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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소꿉친구

by 초리니 posted Apr 30, 2017 (18시 29분 13초)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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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생긴 사람은 이 세상에 세 명 존재한다고 하지만,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은 꽤 존재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10년 넘게 옆집에 살고 있는 소울 프렌드라니. 만년 중학생인 어떤 사람이 들으면 되게 부러워할 것 같은걸.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조금은 퉁명스러워보이는 질문이 내 잡생각을 깨뜨렸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 생각.”

 

“아 뭐래 진짜! 죽여버릴까?”

 

격한 동작에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조금 상처받는다고.

 

“야, 재밌는 얘기 없냐?”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그녀는 거만하게 앉으며 내게 명령했다. 네, 네. 들어드려야지요. 그렇지, 수업 때 들은 이야기를 해줄까?

 

“끓는 물이 훨씬 더 빨리 얼어붙는 거 알고 있냐?”

 

“뭐어?”

 

“그러니까, 찬 물과 뜨거운 물이 있으면…”

 

“거짓말 좀 치지 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와가지고.”

 

나는 울상이 되었다.

 

“음펨바 현상이라고 있어…”

 

“이름이 구라같거든? 지금 문과는 과학 모른다고 아프리카 부족장 같은 이름을 들이미는거잖아. 어디서 이과 티를 내?”

 

“농담이 아니고 진짠데.”

 

“재밌는 얘기를 해보랬지 날 놀리라고 한 적 없어요.”

 

“아, 그러니까!”

 

웅 웅- 하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녀, 한초희의 것이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더니 재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챘다. 무릎 위에 올리고 고개를 숙이니 머리카락 덕에 완벽히 가려졌다.

 

“뭘 그렇게까지 해?”

 

그녀는 답이 없었다.

 

“저기요? 초희야?”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에 얼굴이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은 보였다. 얼굴이 어두워진 이유는 어째서일까.

 

“있잖아. 만약에. 너는 내가 누군가랑 연애를 한다거나 하면 어떨 것 같아?”

 

“응? 뭐래. 우린 어차피 누구 한 명이 연애 한다고 무너질 관계는 아니잖아. 평소처럼 지내겠지. 왜, 연애라도 하시게요?”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닌데… 그래? 그렇구나.”

 

그녀는 잠시 그대로 멈춰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시계초침 소리마저 들린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애써 웃음지었다.

 

“미안한데 나 먼저 가 볼게. 일이 좀 생겨서.”

 

황급히 가방을 정리하는 모습에 나는 별다른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어. 그래. 조심히 가.”




 

-무슨 일 있어?

 

저녁 즈음, 초희에게 카톡을 보내봤지만 답장은 없었다.



 

오후의 햇살이 정원을 비춘다. 역광을 받은 나뭇잎들이 이런저런 색깔을 뽐내고 있다. 혼자만의 학교도 고즈넉하니 좋구만. 나는 데자와를 한 모금 마셨다.

 

“어? 너 뭐야. 오늘은 초희랑 함께가 아니네?”

 

고즈넉한 분위기가 깨져버렸어… 나는 속으로 탄식하며 뒤를 돌아본다. 친구 녀석이 데이트라도 가는 모양인지 한껏 꾸민 차림으로 학교를 떠돌고 있었다.

 

“내가 항상 걔랑 같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맞잖아. 오죽하면 초중고대 다 같은 학교를 나왔겠냐. 난 처음에 너희 둘 사귀는 줄 알았어. 항상 붙어다니고, 서로 있으면 막 좋아라 하고.”

 

“뭐, 뭐래!”

 

귀까지 뜨거워졌다. 빨개진 게 백프로 드러날 거야. 더워서 이렇게 됐을 뿐이야. 더워서.

 

그는 내게 몸을 숙여서 귀에다 대고 소근거렸다.

 

“야. 형한테는 솔직히 한 번 말해 봐라. 사귀는 거 맞지 니네?”

 

“아 지랄 말고. 난 진짜 걔를 여자로 안 봐.”

 

“그러다 누가 채간다, 진짜. 그렇게 이쁜데. 너. 내가 걔한테 고백하면 어떨 것 같냐?”

 

“그건…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에라이 븅신 새꺄.”

 

그는 혀를 찼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반박한다.

 

“아니, 들어 봐.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인 거잖아. 초희가 고백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내가 결정할 게 아니지. 남의 고백을 막을 이유도 없고.”

 

“니가 그러니까 모쏠인 거야.”

 

“그게 여기 왜 나오냐? 진짜 죽여버릴까.”

 

그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뭐, 어쨌든. 왜 이런 데서 혼자서 궁상맞게 편의점 도시락 까먹고 있냐 이거야.”

 

“같이 먹어줄 거 아니면 그만 하시죠? 밥은 원래 혼자 먹는 겁니다?”

 

내 비꼬는 말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녀랑 연락이 안 되기라도 하냐? 데이트 간 거 아냐?”

 

“너 진짜…”

 

“아니. 있잖아.”

 

그가 갑작스레 정색하며 말했다.

 

“내가 아까 초희를 봐서 그렇거든. 근데 모르는 남자 차를 타고 어딜 가던데… 알고 있냐?”

 

“아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연애를 하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했겠지. 오빠나 그런 사람 아니야? 걔를 누가 좋아한다고 진짜. 맨날 고압적이고, 폭력적이고.”

 

“얘 좀 봐라. 또 그런다. 너 그렇게 말하면서 신경 쓰잖아. 전화나 해 봐. 뭐하고 있냐고.”

 

“진짜로 데이트면 얼마나 눈치 없는 짓이냐? 나한테까지 안 알려줬으면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나본데 굳이 캐물어서 뭐하게.”

 

친구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으으으윽엑윽… 나 간다. 안녕.”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욕설을 하며 나무젓가락을 집어던졌다.

 

“시발 새끼! 나한테 뭐 어쩌라고 그딴 소릴 해.”

 

도시락은 반 정도 남았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잔반을 붓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집어넣으며 핸드폰을 꺼낸다. 그의 말이 머릿 속에 울렸다.

 

‘전화나 해 봐. 뭐하고 있냐고.’

 

지랄이다 진짜. 오지랖 하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번호를 누르고 있는 내가 더 역겹다.

 

신호음이 길다. 받질 않는다. 슬슬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하는 멘트가 나올 때군. 제기랄. 끊자. 뭐하는 거냐 나.

 

[여,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에 초희가 어쩐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그냥 어제 별로 기분이 안 좋아보이길래 무슨 일 있나 해서… 바빠? 왜 그렇게 숨이 차?”

 

[아, 그, 바쁜 건 아니고, 전화기가 좀 머, 멀리 있어서.]

 

“아. 그래… 그럼 집이야?”

 

[응. 지, 집이야. 자, 잠깐만! 하지 마!]

 

초희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뭘 하지말라는 거세요. 전화를?”

 

[아니… 그... 개가 또 쓰레기통 뒤지네…]

 

“주인이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배운 거 아닐까요?”

 

[아, 아하핫. 그, 그러네.]

 

“그래서, 문제는 없는 거지?”

 

[응, 그럼. 나, 나는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그래. 알았어.”




 전화는 끊겼다. 나는 결국 무언가를 직시할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필터까지 탄 담배를 비벼끄며 떠오르는 가정을 애써 무시했다. 축축해진 눈을 닦았다.

 

 

 

 

 

 

한 시간 조금 오버했다... 아직 생략한 게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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