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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소설가 다 이렇게 죽었으면

by 서담 posted Jun 12, 2016 (23시 46분 44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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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하나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나만 알고 있는 사건의 대한 기록.

 

나는 아주 깊은 늪에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그는 턱을 괸 채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던 창밖에는 주차된 차들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넘실거렸다. ……그러자 나는 아지랑이에 집중했다. 불꽃으로 대기가 일그러지고 그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꼈다. 나는 딱히 창밖의 무엇을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다. 허공에 시선을 뒀을 뿐인데 그곳이 그저 창문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턱을 괸 손을 떼었다. 나는 턱을 괸 손을 떼다가 멈칫했다. 반항적으로, 나는 그 손을 다시 턱 쪽으로 가져가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의 양팔은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는 게을러 보일정도로 등받이만 있는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그럼 내가 묻겠다. 내가 게을러 보인다는 것은 누구의 시선인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일방적인 음성이 다시 시작됐다. 그의 직업은 소설가였다. 어떤 소설 한 편도 공인된 곳에 인쇄된 적이 없지만, 적어도 그는 자신을 소설가라고 불렀다. 이럴 때, 나는 타자를 치던 손가락을 멈췄다. 의욕이 한없이 떨어졌다. 동시에 밥맛도 함께 떨어졌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의 자리는 항상 앉은뱅이책상과 등받이만 있는 의자였다. 등받이에 달린 쿠션은 실밥이 헤져서 안에 있던 솜이 튀어나왔다. 나는 의자에서 등을 떼고 고개를 돌려 등받이를 바라봤다.

“정말이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늘은 카페에 갈 거야.”

그는 아까보다 좀 더 큰소리로 말했다. 카페의 커다란 부착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때가 그에게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동시에 가장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가 카페에 갈 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관자놀이쯤을 지그시 눌렀다. 머릿속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더럽게 직설적이네.”

나는 정말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됐다. 그는 2인용 탁자에 앉아있었다. 그는 카페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는데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가 앉은 탁자 위엔 노트북이 올려져있었지만 그는 노트북을 펼치지도 않고 있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일회용 컵에는 내용물이 이미 없었다. 그는 컵에 꽂혀있는 애꿎은 빨대를 깨물었다. 나는 재빨리 빨대에서 입을 뗐다. 컵을 탁자에 내려뒀다. 빨대 끝은 잘근 씹혀 이미 찌그러져있었다. 그는 빨대 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아무것도 안 했어.”

그가 맞은편을 보고 말했다. 맞은편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점내엔 오래된 재즈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도 안 왔으니까 아무도 앉아있지 않지.”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튕겨 탁자 위의 컵을 툭 밀쳤다. 컵이 쓰러지더니 굴러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왠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는 입맛을 다시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있다고 한다면 그저 싸구려 샹들리에 하나가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샹들리에를 가리켰다. 손가락은 천천히 천장을 훑으며 대각선 구석으로 향했다. 새까만 CCTV 하나가 붙어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맞은편에 비어있는 의자를 바라봤다. 그는 의자 등받이의 조금 앞쪽을 응시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정말로 그저 허공이었다. 아무것도 없어서 무엇을 보는지도 모르는 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그는 아파트 건물 그늘에서 햇빛을 피했다. 그가 사는 곳은 그 아파트의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5층으로 되어있는 건물이었고 그는 방 하나짜리 1층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여름에 습기가 가득해 문을 닫아놓을 수가 없었다. 그늘에 있는 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아파트 정문 앞에 앉아있으면 보기 안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방에만 있는 건 싫었다. 카페도 너무 조용했다. 주차된 자동차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 찢어져라 울어대는 매미소리,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음들.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됐다. 그는 주머니 속에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정확히 700원이야. 500원짜리 하나, 100원짜리 둘.”

그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맞아. 허공에 대고 말한 거지.”

그는 실실 웃고는 입을 바보같이 벌렸다. 가까운 경비실에 있던 늙은 수위는 그를 보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경비실을 보니 진짜로 수위가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얼거리는 모습이라도 본걸까. 수위는 그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경비실에서 나와 그가 있는 쪽으로 성큼 걸어왔다.

“그렇게 앞에 서 있으면 주민들한테 방해 돼.”

수위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가 정문에 설치된 난간에 걸터앉아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수위는 그를 경계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수위의 얼굴을 잠깐 쳐다봤다. 나이를 먹었지만 순진해 보이는 눈매였다. 입가엔 슬며시 미소를 그리고 있었고 말투도 차분한 것이 온화해보였다. 정말로 나를 훑어보고 경계하고 있는 걸까.

“혹시 저를 경계하고 계시나요?”

그는 수위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렇게 물었다. 수위는 눈을 깜빡거렸다. 이상한 놈이 걸렸다는 눈치였다. ……아니, 내가 봤을 땐 아니었다. 수위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나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다.

“주민들에게 부탁을 받았거든.”

수위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경비실로 돌아갔다. 수위는 명백히 그를 피했다. 수위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경비실을 바라보니 수위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일방적인 음성들에 집중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듣기에 썩 어색한 느낌으로 계속 들려왔다. 어쩔 땐 아주 먼 곳에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듣지 않으려다가도 흘려들을 수가 없는 잡음이었다. 그럴 땐 그 소리를 전부 들으려고 했다. 그 사라지려고 하는 메아리에, 희미해지는 존재의 끝을 억지로 붙잡으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색한 목소리는 내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목을 매달았다.

더 이상 그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어떤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떤 것도 보이지 않게 될 예정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어두워지는 시야의 기대어, 나에 대해 전부 아냐고.

그는 더 이상 어떤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고, 새까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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