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외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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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53 Jul 2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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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노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꼬맹이의 얼굴이었다. 걱정하면서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표정히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충격에 부들부들 떨려 오는 팔을 어렵게 들어 5천원짜리를 마저 내밀었다.

 

"가, 빨리 가버려."

 

녀석은 뒷걸음질치며 나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하다가 이내 내달려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놈은 확실한 충격을 받았는지 바닥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혹시 죽은 건 아닐까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는데 숨은 쉬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넘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영화에서 기마병이 돌격하는 정도로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렇게 바닥에서 구르고 있지만, 놈보다는 그래도 가벼운 충격을 받은 듯하니 공격은 일단 성공이다. 이제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안부를 물어 오는 사람들에게 일일히 괜찮다고 말하며 상체를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그 때, 정말로 의외의 사람과 마주치고 말았다.

 

재훈이와 세연이였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 왔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재훈이 말했다. 재회의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세연은 울먹이기라도 할 것 같은 얼굴로 내 몸 상태를 물었다. 나는 애써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자가 납치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알려줘서는 안 된다. 세연은 그 자에게도 가까이 가려 했다. 나는 그들을 떠밀다시피 하여 이 현장에서 내보내려 했다.

 

"정말로 괜찮아. 이건 내가 해결할 일이야. 또 난 아까 할 일도 있다고 했잖아."

 

내가 나의 말을 들었다면 대번에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을 만큼 나는 제대로 둘러대지도 못했다. 둘 역시 미심쩍어 하는 눈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조금 있으면 경찰이 달려올테고 바닥에 누워 있는 저 자도 곧 정신을 차릴 것이다.

 

마침내 둘은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나는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작은 위기는 이렇게 모면할 수 있었다. 경찰차가 조금 늦어지는 것도 다행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재훈과 세연이 사라지자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꿈틀거리며 기어가려 하던 범인에게 다가갔다. 나는 내가 해야할 마지막 일을 했다. 나는 놈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자전거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서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놈은 기침을 뱉어내며 말했다.

 

"전화…… 너, 전화……."

 

나는 능청을 부렸다.

 

"전화요? 네. 있어요. 119부터 먼저 불러드릴까요?"

 

"너 이 새끼……. 너……."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말 하지 마세요. 어라라? 싸이렌 소리가 들리는데, 근처에 엠뷸런스가 있나봐요. 이쪽으로 지나가 줬으면 좋겠는데요."

 

놈은 일어나 도망치려 했다. 나는 무력화된 놈을 부축하는 척 하며 붙잡았다. 사악한 기분이 들었다. 놈의 얼굴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어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 친구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소녀의 복수로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제가 따로 119에 전화를 해봐야 하겠어요. 아이 참, 어딜 가시려고 그래요? 가만히 앉아 계세요. 금방 구급차가 올 거예요."

 

나는 놈의 소매를 붙잡았다. 놈은 힘을 쓰지 못했다. 언덕 아래로 싸이렌 소리가 들렸다. 승용차 위에 싸이렌을 매단 형사용 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저거 경찰이 타는 차인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붙잡아서 도와달라고 해보죠. 경찰은 국민을 위한 무상 서비스업체니까요."

놈은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려다 자빠졌다. 나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2

 

나는 그 자리에서 범인을 경찰에게 인수하고 자리를 떴다. 놈을 유인하는 과정과 인질에 관해서는 강 형사에게 전화로 자세히 설명해 줬다. 다행히도 놈은 금방 인질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한다. 인질은 역시 시호보다도 어린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마침 실종신고가 들어와 있어 그 아이의 부모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재훈에게는 다음 날 간단하게 변명을 했다. 녀석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주었다. 나는 강 형사에게 재훈이에게는 사건의 후일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강 형사는 어차피 피해자가 요구하지 않는 한 사건의 경과를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되었다.

 

정말 이것으로 되었을까. 나는 다시 한 번 고민했다. 재훈에게서 이대로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일이 옳은 일일까. 사실 뒤늦게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제 사건은 진짜로 종결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녀석을 따돌렸다는 사실만 일깨워질 것이다. 아니,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지금 와서 이야기해봤자 긁어 부스럼만 될 것이다.

 

역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세연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야자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어? 할 얘기가 있는데.'

 

나는 그러자고 답신을 보냈다.

 

세연과는 토요일날 만나기로 해놓고 계속 못 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꽤나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할 얘기가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어제 일을 물어볼라치면 문자로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고백하자면, 토요일에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재훈의 세연을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대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했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한테 털어놓지도 못할 말을 내가 껴있을 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빠져 줬었다. 그런데 그때 세연이도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재훈이가 얼떨결에 같이 가자고 말했을 때 선듯 좋다고 대답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야자가 끝나고 나는 적당한 말로 재훈이를 먼저 보냈다. 느낌상 세연이는 나와 단둘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세연이는 약속대로 여고 교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세연을 발견하고 이름을 불렀다.

 

"세연아."

 

세연은 나를 보고는 다가왔다. 가볍게 고개를 기울여 인사를 한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야, 어젠 갑작스러웠지? 사고가 나서 말야. 몇 달 만에 보는데 그렇게 만나다니, 참."

 

"응, 그러게 말이야. 몇 달 만에 그렇게 자빠져 있는 걸 보다니."

 

나는 멋쩍게 웃었다.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세연의 집도 우리 집과 방향이 같을 것이다.

 

"그래, 잘 지내지? 네가 이 학교로 올 줄은 몰랐는데."

 

"나도 그랬어. 우리 학교에선 보통 이쪽으로 안 오잖아. 네가 갑자기 외고 시험을 안 본다고 해서 어디로 갔나 궁금해 했었거든."

 

외고 이야기가 나올 때 세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세연은 떨어졌으니까 여기로 왔겠지. 관련 언급은 피해야겠다.

 

"갑작스럽게 관둬서 미안.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말이야. 아, 그리고 토요일날 갑자기 빠진 것도 미안해."

 

"그것도 일이 있었다면 할 수 없지. 그나저나 토요일날 놀러가는 곳이 박물관이라니, 너도 여전하구나."

 

"으응. 그렇지 뭐. 재훈이가 너랑 결판지어야 할 게 있다고 했는데 뭔 이야기였어?"

 

"재훈이가 말 안 해 줬어?"

 

나는 응, 하고 말했다.

 

"그럼 나도 비밀. 알려지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것 같아."

 

그런가,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젠 무슨 일이야?"

 

세연은 말했다.

 

"어제? 넘어져 있던 거?"

 

"응. 재훈이한테 대충 납치 전화가 왔단 얘긴 들었는데, 넌 그 뒤에 뭘 한 건지 듣고 싶어."

 

나는 재훈이에게 해줬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세연에게도 굳이 진상을 설명해줄 필요는 없을 듯했다. 무엇보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는 말로 설명하기가 조금 장황하다.

 

그런데 세연은 말했다.

 

"너 그때 뭔가 숨기고 있었지?"

 

나는 무심결에 세연을 돌아보았다. 조금 당황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너는 그때 필사적으로 우리를 내보내려 했어. 단순 사고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야. 이건 내 상상인데 말이야……. 아니야. 됐다. 네가 먼저 말해줄래?"

 

세연의 말은 너무나 날카로웠다. 나는 세연이 방금 한 말의 매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를 짐작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쳐 나를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뒤로 빠짐으로써 나에게 칼자루를 쥐어 준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가 무언가를 간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진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세연 앞에서는 감추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재훈이가 세연을 어려워하는 점이 바로 이것 때문은 아닌가 조심스레 짐작해 보았다.

 

나는 세연에게 재훈이와 헤어지고난 뒤의 일을 이야기해 줬다. 더불어 그 이유까지도. 세연은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재훈이는 눈치 못 챈 것 같았지만, 시간이 이상했어. 경찰서에 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빨리 돌아왔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역시 그렇지? 나도 조마조마했어. 어떻게 거기서 갑자기 너네랑 마주치냐.”

 

“그러게 말이야.”

 

그러고는 세연은 말했다.

 

“너 재훈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응?”

 

나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세연은 다시 물어보았다.

 

“재훈이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뭔가를 감추려 하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한다기 보단,”

 

나는 말했다.

 

“재훈이는 자기 삶의 영역을 지키려 해. 나는 그걸 존중해줄 뿐이야.”

 

“그래?”

 

세연은 말했다.

 

“그럼 넌 모르는 거야?”

 

“뭘? 혹시 중학교 때 있었던 일 말하는 거야?”

 

“일진과 관련한 이야기? 그것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건 다른 거야.”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 가는 바는 없었다. 세연은 더는 관련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캐묻지는 못했다. 내가 아는 재훈이가 아닌 다른 재훈이가 어떤 사람인지 탐정으로서 캐보고 싶긴 했지만 일단 이번 일은 이번 일대로 종결지어야겠다.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

우리는 버스를 탔다. 역시 집은 같은 방향이었고 같은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는 세연보다 앞서 내려야 했다. 버스 안에서 세연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세연을 싣고 떠나는 버스를 잠시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나의 사소한 모험은 이것으로 끝난 듯했다.

comment (5)

싱글러
싱글러 10.07.28. 13:15

얼마 전에 소시민 시리즈를 읽었는데 대략 [소소한/그다지 안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고교생 탐정!]이란 내용입니다. 트릭 같은데서의 연관성은 거의 없어도 이 고교생 탐정이라는 컨셉 등이 새삼 오버랩 되면서 더욱 재밌게 읽은 거 같습니다. 다만 재훈에게 있어선 미완의 결말인지라 다음 권 분량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명탐정 박인로의 사소한 모험은 읽지 않았지만 어떤 사소한 일들을 다 보고 나니 새삼 흥미가 돋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는 내 즐거웠습니다.

노유 작성자 10.07.29. 00:56

소시민 시리즈라면 대충 떠오르는 게 봄철 타르트 어쩌고 하던 시리즈랑 미야베 미유키의 스기무라 시리즈가 있는데, 아차 스기무라는 고교생이 아니군요. 그렇다면 전자일라나요? 다른 비슷한 작품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저도 그 작품 재밌게 읽었어요.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제일 처음 박인로를 구상하면서 모은 자료중 그 시리즈가 있었지요.

싱글러
싱글러 노유 10.07.29. 22:16

예. 요네자와 호노부의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하고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입니다. 가을철~도 일본에선 나왔는데 국내 발매는 요원해 보이고... 읽어보셨다니 괜히 생각 난 건 아니었네요.

에스텔
에스텔 10.08.01. 15:45
(이 글이 라이트노벨로 쓰여졌다는 전제 하에 쓰는 글이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특히 대한민국의 학교라는 공간은 대단히 기형적인 공간이죠. 우리사회에서 학교는 보호와 강제라는 상반된 두가지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게를 독자에게 부여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학교와 학생을 소재로 라이트노벨을 쓸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2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학교라는 대단히 정형화되고 단단한 공간을 어떻게 비틀것이냐, 둘째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어떻게 아이들이 세계와 소통하는법을 배울것이냐, 에 대한 고민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물건너 일본에서는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 라는 대단히 모호하면서 애매한 말로 퉁 치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물건너에서는 거부감 없이 읽힐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면 굉장한 위화감이 생기죠. 그런점에서 이 글은 꽤 영리한 선택을 했지 않나 싶습니다. 학교라는 공간을 비틀기 보다는 주요 등장인물 3인에게 드라마를 부여하는 방식을 선택했거든요. 그러면서도 (박인로의 경우를 생각하면,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점을 잊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이 글의 전개가 사건 해결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인물간의 갈등이 글의 골조를 이루고 있기에, 여러가지 계산을 하면서 쓰신 글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다만 이 글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글에서 맞딱드리는 사건이 현실적이고 익숙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외부에서의 폭력에 지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 글쓴이의 표현대로 사소한 일들이 극에 등장하는 순간 이야기가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호흡이 끊긴다는 표현이 적절할것 같아요. 주인공 입장에서 단순히 재앙에 불과한 사건에 독자들의 몰입을 바란다는건 문제가 있습니다.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논리적인 상황전개가 아무리 잘 쓰여진다고 해도 그럴듯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꽤 잘 쓰여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을 이끌었던 호기심은 중간에 한번 증발하고 이야기는 어느새 끝나있죠. 모처에 썼듯이 저에게는 이 이야기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끝나버린 이야기"로 읽힙니다.  
cloud.9
cloud.9 에스텔 10.10.12. 15:04

다 읽고 뭔가 좀 찝찝하고 허무한 기분이었는데 뭔가 정확하게 설명해 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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