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4장 - 시호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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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 Jul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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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노유

3

 

우리는 조금 걸었다. 승합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남자가 안에 타고 있었다. 운전석에 있던 남자는 사나운 인상에 체구가 작았고 40대 정도 되어 보였다. 뒷좌석에 있던 남자는 그보다는 젊어 보였는데 키가 크고 앞 사람과 대비되는 캐주얼의 깔끔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 둘이 형사인 듯했다.

 

뒷좌석에 있던 남자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여, 수고했어.”

 

“경찰이신가요?”

 

“일단 차에 타. 차에 타서 얘기해 줄게.”

 

우리는 차에 올랐다.

 

“어디로 가죠?”

 

나는 다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다리가 다시 아파왔다.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영 불편했다. 젊은 형사는 내 다리를 보더니 말했다.

 

“다쳤나보네. 병원부터 가야겠다.”

 

“뭐야, 병원에까지 데려다 줘야 돼?”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우린 대국민 무상 서비스업체라는 걸 잊으면 안 돼요, 형님.”

 

동료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조금 특이해 보인다. 젊은 형사는 이어서 자기소개를 했다.

 

“난 서부 경찰서의 강두원 형사. 저 분은 도병오 형사님.”

 

나도 소개를 해야 하나 싶어 이름을 말했다.

 

“풍광고 1학년 2반 이재훈이에요.”

 

“어디로 모실까요, 경위 님.”

 

도병오 형사가 말했다. 나이든 사람이 운전석에 앉은 것도 그렇고 방금 그가 젊은 형사에게 말하는 태도도 그렇고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에 의문이 나타났는지 강두원 형사가 설명해 준다.

 

“도 형사님과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계급은 내가 더 높거든.”

 

그래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경찰 계급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낙하산 주제에……”

 

그 말에 강 형사는 씩 웃기만 했다. 서로 간 악의는 없는 듯하다.

 

“그냥 집에 데려다 주세요. 다리는 좀 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그저 빨리 쉬고 싶었다. 아픈 것보다도 정신적 피로감을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데 강두원 형사는 내가 가야할 곳이 있다고 말했다.

 

“범인은 다른 경찰 차량이 추적중이거든? 본거지를 알아내면 인질도 구하고 돈도 찾을 수 있을 거야. 거기에 같이 가줬음 하는데. 인질을 확인해야 되잖아. 그게 시호였다면 데리고 가야 하고.”

 

이쯤 되니 나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인로는 범인들의 계획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래서 경찰을 미리 준비시켜 놓고 놈들이 돈을 강탈하면 추격해서 일망타진하는 작전을 세웠던 것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나 그것은 차차 묻기로 했다.

 

“그렇죠. 시호를 데려가야죠. 저도 조사 받아야 되나요?”

 

“인질 신원만 확인해주면 돼. 일단 출발하자고.”

 

“아, 그런데 저 자전거를 은행에 놓고 왔어요. 자전거를 싣고 갈 수 있을까요?”

 

나는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을 내 애마를 떠올리고는 말했다. 자물쇠도 채우지 않았는데 무사히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래? 그럼 자전거부터 싣자. 뒷문 열고 실을 수 있을 거야.”

 

강 형사는 차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디로 가자는 거야?”

 

운전석의 도 형사가 말했다.

 

“은행으로 갔다가, 음, 일단 보고가 들어와야 우리가 가든가 할 건데 집에 가 대기할까? 자전거도 내려놓을 겸.”

 

나는 좋다고 말했다.

 

홀로 내팽개쳐진 자전거는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체인이 빠졌을 뿐 별다른 이상도 없었다. 자전거는 접이식이었다. 하지만 세 남자가 진땀을 빼고서야 간신히 차에 실을 수 있었다. 자리가 없어서 강 형사는 앞 조수석에 타야 했다. 도 형사는 운전석에서 휘파람을 불며 짐을 싣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차는 곧 우리 집으로 출발했다.

 

“네 친구 도움이 컸어. 뻥까지 쳐가며 우릴 닦달하지 않았으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강 형사의 말에 인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탐정 친구가 해주는 게 낫겠지?”

 

인로는 말을 받았다.

 

“그 전화는 보이스 피싱이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어. 시호는 이 동네 애가 아니야. 당연히 시호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없어. 보이스 피싱 범죄자들이 주로 정보를 얻는 곳이 졸업 앨범이나 인터넷 개인 정보 등인데 가끔 놀러오는 시호를 납치했답시고 너네 집에 전화할 확률은, 더군다나 때마침 너네 집에 왔을 때 그랬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시호가 납치된 건 확실하다는 거네?”

 

나는 말했다. 그런데 인로는 고개를 저었다.

 

“글세, 정황상 증거는 몇 개 더 있긴 해. 보이스 피싱은 대개 중국 발이고 범인 입장에서는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거든? 개인 정보를 좌르르 뽑아 놓고 하나씩 전화 돌리다가 그중에서 속는 사람을 건지는 식이야, 맞죠? 형사님.”

인로는 강 형사에게 고개 돌리고 말했다.

 

“그렇지. 요샌 홍보가 많이 돼서 잘 속지도 않거든.”

 

인로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오늘 전화는 부재중 한 번 오고도 다시 걸려왔어. 또 큰돈 을 만질 수 있는 부모님이 없다니까 널 시켜서까지 일을 진행 시켰어. 또 은행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했지. 이건 범인이 근처에서 너네 집 하나만을 노리고 일은 진행시킨다는 증거이기도 해. 아무튼 이렇게 공을 들여 사기를 친다는 것이 어색했어. 그래서 난 실제 납치 설에 무게를 뒀던 거지.”

 

대화를 나누는 새 차는 우리 집에 도착했다. 신호등 한번 걸리지 않고 죽 내달리니 금방이었다. 아직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인로와 강 형사와 나는 자전거를 대문 안에 내려놓고 다시 차에 올랐다. 하루 종일 상대를 해주지 않아서 그런지 갤러거가 한 번 우렁차게 짖는다.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나는 가장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았다.

 

“난 대체 어떻게 찾은 거야? 또 범인이 현금을 낚아채갈 거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인로는 대답했다.

 

“은행 위치를 지목했을 때부터 범인의 계획이 어렴풋이 짐작은 갔어. 너와 접촉해서 뭔가를 하겠구나 하고. 그런데 널 시장으로 끌고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확신했지. 아, 시장 사람이랑 부딪힌 것은 일부러 그런 거지?”

 

알아봐줘서 다행이다.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건 아주 잘 했어. 자, 그럼 왜 일부러 장소를 옮길까. 그건 네가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괜히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어. 범인은 경찰이 너와 범인이 접촉하는 순간을 감시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야.”

 

나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당연한 말이었다. 범인은 나의 위치를 혼란스럽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계좌이체를 시킬 생각이었으면 나와 만날 필요가 없고 그렇다면 자기 위치를 들킬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나치게 조심하려 했기 때문에 오히려 인로에게 계획을 들키고 만 것이었다.

 

인로는 뻐기거나 흥분한 기색도 없이 담담히 말했다. 소란 누나는 바로 옆에서 인로의 움직임을 봤음에도 설명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럼 날 어떻게 찾았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소란 누나가 해주었다.

 

“직접 물어봐서 찾았지.”

 

“내가 간 방향을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봤다고요?”

 

“아니. 내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소란 누나가 방법을 제시했어.”

 

인로가 말했다. 소란 누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근처에 있는 모든 현금지급기 위치를 시장 사람들에게 수소문했어. 그래서 각각 위치에 경찰을 보냈어. 그중에서 널 찾아냈고 말이야. 연락이 오자 나는 형사님들이랑 근처에서 대기하고 인로를 너한테 보냈지.”

 

“아…….”

 

나는 또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내가 생각한 방법보다도 훨씬 간편한 방법이었다. 괜히 얼굴 기억시키려고 이리저리 인상 쓰고 다닌 일이 생각났다. 다시는 이쪽 시장에 오지 않을 생각이다.

 

“난 인로한테 전화 걸고 인로가 통화 중이었을 때 정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연락이 돼야 하는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데, 하고요.”

 

“그럼 나한테 전화했음 됐잖아.”

 

“내 핸드폰이 아닌걸요. 누나 전화번호는 못 외웠어요.”

 

“그거 아줌마 핸드폰 아니야? 내 번호가 저장돼 있을 텐데. 그래서 인로는 네가 만일 기회가 생겨 전화를 하게 된다면 나한테 먼저 했을 거라고 말했어. 그래서 내 핸드폰은 쓰지 않았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인로는 생각이 어긋났군, 하고 중얼거렸지만 난 어머니 핸드폰에 당연히 세 사는 소란 누나의 번호가 저장돼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늘 여러 가지로 놓쳐버린 게 많다. 인로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모든 상황을 꼼꼼하게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를 못하다.

 

“그런데, 지금 부모님은 이 일을 모르시는데 연락 좀 해도 될까요?”

 

나는 강 형사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 어른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 폰은 나한테 있으니 아버지께라도 연락을 해야 한다. 또 이모네에도 전화를 해줘야 한다. 그런데 인로는 말했다.

 

“아니, 연락은 범인 검거한 다음에 하자.”

 

“또 왜?”

 

“아직, 뭔가가 불확실해. 정황상 시호는 납치됐다고 봐야 옳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지금 와서 뭐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일까.

 

“대화 내용상, 범인은 너와 시호의 관계를 알지 못했어.”

 

“그게 문제가 되나?”

 

“응. 너는 범인의 말을 의심하는 듯한 말을 몇 차례 꺼냈어. 범인 입장에서 생각해 봐. 상대가 겁에 질려 있지 않다면 협박이 소용없지 않겠어? 상대가 자신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면 협박은 불가능해져.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질보다 돈인데. 그래서 상식적으로라면 범인은 네가 시호가 납치됐다고 믿을 빼도박도못할 증거를 제시했어야 돼.”

 

“그런 증거를 어떻게 제시한다는 거야.”

 

나는 물었다.

 

“실질적 증거는 제시할 수 없지. 사진을 찍어서 보낸다든가 하는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하지만 상대로 하여금 납치 사실을 믿게 할 만한 심적 증거는 보일 수 있어. 가장 기초적인 증거는 이름과 나이야. 보통의 부모라면 이름만 들어도 이성을 잃고 협박에 고분고분해 질테지만 우린 아니었잖아. 그럼 또 제시할 수 있는 증거를 더 갖고 있다면 가능한 한 보여주는 게 낫지. 적어도 너와 시호와 무슨 관계인지를 제시했으면 넌 더 당황했을 거야. 사촌동생이 놀러왔다는 건 흔치 않은 상황이니까. 아니면 네 이름정도는 말하지 않았을까?”

 

난 이미 그 전화만으로도 충분히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범인은 시호와 나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촌 동생과 친동생은 꽤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인로는 속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범인이 시호랑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가 없잖아.”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그 때, 앞좌석 쪽에서 지직거리는 무전 소리가 들렸다. 시선이 일제히 운전석으로 향했다. 도 형사는 몇 차례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도 형사는 뒤쪽으로 윗몸을 틀고는 말했다.

 

“기지를 잡았대. 지금 포위중이라는데 내부 사정은 파악 안 된다네. 맨션 2층이야.”

 

강 형사는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가자. 시호가 어떻게 됐는지는 직접 잡아서 물어보면 되겠지.”

 

그리고는 도 형사에게 지시를 내린다.

 

“대기하고, 우리 갈 때까지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않도록 잘 감시하라 해 주세요.”

 

차는 다시 출발했다. 은행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주택가라고 했다. 강 형사는 거의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마지막 순간이다. 일은 잘 풀려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뭔가 잘못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랐다.

 

“아, 그런데, 범인이 날 잘 몰랐던 건 시호가 제대로 대답을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시호는 막 울고 있었잖아.”

 

나는 인로의 의혹에 대답해 보았다. 인로는 고개를 저었다.

 

“애 울리기 전에 미리 알아냈어야지. 엄마는 뭐 하는지, 집에 누가 있는지, 전화번호랑 이름은 물어봐서 알아냈을 거 아냐.”

불현듯, 막혀 있던 귀가 뚫린 것 같은 시원하고도 공허한 기분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멀쩡히 눈 뜨고도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었다. 바로 어제 확인했던 사실이었다. 시호는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무언가 실마리가 되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짚어내야 할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인로에게 우선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인로는 대번에 나에게 물었다.

 

“시호한테 주소가 적힌 신분증이나, 무슨 표찰이라도 맡긴 적 있어?”

 

있었다. 당연히. 나는 바로 어제 시호에게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이름표를 달아주었었다. 나는 그것을 알려주었다.

 

“왜 진작 말 안 했어! 그럼 사건 양상이 아예 달라지잖아!”

 

“미안해. 다급해서 생각이 안 났어.”

 

정말로 나는 하얗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인로는 말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시호는 아예 납치를 안 당했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호가 더 위험해졌을지도 모른단 말야!”

 

“더 위험해 졌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내 휴대폰 소리였다. 인로는 달려들 것처럼 굴더니 멈칫 하고는 소란 누나를 쳐다보았다. 소란 누나는 주머니에서 내가 맡겨 놓았던 휴대폰을 꺼냈다. 누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나에게 건넸다. 나는 전화를 받아들었다. 화면에는 추세연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전화도 안 받고 뭐 하는 거야!

 

앙칼진 목소리가 귀를 감아 온다. 세연의 것이 아니었다. 귓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 쩡쩡 울려대는 소리였지만, 너무나 듣고 싶었던 소리였다. 나는 조금 전 범인에게서 전화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시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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