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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쥐뿔도 없는 영생

by 자사김 posted May 08, 2017 (23시 43분 54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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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살아오셨습니까?"

 

"오, 나 말인가? 아니, 네가 아니라 나지. 무슨 소리야 나인걸. 하하, 그러면 뭐 어때. 이봐, 내가 몇 년이나 살았더라? 아마 천 년쯤 지났을 껄. 내가 천 이백년을 살았는데? 다들 조용히 해, 이천 년이니까. 이런, 다들 치매에 걸렸구만."

 

웃고 있었다. 즐거워 하고 있었다. 남자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한참을 혼자 대화하며 웃었다. 별거 아닌 질문 하나였지만. 그에게는 오랜 시간만에 찾아온 자극이며 유희였다.

 

"그래, 아리엘. 아니, 루안이었던가? 밀러였을 수도 있고."

 

"크리스입니다만."

 

"이안! 이안이로구나. 허, 내 제자가 이리 찾아올 줄은 또 몰랐군." 

 

마치 이미 녹화 된 영상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크리스는 쓴 웃음을 지었다. 눈 앞에 있는 자는 얼마를 살아왔는지, 정확한 기록도 없을 만큼이나 오래 살아온 자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를 더 살아갈지 모르고 계속해서 살아갈 터였다. 

한 마디로, 영생의 존재였다. 신이 초대 용사였던 그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 그는 영생을 그렇게 얻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 사랑, 세레비안이여! 힝, 무슨 소리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옆 집에 사는 루아인걸. 너희는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구나. 시에아 공주를 빼놓고 그 누가 사랑을 논하는가! 어허, 미안하지만 최고의 연인은 스오 백작의 딸일 걸세." 

 

"저기."

 

"내가 손님을 너무 기다리게 했군. 미안하네, 루시안. 여기 다과라도 좀 들게나. 어제 제국의 수도에서 갓 사온 차라네. 누추하지만 거기 의자에라도 앉도록 하고." 

 

허공에 휙휙, 몇 번을 손짓하자 그의 손에서 갑자기 이미 썩은 듯한 차가 한 컵 나타났다. 반대 쪽 손에는 이미 말라 비틀어진 과일이 있었다. 한 조각만 먹어도 평생을 무병장수한다는 전설 속의 과일, 로열 후르츠였다. 별거 아니라는 듯 내미는 그의 선물을 크리스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았다. 물론 먹지는 않았지만.

 

그가 권한 의자는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 진 의자였다. 곳곳에 살점이 묻어 있었는데, 파리도 이미 한참 전에 꼬이고서 떠나 보이는. 얼마나 오래 전의 드래곤 뼈인지도 모를 뼈였다. 검으로 만들면 두 수 위의 적을 이길 수 있고, 갑옷으로 만들면 세 수 위의 적으로 부터 살아돌아갈 수 있다는 드래곤 본을 이런 곳에 낭비하다니. 크리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치였다. 그건 그가 일반인이었기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타리우스, 나의 친우여. 나는 늙고 병들었다네. 물론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말이야. 우후훗!"

 

크리스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할까 하던 크리스는 한숨을 내쉬고선 그의 말을 경청하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한번 더 지적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보였다. 

 

"아아. 살려주게, 아니. 차라리 죽여주게. 타리우스! 루시안! 세레비안이여! 오, 바디인이여. 나에게 축복을. 바디인 이 개자식아! 감사합니다, 저주합니다. 히히히, 킥. 오. 아아. 나는 저주받았지. 축복일세. 아니, 저주일세. 오, 축복이네. 이게 몇 번째 인격일까? 나는 지금 제정신인가. 아, 신이시여 나에게 힘을. 오, 빌어먹을 신. 신. 신. 제발 그만하게." 

 

바디인. 그에게 최고의 축복이자 저주를 건 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사내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갑자기 주변에 마법을 난사하다가, 혹은 갑자기 검으로 강하게 벽을 내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엔 제 풀에 지쳐 다시 앉아서 크리스를 바라보았다.

 

"추태를 보였군."

 

"제 정신이 든 겁니까?"
 

"밍키, 밍키. 왜 이 주인을 홀로 놓고 떠나느냐? 이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더냐. 아, 빌어먹을 운명이여."

 

제 정신은 개뿔. 내가 어쩌자고 이 작자를 만나러 온 건지. 잠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한 크리스는 자신의 무기인, 자신이 빅-거대-웨폰-이라 이름지은, 망치를 꺼내들어 강하게 사내를 내리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한 때 전설의 용사였던 자는 그렇게 피떡이 되었다.

 

"이히히, 이브! 좋소, 좋소. 더 괴롭혀 주시오! 아아, 나에겐 이제 당신 뿐이라오. 그대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훌룡한 남편의 일이겠지. 권태기 방지를 위해 다음에는 내가 해도 되겠소? 키키키키. 우, 히 하하! 크. 농담이라오. 조금 재밌지 않았소?"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복구된 몸을 끌고선 다시 일어섰다. 대체 무엇을 회상하는지는 몰라도 묘한 쾌감마저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영생의 존재라는 건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내리쳐도 죽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는다. 아무리 훼손되어도 죽지 않는다. 

 

그것이 신이 그에게 남긴 저주였다.

 

"정말 병신이야."

 

크리스는 다시 발작을 일으키는 사내를 앞에 두고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그리고선 입에 물었다. 화악, 몰려오는 마약 성분에 한동안 좆같았던 기분이 풀어졌다. 그는 하늘로 연기를 몇 차례 내뿜고선 담배를 대충 벽에 지져 꺼버렸다.

 

이게 모두 그가 전대 마왕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인류는 사활을 다해서 마물들과 악마, 그리고 최후에는 마왕마저 잡았다. 모두 초대 용사였던 사내가 일으켜 낸 기적이었다. 다만, 한가지 문제는 신이 마왕을 사랑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피조물을 사랑한 창조주. 그리고 그런 피조물을 죽여야만 하는 다른 피조물. 

 

결국, 그는 영생을 살게 되었고. 인격을 죽이고 분리시키며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자신보다 계속해서 먼저 떠나가고.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죽어버렸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주여, 아아 주여! 오, 인생은 쾌락과 절망의 연속이라네. 알고 있는가 프랭크? 마법! 초월! 검술! 저기, 저기 악마가 있네. 흐흐. 아, 그대는, 어찌하여, 오-"

 

과거의 기억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그 조차도 그가 누군지 모르게 되어버린 통제불능의 미치광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마저도 그 자신이었으니. 진실로 그에게 남은 건 없었다.

 

"그거 아십니까? 당신의 선례 덕에 그 누구도 용사가 되지 않았다는 거." 

 

사내가 영생의 축복을 받은지도 이미 수 천년이 지났고. 마왕이라는 존재는 환생했으며, 마물과 악마들은 다시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게 백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들을 물리치려고 들지 않았다.

두려워서. 초대 용사처럼 될 까봐. 

 

지금까지 용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만 해도 수 백, 수 천명이 나타났었다. 당연했다. 세상은 넓고, 인류는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모두 초대 용사의 상태를 보고선 고개를 가로지으며 차라리 죽겠다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 크리스, 그였고. 

 

"저도 당신처럼 되고 싶지는 않군요."

 

"이히, 나비야. 오, 고양아. 어디를 가는 것이더냐? 뭐, 낙원으로 간다 이 말이더냐? 후, 키 오. 그것 참 좋구나. 나도 데려가다오. 나도, 오오. 같이가오. 그대여. 얼마요? 거기 까지 가려면. 으, 맞군. 돈이 없었지." 

 

그도 스스로의 운명을 거부했다. 미쳐버려 계속해서 낄낄 웃고만 있는 예전의 용사를 내버려두고서,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가면 인류는 멸망할 지도 몰랐다. 용사가 없으니까. 그것이 이 세계의 운명 비스무리한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는 용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그랬다, 세계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유는 그것 하나 뿐이었다. 

세계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킬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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