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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허상

by 으렘 posted Apr 30, 2017 (16시 18분 05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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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로, 가야 하는 거야? ”

“ 마, 니가 할 수 있을 거 같나? 새끼야 니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데이…. 그니까 아가리 싹 여물어 닫고, 니 먹을 져녁 준비나  하고 있어래이. ”

자칫 건장한 사내의 어투로 착각할만한 여린 소녀의 목소리. 은발을 짧게 자른 소녀는 말투와는 다르게 슬랜더형의 가녀린 미녀였다.

 

“ 아니야... 데이지, 네가 가지 않았으면 해. 위험하잖아…. 여기선 남자인 내가….”

“ 싸물어라 비실비실한 작대기새끼야! 니는 침대에서 힘도 몬쓰는게 어디서 나선다고 카고있노! 죽어도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면 죽인다잉. ” 

으르렁거리며 호통치는 그녀의 얼굴에는 왜인지 염려가 서려 있었다. 벽난로의 불빛이 살짝 비춰 언뜻 보인 소녀의 얼굴이었지만 그만큼 감정이 넘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 나나 네가 아니라도 되잖아…? 근데 왜 네가 그걸 자처하려 하는 거야. 심지어 자경단도 건드리지 못한 그 악마를!. 그러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자, 응? 삼일만 기다리면 수도에서 기사단이 파견될 거야. 휴이 아저씨가 그랬거든 그러니까….”

유약해 보이지만 시원한 이목구비와 높은 콧대, 가녀린 턱선을 가진. 도시로 나간다면 못 여러 귀족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었을 만한 미모를 가진 남성이 데이지를 만류했다.

 

“ 니는 내가 호구로 보이나? 자, 봐라. 여기 꿈틀대는 근육 보이재? 내가 그깟 늑대 새끼 하나 처리 못할 것 같나? 그리고. 기사단이 올 때까지 여기가 멀쩡할 것 같나? 아서라. 전부 얼싸안고 늑대 밥이나 안되면 다행이지 참나... ”

“ 그건, 평범한 늑대가 아니잖아! 잘못하면 네가 죽을수도!... ”

“ 그만! 해라... ”

잔근육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매끄러운 팔을 소매에 감춘 데이지가 청년의 말을 끊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 니는 어? 그냥 내가 돌아왔을 때 따땃한 목욕물 준비하고 어? 침대에서 잘 새우고, 허리만 잘 흔들면 되는기다. 알겠나? 그니까 걱정하달 말고 편히 쉬고 있어라. ”

“ 데이지. 너는 항상…. 나는 진심으로 걱정한 건데. ”

청년의 전신으로 무력감이 스며들어왔다. 이런 가녀린 소녀가 단신으로 토벌을 감행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을 쾌락을 충족시켜줄 만한 기구쯤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삼켰다. 만일 그렇다 해도 그녀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삶이라는 지대한 축복을 가벼이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별을 따러 기약 없는 여행길에 오르라면 기꺼이 그리할 정도로.

그런데 그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차라리 자신에게 능력이 부여되었다면' 하는 생각을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은 더해왔다. 자신의 여자를 지켜주지 못하는 남자 따위, 생물체로써 남성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이 세계는 너무나 불합리했다. 능력이 부과됨과 부과되지 않음에 너무나 명약관화한 힘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전자의 경우이며 그의 경우는 당연히 후자였다. 하지만 소녀는 청년을 선택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도시로 나간다면 능히 훈작사쯤은 받을 수가 있는 힘. 그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을 선택해 함께 산속에 은거해준 데이지에게 순응해야 되는 것일까.

 

그렇다.

자신의 위치는 딱 거기까지였다. 성처리 도구, 그는 더 많은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쾌락이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지속하고 있는 관계.

그래서 주제넘은 참견이라는 듯 저렇게 짜증을 내는 것일까. 그런 거겠지, 박으라면 박고 흔들라면 흔들고 싸라면 싸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거겠지. 

“ 네 옆에 있으려면…. 하…. 하하…. 그래야 하겠지….”

“ ...뭐, 뭐라카노? ”

중간에 말을 멈추고서 상념에 빠진 청년의 입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나오자 데이지가 당황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낯빛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서글퍼 보였기에, 마음을 다잡았던 그녀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평소엔 저 정도로 침체된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데이지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다.

“ 아니야, 조심히 다녀오도록 해. 나는 걱정 말고. ”

어색함이라는 단어를 옮겨놓은 듯한 표정.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간신히 올려 미소 지은 청년의 얼굴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청년의 심경변화를 어렴풋이 눈치챘음일까, 소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선 등을 돌려 청년을 마주했다.

 

“ 데이지,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안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치즈 그저께 르미유 아주머니가 주셨거든! 다녀오면 요리로 만들어 놓을까 하는데 너는 어떤 요리가…. 읍!!!?!?읍! ” 

 

일부러 쾌활한 척 하는 것이 보기 싫었던듯 멱살을 잡아당겨 자신의 입에 입술을 맞추는 그녀.

거기서 끝이 아닌 데이지의 말랑한 혀가 청년의 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저항했으나 이내 그것을 받아들이자 얽히는 설육이 끈적한 소리를 연출했다.

 

“ 흡!읍... ”

 

가녀린 팔뚝으로 자신의 허리를 끌어당겨 진 청년이 숨을 들이켰지만, 데이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입속을 탐험했다. 마치 구렁이가 좁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처럼.

몸이 달아오르며 거실의 벽난로가 무색하리만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서로가 열락에 들뜬 숨소리를 내뱉었으며 그들의 탐욕을 저지할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뜨거운 키스는 서로의 타액이 턱으로 흘러내려 바닥을 적셔댈 정도가 돼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 흐, 후...데이지?... ”

 

얼굴을 떼자 요사스러운 눈빛을 한 그녀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니. ”

“ 어,어? ”

“ 니가 먹고 싶다고. 그러니까 단디 준비해놔라. ”

“ !!! ”

반칙이다.

저런 귀여운 얼굴로 요기가 가득 찬 얼굴을 하는 그녀는, 언밸런스이자 치트 그 자체였다. 설령 고자가 온다 하여도 저 색욕으로 물든 표정에는 바지를 벗고 밸리댄스를 출수밖에 없으리라.

“ 그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내는 니가 뒤지기 전까지는 죽을 생각 일란 추호도 없으니까. 집에서 몸이나 잘 간수하고 있어라. ”

“ 어,...어... ”

타액범벅이 되어버린 턱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씩 웃는 그녀의 색기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 고사이를 못 참아서 행여라도 딴 년이랑 바람나면 뒤진다. 니도 죽고 그년도 죽고 나는 살 거니까 박는 거는 내한테만 박아라. ”

그녀는 경고를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섰다. 걱정은 사치라는 것을 각인시켜주듯 데이지의 발걸음에 망설임이란 없었다.

청년은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경첩을 갈아줘야 할 때가 되었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고 벙찐 청년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말했다.

 

“ 여신 아프로디테가 온다 해도, 네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 하여도. 나는 너를 선택할 거야 데이지. 그 정도로 너는 나를 미치게 하니까. ”

아무도 없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던 텅 빈 허공이었지만, 고개 숙인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만면해 있었다.

반면 청년의 눈동자에는 얼풋이 광기가 잠재되어있었다.

싸늘하게 식은 방의 내부는 공허함이 맴돌고 있었다.

얼마간의 적막이 지났음일까 고요를 가장한 광란 속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청자 없는 화자의 읊조림이었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수백번도 넘게 말한 문장. 그 누구도 없지만서도 억지로 쥐어짜낸 목소리.

“ 정말로, 가야 하는 거야? ”

온기라고는 하나 느껴지지 않는 벽난로의 잿먼지만이 그의 대답을 받아주듯 서서히 허공에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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