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4장 - 시호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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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1 Jul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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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노유

1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냐. 나는 이어폰으로 험한 소리가 수차례 쏟아질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눈앞이 하얘져서 인로가 내 앞에서 내 어깨를 쥐고 흔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 했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호가 납치됐다.

 

아동을 납치하고 아이의 집에 전화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요동치는 탓에 입을 열기도 어려웠다. 인로는 일어나서 벽에 걸린 달력을 내려 바닥에 뒤집어 놓았다. 펜을 든 것을 보아 글자로 나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모양이었다.

 

소란 누나가 올라왔다. 내가 지른 비명을 들은 듯했다. 소란 누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현관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인로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누나는 조심스레 신발을 벗고는 다가와 달력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인로는 시호가 납치됐다는 내용을 간단하게 적어보였다. 누나는 놀란 듯 딸꾹질 같은 소리를 내며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상대는 왜 말이 없느냐며 욕을 해댔다. 나는 다시 전화에 주의를 기울여 입을 열었다.

 

“지, 지금, 장난하는 건 아니겠지요?”

 

상대의 말투는 아예 폭압적으로 바뀌었다. 마치 목소리로 자신이 흉악범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장난으로 들리냐? 장난으로?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애 목숨은 우리가 쥐고 있으니.

 

인로는 그 사이에 벽걸이 달력 뒷면에다 뭐라고 글씨를 휘갈겼다.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확인해.’

 

그 글을 보고 나서 나는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보이스 피싱은 이미 이슈조차 못 될 정도로 보편적인 범죄가 되었다. 절도 몇 건, 강력 범죄 몇 건 하는 식으로 통계치를 발표하는 정도가 아니면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조금 전에도 우리는 보이스 피싱을 떠들고 있었잖은가. 그것을 먼저 의심해 보는 것이 먼저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물어보라는 거지? 인로는 다시 달력에 글씨를 썼다.

 

‘시호 목소리 확인. 말해. 시호 바꿔줘요. 직접 확인해야겠어요.’

 

나는 그것을 보고 재빨리 읽었다.

 

“정말인지 어떻게 알죠? 시호 바꿔줘요. 직접 확인해야겠어요.”

 

-아니, 이 새끼가. 네 동생이 위험해졌는데 배짱부릴 여유가 있냐? 애 죽는 꼴 보고 싶어? 지금 애 피투성이 돼서 울고 있어. 말 안 들으면 더 다칠 거야.

 

인로는 반복해서 적었다. 밀어붙여밀여붙여밀어붙여. 하지만 섣불리 그럴 수 없었다. 만약에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범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긁어 부스럼만 될 것이었다.

 

‘넌 판단할 수 없어. 모르는 문제 찍기 밖에 안 돼. 검증해. 그래야 적절한 판단이 가능하단 말야.’

 

인로는 의미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인 글씨를 휘갈겼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어떻게 협조한다는 거죠? 시호 바꿔줘요.”

 

-아니, 이 새끼가. 기다려. 네 동생 지금 데려온다.

 

전화기 너머에서 잡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 이상이 말하는 소리와 윽박지르는 소리, 그리고 점점 페이드인 되는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 나는 나도 모르게 다시 소리쳤다.

 

“시호야!”

 

다시 험악한 고함 소리와 함께 발소리인지 책상 내려치는 소리인지가 들린다. 우는 아이는 엄마를 부른다.

 

-들었지? 우린 애 안전을 장담 못하겠거든? 그러니까 현명하게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인로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재호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펜을 받아 번호를 적어 주었다. 인로는 그 번호를 소란 누나에게 보여주며 손으로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 소란 누나는 휴대폰을 들고 조금 떨어져 섰다.

 

그리고 인로는 이미 쓰여 있는 다른 메시지를 가리킨다.

 

‘말해. 시호를 바꿔주세요. 애가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적어도 안심은 시켜 줘야죠.’

 

나는 머뭇거리다 그대로 말했다. 사내는 욕을 내뱉으며 시호를 바꿔주는 듯했다.

 

-받아! 네 오빠야.

 

이어서 울음 반 목소리 반의 소리가 들렸다.

 

-엄마아…….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 더는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시호의 목소리였다. 조곤조곤 말하는 법이라고는 없는 수도꼭지를 있는 대로 틀어놓은 것 같은 시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손에 땀이 차 휴대폰이 미끄러질 것 같았다. 곧바로 목소리는 범인의 것으로 바뀌었다.

 

-이 이상은 안 봐준다. 우린 너네 집 주소도 알고 있고 감시하고 있거든? 만일 경찰이 보이거나 허튼 짓 하거나 하면 피 보게 될 거야. 애가 다치면 너 책임이라는 걸 알아라. 너만 내 말 잘 따라주면 시호는 무사할거야.

 

나는 종이에 감시? 하고 적었다. 인로는 아니라고 했다. 감시하고 있다면 소란 누나가 올라오는 광경을 봤을 텐데 상대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빠르게 적는다.

 

그리고 인로는 이어 적었다.

 

‘시호와 똑바로 대화할 수 있게 요청. 저 아이가 시호인지 아닌지 불명.’

 

나는 인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목소리는 시호였을 따름이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다른 생각 따위는 전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로는 강조하듯이 글씨 위에에 동그라미를 뱅글뱅글 돌린다.

 

나는 울것 같은 기분으로 말했다.

 

“그게 시호인지는 분명하지 않아요. 똑바로 대화할 수 있게 해줘요.”

 

-너 이새끼…….

 

상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조마조마하게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다행히 그는 다시 역정을 내지는 않았다. 오빠라고 말해봐,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여자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놈이 시키는 대로 오빠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우느라 그 이상의 말은 하지 못한다.

 

-애가 아무래도 너무 겁먹은 것 같은데, 애를 빨리 구해야겠지?

 

그때, 전화를 하던 소란 누나가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시호는 한참 전에 떠났대.”

 

인로의 표정이 한결 굳어졌다. 언제? 하고 인로는 달력에 쓴다. 누나는, 몇 시간 됐대. 거기 가자마자 거의 바로 나갔대. 라고 달력에 적었다. 불안감은 점점 커져갔다. 그것은 시호가 납치됐다는 하나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인로는 누나에게 경찰에 연락하라고 적고 나에게는 범인의 말을 따르라고 적었다. 누나는 바로 일어났다.

 

“뭘 하면 되죠?”

 

나는 물었다.

 

-집에 엄마 통장이나 체크카드 있지?

 

나는 인로의 얼굴을 보았다. 인로는 달력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네.”

 

-카드 비밀 번호 알지?

 

“아뇨.”

 

내가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인로는 무슨 꿍꿍이인지 이번에도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지만 타이밍이 조금 안 맞았다.

 

-그럼 네 핸드폰으로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물어봐라. 구실은 적당히 붙여서 우리 통화하는 걸 알지 못하게.

 

인로는 말을 정정하라고 했다.

 

‘필요하다면 내 통장을 써. 아직 확실한 건 아냐. 일 크게 벌일 것 없어.’

 

“어, 아. 그러고 보니 카드 번호는 우리 집이 다 통일했던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당장 카드나 통장을 찾아. 잔고 충분한 걸로.

 

나는 안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로는 이어폰을 끼고 있기 때문에 따라와야 했다. 장롱을 뒤져 통장이 든 가방을 찾아냈다. 나는 통장들을 모조리 꺼내 보았다.

 

“찾았어요.”

 

-잔고는 얼마지?

 

인로는 멋대로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나는 일단 인로의 지시를 따랐다.

 

“5백만원.”

 

-지금 당장 카드나 통장을 들고 밖으로 나가. 죽 감시하고 있을 거야. 다시 말하는데, 허튼 짓 하지 마. 애 목숨이 달려 있어. 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애가 죽든 살든 할 거야. 명심해. 애가 다치면 너 때문이야.

 

“어디로 가죠?”

 

-일단 나가. 지하철역 근처에 국민은행이 있지? 거기로 가서 두 번째 현금 지급기 앞에 가 서 있어. 제한 시간은 10분이다.

 

“10분? 무리예요! 여기서 거기까지 가려면 뛰어가도 그 시간엔…….”

 

-10분. 10분 후 다시 전화 걸 거야. 그때 안 받거나 도착 안 했다면, 아, 기회를 조금 줄까? 한 번 말 안 들을 때마다 손가락 하나 정도면 괜찮겠지? 시험 삼아서 지금 손가락 하나 분질러 볼까?

 

“아뇨, 아뇨. 지금 나갈게요. 제발 시호는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나는 다급하게 말했다.

 

“말 잘 들을 테니, 만일 애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기만 해봐요.”

 

-누가 초등학생 동생을 길거리에 혼자 돌아다니게 하래?

 

그는 끌끌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10분이지?”

 

인로가 말했다.

 

“어쩌자는 거야? 돈은 있어?”

 

나는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아니.”

 

“뭐? 어쩌자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야. 비밀번호가 안 맞는다고 현금 지급기 앞에서 시간을 벌 수 있어. 경찰이 그동안 계좌 추적이라든지를 할 수 있게.”

 

“만약의 사태도 있으니 그땐 내 카드를 써. 잔고는 충분할 거야.”

 

어느새 다가온 소란 누나가 지갑에서 은행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아, 아니에요. 누나 돈을 쓸 수는…….”

 

피해를 입더라도 우리가 입어야 한다. 누나에게까지 피해를 입힐 수는 없다. 하지만 누나는 카드를 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비밀번호는 0923이야. 비번까지 알았으니 이젠 할 수 없지? 거기 있는 거 다 써도 되니까 시호나 구해와.”

 

카드와 함께 손의 온기까지 전해져 왔다.

 

양심에 가책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10분. 서둘러 나가야 한다.

 

“아직 1분도 안 지났어. 자전거 타고 가면 5분 안에 도착할 거야. 조금만 더 작전을 짜자.”

 

인로는 말했다.

 

“그게 시호인건…… 분명하겠지? 시호는 지금 행방불명이니…….”

 

나는 물었다.

 

“아마도.”

 

인로는 말했다.

 

“보이스 피싱이라면 일단 너네 집으로 전화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확실한 건 아니라고 했지만 인로도 거의 납치 쪽으로 기운 듯했다. 여기서 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시호와는 연락이 되지 않고 누군가는 시호를 데리고 있다고 말한다. 믿을 수밖에 없다. 사기 전화였음에도 무턱대고 돈을 부친 다른 피해자 부모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또 10분이라는 우리 집과의 거리를 고려한 제한시간, 달려간다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는 것도 녀석들이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누나, 경찰은 뭐래요?”

 

인로가 묻자 누나는 휴대폰을 인로에게 건네준다.

 

“아직 통화중. 보이스 피싱일 가능성이 높다며 시호부터 확인하래. 거기 연결중인 분이 담당하게 된 형사님인가봐.”

인로는 전화를 받자마자 두서없이 말했다.

 

“범인은 피해자 집에서 가까운 은행과 현금지급기 위치를 구체적으로 지목했어요. 일반적인 보이스 피싱과는 양상이 달라요. 실제 납치 가능성이 있단 말이에요. 바로 사람을 보내주세요.”

 

인로는 몇 번 네, 네, 하고 대답했다. 형사와 통화를 하던 인로는 잠시 수화기를 떼고는 말했다.

 

“가자. 넌 지금 은행으로 달려가. 우린 경찰이랑 함께 갈게. 나한테 계획이 있어. 너는 경찰이 올 때까지, 내가 새로운 지시를 내릴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줘. 비밀번호 틀리고 아버지한테 전화하고 별 수를 써서라도. 계좌번호만 알아내면 놈들 위치를 잡아낼 수 있을 거야.”

 

잠시 말을 멎고 소란 누나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정말 안되겠다 싶으면 놈이 시키는 대로 해줘. 만일 우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든가하면 말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신을 신었다.

 

“아, 너 핸드폰을 나한테 줘라. 경찰과 계속 연락하면서도 우리끼리 연락이 돼야 하니까. 그리고 지금부터는 감시가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

 

나는 휴대폰도 건넸다.

 

“감시라고? 감시는 없다고 했잖아.”

 

“우리 집을 감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 은행에는 분명히 범인 일행이 있을 거야. 넌 시간을 맞춰야 되니까 자전거를 타고 가고 우리는 버스나 택시 잡아서 뒤따라갈게.”

 

“감시가 있으면 대화는 어떻게 하지?”

 

“옆에 가서 내가 다른 사람이랑 통화하는 척하며 이야기할게.”

 

“그래. 그런데 아버지나 이모한테 이걸 알려야 하지 않을까?”

 

인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전화해봤자 걱정만 끼쳐드릴 뿐이야. 경찰 선에서 일이 해결 안 되면 그때 연락해도 늦지 않아.”

 

현관문 밖으로 인로와 소란 누나가 따라 나섰다. 나는 자전거 자물쇠를 풀고 안장에 올랐다. 두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인로는 침착하게 작전을 지휘하기는 했지만 얼굴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침착해 보이는 것은 소란 누나였다. 소란 누나와 눈이 마주치자 누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파이팅! 일은 잘 해결 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페달을 세차게 밟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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