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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약속, 벚꽃, 그녀

by sere posted Apr 30, 2017 (13시 46분 18초)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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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실의 커튼이 팔랑거리기 시작한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딸각하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린다. 이 정도면 바람때문인가, 하고 의심스러울 정도다.

 

“오늘은 일찍왔네?”

 

물론 내가 입원한 1인실의 방문을 연것은 바람이 아니다. 엄연한 사람이다.

 

“......응, 아침먹고 바로왔는데?”

“넌, 그게 문제라는 거야.”

“문제가 있는 사람은 너잖아. 맹장에 문제가 있는거 아냐?”

“지금은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정말이지 이 녀석은 문맥을 끊어먹는데는 도가 텃다니까.

 

“그럼 무슨 문제를 말하는거야?”

“잘들어.”

 

지금부터는 훈계의 시간.

 

“너, 오늘 약속 없어?”

“이게 약속인데.”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 분명히 틀린 대답은 아니다. 시간이 되면 병문안 오라고 얘기한건 나니까.

하지만...

 

“이거 빼고 다른 약속은?”

 

초점을 맞춰야 하는곳은 바로 거기다.

잠시후 ...그녀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묵비권을 행사할래.”

 

......

침묵.

침묵.

그녀는 내게서 시선을 피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짓는 표정은 어딘가가 쓸쓸했다. 내가 무의식에 지어내는 표정같은 것이였다.

 

“네가 없어도, 딱히 쓸쓸하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너무 날 생각하지 않아도 돼.”

 

아주 솔직한 느낌이 드는 대사.

하지만 실제로는 반은 거짓말이고 반은 진짜다.

 

“하루종일 너를 생각하면 안돼?”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짓는다. 나는 내 말의 어디가 웃음 포인트였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겨우 삼킨다.

 

‘너 처럼 아름다운 아이가 왜 이렇게, 언제까지고 나를 신경써주는거야?’ 라는 말을 마음속에 꽁꽁 옮아맨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뭐야? 병원에 누워있으니까, 내가 조금은... 예뻐보여?”

 

그녀가 검은색 스커트 끝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이쯤되면, 솔직한 감상을 말하도록 하자.

솔직하게 말해서, 오늘 그녀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끝내주었다.

살갖이 비치는 옅은 분홍색의 블라우스, 새하얀 허벅지가 다 들어나는 테니스 스커트...

그것은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그림이였다.

그렇다고 누굴 보여주거나 하고싶진 않다.

 

“정말 아무약속도 약속 없는거 맞아?”

 

다시 되묻는다.

 

“응응!”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참.”

 

그리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부딪히고는, 내게로 가까이 다가온다.

 

“뭐야?”

“과자야.”

“과자?”

“응. 우리가족이 여름방학동안 일본에 여행갔잖아?”

“......그렇지.”

“그때 산거야. 우리집에 많이 있으니까, 다 먹고 또 먹고 싶으면 말해.”

“...내가 그렇게까지 먹보같아? 이거 다먹으려면 2달은 걸리겠다.”

 

그러자 그녀가 아하하,하며 웃는다. 싫없는 웃음이지만, 그 누구의 어떠한 웃음보다도 활기차다.

분명 위화감을 느낀것은 나 혼자 뿐이리라.

 

“가족들이랑 나눠먹어!”

“그래. 그래야겠어...”

 

이리하여 나는 그녀에게서 넓적한 일본 전통 과자 3상자를 받게 되었다.

 

그 뒤로 30분 동안, 그녀는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업시간에 자고... 자고... 또 자고...

평소와 다를바없는 학교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조금 안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딘가에는 묘하게... 내가 없다는 것이 부각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번주내로 몸이 전부 회복될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뛸듯이 기뻐했다.

 

*

벚꽃이 떨어지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공원에 울려퍼진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된다.

 

“조용히해! 여기 병원이라고...”

“아차차... 실수.”

 

그가 뒷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나서 봉투에 담아온 음료수 캔 두개중 하나를 내게 내민다.

 

“고마워. 잘마실게.”

“미안해. 아까는 너무 반가워서 흥분해버렸어...”

“괜찮아. 이제 신경쓰지마.”

 

나와 그는 동시에 딸깍,하고 음료수 캔을 땄다.

 

“요즘 잘 지내고 있어?”

 

일단 기본적으로 그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그런데......

 

“그거... 누구를 말하는거야?”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도 태클이 걸리는거야?”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야 너는 그 얘말고는 관심이...”

“그만해. 그녀는 친구야. ...친구일 뿐이라고.”

“그래. 그래. 10년지기 소꿉친구. 맞지?”

“......”

 

나는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음료속의 포도 알갱이를 씹으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나 말고는 만날 사람이 없다는건 이상하지 않아?”

“역시 그 아이 말이지?”

“......응. 방금전에도 내 병문안을 왔었어.”

“오오...”

 

내 말을 들은 그는 갑자기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뭔가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그의 이런 반응이 닭살이 돋을 만큼, 불쾌했다.

 

“역시, 그냥 너희 둘은 사귀는게 어떨까 싶어.”

“제발...”

“솔직히 말해봐. 너희, 사귀고 있는거 맞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걔뿐만이 아니라, 너도 그 아이에게 적잖히 신경을 쓰고 있잖아. 봐봐, 병원에 있으면서까지, 나를 불러내서 그녀 얘기를 하는거 보면..., 게다가 걔 외모에 너 말고는 만날 사람이 없다니.... 아아, 아무튼 부럽다.”

 

그가 어깨를 떨궜다. 진심으로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학교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거 맞지?”

“......”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맛있는 밥 사줄테니까, 대답해봐.”

“닭, 돼지, 소... 그중에 골라라.”

“돼지.”

“...... 뭐, 오케이. 사실 그냥 말해주려고 했지만.”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아직 다 낫기도 전에, 지출거리를 만들고 말다니...

 

“걔라면 뻔하잖아. 하루종일...”

“엎드려서 잔다고?”

“아니.”

“그럼?”

“공부하고 있어. 수업시간에도 자지않고, 충실하게. 기껏해야 쉬는시간만 자던걸?”

“뭐라고?!”

 

완전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내가 봐왔던 그녀는, 10년동안 친구로 지낸 그 아이는, 절대로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는 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천적은 졸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심지어는 야외여도... 그녀는 곯아 떨어지기 일쑤였다. 10년동안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나는 맹장 수술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게 됬을때부터 그녀를 몹시 걱정했다.

하지만 이랬던 그녀가...

갑자기...?

 

“놀랐지?”

“으,응.”

“하지만 사실이야. 게다가 부 활동도 너 대신 하고 있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

“아무튼 계속 잘해줘라. 그 얘, 학교내에서 평가는 좋지 않더라도, 진짜로 너 일편단심이잖아.”

 

*

나는 병원 침실에 누운채, 과거를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라 하면, 내가 그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시기다.

 

“......”

 

10년전,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에, 나와 그녀는 우연히도 같은 반이였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반에서 가장 미인이지만 존재감이 없는, 색깔이 없는 여자 아이였다.

그녀는 말 수가 거의 없었다. 하루종일 그녀가 누구와 대화하는것을 본적이 없었다.

반의 아이들은 항상 시선을 아래로 두고 다니는 그녀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도 처음에는 그녀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갈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한 번, 그녀의 실내화가 휴지통에 버려져 있는것을 보고 그것을 주워서 그녀에게 돌려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이 계기였을까......

그 날은,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였다.

교문을 나서려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저기, 네가 XX이니?”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여성이였다.

 

“네. 맞는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있잖니... 아줌마가 정말 고마워서 그러는데, 같이 맛있는거 먹으러가지 않을래?”

 

그때 나는 보았다.

그 여성의 등 뒤로, 조용히 도망치고 있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최종적으로 나는 그 여성에게 한 가지를 부탁받았다.

부모를 사고로 잃은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줄 수 없겠냐고.

 

이것은 나만이 아는 사실이였다.

 

*

오전 10시부터 병원의 면회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일에 해당하는 시간이고, 오늘은 주말이다.

고로 2시부터 면회가 가능하다는 것.

 

덕분에 나는 2시까지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녀가 학교에서 재밋다고 빌려온 문고본을 읽거나, 그녀가 재밋다고 추천해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아니면 그녀의 오랜 취미생활이였던 낮잠을 자거나...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내 주변에는 온통 그녀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계의 시침이 2를 가리켰을 때였다.

거기서 10분이 더 흐르지 않았을 때,

 

“나, 왔어.”

 

그녀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뭐하고 있었어?”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그녀의 갈색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음...... 낮잠?”

“내가 추천해준 책 읽어봤어?”

“조금이지만 읽었어.”

 

그녀는 만족했는지,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운다.

 

“근데 그건 뭐야?”

 

내가 그녀가 오른손에 들고있는 종이가방을 가리켰다.

 

“도시락.”

“도시락?!”

“응. 내가 만든거.”

 

쑥스러운지 들고온 종이가방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기는 그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다.

그래도 이번엔 엄마가 만들어 줬다는 말은 하지 않는구나, 하고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이쪽으로 와. 같이먹자.”

“진짜? 아, 그전에 내가 학교 수업 필기해놓은거 있는데...!!”

“일단 먹고 하자!”

“알았어!”

 

부모를 잃고 나서, 나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버린 그녀.

아무도 정상인이라고 생각하지않는 그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대는, 어딘가 어린아이 같은 그녀를.

나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따스한 그 바람은 나와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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