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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목소리

by 세스트랄 posted Mar 04, 2017 (23시 30분 38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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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안온한 표정으로 누워 계셨다.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거대한 천문대 안에는, 그와 나 둘뿐이었다. 바깥에서는 별들이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별과 대화했다. 방금 하늘로 올라간 별이었다.

 

 

 

*

 

 

 

내가 스승님, 테첼리 공을 만난 것은 25년 전이었다.

 

그날도 나는 별을 보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게 무슨 궁상이냐며 진저리를 치셨지만, 나는 그 재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시선이 일곱 번째 별을 지날 때쯤, 낯선 귀족이 찾아왔다.

 

“거기 꼬마야! 네가 요안니스냐?”

 

나는 그렇다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중년으로 보이는, 수염이 멋진 귀족은 호탕하게 웃으며 잠깐 우리 집에서 쉬었다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님은 황급히 허리를 꺾으며 절했다. 그리고는 어리둥절한 나의 등짝을 누르며 낮게 속삭였다. 얘, 이 아둔한 녀석아, 저분이 테첼리 공이시다. 별의 법칙을 꿰뚫어 보고, 미래를 아신다는 천문학자 테첼리 공 말이다.

 

한쪽은 느긋하고 한쪽은 안절부절못하는 대화 끝에, 테첼리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나는 물었다.

 

“나는 그저 별을 볼 뿐인데요, 천문학이니 뭐니 하는 건 잘 몰라요, 왜 절 찾아오셨나요?”

 

키 큰 테첼리는 허리를 굽혀 나와 눈을 맞추고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양치기는 별자리를 짓고, 점성술사는 별에서 길흉화복을 본다. 너는 어떤 별을 보느냐?”

 

나는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냐는 듯 대답했다.

 

“저는 저에게 보이는 별을 볼 뿐인데요.”

 

테첼리는 빙그레 웃었다.

그날부터 나는 테첼리 스승님의 제자가 되었다.

 

 

 

*

 

 

 

나의 스승님은 부유한 귀족이었다. 타고나기를 귀족 가문의 독자였지만, 겨우 그 정도의 부유함이 아니었다. 스승님의 책은 잘 팔렸다. 그리고 스승님은 재미 삼아 왕과 대 귀족들의 별점을 봐 주었다. 그건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사업이었다.

 

모인 돈으로 스승님은 커다란 천문대를 세웠다. 커다란 석조 건물엔 각종 천문기구를 들여놓았다. 방위를 알기 위한 육분의, 십이분의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망원경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 눈을 선물해준 신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어.”

 

스승님은 가끔 즐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대로, 스승님, 테첼리 공의 맨눈 관측은 멀리 동방에서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어느 망원경보다 강력한 두 눈 덕분에 스승님은 최고의 천문학자가 되었다. 나 또한 그의 제자인 덕분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별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눈은 그저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좋을 뿐이었다. 스승님은 망원경을 사주셨다. 테첼리 천문대에서 유일한 망원경이 바로 내 것이었다.

 

선물 받은 망원경으로 화성을 관측하기로 한 날, 경통(鏡筒)에서 눈을 뗀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스승님! 다른 별의 위치를 좀 보세요. 역시, 제 추측이 맞았어요!”

 

스승님은 화성을 보던 눈을 거두고 물었다.

 

“어떤 추측 말이냐?”

 

나는 불사의 영약을 만들어낸 연금술사처럼 들떠 있었다.

 

“태양이 가운데 있고, 우리 모두 그 주위를 돌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스승님의 표정은 매섭게 굳었다. 스승님은 망원경을 깊숙이 넣어 두고 싶은 물건처럼 노려보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순간 방이 더 어두워지는 듯 했다.

 

:“그 얘기, 절대 남에게 새어 나가선 안 될 것이다.”

 

순간 젊은이의 반항심에 몸을 맡긴 나는, 당돌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제가 알아챌 정도라면 스승님이 모르셨을 리가 없어요. 대답해 보세요. 이것 말곤 모든 천문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이 없잖아요. 그렇죠? 아니면, 정말로 모르시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요안니스!”

“…네.”

“나는…아니, 그래. 내가 몰랐던 것 같구나. 하지만, 그걸 절대 남에게 발설하지는 마라.”

“예?”

“하라는 대로…해라.”

 

그 말을 하던 때의 스승님의 눈빛은, 꼭 물잔에 떨어진 포도주 한 방울 같았다.

 

 

 

*

 

 

 

그로부터 몇 주 후 스승님은 새 책을 냈다. 제목은 <화성의 운행에 관하여>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태양과 다른 별은 지구의 주위를 돌지만 화성만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이다. 스승님이 그렇게 말한 이상, 다른 학자들도 화성을 관측하고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순간 끔찍한 충동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스승님의 자리에 있었다면. 저 천문대의 꼭대기에 서 별의 운행을 관장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망원경을 집어던져 부숴 버렸다.

 

망원경의 잔해를 본 스승님은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우리 사제 간에는 대화가 없었다. 나름의 변명이었는지, 스승님은 이렇게 말했다.

 

“요안니스, 나는 늙고 병들었다.”

“요안니스, 나는 늙고 병들었어.”

 

나는 그게 꼭 점성술사의 말 같다고 생각했다.

 

 

 

*

 

 

 

우리가 겨우 다시 대화를 튼 것은 스승의 생일 때였다. 이젠 노인이 된 스승을 차마 내버려 둘 순 없었기에, 나는 여느 때처럼 관측창을 내다보는 그의 곁에 슬그머니 앉았다. 스승은 나를 보지도 않고서 거기 있는 것을 안다는 듯 말을 건넸다.

 

요안니스, 너와 이렇게 앉아 있는 게 얼마만인지. 너는 별들이 움직이는 게 보이느냐?“

“네.”

“지금쯤이면 화성이 보이겠군.”

 

나는 스승의 말투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이제 화성이 보이지 않아. 다른 별들도.”

 

스승은 덧붙였다. 내 눈이 죽었으니, 곧 나도 죽을 거다.

나는 못 박힌 듯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나를 떠나는 거야.”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스승님…”

“그러니까, 이제 이곳에서 별을 보는 사람은 너다. 별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라는 뜻이야.”

 

스승님은 몸을 돌려 관측창을 등졌다. 그리고 팔을 뻗었다. 더듬거리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그러자 마음이 놓이는 듯, 스승님은 미소 지었다.

 

“요안니스, 나는 두려웠다…사람들이 수천 년 간 믿어온 것을, 그리고 교회가 믿는 것을, 나만이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어. 신들이 나에게 눈을 선물했건만, 나는 끝내 그들과의 연결을 의심하고야 말았어.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낯선 게냐? 괜찮아. 모두 끝이 다가오면 솔직해지는 법이다…. 이건 벌일지도 몰라. 내 눈이 보는 것을, 내가 믿는 것을 용기 내어 소리치지 못한 벌 말이다. 억울하지는 않아. 나에게 선물을 주어 기쁘게 해준 것도 신들이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별을 보아야 한다.

 

요안니스. 누군가는 저 우주의 참뜻을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해.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처음부터…알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 시골 꼬마가 나에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더구나. 그 꼬마에게,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연단을 주고 싶었어.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을 테니까.”

 

스승님은 마치 그 때가 눈앞에 떠오른다는 듯, 이제는 아무 빛도 들어오지 못하는 눈을 위로 향했다.

 

“이제 말해 보아라. 25년 전, 너는 뭐라고 대답했지?”

 

울먹이는 것처럼 들리지 않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저에게 보이는 별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노스승은 마른기침 같은 소리를 뱉었다. 호흡기가 말라 갔지만, 대학자는 예전처럼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기침이 잦아들자 테첼리는 말했다.

 

“내가 제자 하나는…잘 뒀지.”

 

그의 눈꺼풀은 지는 해처럼 조용히 감겼다.

 

관측창 너머로는 유성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이야기를 멋대로 각색.

역시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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