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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내 소꿉친구는 변태다.

by 하나마나 posted Apr 30, 2017 (22시 49분 11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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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꿉친구는 변태다.

 

남자가 변태인 게 무슨 문제냐고?

아니, 그 녀석은 여자다.

여자는 언제나 단아하고 얌전하면서, 야한 일은 아무것도 모를 줄 아냐고?

아니, 그 녀석은 야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나름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유행에 따라서 바꿔본 땡글이 안경을 제외하고 특별한 게 없는 나와 다르게, 내 소꿉친구는 수려한 외모와 행동으로 인해 학교에서 인기가 있는 편인 것 같다. 나한테 그녀의 연락처를 물어보러 오는 놈들이 종종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겠지. 다들 그녀의 실체를 알면 어떨까?

 

“종례 이걸로 마치도록 할게. 반장?”

“차렷! 선생님께 경례!”

 

반장이 일어나 외치고, 인사를 마친 교실이 단번에 어수선해졌다. 가방을 정리하던 중, 앞자리의 친구 녀석이 장난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허! 인주야 무엇 하고 있느냐! 어서 끝내지 않고? 마눌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느냐!”

“시끄러워, 사귀는 거 아니거든? 좀 다물어줄래?”

 

그리고 아까부터 복도 쪽 창문의 투명유리 너머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민폐 덩어리 소꿉친구로 인해 지금부터 나의 일정도 어수선해질 예정이다.

 

 

*

 

 

 

벚꽃의 꽃잎이 나무에서 떨어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잎들이 채워 넣어 거리가 초록으로 물들고 있는 4월, 날씨도 따뜻하니 좀 자제할 만도 하건만, 오늘도 역시 나를 끌고서 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던 소꿉친구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고1까지 계속 같은 반이다가 2학년 되고 나서 반이 달라지니까 진짜 불편한 것 같아. 그치, 인주야?”

“바로 옆 반이잖아, 수진아... 그다지 불편한 건 없지 않아?”

“불편한 거 완전 많거든? 전엔 항상 같이 끝났는데 지금은 조금씩 다르니까 기다려야 하잖아! 수업도 달라서 체육도 같이 못 하고, 점심시간인데 너희 4교시 수업이 늦게 끝나면 기다려야 하고... 또 오늘처럼 너희 반 종례가 늦게 끝나기라도 하면 더 심하기도 하고...”

“......”

 

뭐가 그리 많은지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수진이의 말을 듣고 2학년에 올라오고 나서 자주 생각했던, 그러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말을 꺼내본다.

 

“저기, 수진아? 굳이 안 기다리고 혼자 간다는 선택은 없는 거야?”

“무슨 말이 그래! 화낸다?”

“미, 미안...”

 

앞서 걷던 수진이가 격하게 돌아보자, 아래로 묶어 내린 긴 머리가 함께 흩날렸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큰 반응에 놀라서 무심코 사과해 버렸지만, 수진이가 항상 나를 끌고 가서 시키는 일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화를 내는 건 내 쪽이어야 하지 않을까?

 

앞장서서 걸어가던 수진이가 내 옆으로 와 공원으로의 걸음을 계속했다. 그러나 고개를 억지로 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돌리고서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변하지 않은, 수진이가 삐졌을 때의 모습에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항상 챙겨줘야 하는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수진이의 화를 풀어줄 만한 화젯거리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우리 반이 늦게 끝나는 것 같다? 매일 네가 나 기다렸잖아?”

“응, 선생님들이 일찍 끝내주더라?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는데 항상 끝날 때쯤에 날 한번 보신 다음에 수업 끝내주시는 것 같았어. 빨리 끝나고 싶다는 내 마음이 통한 걸까?”

“아...”

 

뭔지 알 것 같다. 수진이는 기본적으로 웃는 얼굴이지만 정말로 화가 날 때 보이는 무표정은 공포 그 자체다. 그 공포는 아까 내가 한 말에 화낸다며 보인 반응과 차원이 다르다. 잠깐? 그렇다면 수진이 너, 수업 때마다 화가 난다는 거야? 너 얼마나 늦게 끝나는 걸 싫어하는 거야?

 

“찾았다! 저기 있다! 숨어 인주야!”

 

뭐라고 한소리 해 주려던 찰나, 수진이가 내 교복 소매를 잡고 공원 입구 근처의 골목으로 끌고 갔다.

 

“잠깐만! 나 아직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못 들었거든?”

“우리 학교 축구부 3학년 선배야! 자세한 건 가면서 말해줄게.”

 

수진이는 골목 벽에 몸을 붙이고 첩보영화를 찍듯이 힐끔힐끔 공원 쪽을 바라보고 있다.

 

“공원으로 들어간다! 따라가자!”

“이번에 네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저 3학년 선배인 거야?”

“이러다 놓치겠다! 빨리 가자.”

 

수진아... 좋아한다고 몰래 뒤는 밟는 건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수진이를 따라간다.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따라다니면서 혹시라도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말릴 생각이다. 중학생의 어느 시기부터 이게 수진이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수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나를 끌고서 그 사람의 뒤를 쫓는.

 

그렇다. 내 소꿉친구는 스토커다.

 

 

 

 

공원으로 들어간 선배와 10m 이상 떨어진 거리, 공원 자판기에 몸을 가리고 선배에게 보이지 않을 각도로 우리는 숨어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누구야?”

“이름은 소농민. 우리 학교 3학년 2반, 축구부 소속으로 실력이 꽤 있는 것 같아. 대학도 축구 쪽으로 추천받아서 갈 거라는 소문이 있어. 그리고 잘생겼다고 하더라? 난 잘 모르겠지만...”

 

이른바 축구부의 에이스라는 거군. 이름만 들어도 왠지 축구를 잘할 것 같다. 심지어 얼굴까지 훈남이라? 정말이지, 듣기만 해도 인기가 많다는 게 예상된다. 애니 같은데서 보면 여자애들이 ‘선배님~ 수제 쿠키 만들어 봤는데 드셔 주실래요?’ 라면서 받아서 먹기라도 한다면 ‘꺄악~ 선배가 먹었어~’ 라며 부끄러워하던데, 먹는 거 보고 부끄러워할 거면 애초에 주지를 말라고! 분명 받아먹는 그 선배도 난감할 게 틀림없다. 나처럼 수진이가 만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만들다 남겼거나 실패했다는 과자나 먹는 게 마음 편하지. 그럼, 그렇고말고. 인기가 많으면 분명 피곤할 거야. 이렇게 애니를 통해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구나.

 

“인주야? 듣고 있어?”

“아, 응. 축구부의 에이스에다가 뭐... 훈남이라 이거 아니야? 불쌍하게도.”

“응? 훈남? 불쌍?”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내 단어 선택에 수진이가 물음표를 띄운다. 굳이 저 의문에 답은 하지 말자, 응. 절대 비참해서가 아니다.

 

“아무튼 훈남의 축구부 에이스, 그리고?”

“그리고 라니?”

“뭐 더 없어? 정보가 너무 적지 않아? 이렇게 스토커 짓까지 하는 거에 비하면 너무 평범한 정보잖아?”

“아...”

 

드물게도 수진이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기요? 중학교 때부터 스토커 짓을 하고 있는 프로 스토커 수진 씨?

 

“에휴... 그래서 저 선배의 마음을 겟 할 수 있겠어? 제대로 안 하면 선배의 하트를 다른 여자한테 뺏길지도 모른다? 언제 다른 여자 후배가 나타나서 손수 만든 쿠키를 건네줄지 모른다고?”

손수 만든 쿠키의 파괴력 물로 보면 큰코다친다? 효과 굉장하다고? 애니에서는 그랬어...

“뭐...?”

“아니지? 가만있어봐? 너도 저 선배입장에선 여자 후배잖아? 이참에 수진이 네가 직접 과자 같은 거 만들어서 선물하는 건 어때?”

 

좋은 생각인데? 수진이가 만든 과자는 일단 맛있다.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만일 그렇게 수진이랑 저 선배가 잘 돼서 수진이가 스토커 짓을 그만둔다면 일석이조잖아?

 

“인주 너......”

 

그 순간, 자판기에 신체를 구부려 기대어 선배 쪽을 보며 가만히 내 말을 듣던 수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신체를 일으켜,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를 응시한다.

 

“읏! 아... 그게...”

“내가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그런 말...”

 

숨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 키 차이로 인해 날 올려보는 수진이에게서 두려움을 느낀다.

 

“니, 니가 만든 과자 진짜로 맛있었으니까! 분명 효과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으에?”

“미안! 다른 사람이 뺏어간다니, 말이 너무 심했어. 사과할... 응?”

 

두 눈을 질끈 감고 사과하던 중, 다시 눈을 떠서 본 수진이의 분위기는 180도 변해 있었다. 조금 전의 분위기가 거짓말이기라도 했듯이 기쁘게 웃으며 양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고개를 붕붕 젓고 있었다.

 

“그랬구나... 맛있었구나!”

“어? 어... 진짜 맛있었는데...”

 

뭐야? 맛있다는 말로 화가 풀린 거야? 약간 어이없기도 했지만, 뭐 어떠하리! 결과가 좋으면 됐지. 앞으로 과자 같은 걸 받으면 꼬박꼬박 맛있다고 얘기해 주도록 하자. 잠시 후, 수진이가 변명하듯 급히 말을 꺼냈다.

 

“흠흠... 아무튼, 정보가 적은 건 이제부터 정보를 얻을 거기 때문이야! 스토커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정보를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스토커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을 가슴 속에 잘 새겨 넣도록 해.”

“아, 그러세요?”

 

그런 말 새겨 넣고 싶지 않아... 무서우니까 말로 꺼내진 말자. 누가될지 모르지만, 수진이와 결혼하는 미래의 남편은 분명 엉덩이에 깔려 살게 분명하다. 다시금 선배를 관찰하던 찰나, 갑작스럽게 선배가 방향을 바꿔 우리가 있는 자판기 쪽으로 향해 다가온다.

 

“잠깐! 저 선배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

“안돼! 숨어야 하는데.”

 

주변에 마땅히 숨을 곳은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이쪽으로 와서 숙여.”

“으에? 인주야 잠깐...”

 

어쩔 수 없이 접근금지 팻말을 무시하고 들어가 수진이의 어깨를 감싸 풀숲으로 끌어들여 몸을 숙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가 지나간 모습이 보였다.

 

“지나간 것 같아. 계속 따라갈 거지?”

“어......어어어어어어어얶어깨.......... 파......파파파파파리... 팔이...”

“뭐, 뭐라고? 너 왜 그래? 파리?”

 

4월에 파리가 있다고? 아니, 그보다 수진이가 파리를 무서워했었나? 잠시 후 일어난 수진이가 후우후우- 하며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인주야, 오늘은 그만 집에 가자.”

“그래... 그게 낫겠다. 너 상태도 별로 안 좋아 보이고.”

“응... 오늘은 너무 많이 맞았어... 익숙하지 않아...”

 

4월에 공원에서 날아다닌 파리가 몰고 온 여운을 뒤로하고, 그렇게 우리는 공원에서의 스토킹을 끝냈다.

 

 

 

 

*

 

 

다음날 점심.

오늘도 수진이와 함께 학교 뒤뜰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굳이 학교 뒤뜰에서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라는 의미 모를 이유로 수진이가 이곳에서 먹자고 하기에 우리들의 점심은 항상 이곳이다. 덕분에 학교에서의 점심은 항상 매점의 빵이다.

 

“인주야, 커피 우유 한 모금 마실래?”

“아니, 괜찮아. 너 마셔.”

 

지금처럼 밥을 먹거나 할 때, 수진이는 항상 처음 한 입을 나에게 준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미안하면 안 먹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내가 안 먹으면 수진이의 표정이 점점 사라지면서 자기 음식을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 없잖아.

 

“......먹을래?”

“그래... 잘 먹을게.”

 

작은 저항을 단념하고 수진이가 내민 커피 우유의 빨대를 물고 조금만 빨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방법! 미안하니 조금만 먹기 법! 이렇게만 먹어도 수진이는 기뻐하기에 내가 느끼는 미안함은 줄어든다. 커피우유를 한껏 빨아 마신 수진이가 만족스러웠는지 웃으며 말했다.

 

“인주야, 역시 난 공격이 맞는 것 같아. 어제는 갑자기 훅 들어오는 기습을 급소에 맞은 느낌이었어.”

“갑자기 뭔 소리야? 공격? 기습? 급소? 싸움이라도 할 생각이야?”

“그런 게 있어.”

 

이렇게 수진이가 의미 모를 소릴 할 때는 그냥 그렇구나 하며 넘기는 게 좋다. 깊이 파고들면 피곤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진이와 내가 사온 음식을 모두 먹고 일어날 무렵,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소농민 선배님...”

“오늘은 안 숨어도 돼? 어제는 숨어야 한다며?”

 

어제의 반응을 떠올리며 내가 묻자.

 

“응,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도 그럴게...”

 

모를 리가 없다. 소농민 선배가 우리에게 볼일이 있어서 다가오고 있다는 것과 그 시선의 끝에 수진이가 있다는 것도.

 

“네가 수진이 맞지? 난 3학년 소농민이라고 하는데, 혹시 알고 있니?”

“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잠시 괜찮을까?”

 

선배는 수진이에게 그렇게 말한 후 나를 힐끔 바라본 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것만으로 그 시선의 의미와 함께 선배가 수진이를 찾아온 목적을 깨달았다.

 

“나 먼저 올라갈게 수진아.”

“......”

“미안하네... 왠지 내가 쫓아낸 것 같아서.”

 

인주의 침묵과을 뒤로하고, 선배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며 두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소농민 선배는 수진이에게 고백하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수진이가 스토커 짓을 하던 대상이 수진이를 좋아해서 고백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그 스토커 짓에 함께 붙어 다녔던 내 기억 중에서 이런 적은 없었으니까.

 

‘잘됐네.’

 

수진이는 선배를 좋아하고 있으니 둘은 이어질 것이다. 이제 더는 수진이의 스토커 짓에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교 때부터, 인기 있어 보이던 사람들만 스토킹하다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뺏겨버리던 수진이가 더 이상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 더 컸다. 정작 걱정하는 내 마음은 모르고 금세 다른 사람을 따라다니던 수진이었지만...

 

모퉁이를 돌아 교실로의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뒤돌아봐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스토커도 끝이고, 밥도 같이 안 먹어도 되고... 잠깐? 이거, 이렇게 되면...’

 

불현듯 드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수진이랑 같이 못 있는다... 라는 거잖아?’

 

그리고 향하던 방향을 바꿔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 돌아 나와 멀어졌던 모퉁이는, 당연하지만 훨씬 빠르게 가까워졌다. 모퉁이를 잡고 방향을 바꾸려던 순간.

 

“꺄악!”

“우와!”

 

갑자기 나오는 수진이와 부딪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진이의 손을 잡고 점프하듯이 돌았다.

 

“인주야? 먼저 간 거 아니었어?”

놀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수연이. 그러나 지금 그런 사소한 건 중요하지 않다.

 

“하아... 하아... 선배는? 벌써 끝났어?”

“아... 응. 그보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급하게.”

 

어떻게 됐어? 라고 물어보려 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냥... 같이 가려고 기다렸어.”

“같이 가려고 기다렸다고? 나를?”

“그럼 너 말고 누굴 기다려. 됐어, 교실로 올라가자.”

 

그러나 수진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부딪칠 뻔했을 때보다 더 놀란 모습이다.

 

“그거 알아? 인주 네가 날 기다려 준거, 이번이 처음이야.”

“그럴 리가 없... 을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번은 있지 않을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진이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있어! 항상 내가 먼저 기다렸다고?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어제까지도! 지금이 처음이란 말이야.”

“그런가? 근데 그건 네가 항상 빨랐으니까...”

“있지 인주야, 방금 선배가 나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바로 거절했어.”

“뭐라고? 너 그 선배 좋아한 거 아니었어? 스토킹했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장 궁금하던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안도감이 퍼졌다.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

‘충분히 중요한 것 아닐까?’

 

떠오른 말을 내뱉으려 했으나 수진이는 그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한다.

 

“왜 왔어?”

“가, 같이 가려고 왔다니까.”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왜 왔어?”

 

수진이는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그러나 수진이가 원하는 답을 말해 줄 수는 없다. 나도 아직 그 답을 모르니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었어!”

“그래, 그렇구나.”

 

결국, 거의 같은 말을 반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내 대답을 들은 수진이에게서 평소와 어딘가 다른, 미소가 번졌다.

 

“드디어 한 걸음 내디뎠어.”

“뭔 소리야... 한 걸음 후퇴한 거지. 다시 스토킹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 앞으로도 같이 어울려 다닐 생각 하니까 한숨이 나온다 진짜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부끄러움을 감췄다. 그런 내 반응에 수진이는 웃으며 말한다.

 

“후훗, 내 스토킹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거든? 앞으로도 계속할 거고.”

“네네, 그러시겠죠.”

 

수진이 역시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적당히 반응해 준 후, 교실로의 발걸음을 옮긴다.

 

모퉁이에서 부딪칠 뻔했을 때 잡았던 손을 아직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진이와 이렇게 손을 잡아본 건 얼마 만이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인 건 확실하다. 연결된 손 때문인지 몰라도, 수진이와 더 가까워 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4월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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