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작품 소개 "내일의 단편 경소설상"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14 Oct, 2011
청춘물

너에게

NOX&LUX 조회 수 3736 추천 수 7 목록

 

 

1년간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되는 학업의 압박에 플러스하여 용돈 벌이를 위해 시작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화근이라 할 수 있으려나.

아니, 사실 이런 이유를 대는 것은 굉장히 구차할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핑계에 불과하다. 그냥, 지극히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내가 잘 해주지 못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말만 앞서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만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그 상황만 빠져나가려는 내 버릇에서 비롯된 거다.

사실 여자 친구와 나의 관계는 이미 꽤 오래 전 부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사소한 이유로 싸우거나, 혹은 문자를 보내도 답신이 꽤나 오지 않거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는 등, 이미 여자 친구는 꽤나 오래 전 부터 이별을 준비해 왔을 수도 있겠지. 마치 물과 기름을 한곳에 부어버리고 휘저은 것처럼, 어느 순간 순식간에 우리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회복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밤낮을 울며 슬퍼한다느니, 혹은 병나발을 불며 그녀의 집 앞에서 난동을 피운다던지,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딘가에 사는 간호사씨 처럼 연인의 집에 찾아가 나와 헤어진다면 손목을 그어버리겠어- 하며 공포 영화수준의 협박을 하는 것처럼, 내 상태는 심각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슬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러한 시기에 이별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대비를 해 왔던 터라 슬픔의 강도는 조금 낮은 편이었다. 때문에 슬픔보단 오히려 후회감이 시간을 더할수록 더욱 더 커져갔다. 항상 말만 앞서는 내 자신에 대한 후회감이.

그녀는 앞으로 날 생각할 때마다, 분명히 한심한 이미지로만 생각하게 될거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내 이름이 나올 때, 복도에서 마주칠 때, 심지어 훗날 졸업앨범을 볼 때 까지도. 언제나 날 한심한 녀석이라 생각하겠지. 나는, 그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그 부분만은 꼭 돌이키고 싶었다.

 

 

“...... 그래서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렸다?”

아앙? 하며 짜증난다는 투로 나를 노려보는 이 녀석은 서화진.

편의점에서 만나게 되어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급기야 2학년이 되서는 같은 반에,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배정된 녀석이다. 아르바이트라 해봤자 여자친구와 관계가 악화 될 때 즈음 나는 그만두고, 그 뒤로 얼마 안가 이 녀석도 그만두어서 더 이상의 연결점은 없어졌다 싶었지만, 설마 같은 반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거지.

“...... 좋아. 대신에 조건이 있어.”

의외로 흔쾌히 들어 주나 싶더니, 역시나. 맨입으로는 도와주지 않는 건가?

내심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내 지갑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나올 수 있는 부탁이었으면 참 좋으련만-

“그 계획을 끝내고 나서도 계속 기타를 칠 것. 그게 조건이야.”

의외로 간단한 조건을 내걸고 멋쩍게 웃는 화진. 참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그게 자신에게 어떤 득이 되는가 물어봤더니만, 3학년 선배가 졸업을 하면 밴드에 기타리스트가 없기 때문이란다. 어이, 괜찮은 거야? 그 선배가 졸업을 하면 우리가 3학년이 되는 거잖아. 수능은?

“그딴건 밴드부를 이끌면서도 충분하다.”

매우 자신 있게 대답한다. 하긴, 이 녀석은 다소 불량스러워 보일진 몰라도 성적은 나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남자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 있을 법한 외모에, 성적까지 우수한 편이라 상당한 존경심이 일어날 법 하지만....

본 모습을 알게 되면 그리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 녀석은 외모가 준수한 편이기 떄문에, 첫 입학 당시부터 학생들에게 꽤나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 활동하는 부서는 밴드부. 성격은 쾌활하고 남자와도 허물없이 지내는 털털함을 함께 가지고 있어 남자는 물론 여자들에게도 꽤나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왜, 그 있잖나. 남자다운 여자아이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그러나, 작년 9월에 있던 학교 축제를 기점으로 이 녀석의 주가는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9월, 학교 축제. 나는 여자친구가 댄스부에 있는 터라 자연스럽게 공연을 관람하던 도중이었고, 즐겁게 공연을 지켜보며 축제를 만끽하고 있었지.

이 때, 밴드부도 어김없이 참가해 공연을 하였다. 그 곳에서 화진은 밴드 내에서 베이스를 담당하여 무난한 연주와 함께 프로 못지않은 자연스러운 퍼포먼스, 코러스까지 소화해내며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는데, 문제의 사건은 여기서 발생했다.

준비된 곡을 모두 공연하며 서서히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난데없이 화진은 베이스를 바닥에 내리 꽂아 산산조각 내는 게 아닌가? 물론 일부 학생들에게는 ‘멋진 참수형이다’라며 고개를 세로로 흔들만한 멋진 퍼포먼스였지만, 이곳은 고등학교다. 거기에, 여학생이다. 연주하는 곡? 가벼운 팝락 스타일.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 3박자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연실색했다. 그 덕분에 화진에게는 ‘기타 살인마’라는 여학생에게는 차마 붙이기 힘든 마초적인 타이틀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었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축제가 끝난 뒤 10월 즈음에는 연습실 대관을 놓고 대학생 밴드와 싸움을 벌여 꽤나 큰 이슈가 되었었고, ‘사랑과 나눔’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희망적인 자선 공연장에서 노브레인의 ‘거세’를 노래한다는 등의 만행으로 학교 내외적으로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나름 조용히 지내던 녀석이, 갑자기 축제를 기점으로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몇몇 학생들은 화진이의 한자 중에 불 화(火)라든가 재앙 화(禍)자가 들어가 있어 저주를 받은 게 틀림없다는 이해 못할 소리를 떠벌리고 다니기도 하였다. 火는 그렇다 쳐도 禍라니, 사람 이름에 그딴 한자를 쳐 넣는 부모가 있을까보냐.

아무튼간에, 그런 소문 아닌 소문이 나돌 정도로 상당한 기행을 일삼던 화진이는 다행히 2학년에 접어들어선 다시 얌전한 모드로 돌변해 조용히 학업을 수행 중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이 녀석의 락 스피릿을 내가 다시 일깨운 건 아닌가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지금 여기는 음악실. 내 부탁을 들어준 화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달려와 시범 연주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연주와 노래는 들어줄만한데 행동이 문제란 말이다. 갑자기 난데없이 헤드뱅잉을 하지 말라고. 그것도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서! 거기다 포니테일 머리다 보니까 무슨 봉산 탈춤을 보는 것 같잖아?

“자, 이런 느낌으로 치면 그 애도 무조건 뻑가겠지?”

“퍽이나 뻑가겠다?!”

완전히 사이코패스로 찍혀서 졸업하는 내내 웃음거리가 될거야. 아마 30년 뒤에 졸업 앨범을 열어봐도 내 얼굴을 보면 다들 미친 듯이 낄낄거리며 웃을 걸?

“혹시 모르지? 태현아~ 내가 잘못했어... 사랑해~하며 달려들지도?”

“그만둬, 너가 그런 말 하니까 조금 역겹....!?”

하복부에 묵직한 충격에 내 입은 저절로 닫히게 되었다.

“흠흠. 아무튼,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농담이 아니라 몸개그겠지.”

그 말에 찌릿하며 째려보더니 나에게 기타를 건네주며,

“기타를 배우려면 먼저 코드를 배워야 돼.”

내 손을 잡고 C코드를 짚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의외로 복잡한 식이구나, 코드라는 건.

“자, 이렇게 짚고 치면 C 코드가 되는 건데, 한번 줄을 쳐봐.”

지잉-하며 기타 특유의 쇳소리가 음악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으음, 그런데 약간 줄이 지직거리는 느낌인데?”

“그거야 줄을 꽉 누르지 않고 느슨하게 눌러서 일어나는 현상이지. 핑거보드와 줄 사이에 공간이 생길 때 줄이 진동하며 프렛을 치니까 그런 소리가 나는 거야.”

“오......호오.”

막무가내로 치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론에도 빠삭하구나.

“그런데 전문 용어로 말하니까 좀 이해가 안가긴 한다.”

“닥치고 일단 잘 봐봐. 이렇게, 줄을 세게 눌러야...”

“아얏!”

화진은 내 손가락을 핑거보드에 밀착시키기 위해 꾸욱 눌러댔다. 뭐랄까, 굉장히 아프잖아 이거?

“남자라면 좀 참아, 엄살 부리지 말고.”

화진의 손에 더더욱 힘이 실리고, 그에 비례해 내가 받는 고통은 더욱 더 커져갈 뿐이었다. 기타를 잡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할 고통이다. 마치, 손가락이 찢어질 듯한 이 고통.

“그만! 그만!!!”

여자 앞에서 참 없어 보인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처음에는 참을 만하다 생각해도 시간이 더해갈수록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화진의 손을 뿌리치며 겨우 기타에서 손을 떼었는데, 우와... 내 손가락에 기타 줄 모양 고대로 홈이 파여져 버렸다.

“뭐하는 짓이야! 엄청 아프잖아?”

“그치만, 기타를 치기 위해선 필수로 굳은살을 만들어야 하는 걸? 안그러면 한 곡을 연주하기도 전에 너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왼손을 나에게 보여준다. 으음, 뭐랄까. 여자아이의 손인데 참 곱기도 하지만, 손가락 끝은 육안으로 확인해도 될 정도로 꽤나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져 있었다.

“마... 만져봐도 되나?”

“어디서 개수작이야?”

제발 밖에 있는 학생들이 오해할만한 소리는 하지 말라고? 손가락 좀 만져본다는 게 대체 어디가 개수작인데?

“헤헷, 농담이야. 괜찮으니까 만져 봐.”

으음. 일단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눌러보았는데, 이건...... 돌이군. 마치 손가락에 시멘트를 바른 듯한 느낌이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얼굴에 주먹이 날아왔다.

“또 뭐냐고 이번엔!”

“여자 애 손을 만지면서 시멘트가 어쩌고 어째?”

또다. 이 녀석과는 금세 티격태격하게 된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은 나지만.

주먹을 거둔 화진은 잠시 캐비닛 쪽으로 걸어가더니 무언가 책을 하나 꺼내들고 왔다. ‘초보자도 알기 쉬운 기타 코드 첫걸음’? 표지에는 누군가가 익살스러운 캐릭터를 그려놓곤 ‘너도 초보냐?’라는 대사를 말풍선에 적어놓았다. 뭐랄까. 진짜 표지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절대로 팔리지는 않겠지.

“코드 보는 법은 알려주었으니까 오늘부터 집에서 연습 해봐.”

“어? 여기 있는 코드를 다 눌러보고 외워야 하는거야?”

책을 대충 넘겨만 봐도 100개가 넘는 코드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멍청아! 니가 연습할 곡에 필요한 코드들만 우선적으로 연습해야지. 일단 필요한 코드를 모두 외운 다음에는, 그 코드들을 바꿔 짚을 때 빠르게 바꿀 수 있도록 연습해야 돼. 그래야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기본을 만들 수 있거든.”

“오, 그렇군. 그럼, 이걸 다 빌려주는 건가?”

“물론이지. 대신에 내일 얼마나 실력이 증진되었는지 바로 확인 들어갈 테니 진짜로 열심히 연습해야 돼.”

“노... 노력해보도록 하지.”

악보와 책을 기타 케이스에 조심스레 집어넣고 기타도 집어넣었다. 호오, 이렇게 케이스를 메고 있자니 나도 왠지 뮤지션 같군?

“역시, 다들 처음에는 저렇게 똥폼을 잡는구나. 저럴 시간에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기타를 메고 거울을 보며 흡족해하는 나에게, 화진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기대하라고, 내일은 엄청나게 실력을 향상시켜 돌아올 테니까.

......그리고 다음날 나는 C코드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해 신나게 얻어터졌다.

 

 

*     *     *

“후우, 너같이 못 치는 녀석은 정말 처음 봐.”

어느덧 기타를 연습한지 어언 1주 째. 화진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아주 솔직하게 내 연주에 대한 감상을 쏟아내었다. 사람이 상처받을 만한 말을 너무 쉽게 하는군.

“일단 코드를 잡는 것부터 빠르지가 못하잖아. 하루에 최소한 12시간은 연습을 했을 텐데 그 정도도 못하면 조금 심각한데?”

“이봐, 난 학생이라고?”

24시간 중에 학교 일과를 빼면 12시간이 남는다고? 뭐랄까 잠을 자지 않고 연습을 하라는 거냐?

“하아? 당연한 거 아냐? 니 실력에 지금 잠을 잘 상황이 아니잖아.”

죽는다고!

그렇게 치다가 분명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과로사로 죽을 거라고!

“헤헷, 과로사에는 우루사를 먹으면 되지.”

“......죽고 나서 먹으면 쓸모 있겠냐?”

주고받던 농담사이에 키득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괜찮아, 약간의 요령도 필요하기도 하니까. 더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도록 하지.”

“그런게 있으면 처음부터 알려줘야 했던 거 아냐?”

“아아? 처음부터 요령만 알려고 하면 쓰나. 적당한 고통이 동반되어야 결실이 좋아지는 거라고?”

왠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왜 이렇게 열받는걸까?

“자, C코드를 다시 한번 짚어봐.”

“으, 응.”

아직도 코드를 잡는 속도가 빠르지 못하는 게 새삼 부끄럽다.

“흠, 그 상태에서 손을 잠시 기타에서 떼었다가, 다시 C코드를 잡아. 갓난아기가 젬젬하듯이.”

“이, 이렇게?”

“그래,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C코드의 모양을 손에 익혀가는 거지. 조금 더 숙달되면 손가락을 완전히 쭉 핀 상태까지 간 다음에 다시 C코드를 잡는 식으로 반복을 하는 거야.”

“호... 호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빠르게 젬젬을 하다가 그 간격을 넓혀 나가다 보면,

“반드시 빠르게 잡을 수 있어. 단, 이렇게 하면 굳은살을 만들기가 쉽지가 않거든. 줄을 잡는 시간이 오래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더욱 무리해서 꽉꽉 눌러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거지!”

그렇게 말하며 화진은 또 다시, 내 손가락을 줄 위에 올려다놓고 신나게 눌러대기 시작하였다.

“아, 아팟?! 저번보다 확실히 덜 아프긴 하지만 아프다고?!”

이 통증은 아무래도 적응하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나저나, 소민이와는 어떻게 만났다고 했었지?”

“음? 아아. 말 안했었나? 1학년때 같은 반이었어.”

“그래도 좋아하게 된 계기라던가, 그런건 없었어?”

“있긴 하지만 말하긴 좀 부끄러운데...”

긁적이며 얼버무릴려 했는데, 이미 내 옆으로 옮겨 앉아 굉장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그, 그렇게 쳐다보면서

“기분 나쁘다면 말 안해도 돼~”

, 라고 말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아, 알았어. 말해줄께.”

에, 뭐 그다지 말할 거리는 없긴 하다만.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아까 말했다시피 1학년 때 같은 반이라 그랬어.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한순간에 반해서 고백하고 사귀게 되었지. 뭐랄까, 반하는 게 다 그렇지 않아? 갑자기 순간에 상대가 빛나보여, 그대로 좋아하게 된 거랄까.”

“어떤 계기로?”

“좀 어이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반 청소 때였어. 남아서 청소하는 애들은 누구 할 거 없이 다들 귀찮아하며 제대로 하지 않으려 했었거든. 심지어 휴지통을 비우지도 않고 모두 하교해버렸었지. 난 그때 봤었어... 소민이 혼자서 휴지통을 소각장까지 들고 가는 모습을.”

“호오, 그래서 쓰레기통을 함께 비워주다 반하게 되었다는 거군?”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요약하자면 쓰레기 같은 사랑이로다.”

빠악-!

쳐, 쳤다. 여자아이를 진심으로 쳐버렸다.

“아프잖아!”

“맞을 짓을 했잖아. 쓰레기 같은 사랑이라니!”

“농담이야 농담.”

뭐, 듣는 사람에 따라 충분히 화를 낼만한 농담이니까 앞으로 조심하라고. 하긴, 뭐 이 녀석이 악의를 가지고 그런 농담을 하는 놈은 아니니까, 나도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기분이 나빠지기는 했다. 사귀는 동안에 나는, 쓰레기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럼, 오늘도 교문 앞에서 기다릴게.”

화진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기타를 메고 밖으로 향하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행여라도 내가 소민이를 마주쳤을 경우, 곤란하게 되니까.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기타를 메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면, 무엇을 위한 기타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축제 전에, 꼭 기타를 연습해서 장기자랑 때 보여줄게.’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며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사귀는 동안 내내 기타는 쳐다보지도 않고 아르바이트에 정신이 팔려있었지. 나는 왜, 항상 이런 말을 내뱉으며 그 것을 지키고자 노력은 한 번도 하지 않은 걸까? 최소한 기타를 연습하는 모습만 보여줬어도 좋았을 텐데.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었나보다, 나는.

 

 

*     *     *

시간은 흘러, 벌써 축제가 5일 앞으로 남게 되었다. 그 동안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이제 어느 정도 기타 연주고 가능하고, 노래까지도 부를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놨다. 꽤나 자신만만한 상태가 되었지만, 화진이는 곡 난이도가 매우 낮은 편이라 이 정도까지 된 거라며 놀리기에 일쑤였다. 그러던 화진이가, 수업시간 도중에 난데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공연을 보러간다.”

공연? 난데없이 왠 공연이지?

“참고삼아 보는 거야.”

“아 그래? 잘 다녀와, 소감은 블로그로 봐주지.”

퍼억-!

종아리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지금 수업시간이라고?

“니도 같이 가는 거야.”

“난, 연습을 더 하고 싶은데?”

“장담하는데 연습 하루 쉬는 것 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거야.”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볼 수밖에 없지만. 오늘 하는 공연이야?

“응, 이미 티켓도 사놨다. 거부권은 없어.”

결국 기타는 음악실에 내팽겨두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 건데?”

“홍대.”

아아, 홍대의 클럽인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인디밴드들의 천국으로. 다양한 클럽 문화가 존재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만큼 미성년자에게는 위험한 구역이 아닌가 살짝 걱정은 했었지만, 다행히 그런 정도는 아니라 한다.

공연 시작은, 어디보자. 예매권을 받아든 화진의 표를 보니 8시 30분에 공연이 시작한다고 적혀있었다. 지금 시간은 7시 45분. 대충 45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길래 근처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간단하게 사서 벤치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오늘 공연하는 장소가 롤링홀이라는 곳인데, 여기가 시설도 좋고 꽤나 넓은 편이라 유명한 밴드들도 상당히 많이 와.”

헤에, 그래서 오늘 공연하는 밴드들은 인기가 높은 밴드들인가?

“당연하지, 완전 하늘을 찌른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들고 어떤 사진을 보여준다.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정말 완전 훈남이야. 장난 아냐. 완전 팬이라니까?”

......어째 내게 도움을 줄려다기 보단 단순히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날 끌고 온 느낌이다.

화진은 공연 시작 전까지 그 밴드에 대한 장점을 엄청나게 늘어놓았고, 나는 곧이 곧대로 듣고 잠자코 호응하는 척을 했다. 안 그러면 또 맞으니까.

편의점 아르바이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화진은 자신이 즐겨듣는 락 음악을 들고 와, 음향기기를 멋대로 만져 편의점을 마치 개러지 하우스와 같은 분위기로 개조시키는 짓을 종종하기도 하였다.

항상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 손님들이 들어오며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였지만, 화진은 그런 손님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이 음악, 완전 좋지 않아?’하며 몸을 들썩이기만 했다. 결국 나중에 점장에게 빈축을 사며 더 이상 음악을 듣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항상 음악이 관련되면, 이 녀석은 과도하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대체 음악이 얼마나 그렇게 좋은 거야?”

하다못해 궁금해 질문을 하게 됐다.

“왜 좋냐니? 좋으니까 좋은 거지.”

“허,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는데.”

내 말을 들은 화진이는 멋쩍게 웃더니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딱히 생각을 해 본적은 없어. 그저...... 내가 즐거울 때나 힘들 때 항상 함께했던 것들이라 좋아하는 것 같아. 음악에 포함된 메시지? 그런 건 전혀 생각해본 적 없어. 그저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계속해서 듣는 거지 뭐.”

공연 시간이 다가왔다. 화진은 엉덩이를 팡팡 털어내며 일어나, 내 손을 잡고 공연장으로 향하였다.

공연장 내부에는 약간의 안개가 있어서, 담배연기인가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담배연기는 아니었다. 그저 인테리어적인 장치인가 보다. 그렇게 신기한 듯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관객의 수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런가 물어봤더니, ‘지금 이게 락의 현실이지’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늘은 즐기려고 왔으니까, 어디 한번 놀아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화진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었다. 아니, 공연을 위해 참고삼아 보러 온 게 아니라?

“공연을 즐기는 것 자체가 참고가 되는 거야!”

공연 시작이 임박해져 여기저기서 함성소리가 들리자, 화진은 내 귓가에 대고 크게 말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수많은 함성소리가 들리고, 그 중에서는 당연 화진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연주자들과 동일한 급으로 몸을 흔들며 환호를 하는 화진. 의외로 조용히 관람하는 다른 사람들은 이내 화진을 힐끗힐끗 쳐다보았지만, 화진은 그런 시선 따위는 신경을 끈 지 오래인거 같다. 이 녀석, 왠지 시끄러울 화(譁)가 이름에 들어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다.

“뭐해? 더 흔들어~! 더 뛰어!”

잠자코 음악을 듣고 있던 나를 억지로 잡아끌고 뛴다. 그래도, 이렇게 공연을 보고 있으니 나라고 해도 몸이 들썩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신나게 뛰어보자.

디스토션이 섞인 기타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히고, 육중한 베이스가 몸을 울리게 만들고, 드럼 비트가 심장을 뛰게 하고, 보컬의 샤우팅이 머리를 흔들게 만든다.

관람석도 남아돈다. 몸을 아무리 움직여도 공간이 남아 돌 정도라 우리는 정말 신나게 놀았다. 다음 밴드는 5인조의 펑크 밴드라 그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르게 되었고, 그 이후에 등장하는 메탈밴드의 마무리로 우리는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복은 이미 땀투성이가 다 되어 내일 다시 입을 생각을 하니 살짝 걱정이 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게, 락이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이 박력.

이 녀석 때문에 참 좋은 경험도 해보는구나 싶었다.

 

 

*     *     *

“후아~ 재밌었어!! 또! 다음에 또 올거야~~~~~!!!”

마지막 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클럽 문을 박차고 나오자마자, 길거리에서 시끄럽게 함성을 외쳐대니까 지나가는 행인들이 쳐다본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나 역시도 정말 신나게 놀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 함께 소리질렀으니까.

“밥 먹을래?”

그렇게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다, 지쳐서 5분정도 걸을 때 즈음 화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여 저녁은 생략하기로 하였다. 뭐, 집에 돌아갈 때 쯤엔 배가 고프겠지만, 그때는 그때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버스를 탈려고 하는데,

“잠깐. 우리 저거 한번 하고 가자.”

가리키는 게 무언가 보니, 노점 게임이었다. 그것도 노점 게임 중에서도 상당히 고난이도에 속하는, 다트 던지기였다.

“난 저 인형이 가지고 싶어.”

그러며 가리키는 인형은 특대 인형이긴 한데, 인형의 목도리가 벽에 걸려있어 마치 교수 자살을 한 듯한 모습이다. 무슨 악취미냐 저건! 순간적으로 땀이 났지만 몇 발을 맞춰야 하는지 일단 표를 구경해보는데, 저걸 받으려면 총 10발 중에...... 10발?! 10발을 풍선에 다 명중 시켜야 한다.

“뽑아줘!!”

“내가 불스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렇게 다트를 던지지 못한다고!

에, 일단 말은 그렇게 해도 앞으로 가서 한 게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고? 티켓 값을 화진이가 다 냈잖나. 두명 합쳐 거금 3만 6천원을.

못 맞춘다고 손을 뿌리치다간 내 머리에 다트가 꽂힐 수도 있을 법해서(충분히 이 녀석이라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내고 다트를 들었다.

10발에 2천원. 무려 한번 던지는데 200원이다. 그래도 이왕 짚었으니, 힘차게 던져본다.

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벽에 꽂혀버렸다.

“이런 우라질!”

그냥 길바닥에 200원을 싸지르는걸 10회 반복한다고 봐도 될 정도의 난이도다. 자세히 보니까 이 다트들, 너무 많이 사용해서 대부분이 다 휘어져 버렸잖아?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주인을 쳐다보자 사악하게 웃을 뿐이었다. 낚였다.

다른 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이 벽에 맞을 뿐이었고, 최하 상품을 받을 수 없는 3발. 초라한 기록을 달성하자 곧바로 화진의 응징이 시작되었다.

헤드락이었다.

“으...... 굉장히 열 받는군.”

그 뒤로도 10번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

“아저씨, 마지막으로 한 게임 더!”

이미 상품으로 걸린 마시마로의 인형 값을 상회하는 비용을 쏟아부었지만, 나도 오기가 있는 놈이다. 포기는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자꾸 빈번히 실패를 할 때마다 사악하게 웃는 아저씨의 모습이 정말 짜증났다. 고게 그리 짜증나서 안 던질래야 안 던질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으로, 반드시 저 망할 인형을 따버리는 거다.

하지만 그 때였다.

“내가 할게!”

화진이는 내 손에서 순식간에 다트를 빼앗아 들더니, 곧 바로 10개를 모두 한번에 던져서 한 개의 풍선에 명중시켜 버렸다.

“......”

뭐지?

“뭐해요? 빨랑 내놔요. 한꺼번에 던지면 안된다는 룰은 없잖아요?”

물론 세세한 룰 없이 단순히 ‘10발 명중’이라고 적혀져 있긴 하지만, 이건 좀 억지다. 뭐라 반론을 하려는 아저씨. 그러나 벌써 2만 2천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상황이다 보니, 아저씨는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못이기는 척 하며 인형을 꺼내 건네주었다.

인형을 받아들자 화진은 소녀처럼 싱글거리며 꼭 껴안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뭐냐고, 이 녀석. 외모가 되니까 이렇게 있어도 정말 아름답다 느껴질 정도다.

꽃 화(花)인거냐? 설마, 절대로 아니겠지? 만약 花가 정말 맞다고 하더라도, 그건 분명 죽을 사(死)를 잘못 적은 걸거야!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죽는 건 당연하기 때문에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 스트레스를 정말 확~ 풀린다. 재밌었어.”

“아아? 너에게도 스트레스라는 게 있었냐?”

“당연하지. 말은 안해도 나도 속상할 일도 있고 그런다고? 그래도 내 스트레스토 풀면서 네 연습에 참고도 되고 1석 2조잖아. 얼마나 좋아.”

......참 말은 잘한다.

 

 

*     *     *

화진이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다 문득 집 앞의 편의점을 들렸다. 늦게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취침 중인 가족들을 깨워가며 밥을 차려먹기는 싫기 때문에, 간단히 햄버거와 콜라만 사 들고 방안에서 먹으려 했다.

의외로 편의점 햄버거가, 맛이 좋으면서 값이 싸다고. 비바- 햄버거다.

“여, 태현이냐.”

창고에서 나오는 점장님이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그렇다. 이 곳은, 내가 일했던 편의점이다. 그것도 화진이와 함께 일했었던.

“아, 오랜만이네요.”

가볍게 인사를 하며 햄버거 봉지를 살짝 찢어 전자렌지에 넣고, 조리시작 버튼을 눌렀다.

“아까, 니 여자친구가 널 찾으러 왔던데?”

“네?”

“왜, 그 있잖아. 일자 앞머리.”

소민이다. 확실히.

“그 애가...... 여기에 왔었나요?”

“응.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가, 그만뒀다는 말을 듣고 그냥 가더라고. 대신에, 편지를 써서 남기고 가더구나.”

점장님이 서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고 나에게 건네준다. 나는 그 편지를 가로채듯 받아들고 황급히 뜯어서 읽어보았다.

‘화진이에게 이야기는 들었어.

날 위해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 헤어지긴 했지만 너가 날 위해 공연을 한다니 솔직히 말해서 살짝 기쁘기는 해.

하지만...미안하지만 그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이제 끝났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하지마. 난 네 공연은 보지 않을테니까.’

 

 

*     *     *

다음 날, 나는 학교에 오자마자 화진이를 잡아끌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해 따지듯이 편지를 내밀었다.

“뭐야 이게?”

화진은 영문도 모른 채 나에게 편지를 받고 천천히 읽어보다, 점점 눈이 커지며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연까지 비밀을 지키자고 말할 땐 언제고, 언제 이렇게 떠벌리고 다닌 거야? 그것도 당사자한테?”

“나, 나는, 분명 소민이가 공연을 보지 않을 거라 확신을 했었어. 그래서 알려준 거야. 널 위해 이렇게 준비했으니까. 꼭 나와 달라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편지를 쓸 줄은 몰랐네. 미안해.”

“하아...”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다 끝났다.

더 이상 연습하는 것도, 목표도.

모두 없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그래도, 내가 꼭 공연 전날까지는 설득할 테니까. 너무 기죽지 마.”

“필요없어!”

너무 화가 나서 그대로 화진이를 벽으로 밀쳐버렸다.

“대체 뭔 오지랖이야? 기타를 가르쳐주고 도와준 건 고맙게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좀 냉정해져봐! 생각을 해보라고! 내가 이렇게 하든 안하든 과연 걔가 니 공연을 잠자코 보고만 있을까? 절대 아냐!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봐! 볼 수 있겠냐? 나라도 거북해서 못볼 거 같은데?”

“큭!”

분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다.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얼굴도 쳐다보지 않을 만큼 격하게 싸우다 헤어졌다.

“애초에 이딴 짓을 하는 게 아니었어. 뭐냐고, 유치하게 뭔놈의 사죄야.”

그냥 나는, 쓰레기로 기억될 운명인가보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절대로, 절대로... 헛되지 않게 만들어 줄게.”

날 믿어.

그렇게 화진은, 꼭 소민이를 공연장에 앉히겠다는 약속을 하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     *     *

그렇게 시간은 흘러, 벌써 축제 당일이다. 그 후 3일간은 특별한 일 없이 연습에 매진했었기 때문에, 별 달리 할 말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화진이는 3일간 더 이상의 코치는 해 주지 않았고, 밴드부 일원들과 함께 연습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3학년 선배들이 겨우 시간을 내어 참여하는 마지막 공연이기에, 이 것도 소홀히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아, 특별한 일이라면 복도에서 소민이를 가끔 마주치긴 하였지만.

보는 족족 방향을 틀어 도망가기에 바쁜 뒷모습을 보니 힘이 빠져서, 더 이상 그녀가 있는 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나에게는 절망감만 더 해져 갈 뿐이니까.

너무 매정한 그녀를 보고 있으면, 굉장히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 내 잘못으로 그녀가 날 싫어하게 된 것이니까. 그래서 그럴 때 마다 더욱 미친 듯이 연습을 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그녀가 내 공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축제로 인한 단축수업이 끝나자 나는 결의를 다듬고 음악실로 올라가 기타를 빼 들었다.

“과연... 와줄까?”

계단을 내려가며 나는 화진에게 물어봤다.

“오지 않으면 내가 오게 만들면 돼.”

약간은 화가 난 표정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무대로 향하자, 굉장히 많은 앰프들과 마이크, 그리고 조명들이 세팅이 완료된 상황이다. 우리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곳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굳이 운동장이 아닌, 건물과 건물 사이의 아스팔트 공간에 무대가 설치되어 한껏 더 멋이 나는 풍경이다. 거기에 학생들이 서둘러 의자를 갖다 놓자 더욱 더 그림이 난다.

드디어, 결전인 것이다.

“리허설 때, 사운드도 비교적 잘 나고 그런대로 괜찮았어. 공연도 이정도로만 하면 충분히 문제가 없을 거야.”

밴드부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화진은, 어쩐지 밴드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내게 달려와 조언을 해주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어이, 이렇게까지 이제 안해줘도 되는데. 너무 부담스럽다고.

“훗, 장래 우리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될 놈인데 소홀히 할 수 있겠나?”

그 말을 들으니 더욱 더 배가 아파져 오는 것은 왜일까.

나 역시도 화진이 준비해준 오베이션 기타를 앰프에 꽂아보고 리허설을 진행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밴드부에 속하지 않고 일개 장기자랑 멤버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허설까지는 할 수가 없었다.

“걱정 하지 마. 앰프의 상태도, 마이크도 충분히 좋은 상태니까. 여차하면 내가 볼륨을 조절해주면 돼.”

화진의 말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오늘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무대. 특이하게도 우리 학교는 오프닝과 마무리를 나누어 팀을 선정해 공연을 하는 시스템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지만 예고 뺨칠 정도로 음악과 관련된 팀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 도중에 장기자랑과 같은 이벤트도 있다 보니 상당히 구성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것이 우리 학교 축제만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고.

“넌 3번째로 나가는 거야. 알지?”

기독교반 성가대와 클래식 기타부의 공연이 끝난 뒤, 곧바로 나의 무대라고 한다. 보통 2개의 공연을 마친 뒤 장기자랑이라는 사이클로 진행이 되는데, 하필이면 클래식 기타반의 뒤에 단독 연주라니. 약간은 아쉬운 편이다.

“사, 상당히 긴장되는데?”

관람석에 인원들이 채워지니까 더 더욱 긴장감이 몸을 엄습한다. 우, 우황청심환이라도 사 먹을 걸 그랬나?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긴장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심해진다고.”

그렇게 말하며 내 뺨을 철썩 철썩 때려준다. 아니, 그 뭐야.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적당히 보기 좋게 때리면 안되나. 양손을 모아서 때리는 것도 아니고 한손으로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때리니까 잘못해서 맞는 것처럼 보이잖냐.

그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지나가, 이제 관람석에도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리를 앉아 구경하고, 좀처럼 멀리 위치해서 구경하기 싫은 학생들은 외곽 쪽으로 몰려와 서서 자리를 잡은 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 중에 분명히, 소민이도 어딘가 자리를 잡고 지켜보고 있을까? 화진이의 부탁이 과연 먹혔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다행히, 소민이 역시 댄스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오늘 무대 준비를 하며 이곳에 있는 사실 하나는 분명했다. 댄스부는 리허설 없이 그저 배경음을 한번 틀어보는 테스트만으로도 충분해 리허설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지만, 분명히 어딘가 있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와아---!”

큰 함성과 박수소리와 함께 첫번째 무대, 성가대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거의 예외없이 매년 오프닝 무대는 성가대가 장식을 한다고 한다. 뭐, 어느 관점에서 보면 가장 무난하고, 학생다운 공연이라 할 수 있겠지. 물론 예전에는 그리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아 축제 때 거쳐 가는 관례행사 정도로 인식이 되었다지만, 지금은 수준이 많이 높아져 호응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아졌다고 한다.

“네~ 성가대는 매년 실력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 같네요. 아, 제가 1학년인데 어떻게 매년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아냐고요? 사실, 전 중학교도 여기서 다녔거든요~”

...,,,보는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로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에헤...헤... 다, 다음은 클래식 기타반의 공연입니다.”

사회자 학생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굉장히 많은 수의 부원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공연을 시작한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는 느낌이다. 다음 장기자랑 코너에서 내가 나가야 하기 때문에, 서서히 무대 앞으로 나가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그 때였다. 공연 준비를 끝마치고 앞좌석에 앉아 대기하던 소민이와, 눈이 마주쳐 버린 것은. 애써 담담한 척 나는 태연하게 서 있을려 노력했지만, 소민이는 약간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가 환해지며, 클래식 기타부의 공연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 덕분에 소민이의 얼굴이 더 보기 쉽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간다.

아마, 내 차례인 것을 알아채자마자 본능적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듣고 있기, 거북하니까. 결국, 화진이의 부탁은 실패했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 때였다.

“야-------!!!!!! 김소민!!!!!!!!!!!!!!!”

순식간에 무대 위로 뛰쳐 올라간 화진이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고함을 질러버렸다.

그 고함을 끝으로 엄청난 정적이 시작되고, 화를 이기지 못해 헐떡이는 화진이의 숨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퍼질 뿐이었다.

“태현이가, 널 위해 준비를 얼마나 했는데!!!!!! 그렇게 언제까지 도망만 칠꺼냐아!!!!!!!!!!!!! 이 나쁜년아!!!!!”

그 한마디에 장내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주목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술렁이기 시작한다. 일부 학생들은 ‘뭐야, 레파토리인거야?’하며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당황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기도 하였다.

“너는! 태현에게 얼마나 잘해줬길래 그런 태도로 일관하는 거야? 어?! 니가 그렇게 잘났어? 잘못은 태현이만 했냐? 니도 분명히 잘못 했으니까 상황이 이렇게 된 거잖아, 아냐? 필사적으로 준비해서, 그렇게 치지도 못하는 기타를 연습하고 이 무대에 올라서 네게 사과하고 싶다는데, 아무리 자기 멋대로 준비했다고 해도, 넌 상관없다고 말하려 해도! 너에겐 들어줄 의무가 있는 거야!! 알아?! 니 남자친구였잖아! 그 정도 성의는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니가 그렇게 잘났어? 앙?!”

그 뒤로, 무대에 선생님과 학생들이 황급히 올라와 화진이를 끌어낼려고 했지만, 화진이는 그 손들을 뿌려내치며,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하울링이 일어날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게 부탁을 해도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내가 너보다 태현이를 오천억배는 더 좋아한다 이거야!!!!!!!!!!!!!!”

......결국, 어찌저찌하여 소민에게 바치는 사죄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고, 학생들의 부추김에 억지로 소민이와 나는 성공적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약속, 못 지킬 줄 알았는데.”

그 말에 학생들이 야릇한 환호성을 지른다. 멜로 영화처럼 좀 이런 순간에는 가만히 두면 안 되겠냐? 그 소리에, 얼굴이 빨개진 소민이는 내 손을 잡아끌고, 좀 더 한적한 곳으로 끌고 갔다.

아직, 나는 소민이의 손을 잡고 있는 상태.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여태까지 너에게 약속 한번 지켜주지 못한 한심한 남자로 남기가 싫었어.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이것만은 지켜주고 싶더라고. 미안해.”

약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라고 짤막하게 말하며,

웃었다.

동시에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화진이... 정말 대단하더라.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을 한다니까. 그래서 나는, 너가 화진이와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것에 그렇게 질투를 하고 화를 낸건지도 몰라.”

그 순간, 완성 된 캔버스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학생들을 피하고 있던 터라, 다시 한번 되물었다. 아니, 제대로 알아듣긴 했었지만 너무 의외라 되묻는 척을 했다. 무언가 대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웟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민이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지쳐가게 되더니 너가 안보이기 시작하더라고.”

커다란 망치로 맞은 듯, 눈 앞이 캄캄해진다. 미안해, 라고 이어말하는 그녀에게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우리가 헤어지게 된 계기는 아르바이트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업에 열중하라며 언성을 높이는 소민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매일 화를 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르바이트 때문이 아닌 것이다. 화진과 함께 일하는 모습에 너무 불안하고, 질투를 느껴 그렇게 투정을 부린 것이다. 소민이 역시, 어려운 집안 형편에 꿈을 향한 공부, 그리고 연애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돈을 벌 겸해서 시작했던 아르바이트인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만나러 가끔 편의점에 들렀다가, 화진이의 붙임성에 못이겨 친한 친구 사이로 발전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알게 된 친구를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이는 점점 틀어지게 되었던 거지. 너무나, 충격적인 결말이다.

하지만 그건, 소민이와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충격은 절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화진이에 대한 충격이다.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응원해주던 녀석이, 결국은 이별의 원인이었다니.

아, 생각해보니 아까는 나를 좋아한다고도 말했잖아?

앞으로 화진이를 무슨 얼굴로 봐야할지 굉장히 막막해질 뿐이었다.

“그럼 난 이만, 곧 있으면 우리 차례라서.”

시계를 확인하던 그녀는 돌아서며 그렇게 말하다가,

“화진이에게 잘해줘. 널 얼마나 좋아하면 그렇게까지 하겠니?”

그렇게 말하는 소민이는 왠지 조금, 아쉬운 듯이 보였다.

“후우.”

어지럽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어서. 나는 그 상태로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가, 화진이가 걱정돼 밴드부의 공연까지만 잠시 지켜보고, 힘없이 집으로 걸어들어갔다.

 

 

*     *     *

다음 날.

교실문을 열자마자 친구들이 나에게 야릇한 소리를 내지르며 놀리기 시작한다.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한 일이다. 칠판에는 화진과 나의 이름에 빨간색 분필로 매우 적나라하고 화려한 하트가 미친 듯이 그려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소민이와 함께 셋이 엮여 삼각관계라 되어있진 않다는 거다. 뭐, 어차피 소민이는 다른 반 학생이라 그다지 여기와 친분이 없기도 하고, 워낙에 화진이의 존재가 부각되던 어제였으니 말이다.

아마 이 자리에 화진이가 있었더라면 길길이 날뛰며 1 대 다수의 집단 구타 현장을 만들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녀석은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를 볼 면목이 없어서 그런 건가?

하긴, 나를 도와준다고 그렇게 말 하고선 결국 나중에는 나에게 그....,, 고백을 하다니. 화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지금쯤 자괴감에 빠져서 허우적되고 있을 게 뻔하다.

녀석의 빈자리를 보니, 걱정이 되기도 해서 나는 가방을 싸들고 무단 조퇴를 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녀석을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녀석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벨을 눌렀다.

“...... 누구세요?”

“나다 임마.”

조용히 문이 열리며 화진이의 머리가 빼꼼 모습을 들어낸다.

“감기 걸렸냐?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모, 몰라! 왜 집까지 찾아온 거야? 학교는?”

“니가 이러고 있는데 학교따위 갈까보냐.”

그 말을 들은 화진이의 얼굴에 더더욱 새빨개졌다.

“하하. 귀까지 빨개지네?”

그 말을 들은 화진은 문을 활짝 열어제끼더니, 멋지게 현관에서 점프해 나에게 풀 드롭킥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즉시 나를 깔아뭉개고 올라타서는,

“...... 역시 차인거지?”

“무슨 소리야,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다고.”

오로지 사죄였다니까, 라고 말하며 애써 허세를 부려보지만 이 녀석에겐 먹히지가 않았다. 배꼽을 잡고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까, 화진아.”

“으, 응?”

“갑자기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니 이름에 들어간 한자는 뭐야?”

“무슨 한자?”

“’화’ 말이야. 애들 소문으로는 재앙 화(禍)자가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자식 이름에 그딴 한자를 넣는 부모가 있을까보냐?!"

"그러니까 말야. 아무튼, 그냥 궁금해졌어. 뭐야?”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약간은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씨익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내 마이 주머니에 꽂힌 펜을 들더니 한자를 하나 써 내려간다.

“나랑 굉장히 매치가 안 되서 부끄러운데, 너에게만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적은 한자는 ‘嬅’였다.

“......야, 이거 무슨 뜻이야?”

“안 가르쳐줄거야.”

그렇게 말하며 화진은 나를 끌어안았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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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kaylah

October 17, 2011
*.106.56.25

재밌네요!!
profile

rladbrud7633

October 26, 2011
*.46.105.101

적극적인 히로인이.. 귀엽네요
profile

cloud.9

November 03, 2011
*.68.136.100

누구 작품인지 딱 알겠네요.
profile

Nansung

November 04, 2011
*.114.25.15

재밌어요!!
profile

zexx

November 08, 2011
*.61.23.42

소민이라는 캐릭터가 좀더 나와주면 좋을것 같네요. 인상이 너무 희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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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November 26, 2011
*.246.71.113

재밋게 잘보고.
읽기가 참 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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