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라한대]뒤집힌 전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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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01 Aug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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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하늬비
학학, 학, 하고 힘껏 숨을 들이쉰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시멘트 담장 위로 뻗은 감나무가지가 좁은 골목에 성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극장 포스터와 광고전단이 붙어있는 전봇대. 흰 페인트가 노르스름해 보일 정도로 낡은 자동차. 초록이나 갈색 페인트칠이 너덜너덜한 대문들. 하나같이 관련된 추억들을 흑백영화처럼 떠올릴 수 있는 정겨운 동네의 정경.

하지만 이렇게 가슴이 따끔거릴 정도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면 애틋한 감정 같은 것을 느낄 사이가 없다.

하마터면 발이 꼬여 넘어질 뻔 하며, 서영은 교복셔츠의 소매 아래에서 손목시계를 본다. 시간은 8시 25분. 지각이다. 수업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이 정겨운 마을로 ‘몇 번째인지 모르는’ 전학을 오는 날.

전학을 오는 날 만큼은 평소보다, 누구보다도 일찍 등교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영은 알고 있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더 보여주고, 한 마디라도 더 처음 보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은 짧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어제 보았던 그 뉴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아침부터……!”

남자아이의 버럭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깝다. 골목길을 꺾으려는 서영의 바로 앞쪽에서……?

생각과 함께 멈추려 했지만,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골목을 돈 순간, 처음 보는 검은 교복의 남학생이.
무턱대고 멈추려던 다리가 자기 혼자서 꼬였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하지만 꺾어지는 길에서 달려오던 소년과 부딪혔나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부딪칠 수밖에 없는 속도와 거리였음에도 소년은 물 흐르듯 - 그야말로 키가 낮아져 몸이 옆으로 퍼지는 것처럼 - 다리를 움직여 서영을 피했다.
덤으로, 넘어지려는 서영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기까지 했다.

“미안. 괜찮아?”

키가 큰 남학생이었다. 검은 교복만큼이나 수수하지만 인상이 부드럽고 무척 선량해 보였다.

“어라, 어라아. 안 부딪쳤네. 더 겁을 줬어야 했나?”

여자의 말에 서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대로라면 목소리를 듣고도 한눈에 여자를 발견할수 없었을 것이다. 넘어지려다가 소년의 부축을 받고 위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서영은 전봇대의 전기줄 위에 서있는 여자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청바지에 탱크탑. 단발머리에 팔짱을 낀 여자가 - 4미터는 되는 그 높이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피하면 죽는다.”

소년의 억울한 눈이 날아 내려오며 선고하는 여자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여자는 - 그런 소년의 얼굴을 워커 발로 짓밟았다.

“크익!”

순간 소년은 허리를 뒤틀며 버티려 했지만. 여자가 얼굴을 밟은 쪽 무릎을 굽혔다가 힘껏 펴자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처럼 땅바닥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좋았어. 인상적인 첫 만남 완성.”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서영에게 씨익 웃었다.

“가봐. 있다 또 보자.”

서영은 기묘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서둘러 등굣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 * *



“오늘 새로 온 전학생을 소개하겠다. 자, 인사하렴.”

서영은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적으며 교실에 모여 있는 학생들에게 인사했다.

“그럼 자리는. 저쪽으로 가렴.”

선생이 가리키는 자리는 서영의 원래 자리였다. 그것이 규칙이다. 서영의 생활 자체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은 서영은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옆자리의 소년에게 눈인사를 했다. 아침에 보았던 그 소년 - 하현우라는 이름의 소년이 말했다.

“안녕. 네가 원래 이 동네에 살던 아이구나?”

서영은 얼어붙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 *



그것이 바로 기묘한 계약.

'모든 게 사라졌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떠나고 싶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내 모든 추억이 남아있는 이 마을에서. 그대로 있고 싶어.'

마흔 명의 아이들의 냉담한 눈이 서영을 향하고 있었다. 서영은 언제부터 자신이 ‘걸레’가 되었는지, 도시락에 분필가루를 뿌리고 머리에 대걸레를 뒤집어씌워도 되는 사람이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서영이가 전학을 가는 게…… 제일 원만할 것 같군요.’

싫어. 싫어요. 여기는 내가 태어난 마을인걸. 골목길도, 고목나무도, 구멍가게의 할머니도, 죽은 예삐의 무덤도 모두 여기에 있는걸.
베여진 손목에서 피를 흘리는 서영의 눈앞에서 거울 속에 서있는 또 한 명의 서영이 말했다.

[여기에 남게 해줄까?]



* * *



“그렇게 된 거구나……. 하지만 너는 그걸로 된 거니? 후회하지 않아? 아무리 이 마을에 남더라도, 너는…….”

눈빛에 동정을 담은 소년 - 현우에게 서영은 고개를 저었다.

“한 달에 한 번이야. 한 달에 한 번 씩 전학을 가면 되. 그러면 괴롭지도 않고, 보통사람처럼 지낼 수 있어. 쭈욱, 이 마을에서.”

서영을 제외한 300여 명의 학생들, 30여 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이 마을로 ‘전학’을 온 현우는 말했다.

“옳지 않아. 계약은 댓가를 요구할 거야. 그리고…… 댓가가 아니라도 그것은 틀렸어. 너 자신은 영원히 나아가지 못하니까. 어쩌면 계약의 댓가는 허울일지도 몰라. 그게 진정으로 그것이 얻어낸 댓가일지도 몰라.”

서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제 그만둬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서영은 이번 ‘전학’을 오기 전날 보았던 뉴스를 떠올렸다. 서영의 잠을 빼앗아 지각을 하게 한 뉴스. 한 달에 한 번, 전학생 중 한 명의 이름을 거울 속의 다른 자신에게 바치는 계약을 했던 그 학생이 - 실종 일주일만에 혼수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 * *


[그건 네가 원하는 게 아니야]

밤의 어둠 속에서 거울이 진동했다.

[거짓말 하지 마. 너를 상처 입힌 그 아이들과 다르지 않아. 너는 그저 여기에 있고 싶을 뿐이야. 그렇잖아?]

서영은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어린 눈을 힘껏 감고, 망치로 거울을 내리쳤다.
쨍강,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생긴 것은 거울이 아니라 서영의 가슴. 부서져 무너져내리는 틈새. 그 안에서 검은 손이 비어져 나왔다.

[거짓말 하지 마]

서영의 목을 틀어쥐는 손을 향해 현우이 뛰어들었다. 땅을 울리는 진각의 주먹. 돌풍조차 날카로운 발차기. 서영의 목을 놓친 손이 현우에게로 뻗어왔다.

손에 잡힌 현우가 용을 쓰며 몸을 비틀었으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아, 진짜 저 약해 빠진 놈의 자식.”

잠자코 지켜보던 여자가 어느새 - 움직이는 동선조차 보이지 않고 - 검은 손을 틀어쥐었다.

“일단 나와서 해 자샤.”

가볍게 잡아당긴 순간 - 사차원의 주머니처럼 서영의 몸보다 몇 배는 거대한 그림자가 서영의 가슴에서 끄집어내졌다.

그 후로 일어난 일을 서연은 평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그림자에게 몇 번이나 맞아서 튕겨나가 걸레짝이 되고도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나 뛰어드는 소년과, 그때마다 배를 잡고 낄낄 웃으며 야유를 던지는 소년의 누나를.


















po날림wer

comment (2)

하늬비
하늬비 작성자 10.08.14. 21:40
리플 달아준대서 개판으로 달렸는데... 늅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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