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2장 - 세연1 (3)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8:28 Jul 27, 2010
  • 4235 views
  • LETTERS

  • By 노유

3

 

잠시 정적이 돌았다. 시호도 세연도 먹을 건 다 먹은 듯했다. 김밥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더 먹지 않겠냐고 물었고 둘 다 배부르다고 말했다. 나는 도시락을 정리했다. 남은 건 집에 가져가 저녁으로 먹으면 된다.

 

팔을 뒤로 받치고 늘어져 있던 세연은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며 엉덩이를 털며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세연은 계단을 내려갔다. 시호는 계단에서 폴짝거리며 놀았고 나는 도시락을 마저 정리했다.

 

화장실을 못 찾는지 줄이 긴지 세연은 꽤 오래 소식이 없었다. 혼자 놀기도 지루해진 듯한 시호는 얌전히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시호는 내 옆구리 옷자락을 잡고는 말했다.

 

“나도 화장실.”

 

“언니 오면 가자. 사람 많으니 엇갈릴 수 있잖아.”

 

“급하단 말야.”

 

나는 세연과는 휴대폰으로 연락할 수 있으니 움직여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가자고 말하며 내가 일어서자 시호는 잽싸게 달려가 버린다.

 

“야. 천천히 가.”

 

시호는 정말로 급했는지 들은 척도 않고 달렸다. 나는 뒤통수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뒤따라 달렸다. 녀석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 난 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연은 내 뒤에서 야, 하고 불렀다.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시호가 화장실에 갔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지 않으려고 화장실 입구가 보이는 구석에 가 섰다.

 

“세연아.”

 

다시 둘만 남은 기회였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세연은 돌아보지 않고 응? 하고 말했다.

 

“오늘 하려던 말 말야. 지금 해도 될까?”

 

세연은 나를 흘끗 쳐다보며 말한다.

 

“좋을 대로 하셔.”

 

역시 물어보며 시작하는 건 영 아닌 듯했다. 어쨌든 말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 시호가 언제 나올지 모르겠지만, 시호가 나오더라도 이야기는 마저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연이 본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지난 일에 대해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2학년 때였어. 우리 학교에도 불량배들이 있던 거 기억하지? 난 그놈들이 싫었어. 잘난척하고 센척하고 거들먹거리고. 그런데 우연히 골목길에서 놈들 패거리랑 엮이게 된 거야. 놈들은 나한테서 삥을 뜯었는데 열 받은 나는 다음날 학교에서 그때 골목에서 봤던 우리 반 일진 놈들을 불러다가 혼내줬어.”

 

세연은 잠자코 들었다. 나는 계속했다.

 

“그러자 그 패거리에서 집단적으로 나오려 한 거야. 난 상대하기 싫어서 경찰에 신고해 버렸어. 이건 학교에서도 알고 있는 얘기.”

 

“그때 대대적으로 일진 애들이 학생부에 끌려갔는데 그게 네 덕분이었구나.”

 

“응. 거기까진 괜찮았어. 근데 뉴스에서 본 적 있지? 그런 놈들은 졸업생, 초등학생까지 연계해서 조직적으로 논다고. 우리 반에 있던 놈들은 그런 가장 악질이던 놈들이었던 거야.”

세연은 고개를 끄덕인다.

 

“교실 내에선 놈들은 찍소리도 못 냈어. 나한테 깨졌으니까. 하지만 학교 밖에선 다른 학교나 고등학생들까지 가세해서 시비 걸고 협박하고 심지어 집에까지 전화하며 괴롭혔어. 어느 날은 우리 반 일진 놈이 고딩 둘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찾아온 거야. 그래서 난 싸웠고 결국 쫓아냈어.”

 

“세 명을? 어떻게?”

 

“잘, 이라고 밖엔. 난 세거든.”

 

여기서 내 내력을 자세히 밝힌다면 이야기가 딴 길로 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세세한 건 건너뛰었다. 세연도 더 캐묻지 않았다.

 

“그 뒤로 몇 번을 교문 앞에서 고등학생들이 진치고 있었어. 몇 가지 교복이 있었지만 가장 많았던 건 우리 집에도 왔었던 남부 공고 교복이었어. 알지? 그 양아치 학교.”

 

그리고 문제의 그 학교. 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며칠간은 담 넘어 다니는 등 피해 다녔어. 정말 그놈들이랑 엮이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놈들은 자꾸만 날 괴롭혔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학교 다니는 것도 어려웠어. 애들도 점차 고딩들이 지 후배 만나러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하교하는 애들한테 날 수소문하기라도 했어봐. 바로 소문났을 거야. 다행히 날 겁주는 게 목적이었던 것 같았으니 망정이지. 결국 난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어. 일진 놈한테 말해서 놈들 대장한테 데려다 달라고 했어.”

 

나는 말했다.

 

“그놈들은 날 남부 공고로 데려갔어. 거기가 역시 깡패들의 본거지였던 것 같아. 여러 교복과 온갖 험상궂게 생긴 놈들이 다 모여 있더라고. 아, 물론 교문 앞까지만 갔지. 그 안까지 혼자 들어갔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거기서 난 보스를 불러오라고 버텼어. 그, 대장이라는 웃기게 생긴 놈이 결국 나왔는데 대뜸 팰 줄 알았는데 얘길 하자더라. 그래서 얘기했지.”

거기서 난 선택을 해야 했다.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그들에게 시달림 받으며 저항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 편에 설 것인지.

 

“그래서 싸움 하고 다녔구나.”

 

세연은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날 괴롭히는 대신 내 전투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조건을 하나 걸었다. 그들 패거리의 명령을 받는 싸움꾼이 되는 대신 내 이름과 얼굴은 알리지 말아 달라고. 나는 마스크를 쓰고 놈들을 따라다니며 주먹질을 했다.

 

정말로 떨쳐 버리고 싶었던 별명, 전설의 중학생. 내 전적은 무패였고 그 이름은 내가 다니던 학교에까지 퍼져 전설처럼 떠돌았다. 가장 짜증났던 것은 그 이름이 마치 영웅이라도 되는 양 떠들고 다니는 녀석들이었다. 당사자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그저 남의 일 떠들기 좋아하는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떠드는 소리, 마이크 하울링처럼 여기저기서 신경을 쿡쿡 찔러대는 그 소리에 나는 학교에서도 괴로워해야 했다. 약속대로 학교의 불량배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놈들은 내 앞에서 실실 웃으며 친한 척 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는 그러한 접근에 거리를 두었다.

 

굳게 마음먹지 않았더라면 나는 졸업할 때까지 놈들에게 시달렸을 것이다. 비밀도 아마 곧 새어나가 불명예스러운 졸업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끊었다. 내가 세연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세연이 내 비밀을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세연에게 물어봐야 했다. 단순히 고해성사를 하고자 했으면 편지로 전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를 꼼짝 못하게 했던 의문이 있었다. 나는 놈들의 사주를 받아서 하는 싸움질은 한 달 정도 만에 그만둘 수 있었다. 전설의 중학생이라는 별명도 그 이후로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세연은 내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언제부터?

 

나는 세연에게 그것을 물어보았다. 세연은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

 

“그게 말이지…….”

 

세연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거기에도 뭔가 사연이 있는지 세연은 뜸을 들이고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눈앞에 익숙한 자취가 스쳤다. 시호였다. 시호는 우릴 보지 못한 채 달려가 버렸다. 나는 세연에게 눈짓하고는 달렸다. 세연도 시호를 본 듯 뒤따라왔다.

 

“나머지 얘긴 나중에 하자.”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시호를 쫓기 시작했다. 시호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시호는 사람들 사이를 재게 누볐다. 시호의 뒤통수는 다람쥐처럼 도망가다가 어느덧 사람들 사이로 숨어버리더니 간 데를 찾아 두리번거릴라치면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멀찍이 떨어진 다른 무리에서 갑작스레 나타나곤 했다. 나는 다리들 사이를 누빌 수 없으니 멀어져 가는 시호를 목만 빼고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크게 불러 보았지만 들리지 않는 듯 녀석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세연 쪽을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시호를 불러 보았다. 시호는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녀석 역시 우리를 찾고 있는 것임을 짐작하고 재차 목소리 높여 시호를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녀석은 멈춰서 주위를 둘러본다. 나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쩐지 키가 조금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볼도 조금 갸름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소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아까 일부러 확인한 사실이기도 한데, 시호는 휴대폰이 없다.

 

나는 재빨리 뒤로 돌았다. 세연이 먼저 건물 안으로 다시 달려 들어갔다. 세연이 여자 화장실 안을 찾아보는 동안 나는 주변 돌아보았다. 온통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뿐이었다. 모두들 편안한 얼굴을 하고 어딘가로 주저 없이 걷고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세연이 밖으로 나왔다. 세연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세연은 화장실 입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역시 엉뚱한 아이를 쫓는 사이 놓쳐버린 듯했다.

 

“뭐하는 거야! 엉뚱한 애나 쫓고 있고.”

 

세연은 나를 힐책했다.

 

“정말 닮은 애였다고. 체격도, 무작정 달리는 것도.”

 

“어쨌든 시호 찾는 게 먼저야. 원래 있던 자리로 일단 가보자.”

 

“그래.”

 

우리가 도시락을 먹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호숫가를 돌며 벤치는 모두 둘러보았다. 역시 시호는 커녕 비슷한 애도 찾을 수 없었다. 입이 마른다. 시호는 분명 우리를 찾아서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세연이 먼저 대책을 내놓았다.

 

“일단 미아 센터 같은데 가보고, 없으면 방송을 해달라고 하자.”

 

“그래. 내가 가볼게.”

 

“아니. 넌 말을 똑부러지게 못 하니까 내가 갈게. 넌 이 근처에 있어.”

 

나는 알았다고 했다. 세연은 방송실을 찾아 달려갔다.

 

나는 시호를 잃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다. 시호는 똘똘한 녀석이다. 길을 잃었다고 판단했다면 스스로 미아 센터를 찾을 녀석이다. 아니면 휴대폰을 빌려서라도 집에 전화를 할 것이다. 그러면 나와도 연락이 될 것이다. 목걸이에 내 번호를 적어놓지 않은 게 후회됐다.

 

오히려 나는 녀석이 기회다 싶어 혼자 돌아다니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 나는 시호가 혼자서라도 이집트전을 보러 간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녀석이 스스로 연락하려 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특별 전시관 입구로 가 보았다. 여전히 그곳은 성황이었다. 두 명이 입구에서 표를 검사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시호 같은 작은 아이가 몰래 스며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줄을 선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무시해 가며 표 검사원에게로 가서 물었다.

 

“혹시 이리로 여자아이 혼자서 지나가지 않았나요?”

 

체격이 좋고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였다. 검사원은 표를 받느라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나는 질문하고 나서야 당연히 입장객 하나하나를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다시 물었다.

 

“여자애 하나가 표를 내지도 않고 몰래 지나간 적이 있나요? 제가 동생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요,”

 

“없습니다. 미아는 보호소에 가서 확인 하세요.”

 

공장처럼 표 검사만 반복하던 그 남자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표 검사 이외의 것에는 관심 없는 듯했다. 아무리 물어봐봤자 소용없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래도 다시 말해 보았다.

 

“제 동생이 실종됐어요. 근데 여길 보고 싶다고 떼를 썼거든요. 몰래 들어갔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러는데 제가 잠시 들어가서 찾아보면 안 될까요?”

 

남자는 나를 슬쩍 올려보더니 말했다.

 

“표 사서 입장하세요.”

 

철통같은 자였다. 나는 재차 사정해 보았다.

 

“제 동생이 없어졌다니까요. 초등학생이라고요. 안에 관람하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찾아보고만 나올게요. 그러니까,”

 

“표 사서 입장하세요.”

 

마치 보이스웨어와도 같은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필히 그는 내 이야기는 자세히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저항하듯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하는 수 없이 돌아서고 말았다. 나는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차라리 도시락 먹던 자리에 계속 있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라도 자리를 지켜야 서로 찾아다니다 엇갈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방송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세연에게서 연락도 없다. 아직 방송실이나 미아 센터를 못 찾은 것일까? 나는 제자리를 맴돌다가 휴대폰을 들어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혹시라도 시호가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아무도 없다면 큰일이다. 다행히 어머니가 받으셨다. 별일 아니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달리 없었다. 시호가 나를 찾아오든가, 세연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머리가 무겁다. 찌르는 듯한 두통과 함께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슷한 증세로 스트레스성이라는 진단을 여러 번 받았었다. 그 괴상한 별명을 달고 다니던 시절에 자주 겪었던 증상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면 언제나 머리가 아팠다. 난 그 통증이 싫었다. 무언가가 머리를 온통 짓누르는 것 같다. 사건은 언제나 이렇게 피곤하다. 사건이 일어나면 원래의 일상을 되찾지 못해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 스트레스가 나는 너무나 싫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제자리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그 앞 사람과 구분이 되지 않는 평범한 행인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처럼 걷고 싶었다. 2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손을 놓고 서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세연이었다. 나는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염려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 반대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세연은 말했다.

 

-시호 찾았어. 이쪽으로 와라. 나도 거기로 길 따라 갈게.

 

한순간, 목덜미가 따뜻해지며 머릿속에 광명이 비치는 기분이 들었다.

 

“어, 어디서? 우연히 만난 거야?”

 

나는 둘이 우연히 마주쳤거나 아니면 방송실에서 만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내 예상은 빗나가고야 만다.

 

-멍청아. 넌 네 입으로 말해 놓고도 모르겠어? 길 잃어버리면 정문에서 만나자고 네가 그랬잖아.

 

아차, 하얗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정문에서 집합하자고 내 입으로 말했었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정문 쪽으로 달렸다. 이렇게 바보 같은. 초등학생이 잊어버리지 않고 있던 원칙을 나는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