모습을 지워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 그 다음에는 적당히 손을 썼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생각이 바로 들기는 했지만, 딱히 그게 아니어도 남자 넷을 혼자 상대했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보니 별로 할 말이 없어졌다. 말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진데, 조금 더 안 되느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려고 그 약을 쓴 거예요. 쓰고 나면 어지러워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운전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내가 걱정스레 물었다. 사실 그것 말고도 걱정스러운 모습들이 여럿 있었다. 우선, 그녀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모습부터가 그랬다. 몸에 비해서 차가 너무 크다는 느낌을 아무래도 지울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까, 그것도 세 시간 동안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뭐, 운전 못 할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러고 나서, 나는 잇달아 든 생각들을 정리해서 꺼내놓았다.

 "그런데 말이야……의식에 간섭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 그렇기는 한데, 그러면 상대방한테 뭔가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약이 네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건 가능하겠지만 널 보는 다른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한 거잖아."

 의식에 간섭한다는 자체는, 지금 기술로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러는 방법으로 그녀가 든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그렇죠? 당장 저도 이해가 안 가요.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일단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하고, 그리고 이것의 원리에 대해서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렇게 설명했으니까 그냥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사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런 방식을 특별히 저한테 숨겨야 할 이유 같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그녀라고 해서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으리라는 느낌에 대한 확증이 되어버렸다. 그녀나 인하도, 무언가 모르겠다는 느낌에 눌려있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든 설명해주려고 나서고는 있지만, 그래서는 결국 원하는 답이 아니라 혼란만 잔뜩 늘어나고 말 것이다.

 "처음에 연구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그럭저럭 과학적인 연구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안 들지만 말예요. 그런 부분도 있고 해서……요즘은 이 연구 자체에 대한 회의도 들어요. 뭔가 이상하다, 잘못됐다 싶은 거죠. 아무래도 처음부터 하지 않았던 게 좋지 않았을까, 하고."

 애초에 연구 방법부터 문제가 많지 않았는가. 그래서인지 그들도 대외적으로 연구 결과를 공개한다거나 하지도 못했고. 물론 그들은 공개 따위와는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한 것뿐이었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이유야 어쨌건 프로젝트는 성과가 나올 때까지 진행되었던 모양이고, 이미 해버렸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속초라고 쓰여 있는 요금소를 지나 도착한 곳은 시내 한쪽에 있는 어떤 집 앞이었다. 오는 동안 바다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바다가 멀리 있지는 않을 테니 마음먹고 조금 나가기만 하면 바로 보이기는 할 터다. 그래도 바닷가라는 생각을 하고 왔는데 서울에서와 거의 동일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건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건물은 적벽돌로 지어져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난 듯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짙은 색의 벽돌의 표면이나, 특별히 복잡할 것 없이 반듯한 선들을 늘어놓은 듯한 건물의 외관에서 그런 분위기가 풍겼다. 이런 곳을 집으로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쓸모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날씨가 구름이 몇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았으니까 별로 꺼림칙하지는 않았지만, 비라도 오고 있었다면 주위에 음울한 공기가 떠돌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그것은 건물의 모양이나 주위의 모습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짙은 색의 적벽돌로 지어진 건물들 대부분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끌려나온 것뿐이었다.
 여름이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안에는 남자 하나와 여자 한 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이십대 중반 정도로, 남자 사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물론 내가 가늠한 나이는 틀리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자신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나이가 많은 쪽이 여름이 말했던 이경진이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먼저 들어선 여름이, 그 남자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 선생님."

 여름과 시선이 마주친, 나이가 많은 쪽의 남자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서 상당히 천진한 분위기가 풍겼다.

 "자네는 무슨 일인가? 자네도 초대를 받은 건가?"

 그렇지만, 초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예상과는 다르게 이경진이라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에……네, 뭐, 그렇죠."

 인하는 별로 안면이 없는 것인지 천장이나 바닥을 이리저리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쿡 찌르고는 조용히 물었다.

 "……도대체 쟤가 모르는 사람이 누구야?"
 "아마 없을걸. 여기저기 많이 따라다녔다고 들었어."

 그러는 동안 그들은 서로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뒤쪽은……윤수현 양인가?"
 "아, 네."

 그는 나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인하가 속삭였다.

 "너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 같다."
 "자네는?"

 그러던 그녀에게도 잠깐 화제가 날아들었다.

 "정인하라고 합니다."
 그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역시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인하는 잠깐 멋쩍어하는 웃음을 지었다.
 남자가 여름에게 물었다.

 "단순히 초대만 받은 게 아닌 거 같은데?"
 "초대를 받기도 했지만, 일도 좀 생겨서요."

 남자는 잠깐 시선을 낮추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네. 회사 일인가?"
 "회사하고 코뮌이죠."

 그녀는 난처해하는 웃음을 짓고 있다. 남자는 가벼운 웃음을 띄우며,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서 있지 말고 앉는 게 어떤가?"

 우리는 그제야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자에 앉고 나니 그동안 밀려있었던 피곤함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듯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나서 세 시간 동안 차로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그런 느낌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
 남자가 말했다.

 "내 소개가 늦은 것 같은데, 박영하라고 하네."
 "한정민입니다."

 뒤따라 그의 옆에 있었던 여자가 말했다. 이름을 외우는데 약한 나에게 오늘은 유난히도 많은 이름들이 날아오고 있다. 이정도 까지는 괜찮지만, 조금 더 많아지면 분명 얼굴 아니면 이름 둘 중 하나를 포기하게 될 터다.
 여름이 물었다.

 "정민 씨는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집을 잠깐 맡아달라고 하시더라. 무슨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으니까, 금방 돌아오시기는 할 거야."

 그렇다면 정작 초대했다는 사람은 여기 없다는 걸까.

 "아무래도 선생님이 안 계시면 조금 그런데……."
 "괜찮지 않아? 오는 사람은 있다 가라고 하셨으니까. 초대한 사람도 있으니."
 "그냥 직접 허락을 안 받으니까 조금 그래서 그래. 여러 번 전화 해봤는데 안 받으시더라고."

 여름이 말했다. 내가 말 안 해줬으면, 아주 안 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선생님이야 전화 꺼놓는 경우가 많으니까."

 정민은 나와 인하를 바라보았다.

 "특별히 신경 쓰실 건 없어요. 비슷한 일로 여기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가 물었다.

 "차는 커피로 괜찮을까요?"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도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보니 그랬다.
 천장이 높은 건물이었다. 위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부터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네모나게 잘려 내려온 빛은 우리가 앉아있는 탁자의 절반 정도를 비추고 있다. 나는 시선을 사람에 맞추지 못하고 대신, 그런 빛이 내리 쬐이는 경계 같은 곳에 두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떤 일로?"

 여름이 박영하라는 남자에게 물었다.

 "나도 잠깐 놀러 오라고 하니까 왔는데……몇 명 안 부른 모양이야. 오는 사람이 없는걸 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민이라는 여자가 커피 잔을 들고 왔다. 감사합니다, 라고 떨떠름하게 말하고 나서도 나는 바로 마시지 못하고 그 갈색의 액체가 그리고 있는 소용돌이를 바라만 보았다.

 "아마 곧 오실 거예요."

 정민이 말했다.

 "……뭘 하고 계신건지는 아무래도 모르겠지만."
 "그 친구야 원래 그랬으니까."

 영하가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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