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2장 - 세연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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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5 Jul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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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노유

6

 

곧, 연습이 시작됐다. 세연도 자기 포지션으로 들어갔다. 처음 들어왔을 때도 느꼈지만 이미 많은 연습이 돼 있는 팀인 듯했다. 세연이 들어가자 바로 연습이 시작됐고 나와 시호는 의자에 앉아 구경했다. 그들은 대여섯 곡을 연달아 연주했다. 도입부에서부터 제목을 알 수 있는 곡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곡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디선가, TV CF나 어딘가의 bgm으로 들어봤음직한 익숙한 곡들이었다. 세연은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연주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너무나 뛰어났다. 다른 파트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세연의 기타만은 당장 일어나서 박수라도 칠 수 있을 정도로 확신할 수 있다. 세연의 손짓 하나하나와 그 밤톨 같은 손이 만들어내는 울림 가닥가닥을 놓치지 않으려 온통 거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연이 기타를 치는 모습은 쉬이 상상되지 않았다. 세연은 인기는 있었지만 스스로 나서거나 활발히 활동하는 애는 아니었다. 세연의 이미지라 하면 구석에 앉아서 착실히 자기 할 일을 하는 모범생 정도였다. 중학교 때의 세연은 부담스럽다고 반 회장 후보 자리도 마다할 만큼 정적인 아이였다. 그런 세연이 밴드부에 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 몇 달 동안 세연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아니, 달라진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세연에 대해 알던 것이 그저 오해였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기타를 잡은 세연의 모습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멋있고 그 이상의 세연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한 호흡의 연습이 끝나고 쉬는 시간. 세연은 기타를 내려놓았다. 연주에 대한 가벼운 논평 등이 오가고 물을 마시고 개인 연습을 하는 등 각자 시간을 보낸다. 시호는 그 새에 쪼르르 달려가 얼굴을 붙인다. 분명 호기심 넘치는 눈빛으로 이것저것 캐묻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연습실이 울리도록 소리친다.

 

“나도 쳐볼래!”

 

나는 재빨리 달려가 바닥의 놓인 유미 누나의 기타를 만지려고 하는 녀석의 손을 저지했다.

 

“죄송해요. 야,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유미 누나는 말했다.

 

“맞아. 그거 만지면 감전된다.”

 

시호는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유미 누나는 소리 내 웃으며 다가왔다.

 

“하하하하. 농담이야. 감전되면 기타를 어떻게 치겠어. 한번 쳐볼래?”

 

시호는 다시 표정을 밝히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유미 누나는 기타를 시호에게 매어 주었다. 초등학생인 시호에게는 아직 버거운 크기였다. 시호는 멋대로 줄을 튕겨 보았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유미 누나가 스피커 전원을 넣자 갑자기 날카로운 잡음이 쏟아졌다. 시호는 깜짝 놀라 뒷걸음친다.

 

“하하하, 전원을 켜야 소리가 나. 한번 코드를 잡아봐.”

 

누나는 시호에게 몇 가지 손동작을 가르쳤다. 어떻게 어떻게 손 위치를 바꾸니 제법 그럴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누나는 이번에는 베이시스트 홍아령을 불렀다. 그리고는 시호에게 주법 몇 개를 반복하라 시키고는 아령에게 맞춰보라고 시킨다. 시호가 투박하게 갈기는 소리를 베이스가 그럴싸하게 채색해 주었다. 시호는 좋아서 비명을 꺅꺅 질러대며 연주라는 걸 해본다. 곧이어 드러머 서연희 누나가 적당한 박자를 두드려 주었다.

 

“자네도 해볼래?”

 

간단한 합주가 끝나고 유미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아뇨, 악기엔 소질 없어요.”

 

나는 시호가 든 기타를 튕기며 대답했다. 아령은 다시 베이스를 내려놓았다. 가까이서 보니 기타와 베이스는 생긴 것도 많이 달랐다. 베이스는 기타보다 컸고 줄 수가 적었고 줄이 훨씬 굵었다. 나는 다른 한 손으로 베이스를 만져 보았다.

 

“으악!”

 

순간, 정전기가 터질 때의 수 단위 배는 되는 듯한 전류가 심장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충격이 가시고도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밴드 맴버들은 소리 내 웃었다. 유미 누나가 설명해 주었다.

 

“기타 선에는 전류가 흐르는 중이야. 선 두 개끼리 만나면 바로 통해버려.”

 

그건 진작 말해줘야죠!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잠깐의 해프닝 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연습이 시작되었다. 좀 전에는 실제 공연처럼 모든 곡을 이어서 연주 했었다. 이번에는 약한 부분, 자주 틀리는 부분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듯했다. 보컬인 유미 누나는 노래 부르기보다 연주 모니터링에 집중했다. 대충 흥얼거리다가 마음에 안 차는 소절마다 끊고 다시 돌아가기 일쑤였다. 처음 여기 와서부터 느낀 건데, 이들 선후배 관계는 상당히 유연한 듯했다. 내가 중학교 때 겪어본 선배란 자들은 불량배들이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대개 위압적이고 수직적이었었다. 그에 비해 이들은 말도 놓고 허물도 없어 보인다. 락을 하기 때문일까. 동아리 같은 것에 한번쯤 들어보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용히 살고자 하는 입학 시의 다짐도 있고 결정적으로 남고에는 제대로 활성화된 동아리가 없다시피 해서 생각만으로 그쳐야 하지만.

 

시호는 지켜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피곤하기도 했을 터이다. 지하철에서처럼 꾸벅꾸벅 졸던 시호를 깨우려다가 집에서 오는 전화를 받았다. 연습을 굳이 끝까지 봐주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그만 일어서기로 했다.

 

적당히 연습을 멈추는 틈을 타고 인사를 해야겠는데 유미 누나는 쉴 생각을 앓는다. 전장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목소리 높여 음의 진열을 가다듬고 진군하고 고요를 격파한다. 어정쩡하게 일어서서 눈치를 보던 와중 소라 누나가 흐름을 끊어 주었다.

 

“어? 가려는 거예요?”

 

멤버들이 모두 돌아보았고 나는 늦었으니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좀 더 우리랑 놀다 가지."

 

소라 누나가 아쉬움을 표정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오도록 하죠."

 

나는 말했다. 누나는 우리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면서 세연에게 말한다.

 

“세연아, 배웅 안 해줘도 되겠어?”

 

세연은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왜? 나가는 길 알잖아.”

 

그러자 누나는 얼굴을 또르르 굴리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배웅해주고 와도 되지?”

 

그러며 다짜고짜 내 팔을 휘어 감는다. 전부의 얼굴이 당황함으로 일그러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나는 붙잡힌 팔을 무의미하게 잡아당기며 말했다.

 

“괘, 괜찮아요. 혼자 나갈 수 있어요.”

 

누나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말했다.

 

“응? 세연아. 내가 데려다주고 올게. 자, 이제 나가요.”

 

누나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팔을 통해 따뜻하고 말랑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문으로 한 발짝을 내딛으려는 차, 세연이 말했다.

 

“언니가 뭣하러 데려다줘. 연습이나 해.”

 

소라 누나는 그 말을 듣고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조금의 구김도 없는 마치 아기와도 같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미소였다. 미소라는 것에는 원본이 있어 이 세상 모든 미소는 그것의 모사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소라 누나의 웃는 얼굴은 바로 그 원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차마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하네요?”

 

누나의 말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네?”

 

“알았죠? 그럼 배웅은 안 할게요.”

 

아쉬운 온기만을 남기며 누나는 팔짱을 풀었다. 아령과 연희 누나는 쿡쿡거리며 들리지 않게 떠들고 있었고 유미 누나는 말없이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세연은 무표정하게 나를 흘겨본다. 나는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그럼, 전 가볼게요 다들 안녕히…….”

 

시호는 팔짝팔짝 뛰며 언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세연은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교회를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시호는 언니들이나 악기들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어댔지만 나는 대꾸나 겨우 해줄 수 있었다. 마지막에 있었던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여전히 파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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