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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별미 곱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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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53 Sep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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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위래
소녀는 곱등이가 오동통해서 좋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소녀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입안에 넣고 씹을 때 톡, 터지는 느낌이 좋아서."
그러면서 소녀는 가까이에 폴짝폴짝 뛰던 메뚜기 하나를 낚아채어 입 안으로 가져갔다. 예전엔 씹던 와중에 입을 벌리고 내용물을 보여주곤 했는데, 몇 번 주의를 주니 언제부터인가 그러지 않았다. 소녀는 메뚜기를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먹었다. 그리곤 내가 보지 못하게 휴지로 이빨을 닦아내었다.
소녀가 말했다.
"메뚜기 같은건, 뭐랄까. 껍데기를 씹는 느낌이 강하달까~ 개미 같은 건 너무 작구. 바퀴벌레는 납작해. 메뚜기랑 비슷? 아니. 미묘하게 다르지만. 아무튼 톡! 하고 터지는 건 곱등이 정도인거지."
그러면서 소녀는 이빨을 보여 웃었다. 분홍 잇몸과 하얀 이빨. 예전엔 이빨을 닦아내고도 벌레 다리가 끼여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소녀는 능숙해지고 있었다.
나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별미네. 간식 같은 거?"
"응. 맞아. 근데 찾기가 힘들어."
"왜?"
"나는 맛있는 건 먼저 손이 가는 타입이라서…… 곱등이는 먹이 사슬의 희생자였달까…… 나는 생태계 파괴자였달까나……"
나는 소리내서 웃었다. 그리곤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시계를 보니 가봐야할 시간이었다.
"그럼 이제 일어나볼게."
"어? 벌써 가려고?"
"어제도 왔었잖아."
"벌레 때문에 그래?"
소녀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벌레라.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엔 온갖 벌레가 북적이고 있었다. 방금도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지네를 떨쳐냈다. 소녀는 그 중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종말로 치닫는 세계는 오염지수의 상승과 함께 돌연변이와 이상현상으로 채워졌다. 픽션에서나 나오던 좀비나 초능력자가, 지능을 가진 로봇과 온갖 괴물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던 곳에서 쏟아져나왔다. 종말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그것들이 나타나 종말로 치닫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로썬 별로 관심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공무원이었고,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중요했다. '괴이한 것'들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내 일은 복지관련이었고, 본의 아니게 괴이한 것과도 엮이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눈 앞에 소녀였다.
괴이한 것은 초능력 처럼 유용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일종의 장애에 가까웠다. 소녀는 벌레 밖에 먹을 수 없다. 소녀는 살아있는 벌레 밖에 먹을 수 없다. 그게 소녀의 '괴이함'이었다.
벌레 밖에 먹을 수 없다는 건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다. 인간이 혼자서 잡을 수 있는 벌레의 숫자는 한계가 있으니, 그 벌레들을 조달해줘야 한다. 게다가 벌레를 먹는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병균과 기생충에 무해한 것이 아니었기에, 항생제와 구충제를 매일 챙겨 먹어야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들러, 일주일 치의 항생제와 구충제, 벌레 알, 벌레밥을 건내고 소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소녀는 늘 혼자였다.
벌레 먹는 소녀를 감당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벌레로 가득한 집이 아니면 살아가기 힘든 소녀와 함께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게 가족이라고 해도. 그 어떤 친한 친구라도.
나는 문을 열었다. 소녀는 현관 앞 까지 마중을 나왔다.
"조만간에 다시 올게."
소녀는 우울해진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내일 다시 올게."
"정말요? 그치만……"
나는 쓰게 웃었다. 어쩌자는 건지.
"난 공무원이라고. 이것도 일이야."
소녀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한 숨을 쉬는데 벽면에 곱등이가 눈에 들었다. 잽싸게 낚아챈다. 소녀의 능숙함을 나도 배웠다.
"아."
"아?"
"입 아 벌려보라고."
소녀는 입을 벌리고, 나는 곱등이를 입에 넣었다. 소녀는 입을 닫고 우물거린다. 순간 눈을 질끈 감는다. '톡' 터졌나보군. 나는 돌아서서 아파트 복도를 걸었다.
"아저씨."
돌아보니 소녀는 입을 가리고 말하고 있었다.
"내일 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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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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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블레츨리역 지붕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환상을 읽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관사 노릇을 더 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 J.R.R Tolkien, <On Fairy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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