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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지나가는 봄바람에

by 레이블 posted Apr 30, 2017 (21시 42분 27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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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사람이 부는 날이다.
 따스한 햇살에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지는 포근한 날이다.
 겨울이 가고 찾아오는 봄에 나른한 기분에 한껏 취하며 밖으로 뛰어나간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날씨다.
 딱히 자전거에 취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몇 번 타고 구석에 박아 놓고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문득 떠올라 다시 꺼내서 시승한다.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기분에 지금까지 구석에 박아 놓기만 한 걸 살짝 후회하며 계속하며 실컷 밟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오래 안 쓰고 박아 놓은 탓인가 체인이 터져버렸다.
 “아... 어쩌지?”
 터진 체인을 보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곤란해 있던 참이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
 힐끗 쳐다만 보고 스쳐지나 갔지만 알 수 있었다.
 따스한 봄바람에 스쳐지나가는 인연.
 검은 긴 생머리가 흩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자 느낄 수 있었다.
 한 눈에 반했다는 것을.


 그녀는 작년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학생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쉽사리 말을 붙일 수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스쳐만 지나간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아무런 계기도 없이 먼저 말을 붙인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안녕, 이 길로 지나가면서 몇 번 봤는데 혹시 연락처 좀 줄래?”
 줄 리가 없나.
 무슨 수를 써야 좋을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혹시 기억해? 저번에 자전거 체인이 터져서 곤란해 하던 오빠야. 사실 첫 눈에 반했는데...”
 아니야.
 혼자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침대에 몸을 던진다.
 그도 그럴게 처음으로 좋아하는 상대가 생겼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계기 같은 걸 만드는 법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가 엄청 잘 생겨서 상대가 한 눈에 반할 정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말 한번 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오늘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또 같은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
 오늘로서 거의 일주일이 넘어간다.
 주말 빼고는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여고생은 당연하지만 교복에 가방을 메고 매번 같은 길로 하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걸어도 걸어도 여고생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나는 학교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하고 놀러갔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다음 날.
 계속해서 한 눈에 반한 여고생은 볼 수 없었다.
 그래. 그런 거겠지.
 이제 고등학생이니 학업에 열중하느라 학원을 간다던가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결국은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몇 달정도 지났으려나?
 그 뒤로 한 번도 그 여고생은 볼 수 없었고 점점 한 눈에 반한 얼굴도 감정도 퇴색되어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겨우 잊어가고 있었던 그 여고생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우연히 마트에서 만난 게 전부지만 확실한건 그 때의 그 감정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가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러지 못했다.
 최선을 다 한 것이라곤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는 척 하다가 카운터에서 계산 할 때 뒤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전부.
 이럴 때마다 쑥맥인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바로 뒤를 쫒아가 집이 어디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기에 관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겠지.
 좁디 좁은 동네라 할지라도 이렇게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그 후로는 그 여고생을 잊기 위해 계속해서 놀러 다녔다.
 학점 따윈 걷어 차버리고 놀고 마시고 자고 게임하고 여행을 떠나보고 별에 별 짓을 다하며 놈팽이마냥 잊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여자에게 고백 받아 기세에 사귀는 사이까지 가버렸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랑 같이 있을 때마다 항상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웃기지도 않는다.
 지가 내 생각을 무슨 수로 아냔 말이다.
 혼자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고 혼자 고백하고 혼자 떠나버렸다.
 그렇게 나는 안 피던 담배까지 손을 댔다.
 영화에서 보면 힘들거나 고독할 때는 꼭 들어가기에 한번 따라서 펴봤다.
 처음에는 심하게 콜록거리며 이런 걸 왜 피나 싶었지만 어느새 중독 되서 입에 담배를 물고 지내게 되었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이렇게까지 몰리게 되자 괜히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왜 나는 겨우 그런 여고생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됐는지 짜증이 솟구치기도 하였다.
 말도 걸어보지 못한 짝사랑을 아직도 혼자 계속 끙끙거리고 있다는 점이 우스웠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감정 조절이 되지 않던 나이기에 차라리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뜻에서 군대로 지원했다.
 군대는 머리를 텅 비게 해줬다.
 여러 가지 힘든 훈련 속에서 결국 나는 다 잊고 가슴에 남아 있던 조그마한 감정까지 전부 정리한 채, 무사 전역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이 길을 걷는다.
 설마 한눈에 반한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마치 그날과도 같은 봄내음이 스쳐가는 날씨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니 기분도 상당히 좋아진다.
 그 날 체인이 터진 그 벽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아직 어렸었지.’
 당시의 내 자신을 생각하며 살짝 웃으며 다시 나아간다.
 바람이 스쳐지나가듯 그 때의 추억도 흘러지나간다.
 사실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을 아닐까?
 의문을 가져보지만 이제 와서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걸어간다.
 긴 생머리를 출렁이며 봄바람과 함께 흘러온 그 날의 일들은 그 장소에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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