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작품 소개 "내일의 단편 경소설상"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내 이름은 오카리나.

줄여서 오카린이라고 부른다. 작은 도시에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탐정은 따로 있고 나는 그의 조수 일을 맡고 있다. 의뢰인을 접대한다던지, 의뢰인 주변의 정보를 조사한다던지, 각종 사건 사고를 스크랩하며, 사건의 주요 단서들을 메모하여 남긴다. 사건이 끝나면 사건 요약을 위해 서류 작성을 하며 금전 관리 또한 나의 몫이다.

그 말고도 많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우리 탐정님의 식단을 챙기며 직접 장을 본다. 담배 냄새가 팍팍 베인 옷을 세탁하며 사무실 내부는 물론 바깥을 청소한다. 건물의 보수 또한 나의 몫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소장님이 불한당에게 납치당하면 가서 구해주기도 한다. 소장님이 죄를 저질러서 구치소에 갇히면 보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소장님이 위기에 처하면 내가 무기를 들고 대신 싸워주기도 한다. 보통은 그런 식이다. 보통은.

내 이름은 오카리나.

키아드리스 탐정 사무소에서 조수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건만 현재 월급이 넉 달 치나 밀려 있다. 그리고 그 월급을 줘야 할 소장님은 현재…….

 

 

*     *     *

넓은 공간에 네모난 기기가 일정 간격으로 수십 대가 배치되어 있다. 띠리링 뾰로롱 하는 경쾌한 소리가 수시로 울렸으며 공간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각 기기 앞에는 담배를 꼬나문 사람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심각했으며 진지했다. 손잡이를 돌리면 기기의 중앙에 그림들이 무작위로 돌아간다. 그 그림이 특정한 모습을 갖추면 돈을 따내는 형식이다.

또르륵 또르륵 하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리던 중이었다.

“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몇 몇 사람들이 급히 소리가 난 쪽으로 움직였다.

“흐미! 하트네!”

“하트가 나와부렀어야?”

“대박이다!”

소리친 남자의 기기에는 하트 그림이 완성 돼 있었다.

“아하하! 500만 플랫이라고! 잭팟!”

돈을 딴 사내는 어딘가 가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옷은 후줄근했으며 머리는 푸석푸석했다. 수염은 듬성듬성 삐져나와 까슬까슬 했으며, 쓰고 있는 안경은 살짝 비뚤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외모는 도박장에 모인 남자들을 상회했다. 다만 꾸미지 않아서 스스로 빛을 잃은 모습이었다.

사내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환전소로 향했다. 본래 기기에서 나온 코인을 직접 가지고 가야 했지만 사내는 그러지 않았다. 다 들고 가기에는 기기에서 나오는 코인이 너무 많았다. 기기는 사내가 환전소에 다다를 때까지도 코인을 우루룩 쏟아냈다. 잭팟을 일구어낸 사내는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도박장의 문이 부서지며 파편이 안쪽으로 튀었다. 도박장 안은 제법 어두웠기에 문이 부서지자 새하얀 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으윽!”

“워메!”

“아악, 내 눈!”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손님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쩔쩔 맸다. 잭팟 사내도 인상을 찌푸리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입구 쪽에는 머리가 긴 여성이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오카리나?”

문을 부순 이는 오카리나였다.

키아드리스 탐정 사무소의 조수.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키아스를 잡아먹어 버릴 듯한 분위기였다.

“소장님! 대체 여기서 뭐하는 거 에요!”

그녀는 허리까지 닿는 긴 금발을 찰랑거리며 성큼성큼 환전소 쪽으로 걸어갔다. 잭팟 사내가 바로 그녀가 일하는 탐정 사무소의 소장, 키아드리스였다. 줄여서 키아스라고 부른다.

오카린이 거리를 좁혀올 수록 키아스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거인을 마주하는 난쟁이의 모습과도 같았다. 오카린은 잔뜩 앙칼진 목소리로 성질을 부렸다.

“소장님!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서 대체 뭐하는 거 에요! 제가 전에 말씀드렸죠. 절대 도박하지 말라고요! 안 그래도 지금 전기세랑 수도세도 밀렸는데 도박은 무슨 놈의 도박이에요. 지금 정신이 있어요, 없어요? 대답을 좀 해보라고요!”

“오카리나! 아침부터 참 기운이 넘치는군. 아주 보기 좋아. 그래야 내 조수답지.”

“소장님! 저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아아, 알았어. 알았어.”

키아스는 환전소 담당에게 돈을 받아 오카린에게 건넸다. 두둑한 지폐 다발에 오카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건?”

“방금 내가 딴 돈이야. 이거면 네 달 치 월급으로 쓰고도 남겠군. 이렇게 하면 된 거지? 그치?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

지폐 뭉치를 보고도 오카린의 표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속으로는 표정 관리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는 중이었다. 밀린 월급에 보너스까지 얹어서 받았으니 나쁠 건 없었다. 그래도 월급을 빠찡코를 돌려서 받는다는 게 참 묘한 기분이었다. 물론 여기에 있는 기기가 불법은 아니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법적으로 딱히 하자될 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기묘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부터는 늦지 마세요. 앞으로는 한 달 늦을 때마다 10%씩 보너스 받을 거 에요. 그렇게 알아두세요. 맨날 늦고 이게 뭐에요? 기껏 한다는 게 도박해서 조수 월급 주는 거라니. 저 없었을 때는 진짜 탐정일은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봐드려야 하냐구요. 정말 답답해요. 명색이 탐정이면 의뢰를 해결해서 돈을 버시라구요.”

“알았어, 알았다고. 의뢰가 들어와야 뭐 돈을 벌거나 할 거 아니야. 내가 의뢰하고 내가 해결하나? 거 참 잔소리하고는.”

“잔소리라뇨! 저는 단지 소장님이 걱정이 되가지고 하는 말이에요! 잘 들으세요. 소장님의 문제가 뭐냐하면은.”

“알았어! 제발 그만해! 귀 따가워 죽겠네, 정말!”

키아스는 두 손으로 귀를 딱 틀어막고는 허리를 숙였다. 오카린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뒤에서 계속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였다. 두 사람은 도박장을 나왔다.

 

 

*     *     *

♪~♬~♪~♬

아래로 강을 끼고 있는 다리 위였다. 밑으로는 숙녀를 태운 나룻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숙녀는 보석 같은 눈동자로 노을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노를 젓는 노인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붉은 노을은 도시를 붉게 물들였으며 강물에 반짝 반짝 녹아들었다.

다리의 중앙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내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악기는 바이올린. 활이 현을 스칠 때마다 매혹적인 소리를 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다들 자리를 잡고서 사내의 연주를 감상하였다. 코흘리개 꼬맹이부터 배불뚝이 정년 남성들까지 나이대도 매우 다양했다.

바이올린의 줄 위를 춤추는 활의 움직임은 매우 경쾌했다. 아침의 활기찬 느낌, 경쾌함을 표현하는 것만 같았다. 반면 얼굴은 매우 평온했다. 연주자는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일어난 얼굴이었다. 연주도 연주였지만 악사의 얼굴이 무척 빼어났다. 귀에 걸고 있는 귀걸이가 그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연주를 감상하는 여인들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수줍어하였다. 같은 여자인 오카리나 역시 연주자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흥.”

옆에 있는 키아스는 뭐가 불만인지 입이 툭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질투였을까? 하지만 질투라고보기에 키아스의 표정에는 조소가 담겨 있었다.

연주가 끝이 났다.

감상하던 사람들은 갈채를 보내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모자에 돈을 넣었다. 연주를 마친 악사는 가방에 바이올린을 담고는 짐을 챙겨 다리를 떠났다.

떠나는 악사의 뒷모습을 보며 오카린이 말햇다.

“와. 연주 되게 잘 하네요. 얼굴도 되게 잘생겼어요.”

“그런가? 내가 더 잘생기지 않았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저런 기생 오래비 같은 얼굴이 어디가 잘 생겼다는 건지 원.”

“에엑.”

오카린은 도끼 눈이 되어서는 키아스를 째려보았다.

그녀의 반응과 달리 키아스는 매우 잘생긴 편이었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나가는 사람 백 명을 붙잡고 물어봐도 백 명 다 ‘잘 생겼다’라고 대답할 것이 뻔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키아스는 이 도시 안단테에서, 아니. 안단테를 벗어나 어디를 가더라도 눈에 띄는 미남이다.

다만 자기가 잘생겼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키아스는 잘 생겼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그 사실을 쉽게 언급하고 다닌다. 오카린은 그 점이 참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장님 지금 질투하는 거 에요? 잘 생긴 사람이 악기 연주까지 잘 하니 부러운 거죠? 그렇죠?”

“조금 못마땅한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외모를 가지고 질투를 한다는 건 아니지. 나라고 뭐 꿀릴 게 있겠나. 내가 못마땅한 건, 실제로 거리의 악사가 아닌 주제에 그런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건 정말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배고프게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거든.”

“그게 무슨 소리에요?”

키아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카린을 바라보았다. 그는 의외라는 듯 정색하며 말했다.

“자넨 아직도 모르겠어? 저 사람, 거리의 악사가 아니야. 실제로 어디서 뭘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거리에서 배 곪아 가며 연주하는 예술가는 아니라는 거지.”

“확실한 거 에요? 그걸 겉만 보고 어떻게 알아요?”

“진정한 탐정은 겉만 보고도 알 수 있는 법이지. 오카리나. 자네는 내 밑에서 그렇게 고생을 해놓고도 모르겠어?”

오카린은 무시 받는다는 생각에 흥,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기억을 짚어 봐도 그가 거리의 악사가 아니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키아스는 다리의 난간 위로 올라섰다.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으며 말했다.

“아주 간단하지.

첫 째, 귀에 차고 있는 귀걸이가 너무 고급이야. 최소 50만 플랫에서 100만 플랫 사이로 추정되는 물건이야. 옷도 제대로 못 입어서 다 헤지고 구멍 난 걸 입고 다니는데 귀걸이만 고급으로 차고 다닌다? 그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해요.”

“둘 째, 얼굴에 화장을 했어.”

“뭐라구요!?”

“자네는 여자면서도 그 점을 눈치 못 챘나? 얼굴에 색조 화장이 들어가 있더군. 더 멋져 보이기 위해 치장을 했다는 거지. 물론 자네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자’일 뿐이니 화장 같은 거에 대해서 잘 모르겠군. 내 사과하네.”

“닥치고 계속 설명해 주시죠, 소.장.님. 역시 불충분해요. 거리의 악사가 그저 악기만 연주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가까이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직업이니 꾸밀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오카린은 관자놀이에 십자힘줄을 띄우며 분노를 어필했다. 까딱하면 다리 밑의 강물로 던져버릴 분위기였다. 키아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말을 이었다.

“셋 째, 바이올린이 너무 좋은 물건이더군. 너무 고급이고 너무 새 제품이었어. 오늘 처음 쓴 물건처럼 거의 손때가 타지 않았어. 거기에 가방까지 함께 해서 한 세트였어. 아무리 봐도 일개 거리의 악사가 마련하기엔 무리이지 않겠나?”

“그렇군요. 하지만 각각의 보기들은 따로 때서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허나 합치면 수상해지지. 결정적으로 바이올린 가방에 마크가 붙어 있었어. 베토벤 마크.”

“베토벤!?”

베토벤은 악기 제조사이다.

루드비히라는 회사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지만 현재 부동의 1위를 유지 중이다. 부품별로 최상의 재료만을 고집하며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 악기를 만드는 걸로 유명하다. 때문에 악기의 퀄리티 면에 있어서는 타 회사를 압도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 때문인지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다른 악기사의 악기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높다.

그렇지만 한정 수량으로 뽑는 명품이 아니라면 아주 못 살 정도는 또 아니었다. 즉, 거리의 악사들도 작정하고 돈 모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결정타를 말해주지. 아까 그 기생오래비가 연주한 바이올린은 베토벤 사에서 나오지 않은 물건이야. ”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싶은 오카린이었다. 그러나 키아스가 덧붙인 말로 인해 미궁에 빠져버렸다. 가짜 거리의 악사가 유명 악기사 마크가 붙은, 하지만 거기서 나오지 않은 악기를 들고 거리에서 연주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잘 이해가 안 돼요.”

“어려울 거 없어. 저 인간이 거리에서 연주를 한 건 일종의 퍼포먼스야. 당연히 베토벤 사에서 계획했겠지. 앞으로 판매할 새 제품을 홍보하는 거야. 판촉 행사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나?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지. 아마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벤트를 벌이고 있을 거야. 악기 판촉 행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회사의 이름값은 더욱 알려지겠지.”

“아!”

오카린은 크게 감탄하였다.

키아스의 추리력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워낙에 오래 붙어 지낸 사이라 자주 무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추리력까지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키아스는 그랬다. 평소에는 그냥 담배나 뻑뻑 태우고 도박 좋아하고, 여자 밝히는 동네 백수처럼 행동하지만 추리력을 발동할 때면 사람이 달라진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천성 탐정 체질이었다.

오카린이 놀란 건 이런 행사를 준비한 베토벤 사의 기획력이었다. 광고라는 건 대놓고 이거 사세요 라고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보는 사람이 그것을 광고라는 걸 몰라야 진정한 광고인 것이다. 일종의 무의식 속에 심어놓는 것이다. 베토벤 사는 그 점을 매우 정확하게 노렸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군. 대단해. 역시 안단테의 탐정 영웅이야.”

그들과 열 발짝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으며 그 모습이 흡사 백호를 연상케 했다. 노인 치고는 몸이 굉장히 좋았다. 제법 큰 키에 속하는 키아스 보다 키가 컸으며 몸이 다부졌다. 노인이라기보다는 노장에 가까운 모습이다.

“누구시죠?”

오카린은 두 손 모아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허허, 옆에 있는 탐정님이라면 나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싶군.”

그의 말에 오카린은 난간 위의 키아스를 올려다보았다. 키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있지요. 루드비히 사의 회장님?”

“역시 영특하군. 안단테의 탐정 영웅이라는 말은 과장된 게 아니었어.”

“뭐, 이런 문제에 탐정 영웅이라는 명칭을 들먹일 일이 있나요. 루드비히씨는 아까 연주를 감상하던 군중 속에 끼어 있더군요. 다들 연주에, 혹은 그 남자의 얼굴에 황홀해 하고 있었죠. 딱 한 사람, 당신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연주자를 지켜보는 루드비히씨의 표정에는 불만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처음에 하신 말씀으로 보아 당신은 그것이 베토벤 사의 홍보 전략이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어요. 당연히 루드비히 사의 회장님이라는 결론이 나오죠.”

오카린은 키아스의 추리에 탄성하며 감탄했다.

‘역시 소장님! 대단해!’

루드비히 역시 감탄하며 물었다.

“굳이 회장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회사의 다른 사람이 와서 구경한다던지?”

“전에 신문을 통해 루드비히씨의 사진을 봤거든요.”

휘청.

그 한 마디에 오카린은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처음부터 얼굴을 알고 있었다면 그 추리가 전부 소용이 없잖아!

키아스가 반쯤 비꼬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루드비히씨께서 이곳엔 어인 일이신가요?”

“자네들의 사무소를 가는 길이었지. 도중에 웬 음악이 들려서 잠시 멈췄는데 때마침 자네들도 이곳에 있었지 뭔가.”

“그 말은 의뢰할 것이 있다는 말인가요?”

루드비히는 굳은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라는 소리에 오카린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서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반년동안 탐정 사무소에는 이렇다 할 의뢰가 없었다. 가끔 들어오는 의뢰라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달라거나, 가로수 꼭대기에서 걸친 축구공을 구해 달라는 게 고작이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오카린은 기쁨에 차올라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억?”

오카린의 손이 키아스의 정강이를 때렸다. 키아스는 현재 난간 위에 아슬아슬 하게 서 있었다. 오카린의 기습적인 공격에 키아스는 비명을 지르며 강물 위로 다이빙 하였다.

“으악!”

풍덩!

루드비히는 멍한 표정으로 오카린을 바라보았다. 오카린은 그를 마주보며 수줍게 웃었다. 민망함에 혀를 비죽 내밀었다.   

 

 

*     *     *

키아스와 오카린은 루드비히의 저택으로 향했다. 대기업 회장의 집이라 그런지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그곳까지 마차를 타고 이동했는데 대문을 통과해서도 마차는 계속 달렸다. 정원에는 수십 명의 정원사들이 꽃과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가 지나가자 허리를 숙여 인사를 보냈다. 마차는 30분가량 정원을 달려 저택에 도착하였다.

“와아, 굉장하네요.”

오카린은 으리으리한 저택의 위용에 입을 다물지 못 했다. 키아스는 휘파람으로 감탄을 대신했다.

“안으로 들지.”

저택 안도 바깥 못지않게 화려했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써서 매혹적이며 정열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홀에서부터 복도 중간 중간 마다 평상복을 입은 기사들이 배치 돼 있었다.

“기사들이 꽤 많이 있네요. 생각 이상으로 많아요.”

오카린의 혼잣말 겸 물음에 키아스가 대답을 대신했다.

“이 안에 뭔가 귀중한 것이 있다는 의미겠지.”

키아스의 토스를 루드비히가 받아쳤다.

“그래. 굉장히 귀중한 것이 보관 돼 있지.”

“그리고 현재 그것이 사라진 걸 테고요. 그렇죠?”

“잘 아는군.”

아무 것도 예상치 못한 오카린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키아스와 루드비히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키아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가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겠군요. 그 중요하다는 물건이 보관 돼 있었던 곳.”

“맞아.”

그 때서야 오카린은 자신들이 저택의 깊숙한 곳까지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대화를 하기 위함이라면 저택의 홀에서 멈췄을 것이다. 정원에서 대화를 나눴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들은 수십 명의 기사들을 지나쳤다. 자물쇠가 걸린 수십 개의 철창을 지나쳤으며, 수십 개의 계단을 밟았다. 수십 미터의 복도를 걸었다.

이윽고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지하 깊숙한 곳의 창고 같은 장소였다. 공간은 넓었고 수많은 책장과 책들이 꾸역꾸역 쌓여 있었다. 중앙에는 책상이 있었으며 악기 그림이 그려진 도면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한 쪽에는 묵직한 금고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우리 루드비히 사의 악기 도면을 만드는 곳이라네. 악기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도 하지. 유출 방지를 위해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를 마련한 것이고 중간 중간 기사들도 많이 배치했어.”

“즉, 가장 중요한 도면 하나가 사라졌다는 말이 되는군요. 금고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사라졌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군.”

오카린은 곧장 품 안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루드비히씨, 사례금은 얼마까지 알아 보셨나요?”

저택의 웅장한 기운에 짓눌려 있던 오카린, 돈 생각을 하자 금세 기운이 되살아났다. 정말 오랜만의 의뢰였기에 나름 기합이 팍팍 들어간 상황이었다. 오카린의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며 루드비히는 피식 웃었다.

“돈은 넉넉하게 줄 터이니 너무 걱정 말게, 아가씨. 2억 플랫이면 적당하겠나?”

“2억 플랫이요!?”

오카린의 두 눈이 $ 모양으로 변했다.

보통의 의뢰비는 많아야 500만 플랫을 넘지 않는다. 더구나 탐정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의뢰가 그리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2억이라니. 오카린은 감격에 몸을 떨었다.

“이봐, 오카린.”

그 뒤에 있던 키아스가 툴툴 거리며 말했다.

“표정 관리 좀 하라고. 돈 이야기에 너무 얼굴이 밝아지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자네는 내 조수인데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라고.”

키아스의 지적에 오카린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루드비히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였다.

“죄, 죄송합니다.”

“허허허. 아닐 세. 사업 규모가 있는데 그 정도 돈은 나한테 많은 것도 아니야. 그만큼 사라진 도면이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라는 의미도 있지. 자네들이 반드시 찾아주길 바라네.”

키아스는 안경을 고쳐 쓰며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완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음침했다. 비밀 회의실이 아니라 지하 감옥이 더 어울리는 장소였다.

오카린은 수첩을 들고서 루드비히에게 질문을 하였다.

“일단 한 가지 묻겠습니다. 이 일을 경찰에 알렸나요?”

“당연하지. 중요한 사안인지라 비밀리에 수사해줄 것을 당부했어. 자칫 잘못 퍼졌다가는 우리 회사에 안 좋은 타격을 입을 수도 있거든.”

“그럴까요? 어쨌든 넓게 이름을 알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 안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안 좋은 일이기 때문이네, 오카리나양. 루드비히는 그냥 그런 회사가 아니라 악기를 만드는 곳이네. 그건 무척이나 자긍심 높은 일이지.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만드는 것 역시 고귀한 일이네. 그런데 중요한 도면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널리 퍼트리는 건 우리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일이야. 그리고 사방에 알린다고 사라진 도면을 금방 찾아낸다거나, 아니면 도둑놈을 금방 잡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렇군요. 아, 죄송한 부탁이기는 한데. 혹시 사진 몇 장만 찍어도 될까요?”

“상관없네. 다만 그 사진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말 게. 일이 끝나면 그 즉시 파기해. 비밀을 간직하라는 소리야.”

“알겠습니다.”

오카린은 가방 안에서 사진기를 꺼냈다. 키아스는 묵직한 사진기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진을 찍었다.

펑펑!

사진기는 강렬한 플래시를 터트리며 루드비히 사의 이곳저곳을 담았다. 키아스는 마치 모델을 앞에 둔 사진작가처럼 이리저리 관능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어댔다. 그 모습을 보며 루드비히는 오카린을 바라보았고, 오카린은 모르는 척 괜히 고개를 돌렸다.

‘소장님, 제발 좀 진지해지세요!’

제대로 사진을 찍고 있기는 한 건지, 심지어 공중제비를 돌며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자자, 자연스럽게 웃으세요. 치즈!”

보초를 서는 기사들과 루드비히를 사진 찍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웃으며 V를 그리던 기사들과 루드비히는 뒤이어 터진 플래시에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자자, 오카린도 한 방 찍자. 포즈 취하시고!”

“으윽, 찌, 찍지 마요! 뭐하는 짓이에요? 성질 낼 거 에요! 찍지 마요!”

오카린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니고 안 취한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를 잡았다. 팡! 플래시에 눈이 시린 오카린은 신음하며 눈을 비볐다. 사진을 다 찍은 키아스는 만족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만족스럽군요. 자, 그럼 몇 가지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     *

자료 조사와 질문을 끝마친 키아스와 오카린은 저택을 나왔다. 루드비히가 마차를 타고 갈 것은 권했으나 키아스가 그것을 거부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걸어야 머리가 잘 돌아가는 체질이거든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선금은 알려드린 계좌로 일주일 내로 붙여주세요.”

루드비히의 저택을 나오자마자 오카린이 키아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쿡쿡.

“왜 그런 거짓말을 했죠?”

“거짓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난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새 나라의 착한 탐정이라고.”

“걸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요. 소장님은 10분만 걸어도 머리가 핑핑 돌잖아요.”

키아스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대답을 피했다.

“설마 여기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려는 건 아니죠? 걷다가 도중에 쓰러지시면 곤란하다고요. 더 이상 기절한 소장님을 등에 업고 가는 건 사양할래요.”

“걱정 마. 안 되겠다 싶을 때 마차를 타면 그만이지. 그냥 좀 걷고 싶었어.”

“알았어요.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하죠. 소장님은 이번 사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라고 해야 할까.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에게 나를 대입해 보지. 내가 만약 범인이라면 어떤 수법을 썼을까 하면서 말이야.”

“보통은 그렇죠.”

“근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답이 안 나와. 너무 철통 수비라서 도무지 뚫을 방법이 떠오르질 않더라고. 그냥 불가능한 거 같아.”

“내부인의 소행일까요?”

“내부인에게도 불가능한 일 같아.”

“그게 뭐에요. 그럼 도대체 누가 도면을 훔쳐갔을까요?”

“뭐. 낸들 아나.”

키아스는 그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춤을 추듯 살랑살랑 걸으며 손거울로 머리카락과 얼굴을 살필 뿐 이었다.

“소장님, 혹시 왕자병?”

“아름다운 꽃일수록 더욱 관리를 해줘야 하는 법이야.”

“예예~ 그러시겠죠. 어련하시겠어요.”

계속 틱택 거리며 걷던 중 키아스는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지나가던 마부가 마차를 세웠다. 키아스는 마부에게 삯을 건네며 말했다.

“이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사진 현상소로 갑시다.”

오카린은 도무지 키아스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키아드리스야 평소에도 기행을 많이 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 기행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는 정도였지 ‘이해 못할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이해 못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오카린은 답답한지 볼에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 넣고는 팔짱을 꼈다.

“다 왔다.”

현상소에 도착하자 키아스는 오카린의 부풀어 오른 뺨을 콕 찔렀다. 기습을 당한 오카린은 키아스에게 마구 성을 냈다.

현상소에서 찍었던 사진을 전부 출력하고, 키아스는 가게 주인에게 가방을 빌렸다. 루드비히가 신신당부한 대로 회사의 비밀 장소가 담긴 사진은 보완이 중요했다. 현상한 사진을 가방에 담고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소장님, 설마 여기서부터 또 걸을 생각은 아니겠죠?”

“잘 알고 있군. 우리는 잠시 걸을 거야. 마침 걷기에 딱 좋은 오후 7시로군.”

오카린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키아스를 살폈다.

“소장님, 이마에 식은땀이 한 가득인데요?”

“괘, 괜찮네.”

“입술이 파래요.”

“괜찮대도.”

“호흡이 불규칙한 걸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부축 좀 해주게.”

“싫어요.”

“…….”

키아스는 체력이 그리 좋지 못 했다. 아니, 체력을 떠나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까 오카리나가 말했던 것처럼 10분만 걸어도 체온이 40도 까지 오르며 숨이 막힐 정도이다. 잔병치레는 어찌나 많은지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출근할 정도이다.

키아스의 현재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부득부득 고집을 피웠다. 오카린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뭔가 생각이 있으니 이러는 것이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텁.

누군가의 손이 그녀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가방을 붙잡았다. 그것은 오카린의 손도, 키아스의 손도 아니었다. 얼굴에 복면을 쓴 제 삼자의 손이었다. 그는 눈을 희번뜩 하게 뜨고서 둘 사이를 빠르게 지나쳤다.

“안 돼!”

그는 가방을 낚아채고서 거리를 질주했다. 오카린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저 가방은 사진 현상소에서 빌린 것이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는 루드비히 회사의 비밀회의실의 모습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가방에는 루드비히를 탐문했던 내용이 적힌 수첩이 함께 들어 있었다.

오카린은 당황하여 키아스를 바라보았다.

“오카린!”

“네, 소장님!”

오카린은 그 즉시 두 손을 바닥에 대고는 자세를 낮췄다. 크라우칭 자세였다. 그 상태로 엉덩이를 들고는 지면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타앗!

오카린은 번개처럼 소매치기의 뒤를 쫓았다. 그녀가 비록 한량 탐정 뒤에서 살림이나 하는 신세였지만, 실제로는 보통 사람을 뛰어 넘는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자격증만 해도 마흔 개가 넘었으며 총 5개 국어가 가능했다. 여섯 가지의 무술을 마스터했으며 황실 기사들만 가능하다는 지옥의 체력 테스트 또한 통과했다. 오카린은 노랗고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소매치기와의 간격을 좁혀나갔다.

하지만 소매치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큰 길과 좁은 길을 넘나들며 오카린을 따돌리려 했다. 간혹 길가에 놓인 사과 상자를 넘어트리며 오카린의 추격을 방해했다. 두 사람이 쌩 하니 지나갈 때면 중년 신사의 가발이 날아갔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숙녀의 치마가 펄럭였다. 노인의 담뱃불이 꺼졌으며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이 요동을 쳤다.

“이런.”

키아스는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그의 체력으로는 두 사람을 쫓는 건 불가능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달그락 달그락.

그 때였다. 옆으로 마차 한 대가 지나갔다. 키아스는 손가락을 튕기며 급히 마차에 매달렸다. 마부는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키아스가 마차의 옥상에 올라설 때까지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다. 그가 마차 위에 두 발로 서자 거리의 사람들은 키아스를 보며 휘파람과 환호를 보냈다. 마부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떨떨해 하였다. 그래도 일단 모자를 벗어 사람들에게 화답했다.

“읏차.”

키아스는 마차에서 다른 마차로 아슬아슬하게 옮겨 탔다. 마차에서 가로수의 나뭇가지에 매달렸고 바퀴벌레처럼 순식간에 나무 꼭대기에 올라섰다.

“조심, 조심.”

나무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 옆에 있던 2층 건물의 옥상에 안착했다. 2층 건물에서 다시 3층 건물로 옮겨 갔다.

“아이고, 힘들어.”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혹시나 키아드리스가 떨어질까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키아스는 난간에 매달려 낑낑대다가 훌쩍 그 너머로 올라갔다.

“휘유.”

3층 높이에 서니 그제서야 거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쫓고 쫓기는 소매치기와 오카린의 모습도 보였다. 키아스는 건물 위를 통해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건물 하나를 뛰어 넘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기분이었다.

소매치기가 한 쪽 방향으로만 달리는 게 아니라 같은 지역을 빙빙 돌았기에 거리는 금방 좁혀졌다. 완전히 가까워지자 키아스는 밑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였다.

“차앗!”

소매치기가 바로 밑으로 지나가려는 찰나, 키아스는 이 때다 싶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냥 뛰어내리면 떨어졌을 때 충격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키아스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걸려 있는 빨랫줄을 붙잡은 다음 손을 놓았다.

“이 놈! 붙잡았다!”

소매치기의 속도는 예상 외로 빨랐다. 키아스가 채 덮치기 전에 밑으로 지나갔고 그 대신 뒤따라가던 오카린을 덮치는 꼴이 되었다.

“으악!”

“꺄악!”

밑으로 떨어지는 키아스를 피한 소매치기는 순간 발이 꼬여 자리에 넘어졌다. 바닥에 제대로 무릎을 찧은 모양인지 낑낑 거리며 다시 몸을 추스렸다. 그는 뒤엉킨 두 사람을 돌아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키아스와 오카린은 마구 엉키며 바닥을 뒹굴었다. 하필 바로 옆에 계단이 있었고 두 사람은 드럼통처럼 계단을 굴러야 했다.

“꺄악! 꺅!”

“윽! 악! 윽!”

계단에 찧을 때마다 오카린이 쿠션 역할을 해줘서 키아스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구른 다음에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다.

“으으.”

“오카린, 자네 괜찮나?”

“으음. 전 괜찮아요. 그보다 소매치기는 어떻게 됐죠?”

키아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국 붙잡지 못 했다는 생각에 오카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그렇고 그 전에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저기요, 소장님?”

“왜 그러나.”

“죄송한데 손 좀 치워주실래요?”

“응? 내 손이 왜.”

키아스는 자신의 두 손이 향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바닥을 구르느라 안경이 날아가서 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려 손을 확인하였다. 계단을 구를 땐 워낙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그녀의 두 가슴을 손으로 짓뭉개고 있었다. 밀가루 반죽을 하듯 아주 과격하게.

키아스가 환히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등이로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호호호. 소장님도 참.”

오카린도 환히 웃으며 키아스의 명치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꺽!”

급소를 공격당한 키아스의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진다.

 

 

*     *     *

다음 날.

심각한 일이었다. 의뢰인은 이 사건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데 그만 탐문 수첩과 사진을 빼앗긴 것이다. 소매치기를 놓치고 나서 한동안 거리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놈을 잡을 수는 없었다. 처음 등장부터 복면을 쓰고 있었기에 얼굴을 알지도 못 했다. 뒤늦게 붙잡는 건 불가능했다. 가방을 뺏긴 일에 자신의 실책이 크다는 사실에 오카린은 절망했다. 그녀는 애 낳는 부인 기다리는 남편처럼 사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흐아암.”

반면 키아스는 소파에 앉아 낮잠을 잘 만큼 천하태평 했다. 코를 파며 커피를 마시고, 하품을 하며, 나온 지 1년이 지난 신문을 들춰 보았고 담배를 피웠다. 또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보다 못한 오카린이 키아스의 담배를 빼앗으며 소리쳤다.

“소장님! 제발 좀 사태 파악을 하세요. 지금 큰 일 났다고요!”

“큰 일? 무슨 큰 일.”

오카린은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키아스의 얼굴에 던졌다.

“흐음.”

아니나 다를까, 신문에서는 루드비히 사의 신제품 도면을 도둑맞았다는 뉴스가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었다.

<안단테의 탐정 키아드리스. 또 사고 치다!>

안단테의 탐정 영웅이라 불리는 키아드리스. 그가 또 사고를 쳤다. 과거 불법 도박사건, 유부녀 희롱, 미성년자 희롱사건, 불법 약물 복용, 고성방가, 노상방뇨 이후 새로운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그는 모월 모일, 루드비히 사의 도면을 훔친 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루드비히씨는 이 의뢰를 비밀에 붙여둘 것을 당부했다. 허나 여기서 사건이 발생한다. 그만 소매치기에 의해 탐정 수첩과 루드비히 사의 비밀회의실 모습이 담긴 사진을 빼앗긴 것이다.

키아스는 신문을 보며 재밌다는 듯 킬킬거렸다. 오카린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소장님!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고요! 이번 일로 루드비히씨가 우릴 고소하면 꼼짝 없이 당한다고요. 뭔가 대비책이 있어야 해요.”

“자넨 뭘 그리 걱정이 많나? 이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요! 큰일이죠. 큰일이고말고요! 이건 절대로 작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소장님은 뭔가 대책이 있다는 거 에요?”

오카린은 내심 기대에 차서 찔러보았다.

“아니. 그런 거 없는데.”

“이익!”

오카린은 분노에 차올라 키아스의 멱살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큭큭! 켁! 하, 하지만 말이야. 이건 간단한 문제라고.”

“뭐가 간단해요.”

“우리가 이 사건을 해결하면 그만인 거야. 생각해 보라고. 자네는 경찰들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가? 오, 절대로 불가능해.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지문 인식이 가능해진다면 모를까, 아직 그건 꿈의 기술이잖아? 절대로 안 될 걸.”

“그럼 소장님은 뭔가를 알고 있다는 말이군요?”

“아니. 모르는데.”

“이익!”

“켁켁!”

오카린은 거의 영혼을 뽑아 버릴 듯 키아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절망을 느낀 오카린은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눈물도 나지 않았다. 비록 조수였지만 그녀에게도 탐정의 피가 흘렀다. 울고 짜면서 신세 한탄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단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정리해 보자.

비밀 회의실은 이름에 걸맞게 매우 비밀스러운 장소에 있어. 지하로 통하는 감춰진 문으로 들어가고, 가는 길은 복잡하게 꼬여 있지. 일정 간격마다 기사가 배치되어 있어. 총 인원은 50명. 각 기사들은 3교대로 밤낮없이 복도와 계단을 지키고 있지. 길은 무조건 일방향이라 다른 길도 없어. 도면은 묵직한 금고 안에 들어 있었어. 비밀 번호는 루드비히씨만 알고 있고.

즉, 외부 사람이 몰래 침입해서 훔쳐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내부인의 소행임에 틀림없어. 하지만 누군가가 출입할 때는 기사들이 전부 체크하잖아. 금고에 도면을 넣은 건 루드비히씨고, 그 이후에 회의실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고 했어. 아, 복잡하네.‘

오카린은 자신의 노랑 머리칼을 비비 꼬았다.

‘그럼 보초를 서는 기사의 짓일까? 하지만 한, 두 명이 계획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해. 그럼 기사들이 전부 한 패일까? 아니야.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해.’

답이 안 나오자 오카린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애초에 이건 말이 안 된다고! 그런 철벽 요새를 어떻게 뚫고 물건을 훔쳐?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누가 했는지 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걸.’

깊게 고민하던 오카린, 문득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지. 베토벤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베토벤이 업계 1위고 루드비히가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으니까. 업계 1위라고는 해도 그 차가 근소하니까. 쉽게 따라오지 못 하도록 손을 썼을 수도 있잖아?’

미약하게나마 갈피를 잡아가던 찰나였다.

콰당!

탐정 사무소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루드비히였다. 그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검을 든 기사들이 우르르 뒤따라 들어왔다. 씩씩 거리며 들어오는 기사들과 루드비히의 박력에 오카린은 어깨를 움찔했다.

“이제 어떡하죠, 소장님? 되게 화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

“소장님?”

대답이 없자 오카린은 고개를 돌려보았다.

“소장님!?”

소파에 태평하니 누워 있던 키아스가 보이지 않는다. 사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소장님! 대체 어디 간 거 에요! 날 혼자 두지 말라고요!”

오카린이 혼란에 빠져 우물쭈물 하고 있는 사이, 성큼성큼 루드비히가 다가왔다. 오카린은 뒷걸음질을 치려 했지만 하필 엉덩이 쪽에 책상이 버티고 있었다. 오카린은 책상에 걸터앉은 것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포즈로 루드비히를 맞이하였다.

“호호. 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죠?”

“그래. 정말 빌어먹게도 좋은 아침이로군. 아주 좋아. 그러는 자네도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

“그, 그런가요? 오해인 걸요. 사실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겠지.”

루드비히는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오카린의 어깨를 붙잡았다.

“히익!”

그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오카린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말이야. 우리 안단테의 탐정 영웅께서는 대체 어디를 가셨을까?”

“글쎄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는데 말이죠. 호호. 바람처럼 사라졌네요.”

루드비히는 안주머니에서 굵은 시가를 꺼내 들었다. 불을 붙이며 푹 연기를 내뿜었다.

“그래. 다 이해하네. 갑자기 소매치기가 뒤에서 기습해서는 가방을 낚아챘다고?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 자네들이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건 아니지 않나.”

오카린은 담배 연기에 쿨럭 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갑자기 그렇게 뺏어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희도 소매치기의 뒤를 쫓았지만 너무 빨랐어요. 제가 이래 뵈도 운동을 제법 하거든요. 그런데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으음. 보통 소매치기가 아니라는 증거에요. 아마 평상시에도 잘 단련된 조직의 일원일 거 에요.”

“그렇군. 그렇지만 잘못은 잘못. 자네들도 충분히 책임감을 느끼고는 있겠지?”

은근한 루드비히의 질문에 오카린은 꿀꺽, 침을 삼켰다.

“책임이라면 어떤?”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금전적인 보상이라거나, 아니면 크게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니까. 간단하네. 그리고 아주 당연한 거지. 하루라도 빨리 도면을 훔쳐간 범인을 잡아주길 바라네.”

“당연하지요! 지금이라도 당장 범인을 잡아드리겠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루드비히는 오카린을 바라보았다. 오카린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그 말은 오카리나가 한 게 아니었다.

“응?”

방금 범인을 잡아내겠다고 말한 건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당연히 오카린의 음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남자의 목소리, 키아드리스의 목소리였다.

“소장님?”

책상 밑에 숨어 있던 키아스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 웅크리고 있었던 탓에 키아스는 신음하며 허리를 토닥였다.

“으윽. 오카린, 허리 좀 두들겨줘.”

루드비히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거기 숨어 있었군.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누구는 이 일이 사방에 알려져서 분통이 터지는데 일을 맡은 탐정은 장난이나 치는 꼴이라니!”

“죄송하게 됐습니다. 부디 때리지만은 말아주세요. 설마 안경 쓴 사람을 때리지는 않겠죠? 고소할 겁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 나는 장난할 기분이 아니네.”

루드비히는 그리 말하며 두 눈을 불꽃으로 활활 불태웠다. 키아스는 과장되게 놀라며 오카린의 뒤에 몸을 숨겼다.

“하하하, 너무 걱정은 마세요. 모두가 궁금해 하는 범인을 잡아 낼 테니까요. 바로 지금.”

키아스의 말에 오카린과 루드비히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호위 기사들도 놀라 서로 수근 거렸다. 탐정 사무소가 소란스러워지자 루드비히는 발로 바닥을 쾅 하고 찍었다. 그 소리에 기사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죽였다.

“바로 지금?”

“예.”

“심증 정도가 아니라 물증까지 확실히 해서 말이지?”

“아마도?”

“그렇다면 범인이 바로 이 자리에 있다는 이야긴가?”

루드비히는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키아스를 주시했다. 키아스는 이죽이죽 웃으며 마주한 눈을 때지 않았다. 딱, 손가락을 튕기며 그가 말했다.

“맞습니다.”

키아스의 한 마디에 기사들이 다시금 수근 거렸다. 하루 만에 범인을 찾았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루드비히가 경찰에게 사건을 의뢰한 건 키아스에게 의뢰하기 한 달 전이었다. 경찰들이 한 달에 걸리도록 잡지 못한 범인을 하루 만에 잡았다는 소리다.

“키아드리스. 나는 말이야. 농담을 무척 싫어하네. 정말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어하지. 그래서 묻는 말인데 그 말은 농담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저는 농담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지금 한 말은 진담입니다.”

자신만만한 키아스의 모습에 루드비히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그럼 어디 한 번 들어나 보도록 하지.”

키아스는 그의 시가를 빼앗아 자신이 피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자, 정리를 해보죠.

루드비히 사의 비밀 회의실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어요. 그곳을 아는 사람은 드물고, 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 또한 흔치 않죠. 일정 간격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기사들이 감시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을 체크해요. 출구는 없고 입구뿐이죠.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중요한 서류나 문서 같은 건 금고 안에 넣어놔요. 비밀 번호는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지요. 요약하자면 외부인이 몰래 들어와서 물건을 빼가는 건 불가능해요. 완벽한 보완에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루드비히가 물었다.

“그럼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건가?”

“그것 역시 불가능해요.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으며 지키는 장소라면 모를까. 비밀 회의실을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내부인이 일을 꾸미려면 그 많은 사람들을 전부 포섭해야 하는데, 범죄에 가담하는 인원이 많을수록 꼬리가 길어지지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요. 그랬다면 경찰들이 뭔가 작은 단서라도 찾아냈겠죠. 외부인에게 불가능한 일은 내부인에게도 불가능하답니다.”

“그럼 대체 결론이 뭔가?”

“말씀드렸잖아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뭐라고?”

루드비히의 관자놀이에 십자 힘줄이 툭 하고 불거져 나왔다. 오카린과 기사들은 그런 루드비히의 상태를 살피며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너무 황당한가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요. 절대로 그 금고에서 누구도 문서를 빼돌릴 수는 없어요.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고요.”

“지금 장난하는 건가? 그럼 누가 문서를 훔쳐갔다는 건가.”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서 문서를 훔쳐가는 건 불가능하다고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오카린이 나섰다.

“그렇다면 훔쳐간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요?”

“이제야 좀 답답함이 가시는군. 그래. 처음부터 문서를 가지고 간 사람은 없었어.”

키아스의 말에 루드비히가 버럭 화를 냈다.

“어림없는 소리! 그럼 멀쩡한 문서가 왜 사라졌겠나!”

“그게 아니죠. 문서를 훔쳐간 사람이 없다는 말을 살짝만 바꿔보세요. 문서를 훔쳐간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훔쳐갈 문서가 없었으니까. 요컨대, 문서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가 됩니다.

여기서 살짝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제 저희가 저택을 나오는 순간 뒤로 미행이 따라 붙었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 자는 처음부터 사진을 탈취할 목적으로 저희의 뒤를 밟았어요. 오카리나? 자네와 걸으면서 내가 계속 거울을 봤던 거 기억하나?”

오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다 뒤에서 쫓아오는 미행범의 인상착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어.”

“그럼 마차를 타지 않은 건 왜죠?”

“그건 조금 있다가 이야기 해주지. 그 양반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어디 보자.”

키아스는 과장된 동작으로 입고 있는 상의를 이리저리 뒤졌다. 그 안에서 꺼낸 것은 구겨진 사진이었다. 현상소에서 뽑은 사진을 전부 가방에 넣은 줄 알았는데, 그 중 하나를 몰래 빼돌린 것이었다. 그 사진은 어색한 표정의 기사들과 루드비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많은 기사들 중 한 명의 얼굴에 붉은 글씨로 표시가 돼 있었다.

“옳지 여기 있군.”

그는 한 기사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구겨진 사진을 펼쳐서 기사의 얼굴 옆에 가까이 가져갔다.

“맞아. 당신이었어.”

지목 당한 이는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젊은 기사였다. 그는 당황해 하며 곁눈질로 주변의 기사와 루드비히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요!”

“그럼 어디 내기해볼까? 자네의 왼 쪽이나 오른 쪽 무릎에 상처가 없다면 자네의 결백이 증명되네. 하지만 어느 한 쪽이라도 흉터가 있다면 내 말이 맞아. 왜냐하면 그 소매치기는 우리를 피해 달아나가다 바닥에 넘어졌거든. 그 때 무릎을 찧었지 아마? 자네의 무릎에는 최근에 입은 상처가 있을 거야. 자, 어디 한 번 무릎을 까보실까?”

“그, 그렇지만.”

“하앗!”

키아스는 그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젊은 기사의 벨트를 풀고는 확 바지를 밑으로 내렸다. 바지가 내려가자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트렁크 팬티가 드러났다.

“!”

키아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기사의 오른 쪽 무릎에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붉은 상처가 나 있었다. 키아스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자자. 중요한 건 이게 아닙니다.

이 남자도 결국 누군가가 시켜서 움직인 음모의 희생양일 뿐이랍니다. 그렇다면 그 음모의 중심에는 누가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베토벤이겠군요. 업계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현재 그 자리를 루드비히 사가 열심히 뒤쫓고 있지요. 그럼 여기서 퀴즈 나갑니다. 이번 사태로 가장 이익을 보는 건 어디일까요?“

키아스의 말에 오카린은 슬몃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랬다. 이번 일로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은 바로 그였다. 루드비히!

키아스는 계속 말했다.

“어느 한 쪽이 이익을 본다면, 반대로 손해를 보는 곳이 생길 겁니다. 바로 베토벤이지요.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에요. 중요한 건 결과라고요. 업계 1위를 달리는 베토벤, 그 뒤를 바짝 쫓는 루드비히, 도둑맞은 루드비히 사의 비밀 도면. 이것이 드러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겠지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요?”

오카린은 키아스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종합해 보았다. 이야기의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었지만 차분히 생각할수록 뚜렷해졌다. 흩어졌던 조각들이 맞춰지자 무시무시한 그림이 완성됐다.

“소장님. 설마 루드비히 사에서 고의적으로 이 일을 꾸몄다는 말씀이세요?”

“바로 그거지. 처음 현장에 갔을 때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일어났거든. 사진을 찍고 질문을 하면서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계속 생각을 했지. 이 세상에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는 없어. 모든 문제엔 해답이 있지. 하지만 처음부터 잘못된 공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절대로 훔쳐갈 수 없는 물건이 사라졌다, 누가 어떻게 훔쳐갔을까? 이게 바로 그 경우야. 잘못된 명제라는 거지. 절대로 훔쳐갈 수 없는 물건은 문장 그대로 누구도 훔칠 수가 없어야 정상이야. 그래서 처음부터 도면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 그래서 마차를 태워주겠다는 호의를 거절한 거야. 일단 한 번 지켜보려고 했지. 당신은 실제로 기사를 시켜서 우릴 미행했고 가방을 가로 챘어. 그게 거리에서 만났기에 망정이지 마차 탄 채로 잡혔다면 무릎의 상처 같은 건 생기지 않았을 거야. 그야말로 완벽하게 당했겠지.”

“하지만 소장님. 소장님이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자면 루드비히씨가 자신의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는 건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 증거가 굳이 필요한 이야기인가? 내일이면 음모의 중심에 베토벤 사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찌라시가 엄청 늘어날 거야. 베토벤은 이미지적으로 꽤나 큰 타격을 받겠지. 반대로 루드비히 사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수많은 매스컴에 오르락내리락 하며 자연스레 광고가 될 것이야. 동정 여론이 됐든 뭐가 됐든 말이야. 그리고 사라진 도면은 대체 어떤 악기였을까 하는 내용들도 뒤이어 올라오겠지. 뭐, 악기계의 판도를 바꿀 엄청난 물건이었는데 그게 사라져버렸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루드비히는 키아스가 가져갔던 시가를 도로 빼앗았다. 시가의 향을 음미하며 킬킬, 키아스를 비웃었다.

“당최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자네 말은 이게 다 내가 꾸민 쇼라는 이야기인데. 저 아가씨 말대로 증거 하나 없이 나를 모함하려는 건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어이가 없어!”

키아스는 다시 시가를 빼앗으며 말했다.

“그렇군요. 제가 잘못 생각했나 보군요. 사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일단 저 곰돌이 팬티 남자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경찰서에 말이죠. 제 말이 사실인지 저도 자신이 없거들랑요. 경찰들이랑 같이 취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는 꽤 거칠 게 취조한답니다. 여자면 몰라도 남자에겐 정말 가차 없죠.”

키아스는 실실 웃으며 젊은 기사에게 말했다.

“어이, 청년. 기대하라고.”

그 악마 같은 미소에 기사는 벌벌 떨었다. 얼마나 두려움에 절었는지 내리고 있는 바지를 미처 올릴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루드비히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살려달라는 의미였다. 루드비히는 미간을 찌푸렸다.

짝.

루드비히는 눈을 감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대기 중이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창문에 커튼을 쳤고 문을 잠갔다.

갑작스런 사태에 오카린은 당황하여 전투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사무소는 너무 좁았고 기사들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이렇다 할 무기가 없었다. 함부로 싸울 순 없었다.

반면 키아스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몽당연필만큼 남은 시가를 쪽쪽 빨다가 책상에 있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 기사들은 키아스와 오카린, 그리고 팬티 차림의 기사에게 검을 겨누었다.

루드비히가 말했다.

“안 되지, 안 되고말고. 그러니까 내 말은 ‘증거’를 남기면 안 된다는 말이야.”

루드비히는 그리 말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팬티 차림의 기사를 슥 쳐다보았다.

“회, 회장님! 살려 주십쇼!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쇼!”

“시키는 대로 했다고? 오, 그건 아니지. 난 자네에게 사진을 빼앗으라고 했지 정체를 들키라고 시키지 않았어. 그건 명백히 자네의 실수라고. 그렇지 않나?”

“으으.”

루드비히의 주름진 눈이 키아스에게로 옮겨 간다.

“자네에게도 많이 놀랐네. 탐정 영웅이라기에 뭐 얼마나 대단하겠나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네.”

“칭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 사무소를 자주 찾아 오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뭐, 그럴 기회가 있다면 말이죠.”

“그건 무슨 말이지?”

딱.

키아스는 대답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부서졌다.

“경찰이다! 모두 손들어! 무기 내려놔!”

기사들은 검을 들고 있었으며 경찰들은 총을 쥐고 있었다. 검과 총은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았다. 여러 개의 총구가 자신을 겨누자 기사들은 급히 검을 내려놓으며 손을 들었다. 경찰의 습격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이었다.

오카린은 황당해 하면서도 무릎을 탁 쳤다.

‘조금 전에 전화한 게 경찰에 전화를 한 거였어!’

경찰들은 그 자리에서 루드비히와 기사들을 체포했다. 키아스의 연락을 받고 일찌감치 사무소를 찾은 그들이었다. 키아스는 바로 들어오지 말고 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전했다. 키아스의 말대로 밖에서 기다리다가 루드비히가 자백한 말을 모두 들어버린 것이다. 증거 필요 없이 루드비히는 현행범이 되어 체포 됐다.

“이 자식. 두고 봐라. 내 감옥에서 나오면 널 제일 먼저 처치해 주마. 절대 잊지 않으마. 키아드리스!”

“아, 무서워라. 오카린? 커피 한 잔 뽑아 주게. 아주 달짝지근하게 말이야.“

오카린은 경외감에 찬 눈으로 키아스를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일한지도 제법 됐지만 그는 자주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조수 월급이 밀려서 빠찡코에 매달린다거나, 매일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질 않나, 담배를 하도 많이 피워서 사무실 벽지가 노랗게 물들 정도이며, 예쁜 여자를 보면 그 자리에서 바지를 벗을 만큼 호색한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사건을 맡으면 사람이 180도 달라진다.

오카린은 키아스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키아스도 안경을 고쳐 올리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탐정이다. 안단테의 탐정 영웅, 키아드리스.

결국 루드비히는 사기와 살인 미수죄로 체포 되었다. 덕분에 촉망 받던 기업인 루드비히 악기사는 사분오열 되어 악기 업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루드비히 사를 옹호하던 기사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루드비히의 음모에 가담했던 곰돌이 팬티 청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죄가 작다는 점을 들어 처벌은 경미한 수준에서 그쳤다. 베토벤 사는 악기 업계의 1위 자리를 계속 고수했으며 키아드리스와 오카리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며칠 뒤,

오카린과 키아스는 처음 루드비히를 만났던 그 다리에 갔다. 그곳에는 두 명의 거리의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저번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

  ♪~♬~♪~♬

오카린은 키아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이번에도 홍보용일까요?”

키아스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번에는 진짜로군.”

“그걸 어떻게 알죠? 거리가 꽤 멀어요. 소장님 눈도 나쁘잖아요?”

“그야 간단하지.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연주는 그 맛이 다르거든. 저번의 그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그건 음악이 아니었어. 그냥 LP판을 돌리는 듯 했지. 지금 들리는 이게 바로 진짜 음악이야.”

두 명의 악사가 빚어내는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 뒤꿈치가 들썩거릴 만큼 신나는 것이었다. 바이올린과 손바닥 드럼이 만들어내는 멜로디와 리듬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가만 지켜보던 키아스는 오카린의 손을 잡아끌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둘을 위해 둥그렇게 자리를 마련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만든 무대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한 곡 춰보실까?”

“춤추다가 지쳐서 기절하지나 마세요.”

“걱정 없어. 기절하면 자네가 업어다가 사무실까지 바라다 주겠지. 그렇지 않나?”

“하여튼 못 말려 정말.”

오카린은 기가 막힌다는 듯 비웃으면서도 키아스의 손길을 따랐다.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그 모습에 악사들은 더욱 격렬하게 악기를 놀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냈다.

오늘도 그렇게 안단테는, 키아드리스 탐정 사무소는 평화롭다.

 

 

*     *      *

조수 오카리나의 사건일기.

1704년. 6월 15일. 날씨는 매우 좋음.

이번에 해결한 루드비히 사의 사건을 보며 느낀 점이 참 많다. 홍보의 세계란 참으로 무궁무진하고, 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돈이 됐든 권력이 됐든 거대한 힘이 매스컴과 결탁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여실히 보게 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명 다른 잡지사와 신문사와도 이런저런 커넥션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조만간 매스컴과 관련되어 또 다른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을 해본다.

아 참.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소매치기의 이야기다. 소장님은 일찌감치 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방을 빼앗기고 왜 다음 날 까지 기다린 걸까? 그 날 곧장 저택으로 돌아갔다면 더 빨리 일을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루드비히의 저택이 위험하다 할지라도 경찰들을 대동하면 그만이다. 소장님은 어째서 하루 동안 사건을 ‘묵혀’ 놨던 걸까? 단지 그냥 귀찮아서? 그건 아닐 것이다.

사건을 해결한 직후 탐정 사무소로 들어오는 의뢰가 부쩍 많아지기는 했다. 설마…….

 

p.s

이번에 탄 월급으로 고민 끝에 결국 뽕을 사기로 했다. 저번에 소장님이 내 가슴보고 등이네 뭐네 한 게 자극이 되었다. 앞으로 체조도 할 거고 마사지도 열심히 할 거다. 나쁜 자식! 어디 두고 보라지.

 

 

*     *     *

일기를 다 쓴 오카린은 펜을 놓았다. 그리고 일기장의 남는 부분에 사진을 붙였다. 루드비히 사의 지하실에서 키아스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사진 속 오카린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사진이 무척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성스레 테이프로 붙였다.

오카린은 흐뭇하게 웃으며 일기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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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유

October 17, 2011
*.169.38.250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막힘 없이 넘어가는 전개력과 술술 읽히는 액션묘사는 최고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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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갤러아님

October 23, 2011
*.139.1.175

수수께끼의 레벨이 낮은 감이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자면 쉽게 답이 나오는 만큼 간편하게 읽을 수 있단 뜻이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PS:사실 이게 전력투구라곤 생각 안하기 때문에 후속 이야기가 어떨지 좀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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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조각

October 25, 2011
*.70.11.119

가독성도 좋고 캐릭터 개성도 좋고 재밌네요 단편으로만 끝내지 말고 계속 연재하시면 좋겠네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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