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에필로그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0:46 Jul 28, 2010
  • 4840 views
  • LETTERS

  • By 노유

에필로그

 

엎드려 자고 깜빡 잊고 안 한 숙제 해결하고 점심시간에는 소라 누나를 만나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인로와는 5교시가 끝나고 만날 수 있었다. 인로는 어제는 미안했다고 말하며 자전거 열쇠를 건넸다.

 

“자전거는 학교에 타고 왔어. 잘 굴러가니까 걱정 마.”

 

또 인로는 어머니의 휴대폰도 돌려주었다. 전원이 꺼진 상태였는데 배터리가 다 나갔는지 켜지지 않았다.

 

“조서 작성이 잘 돼서 휴대폰 내역은 검사할 필요가 없었어. 어머니께도 고맙다고 전해드려.”

 

“응. 우리 부모님도, 네가 애썼다고 나중에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

 

인로는 간단하게 사건의 나머지를 이야기해 줬다.

 

"범인들은 심부름센터 건달들이었어. 최근 들어 일도 줄어들었고 했는데 우연히 그 명찰을 주운 거야. 그래서 반 장난삼아 전화해보기로 한 거야. 처음에 전화를 걸었을 때엔 아무도 안 받았대. 그래서 그냥 잊어버리려고 했는데 개중에서 진짜로 진지하게 사기를 쳐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거야. 그래서 그다음 전화를 하기까지의 텀 동안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뒀던 거야."

 

"내가 집에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안 번졌겠네."

 

"그랬을지도. 걔네들로서도 사실 좀 애매했지. 중국 발 보이스 피싱이라면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그만인 식인데 얘넨 한 번 밖에 기회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널 시켜서 무리해서까지 돈을 뜯어내려 했던 거고. 심리가 어차피 범죄 저지르는 건데 끝까지 해보자는 거였지."

 

"그랬구나. 그런데 그럼 경찰서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던 거야?"

 

"응. 자전거는 말없이 빌려가서 미안. 그 사람이랑 이야기는 잘 됐어. 내가 논리 정연하게 따져서 결국 쌍방 과실이라는 점에 합의 했으니까."

 

"네가 말빨로 속여 넘긴 건 아니고?"

 

녀석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탈것 탄 사람이랑 행인이랑 사고가 났는데 완전 쌍방 과실이라고 결론 났다면, 좀 그런 점이 있긴 하지."

 

나도 가볍게 웃어 줬다.

 

“시호는 괜찮지?”

 

인로는 말했다.

 

“응. 화가 날 정도로 괜찮아. 세연이랑 말이 잘 통했나봐. 나 몰래 둘이 밀담을 나눈 걸 보면.”

 

“시골에 산다며. 언제 내려가냐.”

 

“내일 가.”

 

“잘 가란 인사도 못 하겠네. 나한테도 꿀밤 좀 먹어야 하는데.”

 

“네 몫까지 내가 단단히 먹여 줄게.”

 

“그래라. 나도 그런 깜찍한 여동생 하나 있었음 좋겠는데.”

 

“야, 사촌동생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지, 그런 게 친동생이었다면 난 진작 늙어 죽었을 거다.”

 

“나한테 오빠 자리 넘길래? 다음에 올 때는 바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고.”

 

“안 그래도 세연이한테 뺏길까봐 걱정이다.”

 

“처음 본 사람이랑 하루 만에 친해질 정도로 성격이 좋은 거지.”

 

“성격이 좋아도 어지간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방금 전에 시호도 울고 갈 만큼 붙임성 좋은 사람과 산책을 하고 왔다. 아이스크림까지 얻어먹고 말이지.

 

“아, 말 안 했지?”

 

나는 말했다.

 

“세연이 밴드부 한다고. 토요일 날에 세연이네 밴드 연습하는 것까지 보고 왔어. 잘하더라.”

 

“그래? 대단하네. 그럼 세연이랑은 잘 돼가는 거야?”

 

“아니, 잘 되어 간다고는……. 아, 아니,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녀석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이러면 곤란하다. 녀석이 쓸 데 없는 짐작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미리 못박아두기는 했지만 녀석이 과거라든지를 캐묻기 시작하면 나는 방어할 도리가 없다.

 

녀석은 다행히도 그냥 웃고 말았다. 그것이 정말로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든 일이 잘 되었다.

 

 

 

단 한 가지, 나의 문제만 제외하고.

 

하지만 초조해 하지는 말자.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 문제는 잠시 옆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나는 월요일이 되어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수업을 듣고 남학생들과 어울렸으며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견뎠다. 곧 중간고사도 다가오고 처음으로 본 모의고사라는 아침 여덟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이어진 전대미문의 시험의 성적표도 이번 주 중에 나온다.

 

꿈만 같았던 주말이 지나가고 다시 평범한 한 주가 지난주와 달라진 것 없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아무도 내 별명이나 전화사기에 대해 떠들지 않는다.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똑같은 옷을 입은 이 무리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동안 나는 천천히 세연에게 할 말을 정리할 수 있다. 내가 미처 말 못한 과거의 일과 다시 한 번 전해야 할 고백의 말을. 그것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야자가 끝나고 인로는 문방구에 들렸다 가야 한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같이 가줄까 하고 물었는데 인로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열쇠고리를 손가락에 넣고 돌리는 것을 인사 삼아 달려 나갔다.

 

나는 하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비탈길을 내달렸다. 우리 동네로 향하는 버스 노선을 뒤쫓아 갔다. 고양이 그림자만이 가로등 밑을 스치는 골목길을 지나갔다. 집에 도착했고 시호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날, 화요일. 시호가 떠나는 날이다. 나는 야자를 빠질 수 없기 때문에 등굣길에 나누는 인사로 시호를 보내야 한다.

 

"날 돌보느라 고생 많았다."

 

녀석은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긴 아는군. 고생한 것으로만 상을 준다면 난 아마 노벨상정도는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제발 다음에 올 때는 좀 더 커서 와라. 한 중학생쯤 돼서."

 

"힝! 여름 방학 때 또 올 거다!"

 

녀석은 이빨을 보이며 웃는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침에 두들겨 깨워주는 시끄러운 꼬맹이가 사라지면 당분간은 조금 허전할 것 같다.

 

"그런데 오빠. 나 할 말 있어."

 

"할 말? 무슨 할 말?"

 

녀석은 내 손을 잡고 내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시계를 보고 아슬아슬하다 생각했다.

 

"나 빨리 가야 돼."

 

"중요한 일이야."

 

나는 뭔데, 하고 물었다. 녀석은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연 언니 일이야."

 

"세연이?"

 

무슨 일일까. 그제 녀석은 하루 종일 세연과 놀았다.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 것일까. 나는 빨리 말해보라고 했다.

 

"듣고 충격 먹으면 안 돼. 오빠 세연이 언니 좋아하지?"

 

하고 녀석은 말했다.

 

"다 알아. 갑자기 언니랑 박물관 가자고 하고 또 박물관에서도 계속 언니만 쳐다봤잖아. 여자의 감을 우습게보면 안 되지."

 

여자의 감이니 뭐니 하는 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냐, 하는 딴죽 걸 타이밍인가 싶기도 했지만 나는 당황해서 뭐라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소라 누나에 이어서 녀석까지, 어떻게 그렇게 남의 속을 잘 파헤치는 거냐.

 

"그런데 오빠라서 내가 이런 소리 해주는 거야. 충격 먹지 말고 잘 들어."

 

"대체 무슨 소릴 하려고 그래?"

 

녀석은 말했다.

 

“내가 어제 언니랑 놀면서 캐낸 거야. 그게 뭐냐면,” 녀석은 답답하게 말을 끊는다. 어제 소라 누나를 만난 것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내심 녀석에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다음 말을 들었을 때 공기가 반전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언니는 인로를 좋아해. 그래서 밤에 인로를 기다리다가 오빠를 만난 거래.”

 

마치 라디오 방송처럼, 나는 재생되는 듯한 그 소리를 꼼짝도 못하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슨 소리야? 하고 물었다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세연은 인로가 우리 학교에 다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말은 거짓말이었으리라. 나는 우리의 대화가 인로 이야기로 시작해 인로 이야기로 끝났다는 것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세연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의 말도 분명한 거절이었고 나와 만나기로 한 것도 인로를 만나기 위해서였던 것뿐이었다.

 

나는 세연의 본심과는 상관없이 혼자서만 망상에 빠져 그저 혼자서 앓고 있었던 것이다.

 

"우왁! 벌써 쇼크 먹은 거야? 정신 차려! 학교 가야지! 학교 가서도 자살하면 안 돼!"

 

나는 간신히 으응, 하고 대답을 했다. 또 간신히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가방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말해 줘서 고마워. 오늘 몇 시에 가?"

 

"낮에 가. 언니가 오빠한텐 말하지 말랬는데. 이건 비밀이다. 오빠니까 내가 말해준 거야."

 

당연히 비밀로 할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도 들킬 생각은 없다. 그게 가능할지는 몰라도. 나는 시호에게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다.

 

나는 습관대로 자전거를 끌르고 주둥이를 내민 갤러거를 만져주고 대문을 나섰다. 시호와 이야기한 덕분에 시간은 조금 빠듯한 듯했지만 페달을 가속할 힘은 나지 않았다.

 

그런가. 그런 것이었구나.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졸업하고 나서 처음 세연을 만났을 때보다, 시호가 무사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보다, 그리고 졸업식날 세연에게 차였을 때보다도 더욱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소란 누나와의 상담, 소라 누나의 응원과 그날의 세연의 무표정한 얼굴이 마구 뒤섞여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더욱 최악인 것은 내내 가슴 졸였고 힘들었던 주말을 거쳐서 달라진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시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고 세연과 나의 관계는 지금 여기에서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모든 것은 그냥 지금 이대로 흘러갈 뿐이다. 내가 걱정했던 모든 일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제멋대로 풀어져 달려가 버렸다.

 

그렇다. 아무 일도 아니다.

comment (1)

cloud.9
cloud.9 10.10.12. 14:53

엌ㅋㅋㅋ NTRㅋㅋㅋㅋ

권한이 없습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