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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채식용사

by 가올 posted Apr 30, 2017 (15시 42분 02초)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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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켓 참여 동의 아니오

 12월. 용사는 겨울잠을 잤다.



 “이런 약소한 파티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를루인 후작 각하.”

 “고맙소.”

 “(소근)저 남자는 누구지요?”

 “(소근)오를루인 후작이라는데요?”

 “(소근)아, 용사님의 부하?”

 “(소근)그런데 왜 혼자에요? 용사님은요?”

 “(소근)소문 몰라요? 무슨 종단에 귀의하셨다나 봐요. 재산은 전부 빈민들에게 적선하고 작위도 반납하셨다나?”

 “(소근)어머머머, 역시 용사님은 대단한 분이시네요. 예전에 봤을 때도 범상치 않은 분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나 고결한 분일 줄은 몰랐어요. 마왕도 거의 혼자 물리치셨다면서요?”

 “(소근)맞아요. 전우들이 다 쓰러진 뒤에도 사흘이나 마왕이나 싸워서 결국 쓰러뜨렸대요.”

 “(소근)전부 다면, 저 공작님도요?”

 “(소근)그렇겠죠.“

 “(소근)그럼 작위는 반납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용사님도 반납하셨는데.”

 “(소근)쉬잇.”

 “(소근)말조심하세요.”

 “아름다운 소리요. 영애의 취주 솜씨가 나날이 발전하는구려.”

 “감사합니다, 후작 각하.”



*

  

4월, 용사는 토마토 밭에 앉아 있었다.



 “야, 얼갈아. 나 왔다.”

 “누가 용사님한테 얼간이래.”

 “이게 작위도 없는 게 까불어!”



 후작은 웃으며 친구의 얼굴을 살폈다. 한때 왕국 제일의 신랑감이던 남자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절반은 토마토 줄기의 그림자였지만, 절반은 오랜 단식이 드리운 그림자였다. 두텁던 팔은 앙상해지고 탄탄한 가슴은 딱딱한 뼈가 드러날 정도. 그런 친우의 모습이 후작을 안타깝게 했다.



 “너, 작년보다 더 말랐는데 괜찮냐”

 “얌마, 겨울 내내 굶었는데 당연히 더 마르지. 배고파 죽겠다. 거기 토마토 좀 줘라.”

 “예, 예, 형님.”



 후작은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건넸다. 용사는 해골 같은 손으로 토마토를 받아들어 먹었다. 입가로 터져나가는 붉은 즙액. 그래도 친우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 후작을 기쁘게 했다.



 “이것도 마셔라. 아무것도 안 넣은 신선한 우유다.”

 “찰스네 소냐?”

 “그래.”



 농장주의 이름을 그렇게 당당히 말하는 토마토 도둑이 어디 있을까, 후작은 그런 농담을 하려 했다. 그러나 용사는 거절했다.



 “됐어.”

 “왜?”

 “이제 우유는 안 마신다.”



 묘한 확고함, 후작은 용사가 그런 투로 말하던 때를 기억했다. 생명교에 귀의한다고 밝혔을 때, 작위를 반납한다고 밝혔을 때, 고기를 입에 대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산 것을 먹지 않겠다고 밝혔을 때. 그때마다 모두가 반대했고, 일부가 떠나갔다. 마법사, 사제, 여마법사, 길잡이, 이제 남은 건 후작뿐이다. 



 “…이번엔 왜. 우유는 산 것도 아니잖아. 안 먹으면 썩어.”

 “내 몫이 아니니까 마시면 안 돼.”



 투 투 투 투



 용사는 고개를 돌려 토마토 씨를 뱉었다. 하나, 둘, 셋, 다섯, 여섯, 후작은 세기를 그만두었고 자이나는 말했다. ‘살아있는 것을 먹지 말라. 과일은 먹되 씨를 먹지 말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영생을 얻으리라…’



 “무슨 소리야.”

 “내가 우유를 마시면, 송아지가 굶겠지.”

 “아냐.”

 “송아지가 굶지 않으면, 어미 소가 마르겠지.”

 “그건 그렇지.”

 “어미 소가 마르면, 더 많은 풀을 죽이겠지.”

 “임마.”

 “됐어. 과일이면 충분해.”



 후작의 감정은 전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친우의 확고함을 꺾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후작은 그나마 친구에게 먹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토마토를 하나 더 땄다. 탐스러운 토마토를 반으로 찢어 암염(巖鹽)을 치고는 용사에게 건넸다. 용사는 드러누워 토마토를 먹었다. 



 떠나는 후작에게 용사는 수북한 토마토 씨를 맡겼다. 양지바른 곳에 심어달라며.



*



8월, 용사는 포도밭에 누워 있었다.



 “친구가 왔는데 앉지도 않냐.”

 “왔냐… 미안하다….”

 

 산천은 더욱 풍성해졌건만 친우의 얼굴은 낙엽처럼 말라 있었다. 후작은 포도를 따려 했지만 용사의 앙상한 손이 그를 제지했다.



 “됐어….”

 “과일은 괜찮잖아!”

 “기다려… 떨어질 때까지….”

 “뭐?”

 “나무는 말을 못 하니까… 기다려야지… 허락할 때까지….”

 

 그제야 후작은 친우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마른 것은 당연했다. 살아있는 게 용했다. 언제부터 이런 꼴이었을까? 떨어지는 과일만 먹고 살겠다니, 후작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친우의 고집보다 더 큰 것은, 당연히 친우의 목숨이다. 그런 당연한 분노가 후작의 손을 지배했다. 



 “야… 하지 말라고…”



 분노의 포도.

 말라붙은 용사는 포도덩굴만큼의 힘도 없었다. 후작은 용사의 입을 벌려 포도를 넣었다. 용사는 포도를 뱉었다. 후작은 용사의 목구멍에 대고 포도즙을 짜냈다. 용사는 삼키지 않았다. 후작은 용사의 코를 막아버리고 포도즙과 꿀과 우유를 들이부었다. 그러나 용사는 삼키지 않았다. 용사의 얼굴이 점차 파리하게 질렸다. 결국 후작이 용사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용사는 포도즙과 꿀과 우유를 친우의 얼굴에 뱉었다. 분노와 경멸만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꺼져.”

“야.”

“꺼져. 이런 짓을 하려면 다신 찾아오지 마라.”



 용사는 등을 돌렸다. 그러나 일어설 수 없었기에, 그는 꿈틀거리며 기어갔다. 후작은 일어섰다. 그리고 떠날 수 없는 자를 위해 떠났다.



*



 조금 지난 8월, 용사는 무얼 하고 있을까.



 후작은 오랜 적을 찾아갔다. 마왕의 수하이자 마왕의 배신자, 성스러운 타협의 산물, 살아남은 마녀.

 

 “죽을상을 하고 무슨 볼일이실까.”

 “도와줘.”

 “뭘?”



*



 9월, 용사는 무얼 하고 있을까.



 “…그 길밖에 없나?”

 “아니. 이 길도 없을지 몰라. 당신 말대로라면 지금 용사 나리는 영 제정신이 아니니까. 이것마저 거부할지 누가 알겠어?”

 “…그렇지만 꼭 내가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안 할 거야?”

 “…해야겠지.”



*

 

  11월, 용사는 사과밭을 향해 기어갔다.



 “하… 하… 사과밭은… 멀도다… 나의 주여… 그대가… 나를 이끄시니… 나에게… 부족함이…  없도다….”



 사과밭에 사과가 있을지, 용사는 알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도, 이미 흐려진 눈에는 나무 중턱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과는 있을까? 있다 한들 떨어질까? 주여, 그대는 존재하십니까? 그렇다면 제게 손을 뻗으시렵니까? 그러나 주여, 제가 그대를 용서하듯 그대도 저를 용서하소서. 제가 생각과 말과 행위를 그대로 행하였나이다.   



 “멍청아!”

 

 낯선 목소리가 용사를 돌아보게 했다. 낯선 여인이었다. 그러나 낯익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울고 있었다. 여인은 울며 달려와 그를 무릎 위에 안았다. 피에타, 오 피에타, 주여, 제가 그대와 같이 죽으렵니까? 



 “…책임져, 멍청아. 다 너 때문이니까, 멍청아…”



 여인은 고개 숙여 울었다. 그녀의 눈물이 용사의 입으로 흘렀다. 용사는 아기처럼 그것을 핥았다. 가장 귀한 물, 이것을 마시는 자는 가장 오래 살리라, 용사는 슬픔 깃든 짠물을 핥았다. 그리고 나서야 용사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오를루인이냐?”

 “…그래, 멍청아.”

 “…뭐야, 그 꼴이….”

 “…너 때문이잖아, 멍청이가…”



 후작이던 처녀는 로브를 벗었다. ‘드라이어드.’ 용사는 그녀와 닮은 정령을 떠올렸다. 처녀의 다리는 나무껍질로 덮여 있었고, 군데군데 터져 수액이 흘렀다. ‘나무가 되었구나.’ 용사는 생각했다. ‘움직이면 안 되겠어.’ 그러나 그를 안아든 처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셔.”

 “…뭘?”

 “…부끄러우니까, 말하게 하지 마.”

 

 용사는 알았다. 그는 그녀의 앞섶을 헤쳤다. 살짝 봉긋한 가슴 끝에 그것이 맺혀 있었다. 용사는 그것을 마셨다. 흐르는 젖과 꿀을.



*



12월, 용사는 일어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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